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부
“퇴근 언제야?”
“수업...오후 한 타임 있어요”
“몇 시에 끝나지?”
“아마...5시 쯤...”
“수업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나?”
“왜요?”
“할 얘기가 있어서...”
“???”
“당신하고 내 얘기야”
“네...”
“오늘 여기 연구실에서 이런 것 두렵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연구실이다.
그가 창문을 열 때 잠깐 연구실인 것이 겁이났다.
그러나 그에게 몸을 정복당하면서 연구실인 것도 잊어버렸다.
지난 30분 누군가 복도로 지나갔으면 신음소릴 들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수연은 갑자기 몸이 오그라들었다. 그리고 잠시 수효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주체할 수 없었던 몸을 어쩌지 못한 것은 자신이다.
수효에게 안기지 않았으면 연구실에서든 화장실에서든 자위라도 해야 했었다.
화장실은 더 위험한 곳이다. 그나마 연구실 소파는 복도와 멀다.
수연은 여러 생각이 교차하면서 자신의 광란이 밖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어디가 좋겠어?”
생각에 잠긴 수연에게 다시 수효가 물었다.
약속장소를 정하라는 거다.
그런데 이대로 헤어지긴 싫다.
조금 더 그의 품 안에 있고 싶다.
수연은 이런 자신의 심경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다.
“바빠요?”
“바쁜 것은 없어”
“다른 수업은 없어요?”
“신입생인데 왜 없겠어. 있지”
“언제 끝나요?”
“점심 먹고 연속 두 타임...나도 한 5시 쯤 되겠는데...”
“그럼 5시 30분에 정문에서 만나요”
“그럴 수 있겠어?”
“???”
“손수 운전하고 왔어?”
“세미나 있다고 하고 기사 들여보내면 돼요.”
“그럼 그렇게 해”
간단하게 약속을 한 수효가 쪽 하고 수연의 입술을 빨아준 뒤 문을 열고 나갔다.
수연은 그의 뒷모습도 멋있었다.
그리고 그의 여자가 된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했다.
그를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여보세요?”
“...”
“나 한수횹니다”
“...”
“덫을 놔야 하겠는데...”
“...”
“두 개”
“...”
“물론 여자지”
“...”
“근데...싸구려 술집 애들은 안 돼”
“...”
“그렇지...유부녀면 더 좋지만 안 되면 미망인...특히 일하는 여자면 좋겠지”
“...”
“구할 수 없겠어?”
“...”
“그래...그러면...일단 빠른 시간에...시간이 빠를수록 좋아”
수연과 헤어지고 식당으로 가던 수효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끊었다.
그러다가 다시 전화기를 열고 단축버튼을 눌렀다.
“나야..수효”
“...”
“전화 받기 편하지 않으면 편한 시간에 편한 곳에서 전화 줘”
"..."
"응...매우 중요한 일이야"
"..."
"그래...그건 만나서 얘기하고..."
"..."
"조금 바쁜 일이 생갈 것 같아"
"..."
"그렇지. 그래도...응...
"..."
나도 사랑해..."
"..."
"그래...그렇다니까?"
"..."
"알았어. 끊어. 그리고 일 끝나거든 전화 해"
전화를 끊은 수효가 휘적휘적 식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몇 걸음을 지나지 않아서 앞을 가로막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말끔하게 차려 입었지만 어딘지 야리해 보이는 40대 남자였다.
“혹시...한수효씨인가요?”
“그렇습니다만...”
“잠시 시간을 좀 낼 수 있어요?”
“누구신지...”
“윤명희...아시죠?”
“???”
“그 여자 남편인데요”
“아...예”
“김영철입니다”
“네. 한수횹니다”
그가 내민 손을 잡은 수효는 당황한 표정을 일순간에 감추며 대답했다.
그런데 남자는 되려 수효 앞에서 그리 당당하지 못한 모습으로 안절부절했다.
“무슨 일이시죠?”
순간적으로 생각을 가다듬은 수효가 남자를 향해 물었다.
어찌 보면 여자로도 볼 수 있는 맑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몸집은 남자치고 상당히 작았다. 여자라고 해도 크지 않은 몸집이었다.
