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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그녀는 레즈비언 ② (81/92)

#81 그녀는 레즈비언 ②

"저는 결혼을 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만약 제 남편이 다른 여 자와 몸을 섞고 있다면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아요."

취기가 엄청나게 밀려오는 것 같은 느낌 속에 벽에 등을 기대 고 고여사를 바라봤다. 고여사의 아름다운 몸매를 싫어하는 남 자, 부인이 별거를 선언했다는 소장, 그 소장을 협박하고 있을 지도 모를 최언니, 그 소장과 두 번씩이나 몸을 섞었던 나, 모든 게 엉망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불 행의 늪 속에서 오직 욕정만을 향해 허우적거리고 있을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도 그랬어. 그 작자와 결혼을 결심할 때 만 해도 사랑은 레 몬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지......향기는 있지만 너무 시릴 것 같 아 먹지 못하는 레몬과 같은 것인 줄 알았어........그래서 사랑이 란 설탕과, 이해라는 물만 있으면 멋진 레몬주스를 만들 줄 알 았지........하지만 그게 아니더군......."

고여사의 얼굴이 둘로 보이는 것 같아서 눈을 크게 떴다. 그런 내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고여사가 싱긋 웃으며 내 옆으로 왔 다. 나처럼 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쭉 뻗었다.

"사랑은 사진과 같다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사랑은 암실이 필 요한 거래요......"

"후후, 미스 노 알고 보니까 꽤 내숭이네.....하지만 미스노도 결 혼을 해 봐. 남자라는 짐승들이 섹스 할 때 빼놓고는 일회용 대 일 밴드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난 안 그럴꺼예요. 난 일회용은 싫어요. 내가 선택한 남자는 오직 나를 위해 일생을 살아갈 남잘 일거예요."

까닭을 알 수 없이 눈물이 나려고 했다. 첫사랑이었던 사촌 오 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뒤에 소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넌 내 첫사랑 여자를 닮았어. 널 처음 봤을 때 난 인생을 덤으로 살았 다는 걸 알았지. 뜨거운 입김을 귀에 훅훅 불어넣으며 그렇게 말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었지? 너무 취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든 게 엉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 속에 고개를 돌려 고여사를 바라보았다.

"저, 그 담배 한 모금 만 피워 보면 안돼요. 갑자기 취기가 밀 려오니까 정신이 없군요."

고여사는 대답을 안 하고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 더니 내 어깨에 바짝 붙어 앉으며 담배를 내 입에 물려주었다.

"후........."

고여사가 입술에 물려준 담배를 폐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천천 히 내 뱉었다. 조금은 숨통이 터지는 것 같은 느낌 속에 고여사 를 바라보고 생긋 웃어 주었다.

"미스 노 도 담배 피우는 구나........"

고여사의 목소리가 은근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깝게 붙어 앉 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싱긋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흔 들었다.

"담배 이거 엄청 좋은 거 아냐? 난 가끔 담밸 피워. 그리고 여 자들이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색안경을 쓰고 보지 않아. 여자하 고 남자하고 틀린 게 뭐가 있어. 똑 같이 사랑할 권리가 있고, 똑같이 생을 즐길 권리가 있잖아."

"그런데 결혼이라는 게 그 권리를 박탈해 버렸다는 거 갰죠?"

고여사가 내 손을 잡는 기척을 느꼈다. 그녀의 손바닥에는 땀 이 끈적하게 베어 있었다. 묘한 기분을 던져 주었으나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내 눈이 정확하다면 미스노는 이미 남자를 알고 있어. 맞지?"

고여사가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눅눅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너무 정확하게 알아 맞추었 다는 점 때문은 아니었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심각하게 묻느냐 하는 점 때문이었다.

"만나는 남자가 결혼 할 상대야?"

고여사가 슬그머니 손을 놓으며 물었을 때 나는 결혼 같은 건 안 하겠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고 결혼을 안 하겠다고 생각 해 본적은 없었다. 단순히 아직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남자 친구?"

