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부, 수효의 여자들
1
수효가 일어나서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미연은 그런 수효가 정말 열일곱살이란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담배연기가 그의 얼굴을 감싸듯이 타고 올랐다.
그 얼굴에 키스를 해주고 싶은데 온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복부는 기분좋은 충만감으로 가득했다. 의식적으로 다릴 오므렸다.
남자가 남겨준 씨앗이 밖으로 흘러 나가는 것이 싫었다.
온통 다 자궁 안으로 들어갔으면 싶었다. 오늘 밤 이 행위로 인해 애라도 생겼으면 하고 생각했다.
"종국씨는 몇 살이야?"
그런 생각으로 더욱 다릴 오므리고 있는데 뜬금없는 질문이 들어왔다.
"서른 다섯이예요"
"이혼 했으면 혼자 살겠네?"
"예 혼자 살아요"
길게 들이 킨 담배연기를 내뿜는 수효의 모습에서 언뜻 우수가 보였다.
'이제 열일곱이라면서 너무 어른스럽다'
미연은 수효의 얼굴을 보며 새삼 그가 했던 주민등록중도 아직 나오지 않은 나이란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자신의 나이와 비교가 되었다. 하지만 금방 그 생각을 털었다.
아직도 아랫도리에 남아았는 알싸한 고통과 충만감, 그리고 지금도 안에 있을 그의 씨앗들...
이미 자신은 수효에게 정복된 여자라는 사실이 나이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당신하고 같이 살 수는 없고..."
다시 수효가 독백처럼 말했다.
"????"
"사람들 눈에 당신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
이는 언뜻 조금 전에 자신이 했던 같이 살자는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나이가 어리다면서도 생각이 깊었다.
"그놈들...물론 다시는 당신 불편하게 하진 않겠지만...가능하다면 내가 종국씨 하는 일을 도와주면 나도 자릴 잡는 게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종국씨가 이해할까?"
조각조각 맞춰보니 그의 말은 자신을 떠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미연은 그가 떠나지 않겠다는 것 만으로 행복했다. 늘 만날 수 있겠다는 것으로 행복했다.
"그런 거라면 걱정 말아요. 내가..."
알몸인 채로 수효의 등 뒤로 가서 그를 끌어 안았다.
가슴에 밀착 된 등이 너무 넓었다.
수효의 손이 넘어와서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이 너무 좋았다.
그 손가락 하나를 잡아 입 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빨듯이 빨았다.
"나...오늘 제주도에서 왔어"
"...."
"제주에는 나를 기다리는 여자들이 많아"
"...."
"그 여자들...내가 제대로 공부해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라지"
"...."
"제주도에 그냥 있으면 고아원에서 계속 살아야 하고..."
"..."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어쩌면 감옥에 갔을지도 몰라"
"왜요?"
"오늘...당신네 가게에서 있었던 일 비숫하게 얽혔었거든"
"...."
그의 말을 듣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끊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말투는 한꺼번에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토막토막 뱉는 말투였다.
그러니 한 참 뒤에 그 말들을 이어서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중간에 그의 말을 끊을 수 없었다.
"제주에서도 눈에 거슬리는 것 보지 못해서....그러다 깽패들하고 얽혀서 경찰서 드나들고..."
"...."
"그곳 경찰에선 이미 내가 요주의 인물이야"
"...."
"그런데 여기서도 첫 날 부터 깡패들과 어울리게 되어버렸네?"
손가락을 빼서 손을 잡으며 수효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빙긋이 웃고 있는 그의 미소가 혼을 빼놓을 것 같았다. 다시 미소에 취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미안해요"
"당신 미안하라고 한 말 아니야"
"그래도..."
미안했다. 자기 뜻은 아니었으나 자기들 때문에 깡패들과 싸우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미안했다.
그러면서도 미연은 그의 혼을 빼놓을 것 같은 미소 때문에 몸은 계속 뜨거워졌다.
"그래서 말인데..."
"???"
미연의 몸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든지 상관없이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서울이라 비싸겠지?"
"???"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나 혼자 한 달 정도 살만한 방 얻을 돈은 될 거 같은데...."
"방 얻으려구요?"
"응, 그래서 그런 방 하나 얻고...학원...검정고시 학원 등록하고"
"그래서요?"
"종국씨 혼자 아무래도 버거운 것 같은데..."
"???"