잘 해야 165cm정도...절대로 170cm는 되어 보이지 않았다.
외과의사락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맞잡은 손은 남자 손이 아니라 여자 손이었다.
키만 작은 것이 아니었다.
외적으로 남자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남자다움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손을 맞잡은 수효의 눈을 받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매우 중요한 얘기라서요”
목소리도 매우 미성이었다.
목소리만 들었다면 여자인지 남자인지 단번에 구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수효는 직감했다.
이 남자는 윤명희의 일탈을 알았다는 것을....
그리고 윤명희를 통해서든 미행을 통해서든 자신과 윤명희의 관계를 알고 있음도 느껴졌다.
그렇다면 피해서 될 일은 아니다. 어떻든 매듭은 지어야 할 일이다.
오후 수업은 볼 짱 다 봤다. 이 일의 매듭이 우선이다.
결심한 수효가 남자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제가 차를 가지고 왔어요. 제 차로 가시죠”
말을 마친 남자가 주차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방을 고쳐 맨 수효가 남자의 뒤를 따랐다.
깨끗하게 세차되어 광택이 번쩍이는 벤츠였다.
차 문을 열고 그가 운전석에 올랐다.
수효는 운전석 옆자리를 열고 올라탔다.
소리 없이 시동이 걸리더니 차가 미끄러지듯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운전을 하는 남자도 옆자리의 수효도 말이 없다.
그렇게 한 참을 달리던 차가 멎은 곳은 시내에 있는 한 특급호텔 정문 앞이었다.
운전석의 남자가 내려 차 키를 정문 안내원에게 건넸다.
수효가 따라 내리자 앞장 선 남자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리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더니 22층 버튼을 눌렀다.
22층은 커피숖이나 카페가 아니라 룸이 있는 층이었다.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22층에 있는 2213호 문을 키를 따고 들어갔다.
이미 예약되어 키를 사전에 받았고 그 키를 소지한 채 수효를 만나러 왔던 것이다.
방은 한강이 제대로 보이는 로얄 룸이었다.
윗도리를 벗어 옷장에 건 남자가 그때서야 수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옷 벗으시고...저하고 여기서 술 한 잔 하시죠”
수효는 이미 각오한 일이었으므로 그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
점퍼를 벗어 가방과 함께 소파 한 쪽으로 놓았다.
남자는 능숙한 자세로 냉장고에서 술병을 꺼낸 뒤 마른안주를 준비했다.
마주 본 자세로 앉은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남자의 눈빛이 수효의 눈빛을 받고 심하게 흔들렸다.
수효는 개의치 않았다.
그가 남자였으므로 자기 눈빛에 취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필요하면 최면을 걸겠지만 아직 그럴 필요성은 느끼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은 자기 눈빛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임신을 했어요”
자리에 앉아 술을 한 잔씩 나눈 뒤 남자가 뜬금없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를 수효가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8주라고 하더군요”
수효의 대답이 없자 남자가 혼잣말처럼 뱉었다.
“축하합니다”
수효는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남자의 눈길을 잡으며 말했다.
남자는 다시 술을 한 잔 따라 마신 뒤 땅콩 한 알을 입에 넣고 말했다.
“한수효씨라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저는 알아요”
“???”
“아이의 아버지가 한수효씨라는 것을...”
수효는 그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그러나 그의 추궁에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명희가 임신을 자신에게 먼저 알리지 않은 것만 기분이 나빴다.
“어떤 근거로 그리 단정하시는 거죠?”
“저는 남성기능을 하지 못하거든요”
“예?”
다시 술을 한 잔 마신 남자가 수효가 보는 앞에서 갑자기 바지의 벨트를 풀었다.
남자의 행동에 갑자기 놀란 수효가 눈을 크게 뜨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바지를 내린 남자가 여자들이나 입는 팬티를 내리더니 자신의 남성을 내보였다.
거기에 번데기가 있었다. 성인남자의 성기라고 할 수 없는 번데기...
물끄러미 바라보는 수효의 시선을 피해 남자가 팬티를 올리고 바지도 올렸다.
수효가 그런 남자의 행동을 보며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이런 모양으로 결혼생활 10년이 넘었어요.”
