소설리스트

#90 비가 내리면 여자는 섹스를 원한다 ③ (90/92)

#90 비가 내리면 여자는 섹스를 원한다 ③

소장이 당황하는 얼굴로 더듬거리는 것을 보는 순간, 어쩌면 그의 말이 거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최언니 에게 확인을 하지 않는 이상 그의 말이 거짓이라고 단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리 는 없다 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제 생각인데요......."

"말해 봐?"

"최언니가 만약 그 돈을 변제하지 않으면 어떡하실 예정이에요?"

"그야. 그 여자가 정 변제를 하지 못하겠다면 나라도 해야지. 감독 책임은 내게 있으니까."

이번에는 자신 있게 말하는 소장의 말이 또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감독 책임이 있다지만 천만 원이란 돈이 셀레리맨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머리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다가 말고, 소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만약 최언니 건이 거짓말이라면 현재 아내와 별거하고 있다는 것도 거짓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였다.

"사모님하고는 아직 별거 중이신가요?"

소장의 마음을 떠보려고 담뱃불을 붙이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어제 저녁에 전화가 왔더군. 이혼을 청구했다고.......후후후. 내 잘못이지 뭐. 이혼을 해 줄 수밖에."

그 말은 진실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첫사랑의 여자를 닮았다는 말도 거짓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문득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출근한 고여사의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연민의 정이 솟아 올라왔다. 그녀와 알몸으로 뒹굴었다는 생각에 이어서,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뺏겼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괜한 말을 물었나 보군요."

고여사의 말을 지우면서 지금까지와 다르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이유야 어쨌든 이혼을 할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은 안 좋 은 일이기 때문이다.

"휴!.......미스노를 만나지 않았어도 이혼까지는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미스 노 한테 책임이 있다는 말은 아니니까 내 말을 새겨들을 필요는 없어.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니까....... 후후후."

소장이 길게 내 쉬는가 했더니 가을바람이 불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고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 순간, 이상하게도 가슴이 찡 해 오는 슬픔을 느꼈다. 소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첫사랑의 여자가 나를 닮았고, 나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아내를 멀리하기 시작했다면 내게도 간접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고 싶으신 말씀은 그게 전부예요?"

더 이상 소장 앞에 앉아 있기가 거북해서 고개를 들고 물었다.

소장은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 거렸다. 그리고 나서 다시 길게 한숨을 내 쉬며 괴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 눈을 감았다.

"그럼 전 이만 일 할께요."

소장이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는 것을 보며 찻잔을 들고 일어서려 할 때 였다. 소장이 갑자기 눈을 뜨고 허리를 세우면서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왜.....왜 그러는 거예요?"

그의 손목을 힘껏 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손에 찻잔이 들려져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허리를 숙이며 찻잔을 도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일어서려고 할 때였다.

"미스 노?"

소장의 일어서며 나를 쳐다보았다.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눈동자뿐이 아니고 목소리까지 떨려 나오고 있다는 느낌 속에 내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풀으려고 손목에 힘을 주었다.

"내......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

소장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나를 껴안았다. 순간 바로 이 사무실에서 최언니의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던 소장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안돼! 나는 최언니와 같을 수 없었다. 이를 악물며 소장의 품 안을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나는 여자였고, 소장은 남자였다. 몸부림을 치며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가슴이 터져나갈 정도로 압박이 가해졌다.

"마.....마지막이야. 더 이상 아무 짓도 안할게. 그러니 제발 가만히 있어 줘. 그냥 껴안고 가만히 있을 테니. 내 말 못 믿겠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목소리가 내 귀청을 때리는 순간 그의 손목을 비틀다가 시선을 들었다. 소장은 울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겨울의 입구에서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듯한 쓸쓸함이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이런다고 뭐가 나아진다고 생각하나요?"

소장의 우울한 얼굴이 내 가슴속에 전이되어 오는 것을 느끼며 스르르 팔을 내렸다. 마음이 풀려서 그런지 모르지만. 생각해 보니 소장과 알몸으로 섹스까지 했었는데, 이까짓 거 잠시 동안 품에 안겨 주지 못하라는 법도 없을 것 같았다.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소장은 내가 반항하기를 포기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힘을 주고 있던 팔의 힘을 풀면서 우울하게 속삭였다. 그 대신 어깨와 허리 쪽을 부드럽게 껴안으며 자기 쪽으로 당겼다.

헉! 그의 가슴에 내 젖가슴이 짓눌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거친 숨을 토해 냈다. 그렇다고 흥분된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갑자기 몸을 끌어당긴데서 비롯되는 숨소리였다.

"이제 그만 하세요. 저도 견디기 힘들어요."

소장의 숨소리가 평온해 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팔을 풀었다.

"잠시 눈을 감고 있어 봐. 눈을 감은 얼굴만 보고 나서 팔을 풀어줄 테니......."

"이해를 할 수 없군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있는 내 얼굴을 소장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해해 줘, 나도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를 지경이야.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방갈로에서의 일은 진심으로 사과할게."

소장의 손이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었다. 그 손이 엉덩이 부분까지 내려 왔을 때도 가만히 있었다. 그가 힘주어 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해서 무언가 정신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