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1 전임 성주 제이브 =========================================================================
41. 전임 성주 제이브
“헐~ 이번에는 낭떠러지네? 나 고소공포증 있는데, 미치겠네.”
“상점 그년이 우리 골탕먹이려고 그런 거 아니야?”
“골탕이 아니라 일본의 사주를 받고 우리를 죽이려 사지로 밀어 넣은 것일지도 모르지.”
“아~ 맞네. 이년 일본 프락치였네. 나가기만 해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얘들아! 언어 순화 좀 하자. 이년이 뭐냐?”
“남자가 이년 저년 하면 욕이지만, 여자끼리는 괜찮아요.”
“유정이 말이 맞아요. 남자들도 이놈, 저놈, 이 새끼, 저 새끼 입에 달고 살지만, 욕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정말 그러네. 그런데 왜 남자가 이년이라고 말하면 욕이라고 하고, 여자가 이놈 저놈 하면 그러려니 하는 거지? 이거 남녀불평등 아니야?’
낭떠러지를 건너는 방법은 깊은 협곡을 이어주는 폭 1m의 좁은 돌다리로 이곳을 통해서만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폭이 너무 좁아 펜리르와 데스나이트를 데리고 건널 수 없어 소환수도 없이 달랑 셋이서 다리를 건너야 했다.
밑이 보이지 않는 깊은 협곡을 마법 랜턴에 의지한 채 건너는 건 20년간 판게아를 구른 나로서도 섬뜩한 일이었다.
‘모레네가 정말 우리를 죽이려고 이곳에 보낸 건가? 혹시... 루시퍼가? 아니야! 이상한 상상 하면 안 돼. 이건 퀘스트일뿐이야. 그것도 엄청난 보상이 따르는 퀘스트!’
‘힘든 퀘스트일수록 보상이 큰 건 만고의 진리잖아. 그런데 아니면 어쩌지? 멱살이라도 잡아야 하나? 멱살보다는 가슴을 잡는 게 더 좋은데. 흐흐흐흐~’
사사건건 루시퍼와 연관 지어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되면 누가 죽어도 루시퍼, 아이템이 안 나와도 루시퍼, 길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루시퍼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 속담에 좋은 일은 내 탓 나쁜 일은 모두 남 탓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만큼 나쁜 말도 없었다.
자기가 못해서 생긴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건 일이 잘못되면 책임지지 않겠다는 전형적인 한국 정치인의 행태와 같았다.
‘잘못은 자기가 저질러 놓고 책임은 언제나 아랫사람에게 떠넘기니 나라 꼴이 맨날 그 모양이지. 쯔쯔쯔쯔~’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가 생각나네.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졸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왜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가슴 절절한 가사다!’
“소희야! 찌르는 공격은 소용없어. 크게 베어야 죽어. 유정이도 화살로 맞춰 봐야 힘만 낭비야. 가시 단검으로 소희처럼 몸통을 노려.”
“네!”
마리오네트는 헝겊으로 만든 인형으로 찌르는 건 타격을 주지 못했다. 또한, 팔과 다리, 머리를 잘라도 죽지 않았다. 몸을 양단하거나 불태워야 죽일 수 있었다.
다리 중간쯤 도착하자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사탄의 인형 처키의 판박이 마리오네트로 식칼을 양손에 하나씩 쥐고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을 내뱉으며 난폭하게 휘둘러댔다.
ÐĦØŧłĦħÞðØÞжijÆ...
덩치는 공주 마리오네트와 비슷했지만, 속도와 힘이 두 배로 제법 날카로운 공격을 해왔다.
쾅!
그러나 죽음의 날개가 부딪치자 한꺼번에 10마리 이상이 지저분한 솜을 공중에 뿌리며 눈이 되어 산화했다.
선두에 서서 난폭하게 달려드는 처키를 까마귀로 처리하며 빠르게 다리를 건넜다. 좁은 다리를 건너자 재빨리 펜리르를 불러내 화염 브레스와 헬파이어로 헝겊 인형들을 불태웠다.
불붙은 상태에서도 칼을 휘두르는 처키의 모습이 영화 사탄의 인형에 나오는 주인공 처키와 씽크로율 100%였다.
공주 대신 처키의 애인 티파니가 나왔다면 유령 동굴이 아니라 사탄의 동굴이라 이름을 바꿔야 할 지경이었다.
“피타스가 이젠 내 목이 필요하다고 하더냐?”
“아닌데.”
“그럼 누가 보냈어? 밑에 있는 아첨꾼들이 보낸 거야?”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아들 이상으로 아끼고 사랑했는데, 내 등에 칼을 꽂고 성주 자리를 빼앗을 것도 모자라 이젠 목숨까지 빼앗으려 하는데 더 중요한 게 뭐가 있겠어.”
“네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야?”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죽이러 온 거냐?”
“누군데?”
“나는 전임 성주 제이브다.”
‘이거 뭐야? 전임 성주면 못해도 영웅급은 된다는 뜻인데... 아싸~ 땡잡았다.’
모레네가 유령초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유령 동굴에는 생각지도 못한 전임 성주 제이브가 있었다.
각 성의 성주는 최소 영웅급 보스 몬스터로 간주돼 잡으면 그에 상응하는 아이템을 줬다.
그러나 주위에 많은 기사가 진을 치고 있어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고, 궁궐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극히 드물어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 이름을 듣고도 놀라지 않는 것으로 봤을 때 피타스가 시킨 게 분명하군. 성주 자리를 내줬다고 나를 만만하게 보다니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만들어주마.”
“하여간 이 동네 힘 좀 쓰는 놈들은 하나같이 말이 많아. 싸움을 몸으로 해야지 입으로 하려고 들어. 쯔쯔쯔쯔~”
“다시는 주둥이를 놀릴 수 없게 해주마.”
