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 최초의 이브 (59/92)

#59 최초의 이브

지혜와 선미는 서로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각각 다른 방향을 바라 보며 코 웃음을 쳤다.

"그만둬! 내가 듣기에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다툴 필요 는 없잖니. 서로 신경과민 일거야. 솔직히 우리 지난 삼일 동안 잠이나 제대로 잤냐. 오직 섹스에만 열중했잖냐..... 그래.....그래 서 신경과민이겠지. 그러니 대충 접어 두고 끝내자. 알았지?"

지혜와 선미의 양손을 잡아 억지로 악수를 시켜 주고 힘껏 흔 들어 주었다.

"어머머, 우리가 언제 싸웠다고 그러니?"

"그래 맞어 난 지혜 말이 좀 거부감 있게 들려서 한마디했을 뿐야."

"그래. 그럼 내가 미안하다. 신경과민은 너희들이 아니고 내가 그런 것 같다. 나 화장실 같다 올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그녀들이 무언가 싸울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그런 감정을 갖지 않는 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섹스를 했으면서, 마냥 히히덕 거리며 좋아 할 수만 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예측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지혜를 잃어 버릴까 봐 절망했던 것도 결국 그러한 맥락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지혜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것 때문에 내색을 안했을 뿐이 다. 지혜 역시 나 하고 비슷한 감정을 같고 있었기 때문에. 선미 와 나하고 둘 중에 누가 더 좋으냐고 분명히 물었으면서, 슬그 머니 말꼬리를 흐렸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허허로운 웃 음이 나왔다.

나는 사실 오줌이 마렵지 않았다. 그 대신 술이 마시고 싶었다.

터미널 구내에는 포장마차가 없었다. 그러나 많은 식당들이 있 었다. 소주 한 병 마실 해장국 집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긴, 술 만 안 파는디......."

여자 주인에게 소주 한 병을 달라고 했을 때, 별 놈 다 봤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을 거부하지 못해 해장국을 한 그릇 시켰 다. 곧이어 준비되었다는 듯이 해장국과 소주가 나왔다. 역이나, 대합실 근처의 식사가 대부분 그러하듯 염색한 고춧가루로 듬성 듬성 떠 있는 해장국을 멀그러니 바라보며 소주 한 병을 비웠 다. 정작 해장국을 시켜 놓고 맛있게 먹은 것은 약간 쉰 냄새가 나는 김치 쪼가리 두 개 였다.

크윽!

김치에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식당을 나오는 발걸음이 휘청거렸 다. 이번에는 진짜로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방향을 잡았다. 멀리 동해행 버스 개찰구 앞 의자에 지혜와, 선미가 무엇이 그리 좋 은지 낄낄 거리며 속삭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로 신경과민에 걸린 것은 그녀들이 아니고 나 일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의미 없는 웃음이 나왔다.

지/혜......그리고 선/미.......

화장실에 들어가 오줌을 갈기면서 그녀들 이름을 불러 보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선미는 나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여자였다. 나 에게 있어서 최초의 이브로 다가 온 여자는 지혜였다. 물론 지 헤가 내게 있어서 첫 여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헌신적으로 꽃잎을 열어준 여자는 지혜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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