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짧은 기쁨, 긴 이별
오빠는 아이처럼 내 품안에 안겨서 가만히 있었다. 나는 오빠 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빠의 눈에는 끝없는 절망이 고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빠, 우린 괜찮은 거지 응?"
평생 동안 오빠와의 섹스 경험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다.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저 두렵고, 무섭고 절박한 끝에 밑도 끝도 없이 오빠에게 물었다.
나 역시 혼란스러워서 무엇이 괜찮고, 무엇이 두려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막연한 두려움이 아이스크림처럼 가슴속 에 녹아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선미 네가 괜찮다면 난 이 고통을 이겨 낼 수 있을 꺼 야."
오빠는 침통하기는 하지만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하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오빠는 자기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내 게 보여 주기라도 하려는 듯 열심히 공부했다. 고등학교를 핑계 로 학원에서, 독서실로, 독서실에서 집으로, 다시 학교로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 속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오빠가 그때 있었던 일을 잊어버리려고, 일부로 여유 시 간을 두지 않고 혹독하리 만큼 공부에 전념하고 있는 모습을 보 고 조금씩 안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란 세월이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긴장의 나날 속에 소리 없이 흐른 뒤였다.
아스팔트를 녹이던 불볕 더위로 한 풀 꺾이고 설악산에는 벌써 단풍이 왔다고 텔레비전 뉴스 시간을 장식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생물 시간에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 배운 날이었다. 생 물 선생님으로부터 임신을 하게 되면 생리가 중지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만 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난자와 정자가 합쳐 져서 배란을 하게 되고, 배란기를 거쳐 임신을 하게 된다는 말 을 들을 때 오빠와 섹스를 했던 장면이 떠올라 혼자서 얼굴을 붉혔을 뿐이었다. 나는 임신을 하기에 아직 어린 나이 일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경숙이 알지?"
친구하고 하교 길에 버스를 기다릴 때 였다. 나와 단짝이던 미 애가 가판대에 꽂힌 주간지에 나와 있는 연예인 관련 뉴스의 헤 드라인 기사를 중얼거리며 읽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경숙이 왜, 또 선생님한테 걸렸다니?"
경숙이라면 소문난 불량 소녀 였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 는 것은 물론이고, 남자 와 잠을 잔다는 소문까지 공공연한 사 실로 전해지고 있는 아이 였다.
"선생님한테 걸린 게, 아니고 게 임신 이 개월 째래, 너 몰랐 니?
미애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대로 주저 않아 버릴 것 같은 충격에 휘청거리며 전신주에 몸을 기댔다.
"어머, 너 왜 그래? 어디 아픈 거니. 얼굴이 백짓장 같은데....."
깜짝 놀란 미애가 나를 부축했다. 그 뒤로는 어떻게 집에 왔는 지 기억조차 안 났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내 방 책상 앞에 앉아 서 백지 위에 정신없이 오빠 이름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빠의 이름을 적으면서 골백번이나 더 생각해 봐도 지난번에 생리가 없었던 것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임신이 분명했다. 충격 이 크면 눈물도 나지 않는 법이다.
나는 단 두 번의 철없는 사랑치고는 대가가 너무 엄청나다는 생각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오빠, 나 어쩌면 좋아.......
백지가 검은 색이 되도록 오빠 이름을 적으면서 똑 같은 질문 을 수도 없이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었기 때문 이다. 제일 처음 떠 오른 것은 가출을 하는 것이었다.
가출해서 커피숍이나, 레스토랑 같은 곳에 취직해서 낙태 비용 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낙태를 해 버리고 집으로 돌아 오면, 가출했던 딸이 돌아 왔는데 부모님이 어떻게 하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가츨은 할 수 없었다. 내가 가출을 해 버리면 어른들은 그 이유를 모를 수 있지만, 오빠는 자기 때문 에 견디다 못해 가출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고, 결국은 오빠는 더 큰 고통을 받게 되리라는 것 때문이다.
그럼 어떡하지......오빠, 제발 방법을 가르쳐 줘!.....
죽어 버릴까.......
유일한 방법은 자살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생일날 케이크를 같이 자르던 모습, 갑자기 비 가 올 때 우산을 들고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엄마, 다 큰 계집애가 자세를 얌전히 하지 못하고 그게 뭐냐고, 소파에서 가 랑이를 벌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꾸중을 하던 아빠 의 얼 굴이 토막 난 편린으로 떠올라, 머릿속에서 슬픔의 꼬리를 늘어 트리고 헤엄쳐 다녔다.
죄송해요......
나는 오빠의 이름을 적던 메모지 에 죄/송/해/요. 라고 적어 놓고 나서 팬을 책상 위에 놓았다. 죽음은 우연으로다가 와서 시간이 흐를수록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빠......
막상 죽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오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빠는 그날 있었던 일을 잊어버리려고 자학하는 모습으로 공부 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