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49 이스트 성의 명예기사 (49/68)

00049  이스트 성의 명예기사  =========================================================================

                                    

49.  

“여필종부가 뭔지 알아?”

“아니요.”

“아내는 반드시 남편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야. 이스트 성의 문화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넌 이제 내 것이야. 그러니 내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해. 싫어?”

“아니요. 좋아요. 만수씨 말이라면 뭐든지 따를 거예요.”

‘띠링~ 축하합니다! 조선 시대 여성보다 남편의 말을 백 배 고분고분 더 잘 듣는 육감적인 바니걸을 획득하셨습니다.’

‘콩그레츄레이션 콩그레츄레이션 콩그레츄레이션 레이션 레이션 딴따라 따라 딴따! 레전드보다 더 뛰어난 대박 아이템이다. 캬캬캬캬~’   

수줍게 웃는 모레네를 품에 꼭 안고 잡화점으로 돌아왔다. 지구인과 이스트 성 여성이 포옹한 채 걸으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어 로브 후드를 뒤집어쓰고 품에 안아 부드러운 살결을 느낄 순 없었다.

그러나 모레네의 지고지순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맨살로 끌어안고 있는 것보다 기분은 더없이 좋았다.     

‘그러고 보니 여필종부도 조선 시대 나온 말이잖아. 헐~’

“이거 쓰세요.”

“보상품?”

“네!”

“그건 모레네 거잖아. 모레네가 써야지.”

“만수씨에게 더 필요해서 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너와 내가 아니라 이제 우리잖아요. 만수씨와 저는 남이 아닌 우리예요. 그러니 내 것 네 것 따지지 마요. 모두 만수씨 거예요.”

“알았어. 고마워!”

“히히히히~”

[기억의 돌(0/3)]

“이게 뭐야?”

“언제든 원하는 장소로 돌아올 수 있는 소환 아이템이에요.”

“거리와 위치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원하는 장소로 돌아올 수 있어?”

“네! 판게아 대륙 반대편에 있어도 1초 만에 돌아와요.”

“헉!”

“괄호 안에 숫자는 최대 3번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혼자만 사용할 수 있는 거야?”

“만수씨와 유정이, 소희의 풀 네임을 기억의 돌에 써넣고 무슨 일이 있을 때 기억의 돌이라고 말하며 원하는 곳을 대면 세 명 모두 지정한 장소로 돌아오게 돼요. 대신 횟수가 세 번 차감돼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어요.”

“그런데 이거 흔한 아이템이야?”

“저도 이름만 들었지 처음 봐요. 저희 부모님도, 주변 사람 중에서도 가지고 있거나 사용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유령초가 뭔데 기억의 돌을 주는 거야?”

“피타스 성주에겐 꼭 필요한 아이템인가 보죠. 그러니 이런 걸 줬겠죠.”

“이것 말고 다른 소환 아이템이 또 있어?”

“제가 아는 건 기억의 돌밖에 없어요.”

타임슬립 전 누군가 텔레포트 스티그마를 구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기억의 돌 이외에 다른 소환 아이템이 있는지 물어봤다.

그러나 내가 잘못 알고 있었거나, 없는 걸 있다고 말한 뻥을 쳤는지 모레네는 기억의 돌밖에 모른다고 했다. 

모레네가 운영하는 들꽃 잡화점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300년이나 된 유서 깊은 잡화점이었다.

모레네의 들꽃 잡화점과 가장 큰 아기돼지 삼형제 잡화점만이 오랜 세월 이스트 성과 함께했고, 나머지 잡화점은 이방인인 지구인이 이스트 성으로 넘어오며 생긴 것들이었다. 

300년 동안 잡화점을 운영하며 한 번도 기억의 돌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최소한 이스트 성 영역에선 나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72군주나 영웅·신화급 보스 몬스터를 잡아야 극악한 확률로 얻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몬스터에서 얻지 못하고 이스트 성보다 더 큰 대형 성에서 각종 재료를 모아 제조하거나 천문학적인 시간을 주고 사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라 피타스 성주의 멱살을 잡고 물어보기 전에는 어떤 것도 명확한 게 없었다. 

