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국의 말이 떨어지자 도끼와 놈들이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들을 보냈어도 명국은 도저히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창문 밖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그때 명국의 전화기가 울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수효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형님”
“....”
“예 형님...다녀갔습니다”
“....”
“승화 주식요?”
“....”
“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
“예비자금요? 좀 됩니다. 한 3~40억”
“...”
“예, 물론요. 저는 형님 믿습니다.”
“...”
“예...그리고 참 형님...”
“...”
“조금 조심하실 필요는 있겠습니다”
“...”
“예 곽도술이라고...”
“...”
“저야 곽회장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죠. 같은 자리에 있을 수도 없어요”
“...”
“그거야...형님 덕이죠.”
“...”
“그렇습니다. 현존하는 최대 실력자로 볼 수 있죠”
“...”
“예. 알겠습니다.”
“...”
“참 또요”
“...”
“최민기가 그 비서실장이라는 여자와 썸씽이 있는 것 같답니다”
“...”
“네”
“...”
“알았습니다. 그래서 당장 사람 붙였습니다”
“...”
“그렇죠. 일이 더 쉬울 수도 있죠.”
“...”
“그래도 당장 오늘부터는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결정적 증거 사진을 찍거나 몰카를 찍거나 하지 못하면 형님을 직접 따려할 수 있습니다. 자백이 더 효과적이니까요”
“...”
“예. 그럼”
명국은 전화를 끊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자신이 괜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수효에게 미안했다.
그 시간에 정숙도 매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정보를 종합하면 최민기는 사실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다.
최민기 하나 정도야 고양이가 쥐잡는 공력도 들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아버지 최병걸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거기다 전직 총리인 최민기의 장인 차대환도 있다.
차대환은 국내 최고대학을 나와서 미국유학까지 마친 석학이다.
그런 그가 최병걸 밑에서 잔뼈가 굵어졌다.
최병걸의 대학에서 평교수로 교수생활을 시작하여 그 대학 총장까지 오른 것이다.
교수 시절의 평판과 명성으로 국민들 사이에 평가도 나쁘지 않다.
그 때문에 그 대학 총장 재임 시 총리로 발탁되었다.
이는 최병걸이 계획적으로 키웠다고 판단할 수 있다.
차대환이 그 대학교 보직교수일 때 최병걸은 차대환의 딸을 며느리로 삼았다.
큰 며느리 채수연은 출신성분이 미미하다.
그래서 최병걸 눈에 차지 않았지만 아들 최민수의 고집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차대환을 키우듯이 계획적으로 유학을 보냈으며 그 후 평교수로 임직시켰다.
차대환을 키워 낸 최병걸이라면 채수연을 총장으로 앉히지 말란 법도 없다.
이럴 경우 둘째인 최민기 쪽에 특별한 지원이 갈 가능성이 있다.
최민기가 사업으로 무너지지 않게 지렛대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이다.
정숙은 이 같은 생각을 하면서 책상 앞에 있는 인터폰을 눌렀다.
“예 회장님”
“자금부장하고...조사부장, 그리고 투자담당 이사 와 계시나?”
“예 회장님”
“모시고 들어 와”
정숙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세 명의 남자가 비서의 안내를 받아 들어섰다.
활짝 웃는 표정으로 정숙이 책상에서 일어서며 그들을 맞았다.
“어서오세요”
“예 회장님”
“앉으세요”
“예”
“예”
“예”
세 명의 남자들이 동시에 대답하며 정숙의 앞자리에 앉았다.
이들이 앉자 비서가 차를 준비하여 각자의 자리에 놓고 나갔다.
보이차 한 모금을 마신 정숙이 조사부장을 보면서 말했다.
“지시한 내용 조사 했어?”
“예, 회장님”
“어때?”
“보고서는 따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간략하게 말씀드리면...당장 100억 정도가 수혈되어야 부도를 면합니다. 그리고 안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최소 천억입니다”
“으음...”
“...”
“지금 가지고 있는 개발권은 사업성이 있어?”
“네...사업성은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다만?”
“부동산 경기가 너무 바닥인데다 예상 분양가가 너무 높습니다”
“그럼 분양가를 낮추면 분양 가능성은 있어?”
“그도 장담 못합니다”
“왜?”
“일단 기존의 시내 빌딩들 사무실...상가...공실률이 매우 높습니다. 거기다 현재 나온 기초 로드맵이 주상복합초고층인데 요즘 주택소비자에게 초고층 주상복합에 대한 환상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방법은 없나?”
