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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6 타오르는 열사의 사막 (56/68)

00056  타오르는 열사의 사막  =========================================================================

                                    

56. 타오르는 열사의 사막

“소희야! 이거 봐봐. 오빠 아니었으면 완패였어.”

“그러게. 오빠가 잡은 놈들 빼면 스코어가 5대 1이네. 영웅과 환인, 고구려 길드 놈들은 대체 뭐 한 거야?”

“이놈들 자기들이 다 죽였다고 뻥치고 있잖아. 입으로 떠들기만 했지 무서워 대가리 처박고 있는 것들이.”

“이럴 거면 왜 전쟁한 거야?”

“김영웅처럼 힘만 센 놈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니까 권울헌 같은 놈에게 당하는 거지. 병신 같은 새끼!”

유정의 말처럼 사리 판별력이 없는 힘만 센 놈들이 자기들 멋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바람에 힘없는 사람까지 전쟁에 휘말려 큰 피해를 당했다.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고, 교육열이 높은 대한민국에서도 매일 일어나는 일이라 김영웅만 탓할 일은 아니었지만, 영웅이 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영웅 흉내를 내면 어떻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준 전쟁이었다.

“지금은 균형을 간신히 맞췄지만, 일본이 우리보다 들어오는 숫자가 1.5배나 많아 6개월만 지나면 차이가 다시 벌어질 거야. 이러면 주기적으로 전쟁해 숫자를 줄여야 하는 거 아닌가?”

“이번에 크게 당해 다시는 전쟁 안 할 거야.”

“그러면 격차를 줄일 방법이 없잖아?”

“다음 일은 놈들이 알아서 하겠지. 이만큼 해준 것만 해도 오빠가 우리나라에 큰 은혜를 베푼 거야. 안 그래?”

“당연하지. 그러나 영웅과 환인, 고구려 놈들은 자기들이 한 일이라며 핏대만 세우지 정작 도와준 사람은 찾으려 하지도 않잖아.”

“모르는 게 약이야. 알면 골치 아파.”

“그렇긴 하지만 속상해. 오빠가 힘들게 뛰어다니면서 이만큼 도와줬는데, 적어도 자기들이 한 일이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거잖아.”

“소희야! 나하고 너만 알아주면 오빠는 좋아해. 너도 알잖아.”

“알아. 그래서 더 화가 나.” 

유정이 말처럼 우리가 도왔다는 걸 아무도 몰라야 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지만, 호랑이는 비싼 가죽 때문에 죽었고, 사람은 이름값 하다가 죽었다.

명성은 도움이 될 때도 잦았지만, 거꾸로 쥔 칼처럼 아차 하는 순간 자신의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하고, 명성을 얻으려는 자 명성으로 망했다. 조용히 실리를 챙기는 것이 오래 사는 길이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났다. 한 달이 1년처럼 길게 느껴지던 전쟁이 끝나자 성 밖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배고픔과 시간에 쫓긴 사람들이 썰물처럼 몰려가 뿔 토끼, 거대 말잠자리, 버섯돌이, 슬라임, 긴 꼬리 붉은 여우, 거대한 줄무늬 고양이, 말총머리 너구리, 주먹코 사슴 등을 눈에 보이는 건 가리지 않고 학살하듯 사냥했다.

5,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았던 울분을 토해내자 몬스터 씨가 말랐고, 한 마리만 다시 부활해도 20~30명이 달려가 몽둥이와 녹슨 철검을 휘두르는 촌극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러자 전쟁이 끝났다는 게 무색하리만치 주먹다짐이 일어나며 성 주변은 전쟁 때보다 더욱 소란스러웠다.

어제 우물에서 죽은 두 명은 권울헌과 놈의 부하 방수민으로 둘 다 일본에 빌붙은 매국노였다.

소희가 권울헌을 찾아 영웅 길드를 뒤졌지만, 그 시간 권울헌과 방수민은 성벽에 숨겨둔 독개구리를 가지러 가 길이 어긋나고 말았다.

보초가 침입자라고 외치자 우리가 놈을 잡았다는 걸 안 소희는 그 길로 모레네의 집으로 돌아왔고, 우리도 따라붙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이 기회에 마약 문제도 처리하고 싶었지만, 야마토와 시나노 길드원 28명이 죽고 4명을 납치해 벌집을 쑤신 상황이라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마약을 없애려는 건 대한민국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마약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고, 나도 여러 번 다칠 뻔했기 때문이었다. 