“정말 찾던 아이템이었어. 고마워 모레네!”

“부부끼리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라니까요.”

“알았어.”

기억의 돌은 타임슬립 전부터 간절히 찾던 아이템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잡혀 지독한 고문을 받다 시간과 아이템을 빼앗기고 비참하게 죽을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은 나뿐만 아니라 판게아에 사는 지성을 가진 생명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할 수밖에 없는 생각이었다.

지구 역시 마찬가지로 평소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갖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라서 마음만 간절했지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이런 복덩이가 세상에 또 있을까? 퀘스트를 줘 레전드 아이템인 바람의 부츠를 얻게 해주고, 앞으로 얻을 이익이 무궁무진한 명예기사 작위까지 얻게 해주더니 이젠 그토록 찾아 헤매던 기억의 돌까지 손에 쥐여주네. 복이 넝쿨째 들어왔어. 정말 볼매가 따로 없네. 아이고 예뻐라!’

“쪽쪽쪽!”

“사람들이 봐요.”

“보면 어때! 내 여자 입에 입 맞추는데 누가 뭐라고 할 거야? 안 그래?”

“맞아요. 헤헷~”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오빠! 퀘스트부터 하는 거 아니었어요?”

“타오르는 열사의 사막은 매우 넓은 곳이야. 맬로우를 찾다가 전쟁이 끝날 수도 있어. 그럼 마을로 강제 소환돼 처음부터 놈을 다시 찾아야 해.”

“던전이 그렇게 커요?”     

“일반 던전이 아니라 환상 던전이라서 그래.”

“환상 던전은 뭐예요?”

“쉽게 말하면 우리가 쓰는 마법 배낭처럼 공간 확장이 걸린 던전이야. 조금 어렵게 말하면 다른 세상이고.”

“다른 세상이요? 지구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을 말하는 거예요?”

“그건 아니고 음... 영화 전우치 봤지?”

“네.”

“거기에 보면 전우치와 화담이 그림이 그려진 족자 속으로 들어가잖아. 족자 속에는 집도 있고, 산도 있고, 하늘도 있고, 개울도 있고. 그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돼. 판게아에 있는 또 다른 세상에 잠시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돼.”

“마법으로 만든 인위적으로 공간이라는 뜻이죠?”

“맞아.”

“오빠도 설명 정말 못 해요. 그냥 마법으로 만든 공간이라고 말하면 되지 환상 어쩌고저쩌고, 전우치 어쩌고저쩌고 사담이 너무 길어요. 말하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겠어요. 쯔쯔쯔쯔~”

“.......”

“그건 머리 나쁜 너를 위해 오빠가 자세하게 설명하느라 그런 거야. 나에게 말했으면 그렇게 복잡하게 말하지 않았어. 간단하게 마법 공간이야. 이랬을 거야.”

“웃기고 있네.”

“뭐가 웃겨?”

“소희야! 내가 너보다 공부 더 잘했거든. 나 전교 1등, 너 2등이야. 그것도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6년 내내. 나보다 공부도 못했으면서 머리가 나쁘다는 소리를 할 수 있어?”

“겨우 한 문제 더 맞혀서 1등 한 게 자랑이냐?”

“그러면 네가 한 문제 더 맞히지 그랬냐?”

“야! 너는 만점이고, 나는 고작 한 문제 틀린 거야. 차이가 없는데 자랑은 재수 없게.”

“작은 차이가 큰 차이라는 광고도 못 봤어?”

“아오~ 재수 없어. 오빠! 우리 유정이 버리고 둘만 가요. 잘난척하는 애는 데리고 다니면 몸에 닭살 돋아요.” 

“그럴까?”