“있죠”
“무슨?”
“발상의 전환입니다”
“어떻게?”
정숙이 관심이 있는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썼다.
조사부장은 긴장하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오너가 이익 최소화를 결심하는 겁니다. 물론 그러려면 기본 자금력이 탄탄해야죠. 그렇다면 이익률을 거의 제로로 생각하고 시내에 녹지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녹지형 주택과 상업시설, 특정업종을 유치하는 특정업종단지...를 조성하는 방식입니다"
"어떻게?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뭐 이런 겁니다. 넓은 녹지위에 2층 3층 5층 7층 10층 이런 식으로 다양한 건축물을 지어서...배열합니다. 일종의 건축물 디스플레이죠. 즉 빌딩 디스플레이...그리고 블럭별로 병원타운을 하든지, 아니면 게임산업만 유치하여 게임타운을 한다든지...이에 대한 구체적인 것은 전문가들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죠”
다시 안경을 고쳐 쓴 정숙이 심각하게 물었다.
“대지 공간이 그렇게 되나?”
“교보문고 뒤로 하여 인사동까지라면 현재 용산 말고는 그만한 넓는 공간 시내에 없습니다”
“발상의 전환이라....”
“네 회장님”
“기업이 이익을 남기지 않고 개발한다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지...그렇지?”
“그렇습니다. 회장님”
정숙이 차를 한 잔 마시고 놓으며 투자담당 이사를 돌아보았다.
정숙은 여자지만 사업에서만은 그 카리스마를 어떤 남자도 감당할 수 없다.
그녀는 타고난 승부사요 장사꾼이요 사업가였다.
회의 중 그녀 앞에서 허튼소리를 했다가는 다시 회의에 참석할 수 없는 한직으로 밀린다.
그러다가 지례 말라 죽거나 아니면 다를 모멘텀을 찾아 점수를 따야 복귀할 수 있다.
그래서 특정인들만 모인 간부회의에서는 참석자들이 더 긴장한다.
투자당당 이사가 그런 케이스다.
그는 투자에 한 번 실패했다고 몸을 사리다 강남 빌딩 관리소장으로 강등되었었다.
거기서 말라 죽을 뻔 했는데 옆 빌딩 매수 때 능력을 발휘하며 롤백했다.
정숙의 시선을 받은 그가 새삼 긴장했다.
“조 이사님”
“네 회장님”
“승화건설 건 기초조사는 되었나요?”
“네 회장님”
“현황을 간략하게 보고하세요”
“네...”
침을 한 번 삼킨 조 이사가 자료를 정숙 앞에 놓고 말했다.
“자세한 것은 자료로 만들어 드린 유인물에 있습니다. 그리고 간략하게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가족지분이 최소 55%대 거의 60%대에 가깝습니다. 그 때문에 나머지 주식 전부를 우리가 수집해도 경영권 인수는 어렵겠습니다.”
“그래요?”
“네. 회장님”
“내부지분이 최소 15%이상 이탈해야 한다는 거죠?”
“네. 회장님”
조 이사의 말을 들으며 대화를 나누던 정숙이 조사부장을 돌아보며 다시 물었다.
“조사부장”
“네 회장님”
“현 주가 대비 10%면 시가로 얼마 정도야?”
“어제 종가로 9,000원이므로 시가총액이 약 900억, 10%면 약 90억 정도 됩니다”
“으음...”
“그런데 회장님...”
“응?”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급전 준비되지 않으면 이번 주 내로 시가총액은 반토막이 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법정관리 가고 채권단 조직되면서 법정관리나 화의가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
"네 화장님"
“그 아버지가 그리 되도록 두겠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지.”
“아버지 최병걸 이사장도 어렵습니다”
“왜?”
“직접경영도 그렇고 현재 청진동 상황과 내곡동 상황이 돌파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용산개발 모양새가 된다는 거구만”
“그렇습니다”
다시 차를 한 잔 마신 정숙이 이번에는 자금담당 부장을 돌아보았다.
자금담당 부장은 지원이 남편 김현수다.
강남빌딩 관리부장을 했는데 최근에 중책을 맡겼다.
자신이 수효 때문에 자리를 비는 날이 많아서 최 측근을 앉힌 것이다.
그는 신중하다. 그리고 빈틈이 없다. 시키는 일은 실수가 없다.
그 때문에 정숙이 지원의 짝으로 점찍어서 결혼을 시켰다.
“김부장”
“예 회장님”
“오늘 여유자금이 얼마야?”