매일 몬스터의 피에 흠뻑 젖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러나 판게아에 병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들을 돌봐줄 사람도 없어 그대도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전문적으로 암살, 납치, 폭파 교육을 받은 사람도 스트레스로 인해 성격이 바뀌어 살인마로 돌변하는 일이 있었다.

하물며 학생, 직장인, 주부였던 사람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몬스터의 팔다리와 머리를 자르며 멀쩡하길 바라는 것이 이상한 행동이었다.

이들에게 유일한 안식은 마약이었다. 마약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싹 잊게 해줬고, 두려움도 사라지게 했다.

그러나 약에서 깨어나면 고통이 배가 됐다. 약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다시 떠오른 악몽으로 인한 고통으로 더 많은 마약을 원했다. 그렇게 중독자가 되어 결국 칼을 휘두르다 죽었다.

이스트 성주 피타스는 성 밖에서 벌어진 범죄, 발각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시나노 길드는 마약을 공공연하게 뿌렸고, 판게아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사람이 마약중독자로 전락해 잠깐의 쾌락과 목숨을 바꿨다.  

“오빠! 두 달 동안 사냥하고 물건 팔면 시간 두 배니까 바짝 벌게 내일 아침에 나가면 두 달 동안 사냥만 해요.”    

“유정아! 모레네 언니 말라 죽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래? 제정신이야?”

“아차차! 언니 미안해요. 제가 흥분해서.”

“아니야. 괜찮아! 일하는 건데 당연히 그럴 수 있지. 그리고 두 달은 긴 시간도 아니야. 일 년이든 십 년이든 아니 백 년이 지나도 나는 이 자리에서 기다릴 수 있어.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맬로우와 사막의 검은 이리 부족장 검은 모래바람 라길루아를 처리하면 바로 돌아올 거야.”

“안 그러셔도 돼요. 다치지 않게 천천히 일 보고 오세요.”

“빨라도 열흘 이상 걸리고 늦으면 한 달도 더 걸릴 수 있어. 밖에 너무 오래 있으면 몸에 안 좋아. 최대한 빨리 끝내고 돌아와서 쉬어야 다음 일을 하지.”

“알았어요. 하지만 절대 무리는 하지 마세요.”

“응!”

모레네를 만나기 전에는 한 달씩 야영하며 사냥하는 게 힘들고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겨줄 여자와 집이 생기자 3일만 지나도 집 생각이 간절해 버티기가 힘들었다.

‘이래서 반겨줄 가족이 생기면 무쇠 같던 남자도 약해지는 거야. 계백 장군이 황산벌에 나갈 때 아내와 자식을 죽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유정과 소희는 뭐가 되지?’       

  

1년이고 10년이고 상관없다던 모레네의 말은 100% 거짓이었다. 밤새 품에 안겨 사랑을 갈구하며 날이 새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다.

첫사랑에 불타오르는 모레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하루 더 있어도 해결될 일이 아니라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타오르는 열사의 사막으로 향했다.

모레네는 이스트 성에 묶여 피타스 성주의 허락 없이는 성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얼음 성채부터 데리고 다녔다. 

모레네에게 진짜 자유를 주려면 피타스 성주가 주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낭군 품에 떨어지는 게 아쉬워 질질 짜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펜리르를 타고 바람처럼 달려 도착한 타오르는 열사의 사막은 100m가 넘는 높은 절벽 동굴 속에 있었다.

생뚱맞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곳으로 좁은 동굴을 따라 한참 들어가면 막다른 길이 나온다.

그곳에 차원의 틈과 같은 신비한 문이 있었다. 이 문이 타오르는 열사의 사막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오빠! 입구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들어오세요.”

“응.”

정찰은 은신 스티그마 2개를 맥시멈까지 올린 소희의 몫이었다. 그러나 모습을 감추는 것만으로 정찰 임무를 맡기기엔 불안해 장화 신은 고양이를 먼저 들여보내 주변에 함정이 있는지 확인한 후 소희가 들어가 재차 확인했다. 

소희가 혼자 힘으로 정찰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려면 함정과 덫을 찾을 수 있는 스티그마를 구해야 한다. 

