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다시 여자가 된 정숙
등이 넓었다. 넓다는 표현도 적당하지 않았다. 그냥 거대한 산으로 보였다. 그가 일어나서 자신에게로 왔다. 정숙은 그가 돌아 설 기미를 보이자 다시 죽은 척을 했다. 처벅처벅 정숙 가까이로 온 그가 정숙의 코앞에 손을 댄다. 잠든 것 마냥 애써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야 한다. 확인이 끝난는지 등을 보이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아직 어린 것 같은데 담배를 피우다니...그래도 멋있다. 얼마 만에 맡아 본 담배 냄새인가. 그런데 그 냄새가 싫지 않다. 바로 몇 시간 전만 해도 싫었던 그 냄새가 지금 싫지 않다. 아니 반대로 구수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가 몸을 돌린다. 눈을 마주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마냥 눈을 더 꼭 감았다. 담뱃불을 끈 그가 욕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욕실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소리가 들린다.
아랫도리가 뻐근하다. 다리를 움직이기도 어렵다. 허벅지 사이에 아직도 남은 묵직한 이물감, 질 속에서 아직도 한없이 흘러내리는 정액. 몸을 움직여 휴지라도 가져다 막았으면 좋겠는데 움직일 힘도 없다. 이미 오래 전 잊었던 기분 좋은 이물감과 뻐근함이다.
첫날 밤 세 번의 행위로 다음 날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없었던 그 뻐근함보다 지금이 더 무겁다. 조금 전 두 시간 가깝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벌렸다가 오므렸다가 다시 벌리고 오므리기를 수십 차례, 그렇게 혹사한 양 다리와 허벅지, 허벅지를 옥죈 그의 거센 무게가 계속 느껴진다. 일어날 힘도 없지만 일어나도 걸을 수 없을 것 같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정숙은 지난 두 시간을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다.
처음 마주친 그는 분명 16년 전에 죽은 경수였다. 맞닥뜨린 시선에서 분명히 경수를 보았다. 하지만 그는 경수가 아니었다. 시선으로 잠깐 보였던 경수는 사라지고 억센 사내가 되어 자신을 포로로 만들었다. 그의 눈을 본 순간, 그를 경수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이, 그가 입술을 움직여 뭐라고 말이라도 할 찰나적인 그 순간, 자신은 허벅지 사이의 계곡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열기에 휩싸였다. 그리고 사타구니의 계곡은 샘물이 넘실거렸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고 추스를 수도 없었다. 힘없이 늘어지듯 쓰러지는 몸뚱이를 청년은 가볍게 안아들었다. 그리고 끝이었다. 청년의 손끝이 닿는 곳마다 피부 자체가 움찔거렸다. 손가락 발가락까지 움찔거렸다. 입에서는 알 수 없는 소리만 나왔다. 청년의 손끝이 젖꼭지를 쓸자 젖꼭지는 탱탱하게 부풀었다. 부풀어 오른 젖꼭지에 청년의 입술이 닿자 말랐던 앵두알은 탱탱하게 알이 가득 찬 포도알로 변했다. 그 포도알이 청년의 혀가 주는 감촉에 춤을 췄다. 포도알 자체가 추는 춤이었다.
청년의 손끝이 배꼽을 쓸자 배꼽도 춤을 추었다. 청년의 손끝이 허벅지를 더듬자 허벅지가 춤을 추었다. 청년의 손끝이 허벅지 사이에 위치한 보지를 파고들자 보지는 음부가 아니라 그냥 생수가 넘치는 지하수 샘이 되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육체의 반란, 말초신경 하나하나가 춤추는 알 수 없는 반란, 정숙은 그 반란 앞에 의지로 어쩔 수 없는 무력감을 맞봤다.
이런 정숙을 청년은 장난감을 다루듯 했다. 늘 가지고 놀던 장난감의 용도를 매우 잘 아는 아이처럼, 조각조각 나뉜 로봇 부품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설계도상의 로봇으로 조립하듯, 잘려져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능숙한 솜씨로 제자리에 뀌어 완성된 그림을 맞추듯, 그리 자연스럽게 가지고 놀았다.
청년은 아주 훌륭한 피아노 조율사이기도 했다. 각각의 음이 저마다의 소리를 내는 것을 제대로 된 화음을 내도록 능숙하게 조율했다. 흩어져 뛰어놀며 저마다 춤추는 정숙의 말초신경들을 육체 전체가 뛰어놀며 춤출 수 있도록 조율했다.
장난감이나 피아노는 무생물이다. 무생물은 자의가 없다. 자의가 없는 물체는 주인 뜻대로 사용한다. 지난 두 시간 정숙의 몸이 그랬다. 아주 오래 전에 잃어버린 것을 찾은 주인이 아주 오래 전에 사용했던 대로 정숙의 몸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그 시간 동안 무생물이 된 정숙은 주인의 뜻대로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그 타의에 의한 움직임이 자의로 움직인 지난 60년의 시간보다 황홀했다. 그 황홀함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도 주었다. 두려움을 잊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온 몸을 덮쳤다.
안기고 매달리고 엎어지고 쪼그려 앉고, 치켜져 들려 올려지기도 했다. 시이소 위에 올라탄 소녀마냥 뛰기도 하고, 양쪽 가랑이를 벌리는 시합이라도 하듯 발레리나보다도 더 넓게 가랑이를 벌리기도 했다. 매 순간, 매 시간 가랑이 안의 계곡에는 엄청난 몽둥이가 들락거리며 온 몸에 황홀감을 줬다.