“당장 운용이 가능한 여유자금이 500억 정도 됩니다”
“이번 달 회수 예상금액은?”
“재투자를 하지 않으면 그도 약 500억 될 겁니다”
“그 돈 전부가 다 없으면 우리가 입을 데미지는?”
“없습니다”
“그 돈 없어도 회사 돌아가는 것은 문제가 없다?”
"예 회장님"
그럼 말야..."
"네 회장님"
“우리가 데미지를 입을 수 있는 한계금액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단기간이면 약 3,000억...장기면 5,000억 수준입니다”
“5,000억이 없으면 우리도 부도나나?”
“아닙니다”
“그럼?”
“우리가 부도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돈을 쓰는 업체들이 부도가 납니다."
"그렇다는 거야?"
"네. 그리되면 회장님 명성에 누가 됩니다”
“알았어”
정숙은 다시 차를 한 잔 마시고 좌중을 돌아보았다.
“혹시 말야...”
“네 회장님”
세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내가 앞으로 30년을 더 산다고 하고 그동안 가난기 없이 살려면 얼마정도 돈이 필요할까?”
“???”
“그냥 아무 일도 안 하고 1년에 2억 쓴다고 쳐도 60억이네 그렇지?”
셋이 동시에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럼 60억만 남기고 모두 다 사회로 내놓는다면 어떤 방식이 좋을까?”
“???”
“누구처럼 재단 만들고 뭐 어쩌고 할까?”
“...”
“그래서 말인데...아까 조사부장이 한 발상의 전환이란 것 말야...”
“네 회장님”
조사부장인 조일현이 황급히 대답했다.
“내 자산 전부 투자하여 시내에 그린타운을 만드는 거야. 그린타운 다운 조경을 한 지구상에 없는 병원타운을 만드는 거야. 그리고 그게 완공되면 내 자산으로 재단을 만들어 재단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거야... 어때? 국토부 복지부 안행부 시울시의 심의 통과할 수 있겠어?”
세 사람은 정숙의 말에 서로를 쳐다보며 대답을 미뤘다.
그런 세 사람을 보며 정숙이 다시 말을 이었다.
“승화대학 최병걸 이사장, 내가 설득하지...거기 지금 지방캠퍼스에 의대 두고 서울에 부속 종합병원 짓는 것이 최대 현안이야. 근데 그만한 돈이 없어. 땅도 없고...”
“...”
“땅은 지금 말한 곳 개발권만 아들이 갖고 있지 전혀 매수가 되고 있지 않아. 은행들이 자금줄 잠근 때문이지. 시공사라도 삼숑이나 횬대 같은 업체 붙으면 지급보증 받아서 땅값 치를 수 있는데...분양을 목적으로 한 지급보증은 그런 회사들 지금 안 해.”
“...”
“아까 조사부장 말대로 분양 성공 가능성이 제로이기 때문이야. 결국 천문학적 땅값 지불 못하면 승화 부도나고 재개발 조합, 소액지주, 집주인들...건물주들...세입자들...다 망해.”
“...”
“최병걸이 그 늙은이에게...자기 아들 지분...현재 기 투자된 돈 인정해 주는 거야. 그리고 나머지 땅은 내가 다 사는 거지. 그렇게 되면 아마 지분율이 8:2쯤 될 거야. 20% 지분율로 행사할 수 있는 것...대외적 이미지만 가지라는 거지. 종합병원 간판이 그거야. 그리고 병원 운영권은 우리가 재단 만들어서 갖는 거지.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 이런 것처럼 예를 들어서 ‘승화의대 정숙서울병원’...이런 거...어때?”
“아!!!”
세 사람의 입에서 약속이나 한듯이 감탄사가 나왔다.
정숙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건설회사 조사를 시키고 인수검토를 시키고 투자가능성 조사를 시켰을 때 이들 모두는 의문을 품었었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프로잭트를 꿈꾸고 있었다니 역시 여걸이란 감탄사가 나온 것이다.
“나인 샷!!”
민기의 드라이버 샷에 하얀 공이 하늘높이 날았다가 260야드 쯤 떨어진 그린에 안착했다.
그러자 동반한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한 입으로 나인 샷을 외쳤다.
아침 열시에 시작한 라운딩이 벌써 9홀을 돌고 있었다.
민기는 경미에게 장담한대로 그동안 벌써 500만 원 가까이 따고 있었다.
이런 추세라면 진짜 천만 원은 쉽게 딸 수 있을 것 같아서 공은 더 잘 맞았다.