이것이 있어야 숨겨진 함정과 덫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함정과 덫을 육안으로 찾을 수도 있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함정과 덫을 드러내놓고 설치하는 바보는 없었다.

그리고 함정과 덫 중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 트랩도 많아 눈으로 찾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마법 트랩을 설치하는 스티그마와 해제하는 스티그마 둘 다 영웅급 이상에만 구할 수 있어 당분간 시간을 투자하지 않은 장화 신은 고양이를 미끼로 사용해야 했다.  

“사막의 검은 이리 부족은 호드 종족 중 늑대인간인 라이칸스로프야. 움직임이 아주 빠르고 손발톱이 강철보다 더 단단해. 그리고 무엇보다 근접전에 특화된 놈들이니까 유정이는 데스나이트를 잘 활용해 간격을 최대한 벌려.”

“네.”

“소희는 은신 후 공격할 게 아니면 가까이 다가가지 마. 후각이 엄청나게 발달한 놈들이라 가까이 다가가면 금방 알아차릴 거야.”

“네, 명심할게요.”  

사막의 검은 이리 부족은 아이스 트롤만큼 강력한 몬스터로 타우렌 부족과 함께 이스트 성 영역에 나오는 3대 몬스터였다.

족장 검은 모래바람 라길루아는 타격전을 선호하는 전사로 속도만큼은 영웅급 보스 몬스터에 필적했다.

“오빠! 전방에 늑대 12마리 나타났어요. 그런데 왜 늑대인간이 아닌 늑대죠?”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원래는 같은 종이었다는 말이죠?”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늑대가 늑대인간으로 변하지는 않는 것만은 확실해.”

늑대인간은 늑대가 인간이 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늑대의 형상으로 변해 직립보행을 하는 것이었다.

이름 때문에 간혹 혼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늑대는 절대 인간이 될 수 없었다. 동물 중 인간이 될 수 있는 건 곰과 여우밖에 없었다.

곰은 마늘을 먹고, 여우는 사람의 간을 먹고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려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첫날은 늑대만 신물 나게 잡았다. 적으면 5마리, 많으면 30마리가 떼거리로 몰려와 온종일 컹컹 짖어대는 통에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수준은 펜리르 던전의 은빛 늑대의 2배 정도로 약하다고 볼 순 없었지만, 유정과 소희의 연습 상대로도 많이 부족해 귀찮기만 했다.

시간과 아이템이라도 잘 준다면 유정과 소희를 빡빡 굴려 앵벌이라도 할 텐데, 그 역시 신통치 않아 아까운 체력만 소모했다.   

“오빠! 여긴 언제 밤이 와요?”

“어? 그러고 보니 시간이 밤 10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해가 중천에 걸려있네. 오빠! 지금 백야 기간인가요?”

타오르는 열사의 사막에 들어온 지 12시간 넘도록 해가 지지 않자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유정과 소희가 고개를 꺄웃하며 질문을 던졌다.

생전 처음 보는 끝없는 사막과 끊임없이 달려드는 늑대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눈꺼풀이 무거워지자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다.

‘빨리도 물어본다. 이런 거 보면 애들이 좀 무딘 것도 같고...’     

“열사의 사막은 해가 안 떨어져.”

“네에? 해가 안 떨어진다니 무슨 말이에요?”

“타오르는 열사의 사막은 1년 365일 낮이야. 그것도 쨍쨍 내리쬐는 한낮의 정오야. 절대 변하지 않아.”

“헉!”

“으악! 계속 이러면 우리 쪄 죽는 거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지.”

“판게아가 지옥인 줄 알았는데, 더한 지옥도 있네요. 아으 더워!” 

환상 던전은 지구나 판게아 같은 행성이 아니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으로 타오르는 열사의 사막처럼 365일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곳도 있었고, 365일 눈보라가 치는 곳, 비가 내리는 곳, 번개가 치는 곳도 이었다.

환상 던전은 영화와 드라마 세트장처럼 일정한 환경이 유지되는 곳으로 넓이 역시 일반 던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넓어 길을 잃어버리면 죽을 때까지 환상 던전 안을 헤맬 수도 있었다.

초보 때 무턱대고 환상 던전에 들어가 3개월을 갇혀 지낸 적이 있어 이런 내용을 상세히 알았지만, 유정과 소희에겐 과거를 의심할 수도 있어 최소한의 정보만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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