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사촌 오빠와의 그 후편
선미가 담배 재를 톡톡 털며 사촌 오빠와 의 비극적인 열애에 대해서 막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지혜가 선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잠깐 멈추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선미 너의 슬픔은 내 슬픔이기도 해. 무슨 뜻인가 알지?"
지혜는 선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등을 툭툭 두들겨 주고 일어섰다. 그녀는 아직 냉장고에 넣어 놓지 않은 캔맥주를 한롤 들고 왔다. 다른 손에는 뜯지 않은 담배가 들려 있었다. 그 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소주를 마시겠어."
내가 그렇게 말하며 일서 서는 것을 보고 선미가 안타까운 눈 짓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웃어 주고 나 서 지혜가 들고 온 비닐 봉지 안에 들어 있던 소주를 꺼내 들었 다.
"안주는 안 사 왔냐?"
"안돼 너는 이미 너무 많이 마셨어. 아침도 먹지 않고, 벌써 캔 두 개에다 소주 한 병을 비웠잖아. 그러니까 정 술을 마시고 싶 으면 맥주를 마셔. 난 아직 너한테 말이 끝나지 않았어. 그리고 그렇게 술을 마시면 네가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 는 결과밖에 안 되잖아!"
지혜가 캔맥주 한 개를 선미에게 넘겨주며 조용히 말했다. 그 녀 옆에 앉아 있는 선미는 말은 하지 못하고 그러지 말라는 싸 인을 계속 흘려 보냈다.
"너 혹시?"
지혜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은 엊저녁에 있었던 일 때문에 괴로워서 그렇게 술을 마시는 것 아 니냐는 듯이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아냐. 난 그냥 술을 마시고 싶었을 뿐야. 절대로 네가 생각하 는 그런 뜻은 아니니까 걱정 놓으셔. 그리고 아까 우리 세 명이 서로 사랑하자고 건배를 했었잖아!"
내게 죄책감이 있다면 지혜가 없는 틈을 이용해서 선미와 번개 섹스를 했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선미의 알몸을 어루 만지고 있는 동안 섹스의 즐거움이 아닌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는 점이었다. 그런 내 손에는 이미 소주병이 들려 있었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싶으면 맥주를 마셔, 네 술버릇 더럽다는 거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모르는 사람 없으니까. 괜히 오전부 터 선한 사람들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지혜는 명령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과 다르게 술버릇이 얌전한 편이었다. 그녀의 말이 옳은 게 있다면 한번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주머니가 텅 빌 때까지 마시고, 끝으로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외상 소주까지 마셔야 직성이 풀린다는 점이 었다.
"진우씨, 맥주를 마셔. 지혜가 걱정하고 있는 것도 몰라?"
선미가 지혜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하게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 로 끼여들었다. 그런 그녀의 표정 속에는 말하지 못할 그 어떤 안타까움이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내가 저 술고래를 걱정해?"
지혜가 어림도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며 소주병을 당장 놓 지 않으면 때려 주겠다는 표정으로 노려봤다.
"젠장, 두 여자가 스트라이크를 하나, 알았어 신들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이 짐이 참을 수밖에."
난 선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존심 때문에 직설적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의 사랑 방식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또 나를 쳐다보는 선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도 눈치채 지 못할 내가 아니었다. 어깨를 으쓱거려 할말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들이 앉아 있는 식탁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자, 맥주를 마셔. 그리고 아무래도 너 술 너무 마시는 거 같 다."
역시 지혜 였다. 조금 전과 다르게 부드럽게 말하는 그녀는 나 를 알고 있는 만큼 나를 염려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평범했으나 정면으로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자 그럼 어서 사촌 오빠 스토리를 계속 해 봐!"
지혜가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 담뱃갑의 셀로판 용지를 뜯으며 말했다.
"알았어."
선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지 않은 캔맥주를 두 손으로 움켜잡 고 내 눈을 응시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혜는 선미를 향해 앉아 있지 않았다. 나를 보고 앉아 있는 자세로 담배 연기를 내 품었다. 나는 그녀들을 번갈아 보다가 김이 나기 시작하는 삼계 탕 냄비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아무리 삼계탕을 잘 끓였다 해도 먹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는 그만큼 취해 있는 상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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