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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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수효의 전화를 받은 김명국은 바삐 움직였다.

비록 초장에 깡패로 풀리긴 했으나 김명국은 상황판단이 빠르고 머리가 좋다.

그래서 한 눈에 한수효의 그릇을 알아보고 그의 수하를 자청했다.

그 후 명국의 인생은 어려움 없이 풀렸다.

일단 유흥가에서 잔돈푼 뜯어내는 일을 끊었다. 

또 잔돈푼 가지고 술집 여자들을 상대로 하는 일수니 월변이니 하는 일에서도 손을 뗐다.

병풍을 세우고 경비도 자청하는 도박판 꽁지노릇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니 사람을 따거나 해서 겁을 준다거나 린치를 가할 일도 없었다.

유흥가하고 얽힐 일도 없었다. 

당연히 다른 깡패조직하고 얼굴 붉힐 일도 없었다.

법무부와 거리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자신만 멀어진 것이 아니라 밑에 동생들도 멀어졌다.

자연스럽게 뒷골목 건달 생활이 청산되었다.

그럼에도 손에 쥐는 돈이 많아 애들 관리는 더 수월했다.

지금 시대는 건달도 돈이다. 돈 없는 건달은 건달 사회에서 양아치 취급을 받는다.

동생들이 찾아오면 쥐어주는 돈의 액수가 달라지니 동생들의 대우가 달라진다.

술집보다는 골프장이 사교장소로 바뀌고 밤 보다는 낮이 일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명동 한 복판에 있는 여남은 평의 사무실은 감춰진 명국의 실체다.

하지만 파이낸스 빌딩에 있는 번듯한 투자회사는 겉으로 드러난 명국의 대외적 이미지다.

돈은 명동에서 벌고 교제는 파이낸스 빌딩에 있는 투자회사에서 한다.

돈을 감추고픈 큰 손들은 명동에서 요리하고, 돈을 벌고 싶은 개미들은 투자회사에서 요리한다.

이런 모든 것은 다 수효의 머리에서 나왔다. 명국은 수효의 지시만 따랐다.

수효는 마법사였다. 시작한 후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모든 투자를 다 성공시켰다.

그를 만난 지 2년...그 중 1년여의 실종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명국에게 수효는 실종상태가 아니었다.

어디 있는지 말하지 않았을 뿐...

여자들에게 비밀을 지키라는 추상같은 명령이 있었을 뿐...

필요할 때 투자는 계속 지시했다. 매일매일 현황을 파악하고 행동을 지시했다.

명국은 그의 지시만 따르면 되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지금 명국은 자기 자산이 최소 100억 대는 능가할 것으로 계산한다.

그에게 얻어터지고 그의 수하가 될 때 잘 해야 현금 3~4억 정도가 있었다.

거기다 바닥에 깔아놓은 일수니 월변이니 하는 채권이 2~3억 정도였다. 

또 여기저기 동업으로 투자한 술집들 지분도 한 2~3억 정도 되었다.

하지만 몽땅 탈탈 털어야 10억 정도가 총 재산이었다. 

깡패생활 10년 경력에 그 경력으로 돈 장사를 시작하고도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모은 돈이었다.

열아홉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20여 년 동안 쌓은 총 재산이었다.

그런데 수효를 만난 지 2년이 지난 지금은 움직이는 돈만 4~5백억이다. 

그중 자기 자산만 해도 100억 정도다. 이 정도면 큰 손은 아니어도 무시당할 정도는 아니다.

수효가 하나님 급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거기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 온 수효는 대한민국 최대의 큰손 청담동 여사님의 남자가 되어버렸다.

자기로선 평생을 꿈꿀 수도 없는 위치로 가버렸다. 도대체 그의 능력을 가늠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일은 그가 지시한 일이다. 명국에겐 무엇보다 먼저 선행해야 할 일이다.

전 날 수효에게 제압당한 뒤 자신에게 넘겨진 심부름센터 애들을 불렀다. 

이미 그놈들이 수효를 미행했던 이유에 대한 것은 대강 알고 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자신에게 전화를 한 것을 보면 느긋하게 진행할 일이 아니란 얘기다.

명국의 호출을 받은 놈들이 30분도 되지 않아 사무실에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명국이 수행비서 비슷하게 쓰고 있던 도끼 조진우를 대동하고 사무실로 나타났다. 

