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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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영은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다음날이 이삿날이었다. 

어릴 적 자전거를 타다 언덕에서 굴러 다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고 타박상이 심해서 며칠 입원했었다. 

그 때 아버지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괜찮다는 데도 아버진 아니었다. 죽을 것도 아닌 단순 타박상인데 그랬다. 

잠시 쉬면 괜찮을 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아버지는 굳이 병원까지 옮겼다. 

그리고 병원에서도 절망하는 표정으로 내내 내 침대 옆에 머물렀다. 

모든 부모가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는 부모에게 일종의 거울이다. 

아이에게서 자신의 어린 날을 보기도 하고 돌아오지 않은 미래를 보기도 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자신의 뜻과 다르게 자라면 그래서 작은 일에도 화를 낸다. 

아이는 아버자의 화내는 이유를 모른다. 이해할 수 없다. 

자식이 부모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의 갈등은 그 때문에 비롯된다. 

아이는 아버지와 다른 타자라고 생각하는데 아버지는 아니다. 

지금 수영은 자신의 수효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는 것을 깨닫는다. 

당연히 아무 일도 없을 것인데 서울이란 곳에 있을 수효는 사자굴에 있는 토끼신세일 것으로 생각된다. 

수영 자신이 수효보다 더 약하고 수효 앞에서는 암컷 이상이 아닌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그와 서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의논해 본적이 없다. 

그가 평생을 함께할 배필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를 떠나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은 확고하다. 

그는 아직 학생이고 자신은 교사임에도 그렇다. 

언젠가 인터넷에서도 방송에서도 청소년 성추행 뉴스를 봤다.

외국의 한 여교사가 학생과의 관계로 임신했는데 그 때문에 청소년 성추행으로 감옥을 갔다는 보도였다. 

지금 객관적 눈으로 보면 수영 자신이 그렇다. 

아직 임신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수영이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은 수효가 자라서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였다. 

그래서 지금 생각이라면 그의 아이를 갖고 싶다. 

그가 떠나기 전에 그의 아이를 임신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언젠가는 이해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삐익’거리며 문자가 왔음을 전화기가 알려준다.

‘선생님 진짜 학교 그만 두세요?’

희수였다. 

가녀린 아이다. 

수효는 희수 때문에 결국 제주를 떠났다. 

그리만 보면 희수가 미울법도 하다. 

그러나 수영은 희수가 밉지 않다. 

희수를 통해 수효의 거대함을 더 알게 된 때문이다. 간단하게 답을 보냈다.

‘응’

바로 답이 왔다. 전화기를 들고 있다는 증거다.

‘왜요?’

 ‘그냥...’

 ‘서울로 가세요?’

 ‘응’

 ‘서울에서도 계속 선생님 하시나요?’

 ‘아직 모르겠어’

 ‘그럼 직장 정하지 않고 그만두신 거예요?

‘응’

 ‘안 가시면 안 돼요? 전 선생님이 필요한 데...’

 ‘다른 선생님들이 더 각별히 챙길 거야. 걱정 마.’

 ‘그 애들...저 고등학교 졸업 전에 다시 만나면 어쩌죠?’

 ‘,,,,’

 ‘선생님...’

 ‘응?’

 ‘답문이 없어서요’

 ‘희수야.’

 ‘예’

 ‘선생님 서울 가면 가장 먼저 너 다닐 학교 알아볼게"

 '...'

 "그리고 거처 마련되면 연락할게. 넌 그 전에 원장님 설득 다 해놔. 너 수효 좋아하지?’

 ‘네’

 ‘그래...나도 수효 좋아해.’

 ‘알아요’

 ‘그래서 말인데...우리 서울에서 수효 만나면 서로 질투하기 없기다?’

 ‘네’

 ‘너하고 수효 공부하고 난 뒷바라지 하고...어때 그림 나오니?’

 ‘히히히. 그럼 선생님이 엄만가?’

 ‘그럴 수도 있지’

 ‘네 선생님 고마워요. 기다릴께요’

전화기를 껐다. 정리하던 이삿짐이 갑자기 짐덩어리로 보인다. 

그냥 아무도 몰래 혼자 떠나버릴 것을 그랬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혼자서 서울로 가서 수효를 만나 욕정도 풀고 사랑도 받을 것을 괜히 떠난다고 알린 것이 후회된다. 

배려의 마음에서 욕심과 질투의 마음으로 변하고 있다.

그것은 수효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하는데 괜찮다면 그건 사랑이 아닐 거다. 

사랑에 대한 온갖 미사여구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거다. 

그것만큼 단순한 것이 있던가. 

수영은 자신이 다 내려놓고 서울로 가려는 이유를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를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그 또한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그런 사랑을 서로 나눈다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자신이 서질 않는다. 

그럼에도 자신이 수효를 떠날 수 없다는데 더 마음이 아프다. 

자신의 몸이 수효를 원한다는데 더 슬프다. 

자신이 수효의 여자임을 몸도 마음도 머리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데 이르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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