“...”
“오늘...제가 수효씨를 만나러 온 것은...”
“???”
“아내의 임신을 알려드리러 온 것만은 아니예요.”
“그렇다면?”
“아내의 남자...이미 오래 전에 저는 수효씨의 존재를 알았어요”
“그런데?”
“수효씨가 실종 된 지난 1년 여...”
“...”
“아내는 미친 여자 같았어요.”
“그건...”
“겉으로 어디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던 그 심정...저 이해했어요.”
“...”
“아이를 만들 수 없는 제가...”
“...”
"모양만 남자라 남자 옷을 입고 남자로 살아야 하는 제가...왜 그 심정을 모르겠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오늘 이 자리를 만든 것은 간곡한 부탁을 드리기 위함이예요”
“저에게요?”
“네...실상 저는 겉모습만 남자예요. 아마도 태중에서 성 호르몬이...”
“???”
“여성 성기를 달고 나왔어야 하는데 고추를 달고 나온...”
“그럴 수도 있습니까?”
“많지는 않으나 종종 있는 케이스죠. 그래서 성전환자들이 계속 늘어나요”
“아!!!”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신이 남자인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들...”
“으음”
“자기 몸에 붙어있는 살덩어리가 자고 일어나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제가 더 들어야 합니까?”
“네...들어주세요”
수효는 이 남자가 부담스러웠다.
명희의 남편이라고 하므로...해결해야 할 일이라서 같이 자리를 했다.
그런데 감당하기 어려운 대화가 자꾸만 진행되고 있다.
남자의 말에 어떤 대꾸를 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자신과 대화를 더 하고 싶어 했다.
수연과의 약속은 오후 5시다.
그때까지 최소한 3~4시간이 있다.
그 안에 종결지어야겠다고 결심한 수효가 말했다.
“예...그럼 계속 말씀하세요”
“보통은 자신의 이상 성징을 알면 거의 대부분 여성 호르몬제를 복용해요."
"아...네"
"그래서 몸을 여성화 시키죠.”
“그래요?”
“네. 그러면 가슴이 커지고 엉덩이도 커지고 허리도 잘록해지고...”
“...”
“칼로 잘라내지 않았으니 살덩이는 그대로지만 외적인 몸은 여성으로 변해요."
"들은 적 있습니다"
"일정기간 계속 호르몬제를 복용하면 음성도 상당부분 여성화되어요."
"아!"
" 음성이 여성화되면 아예 쓰는 말투, 하는 행동까지 여성화 되지요.”
“그렇군요”
“그런데...저는 못했어요. 몸은 하라고 하는데 할 수가 없었어요.”
“왜죠?”
홀짝거리며 술잔을 입에 댔다가 내려놓으며 남자가 말을 이었다.
“제가 5대 독자거든요”
“아!!”
수효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술병을 들어 잔에 가득 따른 후 크게 한 모금을 비웠다.
그런 수효를 바라보던 남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어려서부터 공부를 남달리 잘했어요."
"...."
" 특히 사춘기 이후 이상 성징을 알고는 할 일이 공부밖에 없었어요."
"...."
" 남고에서 같은 남학생과 몸을 부딪치는 것이 부담스러우니까 체육 이런 거는 거의 하지 않았어요."
"으으음"
" 땀나면 같이 목욕해야 하니까...”
“그럼 그 때 이미 자신의 이상 성징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네...어렴푸시...”
“그런데 왜?”
“시골이잖아요."
"..."
"그래서 공부만 하다보니 부모님도 집안 어른들도 원하는 국내 최고대학 의예과에 합격했어요”
“참...”
“그 후 저는 우리 부모님만이 아니라 고향의 집안 모두에게 자랑스런 자식이 되었어요."
"그렇겠죠"
"그게 이 부담스런 살덩이인 자지를 자를 수 없도록 한 이유예요.”
“아...”
다시 수효의 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탄성에 개의치 않고 남자는 말을 이었다.
“명희는 이런 내 시정도 모르고 대학 때부터 줄곧 좋다고 쫓아다녔어요.”
“...”
“도망을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고 고백도 못했어요.”