"종국씨가 이해한다면 내가 거기서 할 일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미연은 몸의 변화에 상관없이 이제 그와의 대화에 열중하려고 그의 말을 받았다.
그를 도울 수 있다면...그와 함께할 수 있다면...미연은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고등학교 가기 싫어. 애들하고 어울리면 내가 어려지는 것 같아서"
"..."
"한 일년 해서 검정고시 합격하고 대학 가려고..."
"그래서 가게에서 웨이타 같은 것 한다구요?"
"왜? 안 돼? 내가 지배인 할까?"
"지배인?"
"그래...종국씨가 지배인인가?"
"그렇지는 않아요. 동생은 내 대신 사장...지 말로는 뭐 바지사장이래나요?"
"그런 지배인은 없네?"
"그럴 거예요. 있었는데...지금은 없을 거예요"
"....."
"그런 거라면 걱정 말아요. 그리고 가게에서 일할 생각은 말아요. 내가 싫어요. 당신 내가 다 책임질께요"
"그러지 마. 싫어."
"왜요?"
"당신 아니어도 내 말이라면 나 책임 질 사람 있어. 당신 돈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돈도 당신보다 훨씬 많을 거야"
"그런데 왜?"
"내 운명이 그래. 그런가 봐. 내 뜻대로 되질 않아."
"무슨 말이예요?"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그의 손에 들려있는 담배가 다 타서 꽁초만 남았다.
그가 꽁초를 재떨이에 던지고 다시 술병을 잡았다. 미연이 잔을 가져다 그의 앞에 놓았다.
그가 그 잔에 술을 따르려 했다. 술병을 빼앗아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도 한 잔 따랐다.
"피곤하지?"
"괜찮아요"
"아냐...갑자기 닥친 일들이라서 피곤할 거야"
"...."
"한 잔 마시고 푹 자. 그리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
"그래요. 당신도..."
"나 열일곱인데...당신은 서른 여덞이라면서 불편하지 않아? 그냥 아들이나 조카처럼 편하게 말하지?"
"아녜요. 그냥 이게 편해요"
"왜? 아들같지 않아?"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어요"
"놀라지 않았어? 내 나이 듣고"
"솔직히 놀랐어요."
"그런데?"
"그런데 그런 생각보다 나는 당신 여자라는 생각만 들었어요"
"내 여자?"
"예. 당신은 내 남자"
"나이차이가 많은데도?"
"무슨 상관이예요? 요즘 연예인들 열살 차이는 보통이던데 뭐"
"우린 스무살 차이도 넘는데?"
"그래도 상관없어요."
"후후후...나 여자 많다니까?"
"괜찮아요.당신이 나 버리지만 않는다면"
"그럼 나도 존대할까?"
"싫어요. 그냥 지금처럼 말해요."
"종국씨...가게 종업원들...그들에게 뭐라고 하려고?"
"상관없어요. 당신도 종국이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서른 다섯이라며?"
"그래도 내 동생이예요. 당신은 내 남자고..."
미연은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의 생각이 단호함에 스스로 놀랐다.
그러나 나이 때문에 수효를 잃고싶지 않았다.
몸이 이미 제압당했고 몸이 이미 복종했는데...
몸은 이제 이 남자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데 나이나 주변 때문에 자기의 남자가 곤혹스러운 것이 싫었다.
언젠가 탤런트 김지수가 열여섯 살 어린 애인에 대해 인터뷰를 하면서 '그 분'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탤런트 한혜진보다 여덟살이 어린 축구선수가 방송에서 '혜진이' '너'이러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유명 아나운서 정세진의 결혼 상대자도 정세진보다 나이가 아홉 살이 어리다고 했다.
아마 그 커플도 정세진은 존대하고 남자는 반말로 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여성의 본능이다. 보호받고 싶어하는 본능, 어린 남자라는 생각을 잊어보리고 싶은 본능.
지금 생각하니 그래서 김지수나 한혜진이 더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았다. 지금 자신이 그랬다.
그래서 더욱 힘을 주어 그의 목을 끌어 안았다.
그런 미연을 수효가 돌려 세웠다. 그리곤 빙긋이 웃더니 가만이 입술을 붙였다.
그의 입술이 붙여지자 미연이 그의 아랫입술을 세차게 빨았다.
수효가 손을 내려 미연의 유방을 가만이 쥐었다가 놓았다. 그리곤 몸을 떼면서 말했다.