진우는 별명이 도끼라고 불릴 정도로 손도끼를 잘 쓴다. 

진우가 날린 도끼를 피한 애들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워낙 무식해서 자신이 휘두른 도끼 때문에 징역복도 많은 놈이다. 

그래서 독단적으로 행동하게 할 수는 없다. 

때문에 할 수 없이 명국이 운전사 겸 수행비서로 두고 있다. 

그 후 진우는 명국이 지시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다. 

회사 지하실에 차를 댄 명국이 진우를 대동하고 놈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외부인 휴게실로 갔다. 

두 놈은 계속 얼어있는 상태였다. 얼어있는 놈 곁에 그놈들 사장으로 보이는 친구가 함께였다.

“들어가자”

 “네 형님”

명국의 말에 진우가 놈들에게 눈짓으로 말하자 놈들이 쫄래쫄래 따라왔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 선 명국이 옷을 벗어 걸고 응접소파 상석에 앉았다. 

그 뒤에 병풍처럼 진우가 서자 놈들은 소파 양쪽으로 갈라 명국의 멀찍이 앉았다.

“가까이 와서 앉아”

명국의 말에 놈들이 주춤주춤 가까이로 다가왔다.

“도끼야”

 “예 형님”

 “야들이 어제 찍었다는 사진 어디있냐?”

 “예, 형님 그거 프린트했습니다”

 “가져와 봐”

 “예 형님”

사진은 거의 50여 컷이었다. 하지만 그 중 증거로 쓸 수 있는 것은 수효가 차를 타는 장면과 차가 모텔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장면, 모텔에서 나온 뒤 같이 차를 타는 장면 등 서너 컷 정도였다.

“이거 외에는 없나?”

명국이 놈들을 향해 물었다.

“예? 예 없습니다.”

 “뒷조사를 한 지 6개월 쯤 되었다면서?”

 “이거 말고는 다른 흠을 잡을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깨끗하게 살았다는 얘기야?"

 "예...저희들이 감시하는 동안에는.."

“으음...국회의원인가 하는 그 남편도 미행했다며?”

 “예? 예...”

 “내가 아까 그 자료도 가져오라고 했는데 가져왔나?”

 “예”

 “그럼 내놔 봐”

 “예”

오늘 새로 나타난 놈이 서류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봉투는 상당히 두꺼웠는데 봉투 속에는 수십 장의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들은 그 아내와는 반대로 국회의원이란 친구의 여자관계가 깨끗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들락거린 호텔도 다양했고 동행한 여자도 같은 여자가 아니었다.

사진을 대강 훑어 본 명국이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뒤에 서있던 진우가 재빠르게 라이터를 켜서 명국의 입에 물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명국은 담배연기를 길게 내 뿜고는 실눈을 한 채 놈들을 응시했다.

놈들은 그런 명국의 시선을 받으며 묵묵히 앉아있었다.

“이 사진 말고도...최민기쪽에 전달한 사진 있나?”

 “예...거의 매 주...한 번씩 전했습니다.”

 “으음...”

 “....”

 “여자들은...술집 애들이던가?”

 “아닙니다. 주기적으로 만나는 여자들입니다...”

 “여자들 신분은?”

 “의원 사무실 비서...학교 교직원...등이었습니다.”

 “언론이나 지 아버지가 알면 경을 칠 사건이구만...”

 “아버지 쪽은 아마 대강 알고 있을 겁니다.”

 “이미 최민기가 아버지에게 보고를 했다는 거야?”

 “아닙니다.”

 “그럼?”

 “아마 교직원 여자가 이사장인 아버지에게 이실직고 한 것으로 압니다.”

 “왜?”

 “애를 가졌는데...모른 척 했던가 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비리를 알면서도 여자만 회유하면서 쉬쉬하고 있습니다.”

"왜? 아들을 혼쭐을 내지?"

 "자기가 이미 복잡한 여자관계가 있었으므로 여자문제로는 영이 서질 않는 것 같습니다."

“으...음...그렇다..."

 ""...."

니들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이 바닥 넓은 것 같지만 좁습니다.”

 “...”

 “구찌가 큰 것은 서로 부딪치기도 하는데 각자 모른 척 할 뿐입니다.”

