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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담요로 알몸을 가렸으나... (75/92)

#75 담요로 알몸을 가렸으나...

간이 침대는 나무로 되어 있었다. 머리맡에는 담요 두 장이 사 각으로 각을 세운 체 얌전히 개어져 있었다. 그것들이 희미하게 시야에 사로잡히는 것을 느끼며 벌떡 일어섰다. 팬티와, 옷들이 출입문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서 였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용기가 주저 않고 말았다. 소장의 심벌 때문이었다. 우뚝 서 있는 심벌을 쳐다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 역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있다 는 것을 알았다. 재빠르게 담요를 끌어다 몸을 감싸고 일어섰다.

"너무 흥분하지마. 그리고 내 말 좀 들어줘. 알았지?"

"필요 없어요. 더 이상 소장님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는 것 정도만 알아두시죠."

소장이 내 앞을 가로막았으나, 나는 거칠게 쏘아붙이며 그를 피해서 앞으로 나가려고 했다. 소장이 내 어깨를 끌어 않으며 진정하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또, 그의 심벌이 눈에 들어 왔 다.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심벌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 의지가 약해지는 자신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제발 내 말 좀 들어줘. 내 말을 다 듣고 나면 날 이해하게 될 꺼야!"

"이 상황에서 뭘 이해 해 달라는 거죠? 당신이 도대체 인간이 예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그의 팔을 강하게 뿌리쳤다. 뒷걸음치 면서 무언가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출입문 앞에 있는 싱크대 위에 있는 몇 개의 취사 도구 사 시야에 사로잡힐 뿐이었다.

"뭐라고 해도 좋아...... 하지만 내 말을 들어봐!"

소장이 어느 정도 수그려 들은 심벌을 앞세우고 나를 껴 않았 다. 안돼, 소장의 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담요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어서 역부족이었다. 그 대신 담요 자락이 벌어지면서, 그 틈새로 소장의 심벌이 파고들었다. 심벌이 내 허 벅지를 스쳐 가면서 갑자기 딱딱해 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할 수 없이 그가 원하는 대로 간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심벌이 내 살결을 문지르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 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인간인데, 선미한테 이유도 없이 이렇게 하겠어?"

나는 소장의 심벌을 바라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소장은 알몸이라는 것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더니 싱크대 앞으로 갔다.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들고 간이 침대 앞으로 뚜벅 뚜벅 걸어 왔다.

"가겠어요."

기회가 왔다가 생각하고 싱크대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결국 그 곳에서도 소장의 품안에 안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때서 야 이 방갈로 안에서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 이상 빠져나갈 구멍 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리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 며, 소장에게 이끌려 간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이성을 되찾고 날 내보내 주세요. 네?"

소장의 알몸을 바라 볼 수가 없어 면벽을 한 자세로 사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뒤에 도 착하는 데로 전화를 해 달라고 했으나, 정신없이 뛰어 다니다 보니 전화도 해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려 내렸다.

"물론, 내가 잠시 이성을 잃었던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내가 무조건 섹스만 생각하고 선미를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니라는 점 은 알아주었으면 좋겠군."

소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부드러워 졌는가 하면, 가을 바람이 섞여 있는 것처럼 우울하게 들려 와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 다. 그는 우수에 찬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길게 내 품고 있었다.

"그럼 날 사랑하기라도 한 단 말이예요? 결혼을 하신 분이?"

기가 막힌 얼굴로 조소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알몸을 보기 싫어서 였다.

"그래. 결혼을 하긴 했지. 하지만 지금 별거 중이라는 걸 미스 노는 모르고 있나 보군."

별거! 나는 소장의 말이 갑자기 운동장 만한 슬픔으로 와 닿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리며 말없이 소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소장은 창백하게 빛나는 긴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를 길게 흡입 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결혼에 실패 한 것하고, 미스노를 이 방갈로로 데 리고 와서, 미스노가 원하지 않는 섹스를 한 것 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하지만 미스노에게도 전혀 책임이 없다고는 볼 수 없지."

"뭐라구요?"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부인하고 별거를 하고 있다 는 소장이 사무실에서 노골적으로 최언니의 팬티 속에 손을 집 어넣는가, 하면 그녀의 유니폼을 치켜올리고 젖꼭지를 빠는 것 등은 두 번째 로 치더라도 왜 죄 없는 나를 같다 붙이는지 도무 지 이해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너무 황당했기 때문이다.

"그래. 미스 노는 이해를 할 수 없을 꺼야. 그러나 내가 별거를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미스 노 때문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겠 어?"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내가 두 분 사이를 방해 한 것도 아니고, 왜 내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거죠?"

소장의 담배 연기가 코앞을 스쳐 가는 순간 몹시 담배가 피우 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소장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는 없었다.

아직은 내가 담배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소장이 모르고 있기 때 문이다. 그러다 어쩌면 소장을 보는 것도 이 밤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끌어 당겨 입에 물었다. 소장의 표정이 비틀리는 것 같더니 이내 평온을 되찾으며 라이터를 디 밀었다.

"고맙군요."

나는 냉정하게 말하고 나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 품었다. 무언 가 꽉 차 있는 것 같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소장에 대한 분노가 되살아났다. 그와의 섹스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흥분했었다 치지만, 시작은 분명히 강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난, 미스 노를 처음 보는 순간, 내 첫사랑이었던 여자의 얼굴 을 떠 올렸지.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였는데 등산가서 사고로 생 을 마감한 여자 였어........"

소장의 말이 갑자기 축 늘어지기 시작하는 순간, 두 눈을 동그 랗게 뜨고 그의 입을 지켜보았다. 세상에 나를 닮은 첫 사랑 여 인이 불행하게도 사고로 죽다니......어느 틈에 최언니와 뜨겁게 헐떡이던 그의 이중적인 성격은 깨끗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대신 소장에 대한 연민이 불 같이 살아 오르고 있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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