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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불륜 그리고 질투 때문에... (79/92)

#79 불륜 그리고 질투 때문에...

담배가 꽁초로 변할 때까지 깊숙이 빨아들이면서 최언니에 대 한 생각만 했다. 소장의 말이 진실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최언니 의 서정적인 눈매를 생각하면 거짓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혼란스 러웠다. 무엇 보다 똑 소리가 나도록 해 치우는 일 솜씨를 보면 최언니가 보험료를 횡령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난 지금 별거 중이야......

그러다 소장의 우울한 목소리가 기억나면서, 다시 최언니의 이 중성을 엿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서 이래저래 혼란스러 웠다.

모르겠어......너무 복잡해.......

머리가 혼란스러워서 인지 취기가 빠르게 밀려오는 것을 느꼈 다. 그냥 일어서려다 요의를 느끼고 소변을 봤다. 변기 물을 내 리고 밖으로 나와 거울 앞에 섰다. 담배 피운 흔적이 남았는가 살피다가 문득 내가 무척이나 변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장의 침이 얼굴 군대군대 묻어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 느낌 이 아스라한 아픔으로 다가 오는 것을 느끼며 가볍게 세수를 했 다.

왜 이러 는지 나도 모르겠어.......

밖으로 나와 숙소로 향하는 길에 소장의 얼굴이 또 생각났다.

억지로 얼굴을 지우려고 고개를 흔들었으나 허사였다. 왠지 첫 사랑 여자를 닮은 나 때문에 별거를 하고 있다는 말이 가슴 아 프게 와 닿았다. 가슴이 아픈 만큼 그와 섹스를 했다는 것 때문 인지 모르지만 소장이 타인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였는지도 몰랐 다.

그렇다고 소장이 한 말 처럼 그와 결혼을 한다거나, 그를 사랑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설령 그가 목숨 을 담보로 구애를 해 온다고 해도 그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소장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혼란스럽기만 했 다.

"끝났니?"

최언니와 둘이 사용하고 있는 숙소의 문을 열었을 때, 최언니 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녀가 볼륨을 줄이면서 길 게 하품을 하고 나서 단조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뇨?"

소장에게 그녀가 보험료를 횡령했고, 급기야는 그를 유혹했다 는 말을 들은 탓일까? 나도 모르게 대답이 퉁명스럽게 나와 버 렸다. 그녀에게 한 번도 그렇게 대해 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면서 약간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내 잊어버리기로 했다.

정말 보험료를 횡령했을까?

원래가 사람 눈에는 좋은 점 보다, 안 좋은 점이 쉽게 눈에 띄 는 법이다. 소장의 말을 들어서 인지 최언니가 평소처럼 보이지 않았다. 보험료를 횡령하고, 그것을 묵인해 달라고 육탄 공세를 서슴치 않더니, 급기야는 육체관계를 대가로 소장을 협박하는 무섭고 나쁜 여자처럼 보이기 시작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길 게 기지개를 하며 침대에서 일어서는 최언니의 얼굴을 곁눈질로 살펴보아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소장님은?"

"설계사 분 들 하고 단란 주점에 계세요?"

"그래.......설계사 들 술 많이 마셨지? 취해서 실수하시는 분은 없었니?"

"고여사 님이 좀 취하신 것 같긴 한데. 염려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고여사님이야. 워낙 술이 쌔니까........."

최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꾸하고 간단하게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순간 최언니가 소장을 만나러 가는구나 하는 생 각이 들면서 최언니의 얼굴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서늘한 눈 매하며 말수가 적은 입들이 모두 자신의 부정을 숨기려고 의도 적으로 꾸미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은 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소장과 비밀스러운 사이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언니 어디 가시려구요?"

