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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68 주아 (68/68)

00068  주아  =========================================================================

                                    

68.

“소희야!”

“네, 오빠!”

“밖에 나가서 안을 엿보는 사람이 있는지 감시해.”

“알았어요.”

소희가 밖으로 나가자 주아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쌍꺼풀 없는 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살짝 건들기만 해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내가 누군지 알아?”

“응.”

“누구야?”

“만수!”

“어떻게 알았어?”

“목소리 듣고 알았어.”

“일부로 탁하게 했는데 내 목소리가 들렸어?”

“여자 목소리로 변조해도 알 수 있어. 10년을 들었으니까.”

“너도 나처럼 과거를 모두 기억하고 있는 거야?”

“응!”

“그러면 4차 때 같이 오지 그랬어?”

“내가 과거로 회귀했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4개월 전이었어. 이미 네가 떠난 다음이었어. 다음 달 틈이 열리며 바로 오고 싶었지만, 어디 앉아야 무사히 판게아에 도착할지 알 수 없어 20년 전 그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 미안해!”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니야. 같이 왔다면 이렇게 기다리지 않아도 됐을 거란 생각에 한 말이야.”

“알아.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한 거야.”

“내가 기다리고 있을 거란 걸 알았어?”

“응!”

“내가 사랑하는 것도 알았어?”

“응!”

“알면서 왜 사랑하냐고 물어보지 않았어?”

“꼭 말해야 알아?”

“그런 건 아니지만...”

“넌 언제나 내 옆에 있었어. 내가 날 뚫어지게 쳐다봐 얼굴을 돌리지 못했지만, 항상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았어. 무슨 말이 더 필요해? 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안아도 돼?”

“... 응!”    

모기만큼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주아를 살포시 품에 안았다. 10년을 함께 했지만, 손도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용기가 없었는지 항상 옆에 앉아 있는데도 터질 듯 뛰어대는 심장만 부여잡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해 바보처럼 온종일 주아의 얼굴에 시선이 꽂혀 있었다.

우리는 쿵쾅거리는 심장이 멎을 때까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한참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상처부터 치료하자.”

“아니. 얼굴부터 보여줘. 너무 보고 싶었어.”

“알았어.”

주아가 원하는 대로 후드를 벗어 얼굴을 보여줬다. 그러자 하얀 손을 뻗어 얼굴을 감쌌다.

하나하나 다시 확인하려는 듯 이마를 시작으로 눈썹, 눈, 코, 입, 볼, 귀, 턱, 목까지 빼놓지 않고 만졌다. 

“혼자 있던 4개월이 너무나 길었어. 불안한 마음에 1분 1초가 하루처럼 길게 느껴졌어. 어쩌다 잠이 들면 네가 피투성이가 돼 꿈에 나타나 밤새 엉엉 울었어. 만수야!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영원히!!!”

“나도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 이렇게 내 곁에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

‘그렇게 보고 싶었던 놈이 여자를 넷이나 거느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미치겠네. 뭐라고 말하지? 실망하고 떠나면 어쩌지? 안 돼! 절대 놓아줄 수 없어.’

얼굴에 난 상처에 중급 포션을 살짝 붙자 부글부글 끓으며 상처가 말끔히 사라져 흉터조차 남지 않았다.

상처가 사라지자 차가운 얼음 같던 인상이 사라지며 23살 발랄하고 청순한 모습의 여대생으로 바뀌었다.  

사람 인상을 좌우하는 것 중 가장 큰 것이 얼굴에 난 상처였다. 만화나 영화에서 악인을 표현할 때 얼굴에 큰 흉터나 칼자국을 만드는 이유가 바로 험악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주아 역시 왼쪽 눈 아래에서 뺨을 지나 입술 아래까지 난 커다란 상처가 인상을 차갑게 변화시켰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선입견을 품고 주아를 바라봤고, 주아도 그게 판게아서 살아남는데 도움이 돼 차갑게 사람들을 대했다.

나 역시 그런 것도 모르고 주아를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로 생각해 항상 쭈뼛거렸고, 10년 가까이 그렇게 산 주아도 성격이 조금 변해 말을 아끼게 됐다.   

‘얼굴에 난 상처 하나에 사람 인상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이래서 사람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하는 것인데, 그게 쉽지가 않네.’

“주아야! 나 할 말 있어.”

“여자 문제야?”

  

“어!”

“말 안 해도 돼. 다 이해해!”

“미안해!”

주아는 시간 회귀 전에도 말수는 적었지만, 눈치는 백 단이었다. 내가 무얼 생각하는지 무얼 바라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챙겨줬다.

그것만 봐도 주아가 나를 아주 깊이 사랑한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벽창호보다 더 바보 같은 나는 주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미안해할 거 없어.”

“그래도...”

“4개월 동안 많은 생각을 했어. 나에 대한 생각도 했지만, 너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았어. 그때 예상했어. 다시 판게아에서 만나면 많이 바뀌어 있을 거라고. 예전처럼 여자 손목도 못 잡는 숙맥이 아닌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거라고.”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나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봤으니까.”

“아니야! 행복했어.”

“정신적으론 그럴지 몰라도 육체적으론 많이 힘들었다는 거 알아. 알면서도 손을 내밀지 못했어. 나도 너만큼 숙맥이었으니까.”

“그건 남자인 내 잘못이야. 네 잘못 아니야.”