“...”
“시간이 가서 둘이 결혼이란 것까지 해버렸어요.”
“....”
미연에게서...그리고 명희에게서 대강은 들은 얘기다.
대학 때부터 좋아해서 쫓아다닌 의대 선배와 결혼했다고 말했었다.
남자가 다시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허공을 바라보면 말했다.
“10년...아직도 명희를 여자로 안아보지 못했어요."
"..."
" 여자가 여자를 안은 느낌인데...뭐가 되었겠어요? "
"으으음"
"그래도 이 작은 살덩이로 어찌 해보려고 몇 번 시도했는데...발기가 되는 것 같으나 삽입하려면 죽어버려요.”
“...”
“그런데 손이나 입으로 자극하면 소량이지만 정액도 나와요."
"아..."
" 그래서 인공수정이라도 하려고 검사해본 결과 내 몸속에서 생성된 정액으론 수태가 되지 않는다는 결과만 얻었어요.”
참담한 말이었다.
이런 고백을 처음 본 남자에게 한다는 것은 보통의 결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오늘 대낮인데도 독한 술을 마시는 이유, 이런 자리를 마련한 진정한 이유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계속하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 후 명희와는 여러 번 이혼을 생각했죠. 하지만 명희는 극구 반대했어요.”
“왜죠?”
처음 듣는 말이다.
명희 본인도 미연도 주희도 지원도 명희 부부가 이혼을 생각했었다는 말은 없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생식기 때문에 이혼을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제가 불쌍했던 모양이예요.”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이겠죠”
“물론...그 이유도 있겠죠. 그러나...”
“...”
“고향 부모님이나 어른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배신할 수 없다는 생각, 이런 복합적인 면도 작용했을 거예요."
"그런 점도..."
"결국 우린 그냥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기로 약속했어요."
"..."
"그래서 명희가 만나는 남자들...그냥 용인했어요."
"...."
" 다만 나쁜 남자만 만나지 않기를 빌었죠. 그런데 지난 1월 어느 날 이후 명희가 달라졌어요.”
수효는 생각했다.
자신이 서울로 돌아 온 뒤 다시 만났던 미연 주희 명희 지원...
미연이야 당연히 죽었던 남편 살아 돌아온 것 같은 기쁨을 마음껏 표출했다.
그 심경을 잠자리에서 더 발산했다.
밤새워 자기 몸을 탐했던 것도 수효는 다 감당해 줬다.
사나흘 집에서 꼼짝 못해도 다시 수효의 얼굴만 보면 팬티부터 벗었다.
그런데 명희도 미연 못지않았다.
직장이 있고 가정이 있었으나 그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주희나 지원도 섹스를 나누는 시간에는 온전한 암컷으로 복종한다.
하지만 자기들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몸은 수효의 여자지만 사회적으론 변호사이고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명희는 달랐다.
소아과 박사 윤명희가 아니라 수컷 한수효의 암컷에 더 집착했다.
그런 명희를 수효는 나무라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자기 때문에 이혼도 불사한다면 명희의 뜻을 그대로 받아줄 생각이었다.
수효는 김영철의 말을 들으며 명희를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살갑고...더 여성스럽고...더 열심히 일하고...”
“그랬군요.”
“그래서 물었죠”
“...”
“그때 수효씨 얘기를 했어요.”
“???”
“여자로 태어난 것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라고...”“...”
“부러웠어요. 그리고 보고 싶었어요."
"...."
" 우린 서로 거짓없이 말하고 살기로 했으니까 다 말해줬어요. 나이 신분 그리고 친구들과의 얘기까지...”
“그렇군요...”
“친구들과 얽혀있는 것이 좀 걸렸는데 며칠 전 명희가 입덧을 하더군요.”
“아...네”
“우린 두 사람 다 그게 반가웠어요. 서둘러 확인했는데 임신이 맞았어요."
"으으음"
" 우린 같이 기뻐했어요. 전 부모님과 집안의 대를 이을 수 있어서 기뻤고 명희는 아마 수효씨의 애를 가진 게 기뻤던 것 같아요”
수효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이 남자의 고백은 아이는 수효 자신의 아이지만 호적은 자기 아이로 하겠다는 말이었다.