"피곤하겠다. 이제 자"
"네"
몸이 개운했다. 그렇게 혹사를 당했는데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침대 위에서 곤히 자고 있는 수효의 얼굴에 다시 키스를 했다.
그리고 슬며시 손을 내려 수효의 심벌을 잡아 보았다.
가게에서 두 번, 호텔에서 3번 도합 다섯 번의 토정을 하며 완전히 자신을 정복했던 주인이었다.
그 주인이 지금 아침인데도 다시 탱탱하게 부풀어 있었다.
미연은 그의 심벌을 입에 물었다가 놓았다.
마지막 관계에서 자신의 보지에 토정하고는 씻기 싫다며 그냥 누워버렸다.
그 때문에 귀두부터 기둥까지 비릿한 냄새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미연은 그 냄새도 좋았다.
가능한 부분까지 입 안 깊숙히 넣고 빨았다. 그래도 수효는 깨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더 깊숙히 빨아주고는 서둘러 옷을 입었다. 괜히 마음이 바빴다.
이 남자가 살 방, 다녀야 할 학원, 공부할 교재 등을 이 남자 깨기 전에...이 남자가 깨서 사라지기 전에...
다 준비해야 했다. 아직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필요하다면 개인 과외까지도 붙여서 이 남자의 뜻대로 1년 안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게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될 때까지....
때로는 엄마로 때로는 누나로 때로는 친구로, 하지만 영원한 그의 여자로 살고 싶었다.
2
삐익
"네, 회장님"
"혹시 어디서 연락 온 거 없었어?"
"네 없습니다"
"알았어"
"네 회장님, 결제는?"
"응 내가 부를 때 가져 와"
"알겠습니다"
정숙은 불안했다. 그냥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디도 손을 쓸 곳이 없었다.
바람이었는지 번개였는지 귀신이었는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었다.
몸은 틀림없이 사내가 다녀갔는데 사내는 바람처럼 없어졌다.
손수건 한장 달랑이었다.
그 손수건이라도 없었더라면 정말 꿈속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몸 안 곳곳에 남은 흔적들, 젖가슴부터 엉덩이까지 아직도 새빨간 손자국, 보지와 항문 안에 남은 그가 쏟아 낸 정액들...그런데 그는 없다.
'어디로 갔을까?'
'제주에서 왔다는데...'
'효정이를 말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다고 했는데...'
'누구였을까?'
'왜 그리도 경수를 닮았을까?'
'효정이가 살아있다는 말인가?'
'효정이가 보냈을까?'
'그런데 왜 나를 이리 만들어 놓고 가버렸을까?'
수많은 생각이 줄을 이었다. 생각이 이어질수록 궁금했다.
그리고 몸은 더 뜨거워졌다. 그와 딩굴었던 3시간이 꿈만 같았다.
나이 60을 바라보는데 자신이 여자인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남편과 경수가 그렇게 황망 중에 떠나고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효정이마져 포기해야 했을 때, 실종자를 사망처리하는 신고를 했을 때 여자의 인생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 자체를 포기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세상에서 자신에게 기쁨과 희망아란 것을 앗아간 신을 저주했다.
더 악착같이 살았다. 신에게 보여주려고 더 돈에 집착했다. 신에게 늘 말했다.
'보시라. 당신이 내 인생을 그렇게 처참하게 망가뜨렸어도 난 어림없다. 더 잘 산다. 더 돈도 많이 벌고, 더 악랄하게 이렇게 산다. 나를 죽이려면 죽여라. 나에게 더 빼앗을 것이 있으면 빼앗아라'
이런 심정으로 살았다.
돈이 벌렸다. 빌딩이 늘어났다.
호텔도 샀다. 골프장도 지었다. 여기저기 땅도 샀다.
잘 나간다는 회사 주식도 모을 수 있는대로 모았다.
망해간다는 회사 헐값에 사들여 돈 투자해서 살린 다음에 투자한 돈 몇 배 남겨서 팔았다.
지금도 돈을 안겨주는 회사가 여러개다.
직접 경영은 안 해도 회사마다 회장 명패는 있다.
해마다 연말이면 배당금만 수억이다.
그런 재미로 여자라는 것은 잊어버렸다.
또 누구도 어떤 사내도 함부로 범접하지 않았다.
사내들이 앞에서 슬슬 기었다. 사내들이 모두 하찮게 보였다.
