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내게 거짓말을 해봐 ③
옷을 추스려 입고, 약간 냉기가 감도는 목욕탕 안으로 들어온 선미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것이 그녀와 지혜의 또 다른 점이기도 했다. 지혜라면 이미 두 번의 섹스 경험이 있 었다면 등을 밀어 주겠다고 덤벼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미는 중매 끝에 결혼을 한 새색시처럼 얼굴을 붉으스름 하게 물들이 고 부끄럽게 웃었다.
"넌 예뻐, 아니 아름다워."
나는 대충 머리의 물기를 닦아 내고 타월을 선미에게 건네주 며 쓸쓸하게 웃었다.
"알고 있어. 내가 아름답다는 걸, 그리고 진우씨가 멋진 사람이 라는 것도."
선미의 목소리가 갈증 들린 사람처럼 갈라져 나왔다. 나는 쓰 게 웃어 주며 밖으로 나왔다. 컴퓨터 모니터 위에 올려놓았던 캔 맥주를 들었다. 아직 절반 정도 남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창 문 앞으로 갔다. 겨울 날씨 치고 햇살이 찬란했다. 그 찬란한 겨 울 햇살 밑에 금박의 아이스크림 포장지가 납작하게 누워 햇볕 을 받고 있는 게 보였다.
누군가, 나처럼 열나고 있는 사람이 이 골목에 살고 있는 모양 이군.
미지근해진 캔 맥주를 바닥까지 비워 버리고 담배를 찾았다.
주머니에 들어 있어야 할 담배가 방바닥에 있는 게 보였다. 선 미가 방 청소를 하면서 옮겨 놓았는지 구석에 있는 재떨이 옆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재떨이는 어느 틈에 깨끗하게 닦여져 있었 다. 깨끗한 재떨이를 보면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선미의 깔끔한 성격을 다시 한번 확인 하는 기분속에 담배불을 붙였다. 땀을 흘리도록 섹스를 하고 난 후 여서 그런지 담배 맛이 유난히 좋 았다.
"나 없을 때 아무일 없었지......."
바깥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지혜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다시 한번 지혜의 방에서 설명을 하자면 지혜의 방은 골목을 면한 일반 주택을 원룸 형으로 꾸며 놓은 구조 였다. 틀린 게 있다면 집을 들어오려면 주방을 통과해서 들어와야 하고, 주방 과 방 사이에는 미닫이문이 있다는 거 였다.
"춥지."
주방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창문 밖으로 보이는 따뜻해 보이는 날씨와 다르게, 바깥 기온이 엄청 차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지혜의 빨갛게 언 얼굴을 양손으로 보듬어 싸는 감촉이 언 사과를 만지는 기분과 같았다.
"어쭈구리, 너 나한테 죄 진거 있지?"
지혜가 양손이 늘어지도록 들고 온 비닐 봉지를 식탁 위에 올 려놓고 나를 째려 보았다.
"난 널 사랑해. 언제 까지나."
그건 진심이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스스로 튀어나온 말이 었다. 나는 지혜의 허리를 가만히 끌어 당겼다. 지혜의 옷에서 냉기가 품어져 나오는 것 같은 기분 속에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너, 날 감격시킬 일 있냐?"
지혜는 까치발을 띠고 내 어깨를 껴 않았다. 그리고 내 눈을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다가 가만히 입술을 디밀었다. 나는 지혜 의 눈동자 속에 들어가 있는 내 얼굴이 몹시 쓸쓸해 보인 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힘껏 껴 않았다. 차가운 감촉이 내 입술을 짓누르는 가 했더니 뜨거운 혀가 매끄럽게 밀려 들어왔다.
"역시, 너희들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야."
어느 틈에 목욕탕에서 나왔는지 선미가 주방문 에 등을 기대고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배고프지, 삼계탕 해 먹으려고 닭 사 왔다?"
지혜는 당당했다. 그것은 그녀의 성격이기도 했다. 지혜가 뭐라 고 하던 길게 키스를 하도 난 후에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선미에게 말했다.
"아침부터 왠 삼계탕?"
내가 싱크대 배수구에 담뱃재를 톡톡 털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음마! 내 말 헛들었어. 우리 진우씨 코피 날까 봐, 영양 보충 해 주기로 했었잖아."
지혜가 내 얼굴을 손가락으로 콕 찌르고 나서 비닐 봉지에 들 어 있는 것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너 삼계탕 할 줄 아니?"
선미가 옆으로 와서 지혜를 도와, 냉동된 닭이며, 인삼, 대추, 밤 등을 주섬주섬 꺼내며 물었다.
"선미 너는 삼계탕이 라면 끓이는 것 보다 쉽다는 것을 모르는 구나. 라면은 퍼질까 봐 신경이 쓰이지만, 삼계탕은 재료만 준비 해 놓고 지겹도록 끓이기만 하면 된다구?"
지혜는 자랑스럽게 대답하며 마지막으로 소주 세 병과, 캔 맥 주 한 롤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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