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 섹스가 넘쳐 흐르는 바다로 (61/92)

#61 섹스가 넘쳐 흐르는 바다로

그래, 바다를 보고 나면 무언가 달라지겠지......

나는 천천히 동해행 버스 개찰구를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강 릉, 삼척 행 버스 터미널을 지나서 동해행 팻말이 붙어 있는 개 찰구 앞에 섰다. 대합실 안에서 잡담을 나누던 지혜와 선미가 일어서서 화장실 쪽을 바라보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 다.

"이 쪽이야!"

내가 소리를 질렀다. 지혜가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더니 내 몫 으로 배당된 그녀의 배낭을, 한쪽 어깨에 매고 개찰구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또 히죽 웃으며 그녀 앞으로 가서 배낭을 받아 서 어깨에 맸다. 지혜는 내 어깨를 아프지 않게 내 갈겨 주고 나서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티켓을 꺼냈다.

"엉! 너 또 술 먹었지?"

지혜의 코는 역시 개 코였다. 나는 이미 버스 앞에까지 와 있 는 상태여서, 더구나 밖에는 봄바람이 쌀쌀하게 불고 있어서 술 냄새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혜는 용케도 냄 새를 감지하고 내 코앞에 코를 디밀고 큼큼 거리다가, 이번에는 등짝을 힘있게 갈겨 버렸다.

"이건 술 아니고 뭐냐?"

지혜에게 등짝을 맞으면서 휘청거리다가 그녀가 들고 있는 비 닐 봉지가 내 허벅지를 쳤다. 그때서야 봉지 안을 살펴보니까 캔맥주 세 개가 들어 있었다.

"넌 자격 없어."

지혜는 냉랭하게 쏘아붙이고 나서 먼저 버스 위로 올라갔다.

뒤에 서 있던 선미가 왜 자꾸 술을 마시냐며 걱정스럽게 속삭였 다.

"어서 타!"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선미의 등을 버스 위로 밀었다. 선미는 한 발을 버스 위로 올려 놓고나서 정말 고민 같은 거 있는 거 아니지 하고 다시 속삭였다. 나는 속이 아퍼서 술을 마셨을 뿐 이라고 대꾸하고 그녀 뒤를 따라서 버스에 올랐다.

동해 행 고속 버스는 봄이라지 만 아직 쌀쌀한 날씨가 계속 되 고 있는 탓에 빈자리가 더 많았다. 지혜는 일찌감치 좌석번호와 상관없는 빈자리를 차지하고 선글라스를 썼다. 그 동안 밀렸던 잠이나 실큰 자두겠다는 거 였다. 나와 지혜는 운전석 쪽의 제 일 뒷좌석을 차지했다.

"동해에 가 본 적이 있어?"

선미가 선글라스를 벗어 닦은 다음에 쇼율백에 집어넣으며 물 었다.

"대학 때 한 번 가 본적이 있어. 친구 네 집이 거기 있었거든."

사실 나는 동해에 가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왠지 그렇게 대답 을 해야 할 것 같아 슬쩍 거짓말을 했다. 내가 들고 있던 배낭 을 먼저 짐칸 위에 올려놓고, 그녀가 메고 있던 쇼율백을 받았 다.

선미가 건네주는 쇼율백을 받아 가지고 일어서서 짐칸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지혜에게서 뺏듯이 가져 온 캔맥주의 뚜껑을 땄 다.

배가 선착장을 빠져나가듯 서서히 후진하는 창 밖으로 검은 색 의 주차장 바닥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강한 햇볕이 내려 쬐고 있었다. 그러나 망치를 들고 다니는 정비원 들은 추운 듯 하나 같이 도파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기분이 어때?"

"좋아!."

나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한 기분은 꿈을 꾸고 있은 것 처럼 어벙벙한 기분이었다. 엉덩이를 들어 지혜를 바라봤다. 지 혜는 잠이나 실큰 자 두려는 듯이 벌써부터 등받이에 머리를 기 대고 누워 있었다. 피곤하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덩달 아 나도 피곤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자유 기고가가 되려고 직장을 그만 두었니?"

터미널을 빠져 나온 버스가 도심의 자동차 행렬에 합류되었을 때 였다. 급하게 마신 술이 취해 오는 속도와 담배를 피우고 싶 다는 갈망이 겹쳐져서 트림을 밀어내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물 었다.

"지금은 그래?"

"그럼 그 생각이 변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는 거 냐?"

"아직 젊으니까......"

제기랄, 나는 결국 통로 쪽의 빈자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길 게 트림을 하고 말았다. 무언가 속은 듯한 기분, 점점 빠져 나올 수 없는 깊고 깊은 늪속으로 침전되어 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 직장 잡기가 하늘에 별을 따기보다 힘든다는 것은 알 고 있냐?"

"요번에 우리 회사 신입사원 모집했는데. 경쟁률이 어땠는 줄 아니?"

"천문학적 숫자 였겠지......."

"틀렸어. 광고를 안 하고 추천으로만 뽑았거든. 아무리 직장 잡 기가 힘들다고 해도, 취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문제없이 취직 을 하고, 사표를 내는 사람들은 나처럼 쉽게 쉽게 사표를 내는 게 이 세상이야."

"어른 다 됐군."

"어른?"

선미가 갑자기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로 반문하며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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