“오빠! 장난이에요. 소희야! 내가 잘못 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같이 가. 나 버리지 마. 정말 무섭단 말이야. 아앙~”  

재빨리 소희와 함께 펜리르의 등에 타고 얼음 성채를 향해 달리자 유정이 아이처럼 징징 울며 따라왔다.

데스나이트를 타고 따라오면 될 텐데 그럴 정신도 없는지 죽어라 두 발로 뛰어서 따라왔다.

‘저런 헛똑똑이. 똑똑한 척은 혼자 다해놓고 저게 뭐하는 짓이야? 겉만 숙녀지 속은 완전히 아기야 아기! 이것들 언제 키워 사람 만드나. 아이고 머리야~ ’

‘그에 비하면 모레네는 생각하는 게 틀려. 역시 공짜로 사는 세월은 없어. 연륜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야.’

‘유정아! 소희야! 오빠는 너희가 모레네보다 백 배 아닌 천 배는 더 좋아. 그렇지만 이럴 때면 볼기짝을 사정없이 때리고 싶어진다. 제발 정신 좀 차리자. 제발~’ 

명예기사에 임명되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스트 성 경비병들이 나를 보면 깍듯이 경례를 붙였고, 주민들도 깊숙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명예기사 마크를 옷 속에 감추거나 떼어 가방에 넣고 다니면 이런 일을 피할 수 있었지만, 피타스 성주가 기분 나빠할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문제는 같은 이방인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다. 후드를 깊이 눌러써도 이스트 성 남성과 지구 남성은 체형이 눈에 띄게 달라 사람들을 속일 수 없었다.

후드 덕에 얼굴이 들통 날 일은 없었지만, 소문이 퍼지면 내가 누군지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럼 나란 사람이 누군지 파헤쳐질 수 있었다. 그건 가장 바라지 않는 일로 파다 보면 뭔가 이상함을 찾게 되고 퍼즐처럼 맞춰지다 보면 아주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새벽 시간을 이용해 성문을 빠져나와야 했다.     

“오빠! 앞에 중국 애들 있어요.”  

“중국 애들 아닐 수도 있잖아?”

“지금 사냥 다니는 놈들은 중국 애새끼들밖에 없거든.”

“그런가?”

  

“소희야! 가서 몇이나 있는지, 뭐 잡고 있는지 알아봐.”

“네!”

사냥의 여신 디아나의 루비 귀걸이로 시야가 30% 향상된 유정이 나보다 먼저 얼음 성채 부근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이스트 성 서쪽 고급 난이도 사냥터에 위치한 얼음 성채는 타임슬립 전에도 중국인들이 차지했던 던전으로 중국인들이 사냥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유정이 말처럼 우리나라와 일본의 전쟁으로 중국을 제외하곤 성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어 중국인일 가능성이 99.9%였다

힘 있는 나라 국민이 대접받는 건 판게아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인들이 외국어를 배우지 않는 이유는 모국어만 알면 어디서든 대화가 통할 만큼 미국의 국력이 강해서였다.

또한, 약소국 경찰과 외무부 직원들은 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벌벌 기며 온갖 편의를 다 봐줬다.

이스트 성에선 중국이 최강국으로 평소에도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다니며 약소국을 업신여겼다.

인원이 많아 우물 하나로 부족하다며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사용하는 우물을 자기 것처럼 이용하는 건 기본이었고, 서문 쪽 사냥터는 모두 중국인 전용 사냥터라며 다른 나라 사람의 출입을 통제했다.

전쟁 기간에도 북문과 남문을 기준으로 넘어와서 싸우는 건 중국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공격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버젓이 몬스터를 사냥했다.

“한 팀으로 인원은 12명이에요.”

“중국인 맞지?”

“응!”

“거봐! 내말이 맞잖아.”

“그래 너 잘났다.”

“키키키키~”

각국은 혼선을 피하고자 가슴과 팔에 자신의 국기를 그려 넣었다. 그러나 꼭 해야 하는 규칙은 아니라서 우리처럼 표식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