그랬는데...그랬는데...창졸간에 그 어린 사내에서 모든 것을 빼앗겼다.
16년 간 잊어버렸던 암컷으로서의 온몸 감촉을 그 어린 사내가 다 일깨웠다.
어떤 반항도 용납하지 않았다.
어린이가 장남감을 갖고 놀듯 자기 맘대로 가지고 놀면서 어떤 반항의 몸짓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도 그 행위들에 취해버렸다.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뚫리면서 그 구멍들에 듬뿍듬북 그의 정액을 받았다.
그 시간이 천국이었다.
그 시간들에서 얻은 쾌감과 희열은 결혼생활 23년에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랬는데 이렇게 만들어 버린 그 젊은 사내는 어디에도 없다.
흔적마져 남기지 않았다. 제주도라는 것과 손수건 한 장....정숙은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다.
3
'잘 갔을까?
'만났을까?'
'엄마가 사실을 알았을까?'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혹시 엄마도 그의 여자가 되어버렸을까?'
'그랬다면 이제 어쩌지?'
'나도 엄마도 그의 여자로만 그냥 살까?'
'원장님도 그의 여자인데...'
'원장님 나이가 엄마 비슷하니까 엄마도...'
'수영씨는 서울로 가겠다는데...'
'수영씨도 그이를 떠나선 살 수 없다는데...'
'희수, 그애도...'
효정은 수효가 가방 하나를 둘러메고 공항 탑승구를 빠져나간 뒤부터 지금까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수효의 가방에 넣어 놓은 편지가 마음에 걸렸다.
한편으로 수효가 그 편지를 엄마에게 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엄마임에도 수효의 여자가 된 자신의 인생,
오빠에게서 얻은 아들,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는 아들,
원장인 숙희가 어렵풋한 눈치는 채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
그 엄혹한 사실이 편지에 적혀있었다.
효정은 편지를 쓰면서 수없이 생각했다.
오빠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임을 알리는 거야 그렇다지만 자신이 이미 수효의 여자가 되어버린 사실까자 밝혀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 그것이었다.
단단히 봉했으나 수효가 그 편지를 뜯어보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만약 뜯어본다면 수효가 모든 사실을 알게된다.
효정은 그게 두려우면서도 또 수효가 차라리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율배반이었다.
수효의 엄마로 살고 싶은 생각보다는 수효의 여자로 살고 싶은 생각이 더 짙었던 때문이었다.
그랬다. 잃었던 기억이 돌아오고 수소문 끝에 수효가 사는 고아원을 알아냈다.
그 고아원에 무급보모로 자원하여 수효가 커가는 것을 가까이서 보고싶었다.
수효는 잘 자라고 있었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아이, 또래보다 월등한 지능, 또래보다 더 월등한 체력과 운동능력,
처음엔 감개가 무량했다. 더 이상 소원이 없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툭 하면 사고를 쳤다.
하루가 멀다하고 수효에게 맞았다는 애들 부모가 학교를 찾아왔다.
원장 숙희는 이런 수효 때문에 수없이 학교를 들락거렸다.
그러나 원장 숙희의 호소도 소용없는 일이 생겼다.
맞은 애들 부모의 위치가 원장 숙희의 능력범위 밖에 있었다.
영낙없이 소년원 행을 해야 했다. 그러나 '형사미성년자'라는 것 때문에 소년원 행은 면했다.
그랬던 날 밤 효정은 보지 않아야 할 것을 봤다.
원장 숙희가 수효의 밑에서 엉엉울며 호소하는 소리를 들었다. 둘은 땔 수 없는 관계였다.
50도 훨씬 넘은 여자가 중학생 남자아이에게 울면서 수도없이 '여보'라고 불렀다.
꺽꺽거리며 넘어갔다. 복종의 존대어로 수효를 대했다. 수효는 주인이었다. 원장은 하녀였다.
효정은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충격도 있었다.
숙희만이 아니라 수영이, 수효의 담임선생이라던 수영이 고아원으로 수효를 찾아왔다.
원장 숙희와 꺽꺽거리며 밤을 세우고 난 다음날이었다.
수효는 화를 냈다. 수영은 고양이 앞의 쥐 같았다. 둘이 나간 뒤 뒤를 밟았다.
둘은 수영이 타고 온 차에 올랐다. 그러더니 차 안에서 둘의 입술이 붙었다.