최언니가 소장을 만나서 그와 섹스를 하든, 아니면 영업소를 말아먹건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았다. 사람이 이렇게 완벽하게 자신을 속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지금까지 미스노가 고생했으니까. 지금부터는 내가 관리를 해 야 하잖아. 문제는 지금부터 야. 왠 줄 아니? 설계사들이 술 마 시고 자기네들끼리 싸우거나, 토악질을 하는 등 별 일이 다 벌 어 진다고....하긴 모처럼 만에 가정과 일에서 해방이 되었는데 새벽까지 잠이 오겠니...다들 본전을 뽑으려고 난리겠지.... " 최언니의 속 깊은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딜레마에 빠 지는 것을 느꼈다. 소장은 최언니가 힘든 일은 나에게 시키고, 최언니는 요령만 피운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 각해 보니까, 업무 시간에도 난이도가 많은 것은 늘 언니가 처 리했던 것이 떠올랐다.

모르겠어.......

생각이 최언니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혼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소장이 단순히 나를 능욕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설마 아내 와 별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거짓이 아니겠지....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곤경에 빠지게 되면 자기 곤경에서 벗어나려고 자기 합 리화를 주장한다. 나는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소장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다. 이유야 어떻든 소장과 섹스를 했다는 점 때문인 지 몰랐다. 소장의 알몸이 떠오르면서 내 꽃잎 속에 아직도 소 장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저 샤워하고 일찍, 하긴 일찍도 아니지만 그만 잘께요. 그 대신 새벽에 일어나서 언니를 도울 깨요."

내가 생각해도 가증스러운 말이었다. 최언니를 이해하는 쪽으 로 기울어 질 듯 하다가도, 결국은 섹스를 했던 소장의 말이 맞 을 거라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자신을 숨기고 그녀에게 웃 어 보였기 때문이다.

"계획표에는 내일 새벽 6시에 기상하는 걸로 되어 있지만 내 경험으로 볼 때는 힘 들 꺼야. 그러니 낼 걱정은 하지 말고 푹 자두라고."

최언니는 그 말을 남겨 두고 손전등을 들고 일어섰고, 나는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잤는지 몰랐다. 몹시 목이 마르다 는 느낌 속에 눈을 떴다. 방안의 불은 꺼져 있었다. 창문 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이 아스라하게 방안을 비추고 있는 것을 느끼며 일어나 앉 았다. 어둠 속을 더듬어 불을 켜고 손목시계를 보니까 새벽 1 시밖에 되지 않았다. 물을 마시기 위해 생수병을 찾다가 문득 최언니의 이부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갑자기 소장이 개인 용도로 빌렸다는 방갈로가 떠올라. 그래 분명히 거기에 있을 꺼야. 생수병을 들고 몇 모금 마시는 둥 마 는 둥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는 아직 잠을 자지 않고 오가는 설 계사들이 많았다.

"미스 노? 우리 방으로 와서 한 잔 해."

"어머, 미스노 어디 갔었어. 한 참 찾았는데."

설계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잡아끄는 것을 간신히 뿌리치고 아래 층으로 내려 왔다. 밖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밤이 늦은 탓인 지 광장의 벤치는 비어 있었다. 광장을 가로질러서 가면 숙소에 있는 영업소 직원들의 눈에 띌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건물 앞에 있는 화단과 건물 사이의 어둠 속을 더듬어 방갈로로 갔 다.

"만약, 소장님의 말이 거짓말이라면 어떡하지."

방갈로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가슴이 띄기 시작했다. 소장을 사 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 첫 번째 만 난 남자 였다. 그런 남자가 거짓말장이 였다는 게 죽기 보다 싫 어서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소장을 사랑 하는 것도 아닌데 미친개한테 물린 셈치고 잃어버리면 그만 일 걸, 내가 왜 괜히 엉뚱한 일에 내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야! 아무도 없잖아.......

방갈로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용기를 내서 창문 앞으로 얼굴을 디밀고 살펴보았지만, 희뿌연 달빛 사이로 보이 는 간이 침대는 비어 있었고, 그 위 에 달빛만 내려앉아 있을 뿐이었다.

어디 갔지?

소장과 최언니가 방갈로에 없다는 사실이 안심으로 다가오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허 탈한 기분으로 숙소에 돌아와 보니 최언니는 화장실에서 술이 떡이 되도록 취한 박여사의 뒷치닥 거리를 하고 있었다.

"잠 안자고 왜 나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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