“사랑하는데 남자 여자가 어디 있어? 누구든 먼저 표현하면 되는 거지. 그래서 결심했어. 이번엔 너 하고 싶은 대로 살게 해주겠다고. 지난 번에는 나 때문에 그렇게 못했으니까.”

“너 때문 아니야. 내가 못나서 그런 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잘못도 커. 내 이번 삶은 너에게 속죄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어. 사랑하는 걸 알면서도 용기가 없어 잡아주지 못한 걸 이번 삶이 끝날 때까지 속죄하며 살 거야.”   

주아의 가슴 뜨거운 말을 듣자 쥐구멍에라도 얼굴을 박고 싶을 만큼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주아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주아처럼 온통 내 생각만 한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더군다나 하렘 왕국을 꿈꾸며 찬란한 미래만 생각했지 주아와 둘이 못다 한 사랑을 이뤄야 하겠다는 생각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주아는 온통 내 생각만 했는데, 나는 내 욕심만 채우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녔으니... 난 죽으면 분명 지옥 갈 거야. 주아도, 유정이도, 소희도, 모레네도, 모리아도 모두 천국 가겠지? 그땐 외로워서 어쩌지? 하아~’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뻔뻔해진 철판 얼굴로 재빨리 화재를 돌렸다. 주아의 가슴 먹먹한 사랑 얘기를 계속 듣기엔 아직 단단해지지 못한 심장이 버티질 못했다.

“서울에 있는 동안 말 많이 늘었네.”

“원래 말이 없진 않았어. 흉터 때문에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봐 자연스럽게 말이 줄어든 것뿐이야.”

“그러면 이제 말 많이 하는 거야?”

“그러려고 노력 중이야.”

“잘됐다. 네가 이렇게 말하니 기분 좋다.”

“알았어. 최대한 노력할게.”

“다시 안아 봐도 돼?”

“자기 여자에게 그런 거 허락받는 거 아니야.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안아.”

다시 주아를 품에 꼭 안았다. 뜨거운 사랑을 확인하자 촉촉한 입술을 빨며 온몸을 더듬고 싶었다. 

그러나 10년 동안 몸에 밴 것이 있어서 그런지 마음만 그럴 뿐 몸이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서두를 거 없어.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소중하게 다뤄야 해. 이러면 유정과 소희는 뭐가 되지? 젠장!’ 

“아까 본 여자아이! 네가 시간 회귀한 거 알아?”

“아니! 몰라.”

“그러면 나는 뭐라고 할 거야?”

“과거에 같은 동네 살던 친한 동생이라고 할 거야. 얼굴을 몰라본 건 15년 만에 만나서 그랬다고 둘러대면 돼.”

“너 어디 사는지 말했어?”

“아니.”

“너 그때 어디 살았어?”

“군대 있었어.”

“그러면 말이 안 되잖아.”

“그런가?”

“제대 언제 했어?”

“23살에 제대해서 복학했어.”

“학교는 어딘데?”

“XX대학교 천안캠퍼스.”

“학교 졸업하고 언제 서울에 올라왔어?”

“25살에.”

“그러면 25살에 돈암동에 산 걸로 하자. 내가 돈암동 성북구 구민회관 근처 연립주택에 살았으니까 너는 우리 집 바로 옆에 방 얻어서 5년 동안 회사 다니다가 이사한 거로 하면 되겠다. 회사는 어디 다녔어?”

“XX출판사.”

“알았어. 나도 물어보면 그렇게 말할게. 그리고 지금부터 오빠라고 부를게. 그때는 서로 판게아에서 만나 나이를 따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서울에서 12살 차이 나는 오빠 동생으로 만났으니까 호칭은 붙여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알았어.”

주아는 시간 회귀 전에도 꼼꼼한 성격으로 일 처리가 아주 깔끔했다. 나는 주아가 시키는 일만 하면 됐다. 

예전처럼 그렇게 흐리멍덩하게 살 생각은 없었지만, 주아의 꼼꼼한 모습을 보자 마음이 든든했다. 

최근 실력이 크게 향상한 유정과 소희는 자기 몫을 훌륭히 해냈다. 그러나 조언을 구할 수준은 아직 아니었다.

둘 다 나보다 훨씬 똑똑하지만, 경험이 부족해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알려주거나 새로운 작전을 짤 역량은 없었다.

그런 부분을 주아가 채워줄 수 있었다. 경험은 나만큼 풍부했고, 꼼꼼함과 세심함도 나보다 월등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었다.

   

“주아야! 이제 나가면 들꽃 잡화점으로 갈 거야. 거기에 나랑 함께하는 여자들이 있어.”

“이스트 성 주민도 사귀었어?”

“응! 조금 전 본 소희는 4차 때 함께 기차를 타고 온 유정이의 친구로 6차에 들어왔어. 유정이는 내가 구해준 20살 소녀고. 잡화점에서 만난 여자는 이름이 모레네야. 그리고 동생인 모리아도 함께 살아.”

“4명?”

“미안해!”

“아니야. 판게아에 관해 모르는 것도 아니고 너만큼 잘 아는데, 그런 일로 속상해하지 않아. 그리고 이미 예상했던 일이야. 그러니 기죽지 마.”

“고마워!”  

“이제 가자.”

“응!”    

마법 지갑에서 후드 로브를 꺼내 입힌 후 천막을 빠져나왔다. 바리안 조장과 코리아타운을 빠져나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매직 아이템 2개를 수고비로 건넸다.

지구나 판게아나 돈(시간)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지 바리안 조장의 입이 황소개구리만큼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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