평소 보기 게임 실력인 민기가 오늘은 싱글은 물론 언더파를 노려도 될 정도였다.
“아니 최 회장, 오늘 진짜 잘 맞네?”
“그러게. 어째 오늘은 특별히 잘 맞네...”
민기의 드라이버가 끝나자 일행은 일제히 골프카에 올랐다.
차 안에서 박지석이 특별한 칭찬을 했다.
그러나 민기는 그 칭찬에 우쭐하면서도 겸손하게 말했다.
“뭐 어제 밤에 사모님이 색다른 서비스라도 하셨나?”
“무슨...최 회장 요새 다른 구멍 보느라 집에 있는 구멍은 녹슬 건데...”
이 때 곽도술이 농담을 곁들여 장단을 맞췄다.
그러자 뒤따르던 원일수가 찐한 농담으로 받았다.
원일수는 청진동 재개발 조합 조합장이다. 그리고 박지석은 이들의 고문 변호사다.
그러니 오늘 라운딩 동반자는 모두 청진동 재개발과 관련 있는 사람들의 회합인 것이다.
“허허허...원 조합장님도...농담이 찐하십니다?”
“아녀. 박변...요즘 최 회장 진짜 그렇다니깐...”
“그래요?”
“그렇다니까”
“아니 곽 회장이 말해 봐. 맞아? 당신도 아는 일이야?”
“아녀요...나도 몰러요...내가 암만 마당발이어도 어찌 남의 구멍까지 다 알겄어요?”
민기는 그들의 농담이 싫지 않았다.
골프장에서 잘 맞는 사람 심기를 흩트리는 전형적인 수법이기 때문이다.
저들 중 자신과 주경미 사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같이 라운딩 한 두 번이면 남여관계는 표시가 난다.
그런데 사업 필요성에 의해 주경미를 대동하고 저들과 여러 차례 라운딩을 했다.
물론 처인 차윤아도 이들과의 부부동반 라운딩을 여러 차례 했다.
그래서 이미 저들도 주경미와 내연관계를 눈치로 때려잡고 있다.
자신이 박지석의 내연녀인 김경아를 아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민기에게 나이 70이 가까운 원일수야 모든 것이 조심스럽지만 곽도술이나 박지석은 아니다.
박지석이 현역 검사일 때 곽도술은 박지석 은혜를 여러 번 입은 것으로 안다.
때문에 곽도술이 나이가 서너 살 위임에도 곽도술은 존대하고 박지석은 반말로 대꾸한다.
그런 박지석은 곽도술의 천거에 의해 청진동 재개발조합과 최민기의 고문변호사가 되었다.
때문에 넷은 종종 골프도 치고 술도 먹는다.
나이 70이 가까운 원일수는 아직도 여자를 좋아한다.
전직 깡패인 곽도술도 말할 것이 없다.
이 둘은 오늘도 이 라운딩이 끝나면 룸살롱으로 직행할 것이다.
그런데 매번 곽도술과 원일수의 룸살롱비는 자신의 책임이 된다.
하지만 자신과 박지석은 아니다.
박지석은 오늘도 김경아에게 먼저 갈 것이다. 자기는 또 주경미와 약속을 했다.
그러면 주경미 선물을 사면서 그냥 있을 수 없다.
박지석이 김경아에게 줄 선물까지 같이 사야 한다.
그렇기에 민기가 따면 민기가 돈을 쓰는 것 같으나 실은 다 자기들 돈이다.
그런데 골프가 안 돼 돈을 잃으면 그런 비용은 다시 카드를 긁어야 한다.
민기가 돈을 따야 할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러나 최 회장...”
“예, 조합장님”
전반 라운딩이 끝난 뒤 그늘 집에서 원일수가 최민기를 보고 말했다.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컵을 내려놓던 민기가 원일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골프를 치긴 하는데...마음은 콩밭이야”
“죄송합니다”
“어찌되겠어? 이번 달 안으로 남은 계약금은 지불될 수 있겠어?”
“솔직히 이번 달은 그렇고 다음 달이면 해결될 겁니다”
“그래? 은행 터진대?”
“그건 아닙니다만...길이 열릴 것 같습니다”
“은행 아니면 어디? 당신 부친이나 장인이 바지 걷고 도와주기로 했어?”
“...”
“나...진짜 죽겠어. 좀 살려 줘.”
원일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최민기라고 그 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조합장과 이사들이야 자신을 믿고 계약한 한 편이다.