고여사가 다시 손을 잡으며 물었을 때 대답 대신 술잔을 끌어 당겼다. 술에 취하면 술이 물처럼 보이고, 술이 술을 먹는 다는 말이 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내가 취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 고 있었다. 고여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오늘 저녁 같으면 얼마든 지 술을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냥 날 쫓아다니는 남자가 있었어요. 하도 애걸복걸 하길래, 두어 번 정도 같이 자 준 적이 있어요......후후후."

술에 취하게 되면 웃음이 헤퍼진다. 고여사의 끈적끈적한 손을 마주 잡아 주며 이제 됐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미스노는 인생을 너무 멋지게 사는 것 같애........"

고여사의 눈이 감겨들고 있는 게 보였다. 목소리까지 목구멍 깊숙이 잠겨 들고 있었다. 웬일이지? 취했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고여사의 입술이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왜........이러세요?"

순간적으로 고여사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알았다. 그녀는 키스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이성간의 키스가 아닌 동성간의 키스라는 생각이 야릇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술에 취한 탓 일까, 고여사의 입술이 내 입술에 가볍게 터치를 하고 물러날 때 짜릿한 쾌감이 전신을 훑어 가는 걸 느꼈다. 단란 주점에서 사람 많은 때 가볍게 키스를 해 주었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 었던 것에 비해 엄청난 변화이기도 했다.

"내가 미친년 같지?"

고여사가 풀풀 웃는 얼굴로 물었을 때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 다. 목이 마르다 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흔들었다. 고여사는 알 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인생은 영화 같애. 그 작자하고 결혼만 하게 되면 내 인생을 장밋빛 나날들로 이어질 줄 알았어. 하지만 내가 보험 설계사가 될 줄 누가 알았어. 그건 그렇다고 쳐.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니까. 말야.........."

고여사가 술 한 모금을 꿀꺽 이느라 말을 끊었을 때 나는 담배 를 끌어 당겼다. 몹시 취한다는 것을 느끼며 담뱃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 품으며 그녀의 젖가슴을 바라봤다. 아기를 낳지 않은 여자처럼 탄력 있는 우윳빛의 젖가슴이 너무 탐스러 웠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브래지어를 풀으면 그 젖가슴은 밑 으로 주저앉지 않고 젖꼭지가 천장을 향해 치켜 올라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살 줄 누가 알았겠........"

고여사가 다시 입을 열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내 시선 이 자기 젖가슴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슬며시 말꼬리를 흐 렸다.

"이해 할 수 있어요. 저도 가끔 엉망으로 살아갈 때가 있거든 요."

"만져 보고 싶어?"

당황한 내가 얼른 입을 열었을 때 고여사가 뜻밖의 질문을 했 다. 나는 입안의 침이 마르는 것을 느끼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호기심이 가는 건 사실이지만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였다.

"괜찮아. 난 가끔 자위를 할 때가 있어........"

"자위라구요?"

"응. 미치도록 외로울 때는."

"그럼 지금 외로우세요?"

"그렇게 보여?"

고여사가 쓸쓸하게 웃으며 반문했다. 고여사의 쓸쓸하게 웃는 모습이 갑자기 가슴 뭉클한 연민으로 와 닿았다. 고여사가 일순 간 고개를 치켜들고 천장을 바라보는가 했더니 내 손을 끌어 올 렸다. 그리고 곧장 브래지어 위쪽의 젖무덤을 만지게 했다.

"살결이 참 부드럽군요."

내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목소리까지 떨려 나왔다.

"문을 잠글까?"

내가 브래지어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매끄럽고 부드러운 감촉에 한 마디 할 때 고여사가 조용히 물었다.

"술이나 마셔요. 저 몹시 취했거든요."

내가 아무리 취했다 하더라도 고여사가 문을 잠그자는 의미를 모를 리는 없었다. 남자들은 으레껏 섹스를 원할 때는 문을 잠 갔다. 사촌 오빠도 그랬고, 소장도 그랬다. 그렇다면 고여사도 문을 잠그자고 할 때 둘 만의 공간을 만들자는 것과 같다는 결 론이었다. 그렇다고 잠그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건성으로 말하며 지긋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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