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 새로운 섹스를 위하여 (44/92)

#44 새로운 섹스를 위하여

오빠의 침묵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오빠는 그럴 줄 알았 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 처럼 창백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 무엇인가를 숙명적으로 받다 들이고 있는 것처럼 처연한 표정이었다.

"미안해, 오빠.......하지만 나도 무서워."

무서운 것은 사실이었다. 축복 받지 못한 임신이 얼마나 무섭 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시간 시간을 피 말리는 고통이라는 것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나는 오빠가 앉아 있는 그네 줄을 잡고 울음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악물 은 것에 그 치지 않고 손바닥으로 입을 막고 헉헉거렸다.

"좋아.....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마.....내.....내가 방법을 연구 해볼게."

오빠가 일어서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도 오빠 손을 마주 잡았다. 지나가는 행인 이 걸음을 멈추고, 놀이터 그네 옆에서 두 손을 마주 잡고 심각 한 표정으로 서 있는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허!......참......쯔......쯔, 새파랗게 어린것들이......"

행인은 우리들이 들으라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갈 길을 가 버렸다. 나는 그 말이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찌르는 고통을 느끼 며 또 울었다. 그렇다 나와 오빠는 새파랗게 어린것들이었다. 아 직 인생의 꽃도 피우지 못한 새파란 새싹에 불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빠와의 섹스가 두렵지 않았을 지도 몰랐다. 내가 실로 두려워했던 것은 어른들의 시선이었다. 어른들이 간섭을 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섹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섹스가 풍기 고 있는 그 신비한 마력을 동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그래, 이건 내 잘못이 아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서 내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은 모두 어 른 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섹스를 하게 되면 임신을 하게 된 다는, 어린 중학생이 임신을 하게 되면 어떤 고통을 겪게 된다 는 것을 좀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다면, 나는 오빠 가 내 티셔츠를 걷어올릴 때 벌떡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오빠 이성을 찾아, 이러면 어떤 결과가 온다는 것을, 오빠도 잘 알고 있잖아, 라고 거부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어 른들이 쉬쉬하고 있는 섹스 그 신비스러움에 무한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빠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우를 범 했던 것이다.

그 날 저녁 절망의 끝자락을 디딛는 기분 속에 오빠와 헤어져 집으로 온 나는 심하게 앓았다. 온 몸이 불덩이 같은 오한에 떨 면서 꿈을 꾸었다.

오빠와 사루비아가 지천에 피어 있는 대공원에 놀러 갔다. 그 리고 빨간 사과를 나누어 먹는 꿈을 꾸었다. 그러다 새벽에 일 어났을 때 생리를 했다.

오! 하느님......

나는 그때서야 오빠와 섹스를 했다는 두려움 섞인 절망에 떨고 있느라 생리가 달을 건너뛰었다는 것을 알았다. 화장실에 가서 대충 밑을 씻고 나서 패드를 했다. 그리고 나서 뿌옇게 밝아 오 는 창문 앞에 앉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다. 다시는 신이 노여워 할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다.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은 항상 슬픔을 동반하고 온다. 나는 어서 오후가 되길 기다리며 그야 말로 하늘로 날아 버릴 것 같은 기 분으로 방을 나왔다. 그리고 거기서 신 새벽에 외출 준비를 하 고 있는 부모님들로부터 오빠가 학교 옥상에서 뛰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미는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캔맥주를 마시겠다고 했으면서, 그것을 거뜰어 보지도 않았다. 소주를 마시고 있는 그녀의 얼굴 은 눈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선미야......"

지혜의 목소리에도 슬픔이 깔려 있었다. 스스로 선미와는 둘 도 없는 친구라고 큰 소리 치던 그녀였다. 그러나 그토록 엄청 난 슬픔을 안고 사는 선미를 모르고 있었다는 죄책감에서 괴로 워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래, 이건 선미 잘못이 아냐. 그렇다고 선미 오빠 잘못도 아 니야, 그러니 잊어 버려. 그리고 고마워 나를 믿고 그런 말을 해 줘서....."

나도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팔을 뻗어 선미의 손을 끌어 당겼다. 그리고 그 손등을 부드럽게 두들겨 주었다. 더 이상 슬 퍼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였다. 어느 틈에 취기가 하얗게 증발해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마른침을 삼키면서 소줏병을 들 고 꼬르르 마셨다.

빌어먹을 어른들아!

나는 구태의연한 사고 방식에 젖어 섹스는 무조건 더럽고, 추 한 것이라고 부르짖고 있는 교육 당국에 엿을 먹였다. 만약 우 리 나라도 스웨덴이나, 프랑스 독일처럼 유치원 시절부터 성교 육이 되어 있었다면, 선미처럼 티없이 맑고 착한 여자가 평생 동안 죄책감에 시달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때문이다.

"고마워."

선미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눈을 깜박거렸다. 그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진주알 처럼 또르르 굴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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