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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사촌 여동생 (36/92)

#36 사촌 여동생

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현관으로 갈 때까지 우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내가 현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오빠가 뒤 따라 오며 현관문을 잠갔다.

"아이스크림 사 왔어. 오빠 아이스크림 좋아하잖아."

나는 현관문이 잠겼다는 것이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었다.

얼굴에 가득 담고 있던 부끄러움을 지워 버리고 명랑하게 말했 다.

"돈도 없을 텐데......"

오빠는 나와 반대로 말꼬리를 흐리며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 했다. 그런 오빠는 짧은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팔이며 허벅지에 거뭇거뭇하게 털이 나 있는 게 보였다. 그 털이 어제 오늘 난 것은 아니겠지만. 평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봤기 때 문에 그 어떤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오빠와 관계를 맺었 던 탓인지 오빠의 팔과 다리에 난 털을 보는 순간 한결 든든해 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나하고, 오빠하고 싸웠는지 알고 있어. 요즘 오빠가 통 우리 집에 오지 않는다고 말야......."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 숙여 말하는 오빠 때문에 덩달아서 나도 안방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지나가는 말처럼 말 했다.

"그랬어?"

"응."

우린 마치 관심 밖의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대담자 처럼 건성 으로 대꾸하고 대담하면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갑자기 밖에서 번쩍 하는 빛이 들어오는가 했더니 천둥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시야가 어두컴컴해 지면서 장대 같은 소나기가 줄기차게 내려 꽂히기 시작했다.

"비 오내?"

내가 천둥소리에 놀라 오빠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건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구나."

오빠는 잠시 억수 같이 내려 꽂히는 소나기를 쳐다보다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도 창문 밖으로 시선을 두고 있다가 동 시에 오빠를 쳐다보았다.

"선미야?"

"응."

"내 방으로 가자."

"응."

우리는 다시 말을 잃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는 오빠 방으로까지 이어졌다. 내가 사 온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포 장지도 뜯지 않은 체 녹고 있었다. 나는 오빠의 침대에 걸터앉 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의자에 앉을 수도 없어 서 있는 자세로 창문 밖을 봤다. 창문을 휘갈기는 빗소리가 방안에까지 들려 올 정도로 빗줄기는 엄청나게 굵었다.

"사실 너 엄청 보고 싶었어. 잠을 못 잘 정도로......"

오빠가 창문 앞으로 가며 지나가는 말처럼 입을 열었다. 오빠 의 말은 나한테는 엄청난 기쁨으로다가 왔다. 나를 보고 싶어했 다니, 그건 나를 친척 여 동생이 아닌 이성으로 생각하고 있다 는 증거 였다. 그렇지 않다면 학교 같다 오는 길에 얼마든지 들 릴 수 있는 작은 집에 사는 사촌 여동생을 보고 싶어 잠을 못 이룰 정도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넌 내가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지......"

오빠는 창문 앞에 서서 무섭게 휘갈기는 소나기를 쳐다보며 고 개를 돌리지 않고 말했다. 그런 오빠의 등이 중학교 삼 학년의 등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총각 선생인 영어 선생님의 등처럼 보였다.

"아니....."

나는 나도 오빠를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라는 말을 입안에 감 추고 말꼬리를 흐리며 방바닥을 내려다 봤다.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지는 소리가 엄청나게 큰 소리로 들리는 것 같았다. 갑 자기 사촌 오빠도 친 오빠와 마찬가지라는 어머니의 말이 생각 났기 때문이다.

"그럼 왜, 전화도 안 했니?"

오빠가 조용히 돌아서서 창을 등지고 섰다. 그 뒤에는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한 하늘에서 소나 기가 줄기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방안의 공기도 조금 전 보다 많이 서늘해 져서 따뜻하고 푹신한 이불 속이 생각날 정도 였 다.

"모르겠어. 나도....."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오빠 의 시선을 감당할 수 없어서 였다. 오빠가 천천히 내 앞으로 걸 어 왔다. 나는 오빠가 내 앞으로 다가올수록 심장이 곤두박질하 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가 없었 다.

"선미야!"

갑자기 오빠의 목소리가 격정적으로 들리는 가 했더니 나를 꽉 껴 않았다. 그리고 내 입술을 더듬었다. 나도 오빠의 목을 껴 않고 입을 열어 주었다. 우리는 어른들처럼 오랜 시간 동안 껴 않고 키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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