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어두운 숲 속의 벤치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사기 위해 매점으로 갔다. 그것들을 사 가지 고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안에는 꽁초가 적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번 주말에 단체 합숙으로 들어 온 팀은 우리 영업소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나 외도 담배를 피우는 여자 들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 피우는 것이 뭐가 나쁘 다고, 결혼을 한 여자들이 화장실에 숨어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약간 서글프게 와 닿은 것을 느끼며 먼저 츄리닝을 까 붙이고 나서 팬티를 내렸다.
변기에 걸터앉아 담뱃불을 붙였다. 연기를 한 모금 길게 내 뿜 고 나자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과민 반응인지 모르지.......
마음이 진정 되면서 최언니 와의 행위를 엿본 것 때문에 내가 과민 반응을 일으켰는지 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 무리 최언니와 그렇고 그런 사이지만 소장도 인간 인 이상 한 사무실에 여직원이라고는 달랑 두 명 밖에 없는데 그 여자 모두 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응큼을 떨었던 것은 아닐 거라는 생 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실수를 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엉덩이를 쓰다듬은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하지?.....아냐 그냥 손이 내려갔을 수도 있 었을 꺼야. 그걸 내가 그런 쪽으로 생각했었을 꺼야.......
담배가 꽁초가 될 때까지 피웠을 때는 소장에 대한 감정이 완 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결정적으로 소장이 나 한테 성적인 감정 을 느끼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은 그 장소가 공공 장소 였다는 점이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이십 여명의 여자들이 있는데 그 럴 리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장에 대한 감정이 오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소장의 심벌이 떠올랐다. 마치 딱딱한 그 무엇을 바지 속에 숨 겨 놓고 있는 것 같은 감촉이었다. 그것이 하필이면 부드러운 촉감의 츄리닝 위를 누르고 꽃잎에 와 닿을 때의 감촉이 새삼스 럽게 떠오르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그 감촉은 중학 교 다닐 때 사촌 오빠로부터 느꼈던 그 감촉보다 엄청난 크기 였다. 지금은 기억 저편의 우울하고 절망스러운 아픔으로 남아 있었지만 출근길 지하철에서 뭇 남성들의 심벌이 엉덩이를 찌를 때마다 사촌 오빠의 감촉이 떠오르는 것은 사실이었다. 소장도 그런 생각으로 꽃잎을 자극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잠시 혼란스러웠다.
아니야.......거긴 여자들이 많았잖아.
나는 또 딜레마에 빠졌다. 룸 안에는 비교적 미인 측에 드는 설계사들이 많았다. 언젠가 영업소 아래 계단 앞에서 소장의 팔 짱을 찰싹 끼던 오여사도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제 삼십대 초반인 그녀는 같은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성적인 매력이 훅 풍 기는 여자 였다. 아이를 한 명 둔 여자로서 보기 드물게 해맑은 피부하며, 가즈런한 치아, 웃을 때 고개를 살짝 돌리며 은근히 흘겨보는 듯한 눈매하며, 풍만한 젖가슴, 잘록한 허리하며, 상체 에 비해 커 보이는 엉덩이등 모든 것들이 성적인 매력이 풀풀 풍기는 스타일이었다. 오여사 뿐만 아니었다. 김여사 라든지, 최, 홍, 성, 노여사 들도 오여사 수준은 되지 못했지만 한결 같이 삼 십대 초반이나 이십대 후반으로 잘 빠진 몸매를 소유하고 있었 다.
그래, 내가 너무 신경과민이었을 꺼야......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던가, 내가 그녀들 보다 낳은 점이 있다면 미혼에다 나이가 어리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남자들은 이왕이면 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여자들을 선호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소장한테 가진 오해를 풀어 버리기 로 했다.
더구나 소장님은 최언니가 있잖어......
결론을 그렇게 내리고 화장실에서 나와 세면대에서 입을 가볍 게 헹궜다. 거울을 보고 입을 벌려 담배를 피운 흔적이 있는가 철저하게 확인을 해 보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회 식이 끝나려면 아직 두 시간이나 더 있어야 했다. 이럴 때 최언 니가 부러웠다. 나도 고참이 되면 최언니처럼 숙소나 지키고 회 식 장소는 후배에게 맡겨 버리리라 고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왜 밖에 나와 있어. 재미있게 놀지 않고?"
