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 내게 거짓말을 해봐 ④ (28/92)

#28 내게 거짓말을 해봐 ④

"어머, 왠 술을 이렇게?"

선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나는 기뻐서 얼른 소주병을 끌어 당겼다.

"이별주는 마셔야 할거 아니니?"

지혜가 대수롭지 않는 표정으로 말하며 가스 렌지 불을 켰다.

"그럼 넌......."

선미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흔 들며 소주 뚜껑을 땄다. 안주도 필요 없이 반 병 정도를 꼬르륵 마셔 버렸다. 신 새벽부터 마신 캔 맥주에 이번에는 차가운 소 주가 들어가자 깜짝 놀란 위장이 앗 차거 하며 꿈틀거렸다.

"진우씨 또 술 마시는 거야. 아침도 먹지 않고?"

선미가 지혜의 대답을 기다릴 겨를도 없이 나를 쳐다보며 눈꼬 리를 치켜 떴다.

"너 혹시 막 살기로 작정 한 건 아니겠지?"

선미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가스 렌지 앞에 서 있던 지혜가 고개를 홱 돌리고 나를 쏘아보았다.

"목이 말라서 그래."

나는 지혜의 시선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일어섰다. 인삼 한 뿌리 를 수돗물에 대충 씻어서 안주 대신 질겅질겅 씹었다.

"남자 새끼가 쫀쫀하긴......."

지혜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금방 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러내 릴 것 같은 목소리로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헛소리 안 하기다 알았지. 내 사랑하는 지혜씨?"

나는 지혜의 목소리가 처연하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을 느끼며 그녀 옆으로 갔다. 엉덩이를 툭툭 두들겨 주며 부드러운 목소리 로 아양을 떨었다.

"나도 예뻐 해 줘...... 씨!"

선미가 어색한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녀답지 않고 콧소리로 흥 얼거리며 내 옆으로 왔다.

"그래, 난 세상에서 참 행복한 새끼다. 여기 두 공주님 가운데 있고, 아침 만찬이 기다리겠다. 뭐가 걱정이냐."

나는 지혜를 도와서 인삼 뿌리를 씻는 선미의 풍만한 엉덩이를 슬슬 문질렀다. 선미의 허리가 꿈틀거리며 싱크대 앞으로 바짝 붙어 버렸다. 그녀는 지혜와 다르게 여전히 팬티를 입지 않고 있는 상태여서 그만큼 민감한 탓이리라.

가스 렌지 위에 삼계탕을 앉힌 냄비를 올려 놓고 나서 우리는 식탁에 둘러 앉았다. 나는 여전히 인삼 뿌리를 질겅질겅 씹으면 서 취기가 노곤하게 밀려 오고 있는 기분 속에 히죽히죽 웃었 다.

"너도 한 잔 할래?"

지혜가 유리로 된 소주 컵을 선미 앞에 내 밀며 물었다. 말이 끝나자 마자 그녀 앞에 놓인 잔에 맑은 액체를 쪼르르 따랐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 가을날 자작나무 숲에 서 있는 여자처럼 한없이 외로워 보였다.

"좋아. 어차피 마셔야 할 분위기 인 것 같으니 사양은 안 하겠 어."

선미는 보조개를 피운 얼굴로 지혜에게 술잔을 내 밀었다. 술 잔을 받아서 이내 마시지 않고 자기 앞에 놓았다. 그리고 술잔 을 두 손으로 빙빙 돌리며 지혜의 입을 쳐다보았다.

"너희들 내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줬으면 해."

지혜는 자기 몫의 소주를 단숨에 마셔 버리고 나서 굳은 표정 으로 나와 선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저게 왜 갑자기 심각을 떨고 있지.

나는 농담을 한마디하고 싶었으나 지혜의 얼굴을 보니까, 본전 도 못 찾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대신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담배를 빼기 전에 지혜가 끌 고 가서 먼저 한 가치를 빼 물었다. 그 다음에 선미에게 피울 것이냐는 표정으로 담배값을 내 밀었다.

"우리가 한 두 해 사귄 것은 아니잖아. 걱정 말고 어서 말해 봐."

지혜가 길게 담배 연기를 내 품을 때까지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선미가 나를 흘끗 쳐다보고 나서 지혜에게 시선을 돌 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우리 앞으로 서로에게 거짓말은 안 하기다. 내 말 무슨 뜻인 지 알았지?"

지혜가 담배 연기를 풀풀 날리며 나와 선미를 동시에 쳐다보았 다.

"만약에 진우 너나, 선미가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낌새 가 있으면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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