명희를 만나 사실을 들어야 하지만 이 남자의 고백대로라면 용인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다시 술잔을 비우고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남자가 수효가 문 담배에다 탁자에 놓인 성냥을 켜서 불을 붙여 줬다.
“한수효씨...”
수효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자 그 연기 속에서 수효를 불렀다.
“오늘 만나자고 한 본론은 사실 다른데 있어요”
“네?”
“저...잠시만 기다리실래요?”
“???”
수효의 대답도 듣지 않고 남자가 방으로 들어갔다.
수효는 자신의 남은 술잔을 비운 뒤 다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담배 한 대가 다 타도 남자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수효는 술병을 들어 남은 술을 한 잔에 다 부은 뒤 그걸 조금씩 마셨다.
그 술잔의 술이 다 떨어질 즈음 방에서 한 여자가 나왔다.
요염하게 화장을 하고 가발을 쓴 김영철은 틀림없는 여자였다.
가슴은 그리 도드라지지 않았지만 입은 차림새로 보면 여자가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하늘거리는 까만 원피스...그 밑으로 얇게 뻗은 다리를 감싼 까만 스타킹...
그런 차림을 한 김영철이 웃으며 앞에 앉았다.
“이런 차림으로 트렌스젠더 카페...사실 몇 번 가봤어요.”
“...”
“거기서 만난 남자들에게 여자로 사랑도 받아봤죠”
“아!!!”
“그러나 그때뿐이었어요.”
“...”
“특히...제 신분이 신분인지라...”
말을 중단한 그가 일어서더니 천천히 옷을 벗었다.
그의 행동을 수효는 놀란 듯 바라봤다.
그런 수효의 시선을 받으며 그는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했다.
능숙하게 원피스 지퍼를 혼자서 열고 원피스를 벗어내렸다.
브래지어로 가려진 가슴은 작지만 분명 여자가슴이었다.
그가 그 브래지어도 풀었다.
성인 여성처럼 아주 발달하진 않았지만 틀림없는 여자가슴이었다.
허리도 마찬가지였다. 허리 밑으로 내려 온 골반의 모양새도 여자였다.
스타킹을 돌돌 말아서 벗어 내린 뒤 팬티도 벗어버렸다.
사타구니에 살덩이가 이물질 같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여자 몸이 여자가 아닌 것으로 보이게 했다.
표피가 덮인 작은 고추...딱 다섯 살 남자애의 고추모양이었다.
불알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그냥 매달린 살덩이였다.
당황한 수효가 화난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 나하고 섹스를 하자는 거요?”
수효의 얼굴 가까이 얼굴을 들이 민 그가 당돌하게 말했다.
“제가 지금 남자로 보이세요?”
가랑이 사이의 고추만 없다면 정말 그는 여자였다.
수효는 이미 항문섹스를 여러 여자와 경험했다.
따라서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내키지 않았다.
“난 동성연애자가 아닙니다.”
수효가 단호하게 잘랐다.
“저도 동성연애자가 아니예요”
“무슨 말이요?”
“저는 여성에게는 어떤 성적 감흥도 없어요. 저 스스로 여자라고 생각하고 살았으니까요."
"???"
" 지금 수효씨에게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어요. 명희와 똑 같이..."
"허어 참"
"당신의 애를 낳을 수는 없지만...이대로 저를 받아주신다면 당신만 보고 살고 싶어요. 당신 애를 명희와 둘이 키우면서...”
당황한 수효가 담배를 비벼끄며 말했다.
“명희도 압니까?”
“대강은...”
“대강이라면?”
“제가 여성 성징을 가졌다는 것은 거의 알아요. 다만 서로 모른 체 하고 살았죠.”
“그럼 앞으로는?”
“당신이 저를 여자로 사랑해주신다면 명희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 있겠죠”
“명희가 받아들인다고?”
“저는 그럴 거라고 믿어요.”
당호한 그의 태도에 수효도 단호히 말했다.
“좋아요. 다 알았어요. 그러나 오늘은 아닙니다.”
“왜죠?”
“내가 내키지 않아요. 다만...”