그러나 지금도 재개발을 반대하는 반대파의 힘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지지부진한 재개발 단지들 다 보류되거나 최소되고 있는 중이다.
지금 민기는 재개발 지역 지주들에게 계약금 일부만 지급한 상태다.
남은 계약금만 1,000억 정도다. 현재 민기의 사정으론 그도 버겁다.
그런데 여기에 중도금 3,000억 까지는 처리되어야 사업을 물릴 수 없게 될텐데 민기에게 이미 한계가 나타났다.
이런 상황이니 재개발 찬성 조합원들도 이제 조합집행부 교체 운동으로 변하고 있다.
거기다 반대파는 일부 지급된 계약금도 수령하지 않고 재개발 원위치를 주장하고 있다.
원일수는 양쪽을 다 아울러야 하는 조합장이다.
그가 겪고 있을 고통, 상상만 해도 엄청나다. 그래서 민기는 원일수에게 정말 미안하다.
“내가 소개한 청담동 박여사 만났어?”
박지석이 두 사람의 얘기를 듣다 끼어들었다.
박지석은 부인 박주희를 통해서 친구인 지원의 양어머니가 청담동 큰손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나는 길에 다리를 놓아줄테니 한 번 만나보라고 권했다.
최민기는 깜빡 좋아했다. 그러니 틀림없이 만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민기가 해결방안 운운하기에 퍼뜩 그 생각이 떠 올랐다. 그래서 물었던 것이다.
“응”
최민기가 순순히 실토했다.
“그래...거기서 무슨 희망을 보았어? 투자하겠데?”
“그거 아냐...”
“그럼?”
“양수 겸장이지”
“누구?”
“형, 아버지...그리고 청담동까지 다”
“호오...그래? 방법이 생긴 거구만?”
“그렇기는 한데...”
말을 자른 최민기가 곽도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맥주 한 잔을 다시 마시고는 말했다.
“형님이 힘을 쬐끔만 써 주시면 되겠는데...”
“내가?”
곽도술이 큰 눈을 더 크게 뜨면서 말했다.
남은 잔을 마저 비운 최민기가 말했다.
“형님”
“엉”
“애들...뒤탈이 나지 않을 만큼 빈틈없는 솜씨가 있는 놈들로 한 서넛만 빌려주세요”
“고거시야 뭔 애러분 일이당가. 그란디 뭐 땀시?”
“피래미 하나 잡아다가 뭘 좀 알아봐 주면 되는 일입니다”
“그려?...큰 사고를 치는 것은 아니재?”
“예...별로 어렵지 않은 일일 겁니다”
“나...여그 박변도 알재마는 또 뭔 사고에 덤태기쓰믄 인자 빼도박도 못햐”
“압니다”
곽도술도 맥주잔을 비우면서 독백하듯 말했다.
“태촌이성 양은이성 알잔응가...태촌이성이야 이미 고인이 되셔부렀응게...허지만 그 성들 뭔 일만 있으믄 잡어다가 국민여론 돌리는디 썼거등...나 거튼놈 월매나 좋겄어? 안그요 박변?”
말을 마친 곽도술이 박지석을 바라보자 지석이 말을 받았다.
“그렇지...곽 회장은 지금 시국에 언론타면 검찰이 쓰기 아주 좋은 ‘꺼리’지”
둘의 말이 끝나자 민기가 다시 말했다.
“아무 탈 없는 일이니까 그런 걱정은 마세요”
“그럼...그래야지”
박지석의 말에 원일수가 대신 대꾸했다.
“아그들은 언제 필요헌디?”
“그건 이따 저녁에 따로 제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려...그라믄...근디 또 확인허는디...짭새들 관계시키는 일 아니지?”
“그렇다니까요. 간단한 일인데...제가 드러나면 안 되는 일이라서...”
“알었어”
짧게 대꾸한 곽도술이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나다”
“...”
“엉...그란디...윤호헌티 애기들 야문 놈 둘만 달고 대기허고 있으라고 혀라”
“...”
“아녀...”
“...”
“엉...”
“...”
“나가 이따가 전화허믄 그때 차질없이 신속허게 움직일 수 있는 곳에서 지둘리믄 돼야”
“...”
“그라제...”
“...”
“아따...안 맞는다. 내가 시방 호구다”
“...”
“최 회장이 다 따분다”
“...”
“엉. 그려...엉...그려...”
곽도술이 전화기를 덮고 민기를 바라보았다.
민기는 곽도술의 이런 점이 좋다.
