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공중전화 박스에서
어머니는 내가 오빠한테 사과하러 가는 줄 알고 마냥 대견해 하는 표정으로 흐뭇해했다.
"네가 잘못 했으면 가서 화해를 해. 사촌 오빠도 친 오빠나 마 찬가진데 왜 다투었는지 모르지만 일주일씩이나 앙숙으로 지내 면 되겠니?"
나는 사촌 오빠도 친 오빠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찌르는 듯한 죄책감 사로잡혔다.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 보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 오빠 네 집으로 가는 걸음을 돌려 골목을 빠져 나와 공중전화 앞으로 갔다. 막상 오빠의 집으로 가려니까. 큰아버지나, 큰어머니 되시 는 분들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였다.
토요일 이라지만 찌는 듯한 더위 때문인지 거리는 텅 비어 있 는 것처럼 보였다. 공중 전화 부스 안으로 들어가서 일단 문을 닫았다. 혹시 라도 나와 오빠의 관계를 다른 사람들이 엿들 지 도 모른 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나는 찜통 안 같은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땀을 흘리며 목소리 를 최대한 줄였다. 만약 오빠가 아닌 다른 가족이 전화를 받으 면 끊을 준비를 하고 있는 체 였다.
"네. 남가좌동 입니다."
다행이었다. 목소리에 생기가 없긴 하나 오빠의 목소리가 분명 한 음성이 수화기를 타고 들여 왔다.
"오빠? 나."
나는 오빠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할 말을 잃어 버리며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오빠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오빠의 얼굴을 보기만 하면 품안에 안겨 흐느껴 울 것 같아서, 공중전화 부스 안의 찜통 같은 더위로 느끼지 못 할 지경이었다.
"선미?"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삼일 굶은 사람처럼 풀 죽어 있던 오빠의 목소리가 갑자기 강철처럼 튕겨 올라갔다.
"응."
너무 반가워하는 오빠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참았던 눈물을 터 트리고 말았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낼 때, 사촌 오빠도 친 오 빠와 같다는 어머니의 말이 떠오르면서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펑펑 쏟아져 내렸다.
수화기를 잡은 손으로 전화통을 의지하고 흐느끼는 나를 지나 가던 행인이 걸음을 멈추고 쳐다 보는 게 보였다. 삼십 대로 보 이는 남자 였다. 그의 시선을 피하며 눈물을 참으려고 했지만 한번 터진 눈물샘은 쉽게 막을 수가 없었다.
"선미야? 울고 있는 거니. 그러지 말고 우리 집으로 와 응?"
내가 입술을 꼭 다물고 수화기를 들었을 때 안타까운 음성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오빠의 안타까운 음성을 듣는 순간 슬픔은 배가되어 헉헉 소리 내어 흐느끼기 시작했다. 오빠의 말대로 큰 집에 가고는 싶지만 큰어머니의 얼굴을 도저히 쳐다 볼 용기가 나지 앉아서 였다. 그렇다고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전해 줄 수 는 없었다. 그 말을 들음으로서 상처받게 될 오빠를 걱정해서 였다.
"지금 집에 아무도 없어. 아빠는 저녁 늦게 들어 오실꺼구 선 혜는 엄마하고 수영장 같거든. 그러니 빨리 와. 지금 거기 밖이 잖어. 내 말 맞지?"
나는 오빠 집에 다른 가족들이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슬픔이 감당할 수 없는 기쁨으로 전환되는 것을 느꼈다. 오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쁨으로 전해져 온다면 좀 더 일찍 볼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서야 밀폐된 공중전화 부 스 안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덥다는 것을 알고 전화를 끊었다.
골목 입구에서 오빠의 집까지는 일키로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
중간에 우리 집이 있었고, 거기서 한 불럭 만 더 가면 오빠가 살고 있는 이층집이 있었다. 슈퍼에 들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 통 사 가지고 뛰다시피 한 걸음으로 오빠의 집으로 갔다.
"어서와."
오빠는 대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 넓지 않는 골목인 탓에, 골목 안은 무더웠다. 그 무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하늘을 쳐다보니까,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뿌려 될 것처럼 먹장구름이 낮게 떠 있었다.
"왜 밖에서 기다렸어. 더운데......."
대문 앞으로 가서 오빠의 얼굴을 막상 눈앞에 서 보려니까 이 번에는 눈물 대신 얼굴이 빨개졌다. 마치 신혼 첫날밤을 보낸 새색시가 그 다음날 아침에 남편의 얼굴을 보는 그런 기분이 들 었기 때문이다. 하긴 훗날 생각해 보니까 그 때 까지는 오빠와 의 관계가 그렇게 싫지는 안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단순히 친척 이라는 것 때문에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긴 했지만 섹스를 하기 이전 보다 오빠와 밀접하도록 가까워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정도 였다.
"그냥."
오빠는 짧게 대답하고 씩 웃었다. 웃는 오빠의 얼굴에서 빛나 는 하얀 치아가 먹장구름 밑에서 선명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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