“다만?”
“명희를 만나보고...내 아이를 가졌다니까...당신 말대로 명희는 이제 완전히 내 여자니까...내 여자하고 대화를 해야겠지.”
“그럼 거절한 것은 아니네요?”
“글세...”
“저도 오늘 모든 것이 정리될 것으로는 생각지 않았어요."
"...."
" 그리고 당신을 만나 본 뒤 당신에게 제가 확신이 서면 명희에겐 제가 직접 고백하려고 했어요."
"고백?"
" 그런데 저는 당신을 본 순간 확신이 섰어요.”
“왜?”
“아까 525호 연구실...그거 저 알아요”
다시 놀란 수효가 추궁하듯 큰 소리로 물었다.
“들었단 말입니까?”
“네...들렸어요”
“당신 말고 또 더 있어요?”
“다행이...저 말곤 아무도 없었어요”
“언제부터?”
“당신이 그 여자 안고 방에 들어가면서 끝내고 나올 때까지...”
길게 숨을 내 쉰 수효가 격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물었다.
“어떻게 알았는데?”
“학과 사무실...강의 시간표...그걸 통해서 강의실은 알았고, 기다리다 강의 끝난 뒤 그 여자 당신이 안고 나올 때까지 다...”
“그게 나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어요?”
“첫눈에...첫눈에 ‘아! 저 사람이다’하고 꽂혔어요”
“참...나”
알몸으로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그를 수효가 허허롭게 웃으며 바라봤다.
그런 수효의 표정에 긴장이 풀렸는지 그가 배시시 웃었다.
그 웃음도 여자 웃음이었다.
“한 눈에 꽂힌 사람이 한수효인 거 확인 되는 순간 저는 오늘 이 계획을 진행하겠다고 결심했어요."
"지금 이런 거?"
"네..."
“참 나...”
"그런데 맞았어요.”
"그래서?"
“이 방, 명희 임신사실 안 그날 예약했어요. 그때부터 이 계획은 진행된 거예요.”
수효는 그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이 이상한 운명을 다시 한 번 저주했다.
그리고 이 이상한 운명이 어디까지 진행될 것인지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나 거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은 이미 육친의 할머니를 여자로 안고 사는 놈이었다.
육친의 엄마도 여자로 안고 사는 놈이었다.
자신의 여자들 나이가 모두 엄마 나이 이상인 아주 이상한 놈이었다.
이런 이상한 운명을 타고난 놈이 여자도 남자도 아닌 이상한 사람을 안아주는 것.
그것 또한 자신 때문에 세상이 망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결심을 굳힌 수효가 단호하게 말했다.
“좋아...이제부터 말을 놓는다. 싫으냐?”
“아니예요. 좋아요. 기왕이면 이름도 불러주세요, 영아라고..”
“영아?"
"영철이란 이름은 남자니까..."
"그래 영아...내가 명희를 통해 보자고 하면 그 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와”
“알았어요. 고마워요”
“그럼 지금은 옷 입어”
“네”
여자 옷을 싸들고 방으로 들어 간 김영철이 잠시 후 다시 남자가 되어 나타났다.
시간을 보니 벌써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다시 학교로 가서 수연을 만나기란 물리적으로 시간이 맞지 않았다.
“이 방, 오늘 내가 좀 써도 되나?”
“그러세요. 오늘 하루는 이미 지불되어 있으니까요”
테이블 위에 있는 전화기를 들고 9번을 길게 눌렀다.
시내전화 신호가 떨어지자 학교 안내전화번호를 눌렀다.
길게 신호가 가더니 교환이 전화를 받았다.
“채수연 교수님 방 좀 부탁합니다.”
“....”
“나야...”
“...”
“응...갑자기 급한 손님 좀 만나느라 늦었어”
“...”
“여기...P호텔 2213호야”
“...”
“응...일이 좀 있었어. 그래...이리로 와”
전화를 끊자 김영철이 얼굴을 발그레하게 붉히며 수효를 바라봤다.
수효는 그 시선에서 다시 여자를 봤다.
채수연과의 약속을 들은 김영철은 자신이 여자임을 은근하게 내비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