그러나 박지석은 어딘지 한 곳이 찜찜하다.
이들 때문에 다시 검찰 후배들에게 아쉬운 소릴 해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 그 또한 돈벌이다.
그날 밤...
일요일을 미연의 집에서 자고 학교를 다녀 온 수효를 명국이 만나고 있었다.
명국은 혼자서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을 낼 수 없었다.
승화 쪽과 부딪치면 필경 곽도술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곽도술이 자기 밥그릇에 손대는 사람을 그냥 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곽도술과 모든 면에서 차이가 너무도 현격하다.
비록 지금 돈 몇 백억을 굴리고 있으나 그것은 다른 얘기다.
즉 곽도술 같은 대형조직과 조우할 일이 없는 업이라서 가능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여러 차례 푸닥거리가 있었고 자신은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명국은 그걸 생각하면 오금이 저렸다.
그러니 이 상황은 혼자서 결론을 낼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수효가 부르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았으나 오늘은 자신이 먼저 수효에게 전화했다.
“그러니까 그 승화건설이란 곳에서 추진하는 재개발 지역 철거용역 대장이 세다는 겁니까?”
“예 형님. 그렇습니다”
“자세하게 말씀해 보세요”
자신의 집으로 명국을 부른 수효가 먼저 와서 대기하고 있는 명국과 마주앉았다.
수효의 곁에는 언제나처럼 정숙이 와서 앉았다.
두 사람을 바라본 명국이 천천히...그러나 또박또박 말했다.
처음 승화건설 애기가 나왔을 때 최민기의 손발이 설마 곽도술이랴 했다.
이미 곽도술 정도면 철거용역 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철거용역을 하는 치들은 사실 대가리 숫자만 많지 제대로 된 건달들은 아니다.
철거용역업은 유흥가를 무대로 뛰는 건달들만큼 법무부와 가깝다.
꼬마들은 걸핏하면 구속이요 징역이다. 자칫하면 대빵도 다칠 확률 매우 높다.
즉 법무부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깡패고 건달이다.
일단 제대로 풀리지 않은 깡패나 양아치들은 동네경찰들 밥이다.
좀 컸다는 깡패들은 각 경찰서마다 있는 강력반이나 도경 시경 폭력계 형사들의 밥이다.
그리고 제대로 풀린 건달이라 해도 필요할 땐 검사들 밥이다.
결국 양아치 깡패 건달은 권력의 밥이다.
그래서 건달이 야물면 되도록 법무부와 멀리 지내려 한다.
그 때문에 머리가 커지면 대가리 숫자 적고 돈 많은 업을 추구한다.
이치가 이런데 곽도술 같은 오리지널 건달이 아직 철거용역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곳은 자신도 모르는 엄청난 이권이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은 명국이 현 상황을 간략하지만 되도록 자세히 설명했다.
그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던 수효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정숙은 얼른 재떨이를 수효 앞으로 놓았다.
명국은 재빨리 수효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를 한 번에 길게 빨아들인 수효가 그 연기를 내뿜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차피 한 번은 건너야 할 강이군요”
“...”
“...”
“그렇다면 피할 필요 없어요. 빨리 건너는 것이 더 좋아요. 돌아가면 더 힘들어요”
수효의 간단한 해결책에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명국은 수효가 아직 철부지라 겁이 없다는 생각이었고 정숙은 혹여 수효가 다칠까 겁났다.
그런 두 사람의 분위기를 수효가 깼다.
명국을 두고 정숙을 돌아보며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제 그제 무섭지 않았어요?”
“아닌데?”
그 웃음을 받은 정숙이 별소릴 다한다는 표정으로 수효의 질문에 답했다.
“그래도 집에 남자가 없으면 좀 무서워야 되는 거 아니예요?”
“언제는 뭐 혼자 살지 않았나?”
“그래도...”
“호호호 좀 무섭긴 했어. 듬직한 남자가 없으니...”
“그래야죠. 그래야 제가 밥값은 한다는 생각이 들죠”
“그래...밥값은 지금도 충분히 해.”
“그래요? 그럼 술상이나 좀 봐 주실래요?”
“그러지 뭐”
두 사람의 대화는 명국에게 언제나 생경스러웠다.
조손 간 대화는 분명 아닌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정숙이 수효를 보는 눈은 사랑스런 손자를 보는 눈은 아니다.
분명히 뭔가 있는데 그걸 알아내기가 힘들다.