차창을 통해 보여진 광경, 효정은 다리가 떨렸다.
수영은 울부짖었다. 수효는 수영을 장남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그때 보았다 수영의 입을 드나드는 수효의 거대한 몽둥이를...효정은 아랫도리가 젖어왔다.
뜯어 말려야 한다는 생각보다 자신도 수영처럼 그렇게 하고 싶었다.
수영도 수효에게 수도없이 '여보'라고 불렀다.
수효는 수영에게 '너너'거리며 하대했다.
그날 효정은 결심했다. 수효를 자신의 남자로 만들기로 했다.
시기는 빨리 왔다. 다시 수효가 사고를 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고가 아니었다. 실상 사고는 다른 애들이 쳤다.
수효가 못본채 했으면 희수는 걸레가 될 신세였다.
엄마도 없는 희수, 고아원에서 억척같이 공부하는 희수,
그런 애가 못된 아이들에 의해 걸레가 되는 것을 수효는 보지 못했다.
모두 여섯이었다. 그 여섯 애들이 거의 불구가 되도록 수효에게 맞았다.
당연히 수효의 갈곳은 경찰서였다.
또 숙희가 경찰서로 가야했다. 하지만 그날 숙희는 제주를 떠나있었다.
효정이 경찰서로 갔다. 그리고 수효의 보모자격으로 신원보증을 섰다.
각서를 썼다. 다음에 부를 때 책임지고 출석시키기로 한 각서였다.
유치장에 있던 수효를 빼서 돌아오는 길에 효정은 결심했다.
제주에 그냥 있으면 수효의 인생이 심하게 꼬일 것이라는 생각이 그 결심을 부추겼다.
다시 경찰서에서 불려가면 형사미성년자 나이를 넘어 선 수효는 틀림없이 소년원 행이다.
제주를 떠나게 해야 한다. 수배되기 전에 비행기를 타면 쉽게 제주밖으로 빼낼 수 있었다.
그런 결심을 하고 수효와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수효의 여자가 되어버렸다. 그 눈빛 때문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면서 뭔가를 요구하는 듯한 눈빛, 그 눈빛을 피할 수 없었다.
몸이 먼저 말했다. 저 남자의 여자가 되겠다고...
가슴도 동의했다. 저 남자의 행동을 제지하지 말라고...
머리는 재촉했다. 빨리 저 남자의 여자가 되라고....
그것이었다. 그래서 몸과 가슴 머리가 시키는대로 했다.
수효는 태초부터 자신의 주인이었다. 그에게 제압된 순간 그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숙희가 그랬듯이, 수영이 그랬듯이 자신도 입으로 수효에게 수도없이 '여보'라고 불렀다.
당신의 암컷이라고 고백했다. 다시는 버리지 말라고 사정했다.
주인을 살려야 했다. 온 몸으로 눈물로 호소했다.
제주 외에서 수효의 보호자는 정숙 뿐이었다.
수없이 생각하다 밤새워 편지를 썼다. 편지를 다 쓴 뒤 숙희를 설득했다.
사고 내용을 접한 숙희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틀림없이 경찰이 수효의 행방을 묻고 추궁할 것이지만 간곳을 모른다고 하기로 했다.
숙희가 급히 돈을 마련했다.
만약에라도 정숙에게 정착하지 못하면 단 한 달이라도 제주 밖에서 살 수 있을 정도의 돈.
그 돈을 챙겨 서울행 비행기를 태웠다.
그랬는데 그가 떠난 지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그가 없는 제주도가 너무도 허전하다.
숙희가 생각났다. 수영도 생각났다. 희수도 생각났다. 경찰도 생각났다. 그래도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어쩔 수 없어...이 핑게 저 핑게로 최소 한 두달은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러다보면 경찰도 어쩔 수 없을 거고...그 시간 안에 원장님이 피해자 부모들과 합의하게 해야 돼. 그래서 고소가 취하되면 다시 연락하면 돼. 엄마아게 있을 거야. 엄마에게 없더라도 자리 잡으면 바로 연락할 거야...그래'
........
이제 이들 수효의 여자들은 어떤 식으로 다시 수효와 얽히게 될 것인지, 수효에겐 이들 말고 이제 여자는 없을 것인지, 수효의 인생이 효정의 뜻대로 순탄하게 풀릴 것인지 그것은 하늘만 아는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