소장이었다. 나는 소장에게 미안한 감정도 있고 해서 평소 보 다 더 활짝 웃는 얼굴로 머리가 아파서 바람을 쐬고 있는 중이 라고 얼버무렸다.
"그래? 하하하 잘됐군. 그럼 우리 같이 바람이나 쐴까, 솔직히 나도 직원들이 하도 성가시게 굴 길래 바람 좀 쐴까 하고 나온 것이거든."
소장은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광장으로 내려섰다. 분수대를 중심으로 한 광장 끝에는 드문드문 야외등이 밝혀져 있었다. 몇 몇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밤하늘을 보거 나 잡담을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아! 잠깐. 나 매점에 다녀 올 테니까 저 벤치에 가서 앉아 있 어."
소장은 구석에 있는 벤치를 손짓 해 놓고 일방적으로 뒤돌아 섰다. 담배를 사 오려나, 하는 생각으로 소장이 지정해 주는 벤 치로 천천히 걸어갔다. 분수대를 벗어나서 어둠이 엷게 깔려 있 는 장소 였다. 하필이면 이런 델,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다 른 설계사들의 눈도 있고 해서 오히려 그게 낳을 것이라는 생각 으로 벤치에 가서 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 조용하게 시간 좀 내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군."
소장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할 일이 없어서 벤치 뒤쪽으로 시 선을 돌렸다. 전나무 숲 사이에 드문드문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이 인용 방갈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때서야 자세를 바로 잡고 앉았다. 소장의 손에는 비닐 봉지가 들려 있었다. 나는 소장의 말뜻을 얼른 알아 들을 수가 없어서 옆으로 한 걸음 정도 물러 나 앉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 룸에서 보니까 술을 별로 마시지 않는 것 같더군. 우선 이것 좀 마셔."
소장은 비닐 봉지 안에서 캔맥주 한 개를 꺼내 내 손에 들려주 었다. 나는 별로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므로 캔맥주의 차가 운 감촉이 손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것을 느끼며 계속 소장의 얼 굴을 쳐다보았다. 늦봄인 까닭에 밤바람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가끔 바람이 불어 올 때마다 광장 가운데 있는 분수에서 물 바 람이 불어와 소장 쪽으로 얼굴을 돌려야 했다.
"난 이걸로 마시겠어."
손바닥만한 양주병을 돌려서 따고 한 모금 마신 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미스 최는 숙소에 있는가?"
"네. 피곤하다며 숙소를 지키겠다고 저녁 먹고 금방 올라갔어 요."
"그러면 안되는데......이럴 때는 말야.....선배가 먼저 솔선수 범하여 영업소 직원들의 분위기를 살려줘야 하는데 말야......"
"저한테 하실 말씀이 뭐예요?"
소장의 말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었다. 사 무실에서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는 가 하면 유니폼을 걷어올리 고 젖꼭지를 빨고, 스커트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검은 색 비단 팬티 속에 손을 집어넣던 광경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소장의 이중적 인격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아! 내 정신 좀 봐라. 에......이런 장소에서 이런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네......"
소장은 내가 마음속으로 코웃음을 치는 줄 모르고 뜸을 들이면 서 양주를 한 모금 마셨다. 양주 병을 벤치 위에 올려놓고 나서 담배를 꺼냈다. 그가 담배를 피울 때 내 앞으로 연기가 흘러가 서 갑자기 담배가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대신 들고 있 던 캔맥주를 따서 한 모금 마시고 분수대를 바라 봤다. 무지개 빛으로 뻗어 나가는 불빛이 뻗어져 나가는 물줄기에 섞여 바람 이 불 때 마다 펄럭 거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이럴 때 말을 해 두는 게 좋겠지."
소장은 또 뜸을 들이면서 술을 한 모금 마셨지만 나는 바라보 지 않고 분수대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었다. 단란 주점에서 우 리 회사 로고가 찍혀 있는 츄리닝을 입은 여자 두 명이 나와서 깔깔거리는 게 보였다.
여자들은 역시 츄리닝을 입으면 볼품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들 정면으로 바람이 불었다. 순간 츄리닝이 몸에 딱 달 라붙으며 그녀들의 꽃잎이 삼각형 모양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남자들이 봤다면 어김없이 섹스를 연상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분수대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소장의 다음 말에 고개를 돌리 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의 방침에 따라 영업소 여직원 수를 두 명 에서 한 명으로 지시가 내려 왔다는 말을 듣고 나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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