정숙이 자리를 뜬 뒤에도 그 생각에 멍한 표정을 한 명국을 수효가 불렀다.
“김 회장님”
“예, 형님”
“혹시...요즘 신문에 많이 나오는 모 그룹 최 회장 사건 아시죠?”
“예”
“진짜로 최 회장이 속았다고 생각하세요?”
“???”
“전 다른 게 보여요”
“무슨?”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술상 정리가 끝난 정숙이 나왔다.
“박 회장님이야 더 잘 아실 거고...”
“뭘?..”
“대만에서 잡혔다는 김 모 회장이란 사람 얘기요”
“알지. 그런 얘긴 들어가서 해 준비되었어.”
“그래요. 갑시다 회장님...참 시간 되시죠?”
“네...형님...저야 뭐”
주방의 식탁 안쪽으로 만들어진 홈바에 자리를 잡은 세 사람은 각각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오늘도 술은 임페리얼이었으나 김명국은 그걸 타박하지 않았다.
술이 한 순배 돌자 수효가 다시 말했다.
“그 사람 점쟁이라는 말이 맞아요?”
대만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김모 회장이란 사람 얘기였다.
정숙과 명국은 동시에 대답했다.
“응”
“네”
“6천몇백억이라구요?”
“네”
“그렇대나 봐”
“국내 3위 그룹을 이끄는 회장이 점쟁이 말대로 하다가 그 많은 돈 잃고 구속돼요?”
“글세...”
“뭔가 다른 게 있겠죠.”
“바로 그거예요. 천재도 넘어집니다. 바보도 결정적일 때 한 건은 합니다”
“???”
“???”
자기의 술잔을 비우고 또 한잔을 따른 수효가 입술을 축인 뒤 말했다.
“그 최 회장님...혈통이 오리지널입니다. 돈벌이건 공부건 혈통 그거 무시못합니다”
“그렇지”
“삼숑가...횬대가...심지어 jj, 로테, 두상, 2세 3세들 욕먹지만 선대보다 사업 더 키웠습니다”
“으음...”
“혈통이지요. 그런데 혈통에서 최 회장도 밀리지 않아요. 그런 분이 점쟁이에 속아요?”
“...”
“...”
수효의 말에 대꾸를 않는 두 사람을 한 번씩 돌아 본 수효가 단언하듯 말했다.
“두고 보면 아시지만 진실은 다른데 있을 겁니다.”
“???”
“???”
“지금 김 회장님이 겁내는 곽도술이란 전설적 건달...그를 믿고 있을 최민기...이제 곧 세상은 참 넓고 고수는 곳곳에 산재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감탄사가 터졌다.
“아!!”
“아아!!”
육포를 씹으며 그런 두 사람을 돌아 본 수효가 명국을 불렀다.
“김 회장님”
“네 형님”
다시 이번엔 정숙을 돌아보며 불렀다.
“박 회장님”
“응”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초리를 받으며 수효가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말입니다. 죄가 많은 놈입니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는 놈입니다.”
“아!”
정숙이 짧은 한마디를 냈다.
개의치 않고 수효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 것에도 욕심이 없으니 무엇도 바라지 않죠.”
“아아!!”
계속 정숙의 신음성이 나왔다.
힐끗 정숙을 돌아 본 수효가 명국을 향해 다시 말했다
“이 세상에 목숨 말고 더 지켜야 할 것이 뭘까요? 돈? 권력? 여자? 명예?”
명국은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
“그런 거 목숨 없는데 어디에 필요합니까?”
수효의 말을 들으며 정숙은 이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수효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자신의 선택인 사람이 있는가?
천성으로 받은 능력인데 그게 왜 수효의 죄인가?
그런데도 그걸 아직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쓰렸다.
수효는 정숙의 심경은 아랑곳 없다는 듯 명국을 보면서 계속 말했다.
“소싯적 싸움 좀 해 보셨을 김 회장님은 잘 아시겠지만...싸움은 말입니다. 지킬 것 없는 놈이 이깁니다. 지킬 것 많은 놈은 필경 져요. 돈, 권력, 여자, 명예...이런데 미련 두고 지키려하면 정작 지켜야 할 목숨을 잃죠.”
“그렇죠. 맞습니다”
명국이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 육포를 들면서 말을 받았다.
그러자 다시 수효가 담배를 피워물더니 불을 붙이고는 말했다.
“제가 지켜야 할 것은 제 목숨이 아닙니다.”
“아!!”
또 정숙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나왔다.
그러나 수효가 힐끗 돌아 존 뒤 말을 이었다.