놈들의 얘기를 들은 명국이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이런 좋은 증거물을 다 최민기에게 보고했나?”

 “???”

 “혹시 나중에 협박용으로 따로 남기지 않았는지 묻는 거다”

 “없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지시하는 일을 할 수 있겠나?”

 “예?”

 “난 어제 그분의 수족이나 같다. 즉 내가 하는 말이 곧 그분이 지시하는 것이란 얘기다.”

 “아..예”

 “너희들이 이 일을 잘 해내면 아마 최민기에게서 받는 잔돈푼하곤 비교할 수 없는 대우가 따를 것이다."

 "..."

 "니들 인생이 펴진다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예?...예”

 “그럼...”

 “...”

 “어제 찍은 이 사진들...전혀 손대지 말고...뽀샵인지 뭔지 하지 말라는 거야.”

 “예”

 “그대로...파일로 만들어서 USB에 담아 최민기에게 전해.”

 “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최민기 지시를 그대로 받아. 그 대신 지시받은 내용은 한 자도 빼지 말고 내게 보고해.”

 “알았습니다.”

 “보고할 때는 최민기에게 보낸 자료 그대로...하나도 빼지 말고...다 가져와. 그런 다음...내 지시를 받으면 돼.”

 “예?...예”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그러니까 니들은 이중스파이란 얘기야”

 “예”

 “또...니들 얼굴은 최민기가 알고 있으니까..,좀 빠리빠리한 두어 놈을 최민기에게 붙여. 그럴 놈 있나?”

 “우리는 규모가 작아서...”

 “그럼 없단 거야?”

 “예”

놈들의 말이 끝나자 명국이 뒤를 돌아보며 도끼를 불렀다.

“진우야”

 “예 형님”

 “우리 애들 중에 사고 안치고 미행하면서 사진이나 찍어 올 놈 있나?”

 “종환이가...잘 할 겁니다.”

 “종환이?”

 “예. 형님...그놈이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고...빠르고 민첩합니다.”

진우의 말이 끝나자. 명국은 수효의 전화를 생각했다.

수효는 덫을 놓겠다고 했다. 그 덫을 여자로 사용하겠다는 심산이다.

그런데 여자로 놓는 덫은 식상할 수 있다.

특히 그 아버지가 이미 아들들 뒷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 스스로도 여자관계가 복잡하다.

그렇다면 여자로 놓는 덫은 큰 효과를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동생 최민기가 형 최민수의 복잡한 여자관계 사진을 모았어도 아직 행동에 옮기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민수는 여당 국회의원이다. 

이 스캔들 사진은 야당이나 또 정적들에겐 매우 좋은 미끼일 수 있다.

그들에겐 이 같은 결정적 증거가 있다면 필요할 때 언론플레이용으로 유용하다.

회심의 미소를 입가에 올린 명국이 미소를 감추며 다시 말했다.

“그래? 알았어...그러면 너희들은 그냥 아까 내가 지시한 그대로 해.”

 “예. 알겠습니다.”

명국의 지시에 놈들이 꾸벅 절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말야...”

 “???”

 “방금 너희들이 말했던...아버지가 감시하고 있는 거...”

 “예”

 “그 사실에다...앞으로 최민수 쪽에서도 감시할 것이라고 넌지시 최민기에게 알려 줘. 그건 너희들이 얻어 낸 정보로 하고 말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예. 잘 알겠습니다.”

 “만약...만약에라도 말야...너희들이 딴 생각을 품은 것을 알게 되면 그땐 이 세상에 그만 살고 싶다는 것으로 생각하면 될 거야. 보스께서는...너희들이 만난 그분은 너희들이 어디서 뭘 하든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걸 잊지 마”

 “예..알고 있습니다”

 “그래...그럼 나가 봐”

놈들이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가자 명국은 수효의 다음 수순을 생각해봤다. 

덫이라고 말했다. 두 개를 친다고 했다. 

그 두 개가 하나는 승화건설 회장인 최민기를 잡기 위한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또 하나가 국회의원 최민수인지, 그 아버지 최병걸인지는 모른다. 

명국은 그러나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처음 지시인 심부름센터 애들에게 이중스파이 임무를 부여한 것은 수행했다. 

자신은 다음 지시를 받은 뒤 움직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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