끊길 것 같아서 아쉬워질라치면 다시 강렬한 압박이 들어왔다. 너무 강렬하여 숨이 넘어갈 것 같으면 진동을 줄이듯 미세한 움직임으로 감질나게 하기도 했다. 고개를 넘었다가 내려오고 다시 넘는 롤러코스트가 되어 몸은 황홀감으로 불탔다. 호흡이 멎어 까무라치면 달콤한 입술이 미세한 말초세포를 깨워 불을 지폈다. 손끝은 젖꼭지와 크리토리스를 적절하게 희롱하는 것으로 뜨거운 열기를 내게 하면서 몸 전체를 춤추게 했다.
그가 지금 욕실에 있다.
‘저이는 누굴까? 앞으로 저이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 저이는 나를 뭐라고 부를까?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는 몸을 다 씻은 뒤 저 가방을 들고 떠나버리면 나는 어찌해야 하나?’
생각을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몸뚱이의 주인이 되어버린 사내가 욕실을 나왔다.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숙은 다시 죽은 모양으로 돌아갔다. 사내와 눈을 마주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욕실을 나온 사내는 힐끗 침대를 일별하고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정숙은 이제 그가 그냥 떠날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났다. 지금까지는 지난 두 시간 그의 밑에서 허우적거리며 장남감도 되고 피아노도 되고 춤추는 소녀도 되고, 요부도 되고 색꼴도 되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의 공격에 질식했다가 깨어나고 아주 까무라쳐 온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서 일어날 수도 없었던 것도 물론 이유가 되었으나 죽은 듯 누워있는 지금의 이유는 사실 부끄러움이었다.
그런데 지금 조바심은 사내의 묵묵한 행동이 다음에 어디로 이어질 것인지 알 수 없음에 이제 안달로 변하려 한다. 부끄러움보다 더 중요한 판단은 사내를 그냥 보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군지, 왜 왔는지, 왜 자신을 가졌는지, 왜 자기 몸뚱이의 주인이 되어버렸는지 물어보고 대답도 들어야 했다. 그러려면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그를 잡아야 했다.
정숙은 결심하고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려고 꿈틀거렸다. 그런데 그 눈앞에 언제 다가왔는지 다시 사내의 그윽한 눈길이 멎어 있었다. 그리고 그 눈길을 마주치자 다시 가타구니의 세포들이 춤추기 시작했다.
사내의 손이 눈을 쓸었다. 정숙은 눈까풀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의 손가락이 콧등을 지나 입술로 향했다. 콧등도 떨리면서 솜털까지 솟아나는 듯 했다. 손가락이 입술에 머무르자 입술이 자연스럽게 열렸다. 그러자 그의 두툼한 손가락이 입술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정숙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아이가 젖꼭지를 빠는 힘까지 다해 그의 손가락을 빨았다.
사내가 슬그머니 손가락을 뺐다. 젖꼭지를 빼앗긴 아이마냥 정숙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입술을 실룩였다. 사내의 손길이 정숙의 젖가슴으로 향했다. 숨죽였던 젖꼭지가 다시 부풀어 오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설레임으로 정숙은 그의 눈길을 쫒았다. 또 젖꼭지 세포는 말초세포까지 쫑긋거리며 그의 손길을 기다렸다.
하지만 사내는 큰 손으로 젖가슴을 한 번 세게 움켜 쥔 뒤 고개를 들었다.
‘아~흑’
자신도 모르게 정숙의 입에서 다급한 신음성이 튀어 나왔다.
“진즉부터 깨어 있는지 알아요. 일어나세요. 일어나지 않으면 그냥 갑니다. 그래도 돼요?”
목소리도 좋았다. 그 걸걸하면서도 청량한 소리, 정숙은 고개를 들어 사내를 올려다 보았다.
“좀 일으켜 주세요”
정숙이 부끄럼을 무릅쓰고 입을 열었다. 사내는 손을 정숙의 등 뒤에 받쳐서 침대로부터 정숙을 일으켰다. 그 와중에 부끄럼을 감추려고 올려뒀던 이불이 몸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정숙의 풍만한 젖가슴이 사내의 시선 아래에 올곧게 드러났다. 사내는 그 젖가슴을 한 번 더 움켜쥐어주더니 정숙의 몸뚱이 전체를 안아올렸다.
“아~~앙”
정숙은 다시 신음성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들러 올려진 몸뚱이에서 지난 두 시간 흘린 정숙 자신의 채액과 사내가 자신에게 쏟아 부은 정액이 주르륵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그 부끄럼을 가릴 수 있는 것은 단음이지만 기쁨의 신음성뿐이었다.
사내는 정숙을 욕실 한 가운데 있는 욕조 안에 조심스럽게 내려 놓았다. 물도 알맞게 대워진 욕조 안은 아늑했다. 정숙은 사내의 그런 배려까지 고마웠다. 그래서 눈물까지 나오려고 했다. 정숙...그녀가 나이 60에 다시 여자(암컷)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
서론이 너무 길죠? 근데 이런 서론들은 이 소설을 위해 꼭 필요한 장치입니다. 아마도 5부 쯤이면 '아주 특별한 능력자 한수효'의 특별한 능력에 의해 지배당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여자들이 다수가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수효를 틍해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겠죠. 수효의 능력은 현실에선 얻을 수 없는 능력이므로...그냥 내가 그런사람이었ㅎ으면 좋겠다 정도의 대리만족...그게 싫으신 분께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