“그것은 저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명예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아무에게도 내놓을 수 없는 치부...이런 것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명예...그것을 지켜내는 것은 제가 아주 명예롭게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명예롭게 죽을 수 있는 길이라면 저는 내일이라도 명예롭게 죽습니다.”
말이 없는 정숙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흘렀다.
그 눈물을 바라 본 명국도 괜히 콧등이 시큰 하더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기 위해 누구라도 내 이 결심을 흩트려뜨릴 사람이 싸움을 걸어온다면 피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예상하건데 그 싸움은 제가 100전 100승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돈과 권력과 명예와 여자 모두를 지켜야 합니다. 거기에 한 번 오른 사람은 그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은 수효의 말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분위기는 급격히 무거워졌다.
그러나 수효는 말을 끊을 생각이 없었다.
수효의 입에서 계속 말이 이어졌다.
“하방경직(下方硬直)이란 말이 있습니다. 경제용어인 하방경직성(下方硬直性), 즉 가격의 하방경직성은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내려야 할 가격이 어떤 사정으로 내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는 뜻입니다.”
“...”
“...”
“거기서 파생된 말인데...예를 들어 대형차를 타던 사람은 자가용을 아예 살 수 없는 형편이 되도록 망했을 때 차라리 대중교통으로 다니면 다니지 경차나 소형차를 절대로 살 수 없는 심리...고급 주택이나 고급 아파트에 살던 사람이 망해서 아예 아무도 모르는 곳 판잣집에서 살더라도 같은 아파트단지 내 더 작은 집으로 갈 수 없는 심리...사업에 망한 사람들이 살기 위해 막노동이라도 하기보다 더 포기하고 노숙자가 되는 심리...이런 심리를 하방경직 심리라고 합니다.”
정숙은 새삼 수효의 얼굴이 다시 보였다.
어떻든 수효는 지금 열아홉이다. 그리고 학교라고는 중학교만 나왔다.
검정고시를 해서 대학이라고 들어갔지만 이제 등교한 지 며칠 되지도 않는다.
그런 아이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수효는 이미 생각도 육체도 지식까지 어른도 한참 어른이다.
밤에 잠자리에서만 어른이 아니라 실제 그가 생각하는 것은 40대 중년도 넘은 것 같다.
명국도 마찬가지다.
우연찮게 수효를 만나 뒈지게 터지고 밥줄이 끊어지는 줄 알았는데 구세주였다.
만난 첫날 형이라고 불렀으나 그 값은 지금까지도 톡톡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만나면 만날수록 그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그는 정말 거대한 산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압박감은 더하다.
이런 두 사람의 심리에 아랑곳없이 수효가 술을 한 잔 털어 넣고 말을 이었다.
“지금 김 회장님의 두려움...그거 아마 100배 쯤은 최민기나 곽도술이 느끼고 있을 겁니다”
“...”
“...”
“최민기는 말입니다. 이미 지고 있습니다. 가진 것을 포기할 수 없으니 아버지와 형을 협박하려는 것, 그건 세상과의 싸움에서 진 겁니다.”
‘저가 열아홉인가?’
김명국은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수효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곽도술? 김 회장님 말씀대로 법무부와는 더 멀어져야 할 위치의 사람이 이권이 크다는 이유로 양아치나 깡패가 해야 할 일에 집착하는 것...그것은 그가 아직도 이권이라는 맘몬에 취해있습니다. 그게 저들의 약점입니다. 저들은 자신들의 행동이나 생각을 세상이 아는 것이 가장 두려운 존재들입니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 그게 더 두려운 존재들입니다.”
두 사람의 대꾸가 없자 수효가 다시 자기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제가 가진 무기는 그겁니다. 저들의 실상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저에 대해서 최민기는 아마 일개 대학생 정도로 보고를 받았겠죠. 그래서 제게서 채수연과 간통을 했다는 것을 자백받으려 하겠죠. 아마 저를 잡으려고 깡패들 서너 명 보내겠죠. 그럼 어찌될까요?”
“???”
“???”
“두고 보세요.”
“???”
“???”
“그 놈들이 제게 잡혔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최민기가 먼저 항복할 것입니다.”
다시 술을 한 잔 더 따라 마신 수효가 이번엔 사과 한 쪽을 우걱우걱 씹으며 말했다.
“곽도술?...이번에 제게 무릎꿇지 않으면 아주 은퇴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수효는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명국은 그게 미덥지 않았다.
곽도술은 명국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