“마음대로 하세요. 유정아! 데스나이트를 전면에 세우고 방어에만 치중해. 절대 제이브를 공격해선 안 돼.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소희야! 유정이와 함께 다가오는 몬스터만 처리해. 놈이 진짜 전임 성주면 최소 영웅급 보스 몬스터야. 절대 도발해선 안 돼! 알았지?”
“네, 알았어요.”
마법사 계열은 강력한 한 방 데미지가 있어 어설프게 달려들다간 자기가 죽은 것도 모른 채 황천길로 직행하게 된다.
특히 상대가 영웅급 보스 몬스터면 공격 징후를 알아채고 피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전쟁에서 얻은 막대한 시간을 스탯과 스티그마에 투자한 유정과 소희는 이스트 성 주변에 나오는 던전 보스는 초급, 중급, 고급을 막론하고 모두 잡을 실력이 됐다.
한 달도 안 돼 고수 반열에 오른 유정과 소희는 급격히 강해진 힘에 취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살짝 자만심에 빠져있었다.
자만심은 힘을 얻게 되면 누구나 한 번쯤 갖게 되는 마음으로 잘못이라 다그치는 것보다 스스로 깨닫고 고치기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했다.
그렇다고 하룻강아지나 다름없는 유정과 소희가 범보다 천 배는 더 위험한 전임 성주 제이브에게 달려들게 할 순 없었다.
제이브는 평범한 던전 보스가 아닌 영웅급 보스 몬스터로 둘이 함께 덤벼도 털끝 하나 건들 수 없었다.
실력도 한참 아래였지만, 무엇보다 경험이 병아리 수준이라 제이브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싸움은 실력이 30%에 경험이 69% 그리고 나머지 1%는 운이었다. 싸움의 승패는 실력보다 경험이 더 크게 작용했다.
노련미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쌓이고 쌓인 능수능란한 솜씨로 실력보다 더 위에 있었다.
유정과 소희를 뒤로 물러나게 한 후 펜리르의 헬파이어 공격을 신호로 전임 성주 제이브를 공격했다.
쿠앙~
뜨거운 바람이 넓은 동굴을 가득 메우자 제이브를 감싼 마리오네트들이 한순간에 재가 되어 사라져다.
그러나 제이브는 투명 실드로 몸을 보호하며 블링크를 연속으로 사용해 헬파이어를 가볍게 피했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아! 어서 일어나 나를 능멸하는 비열한 적을 무찔러라. 마리오네트!”
“비열한? 개놈의 자식! 자근자근 조사 죽여주마!”
제이브가 짧은 영창이 끝내자 처키와 공주 마리오네트가 허공을 가득 메우며 생겨났다.
“카아악~~~”
날카로운 괴성과 함께 식칼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처키와 공주를 향해 펜리르가 머리를 흔들며 화염을 좌우로 넓게 발사하자 까만 재가 되어 사라지며 넓은 길이 생겼다.
오노 준이치가 고맙게도 +5까지 강화해준 호칸과 록시의 빛나는 소도를 양손에 그러쥐고 전속력으로 제이브를 향해 달렸다.
‘죽음의 날개!’
마음속으로 까마귀를 소환해 날리자 제이브가 땅으로 꺼지듯 사라졌다가 8m 떨어진 우측에 나타났다.
‘블링크!’
제자리에 멈춰서 다시 까마귀를 소환해 날리자 놈이 또다시 블링크를 사용해 까마귀를 피했다.
‘우측!’
암습을 막아냈던 육감이 발동하며 제이브가 움직일 위치를 알려줬다. 까마귀가 손을 떠나자 쏜살같이 달려가 칼을 휘둘렀다.
깡~
그러나 아쉽게 거리가 조금 모자라 칼끝이 실드를 살짝 스치며 상처를 주지 못했다.
예전 아크 리치(Arch Lich)를 상대해본 경험이 몇 번 있어 블링크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블링크(Blink)는 텔레포트처럼 먼 거리를 순간 이동하는 마법이 아닌 5~10m의 짧은 거리를 순간 이동하는 마법으로 무작위로 이동해 마법을 사용하는 시전자도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다.
재수가 없으면 상대가 내민 칼에 목을 들이밀고 죽을 수도 있는 복불복이 매우 강한 마법이었다.
하지만 블링크를 사용하는 마법사는 100명이면 100명 모두 보호막인 실드를 함께 사용해 자살하는 일은 없었다.
“제법 한 가닥 하는 놈을 보냈군. 그러나 그런 실력으론 어림없다. 나와라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겁 많은 사자!”
‘오즈의 마법사?’
제이브가 목청이 터지도록 부른 이름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를 도와준 어리바리한 세 놈이었다.
그러나 이름만 같았지 모습은 전혀 달랐다. 허수아비는 키가 5m에 지푸라기 대신 단단한 나무로 된 몸을 갖고 있었고, 양철 나무꾼은 일본 만화 철인28호에 나오는 깡통 로봇처럼 동글동글한 모습이었다.
겁 많은 사자는 사신도에 나오는 백호처럼 몸이 하얗고 크기는 6m가 넘어 쥐만 봐도 벌벌 떨던 용기 없는 사자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애새끼! 이게 어디를 봐서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허접들이야. 작명 센스하고는. 그러니까 피타스에게 쫓겨났지. 나라도 썰렁해서 같이 못 있었겠다. 병신!’
‘펜리르! 지근지근 밟아서 가루를 만들어버려. 내가 좋아하는 오즈의 마법사를 이따위로 각색하디니... 재수 없는 새끼!’
제이브가 가짜 도로시의 친구들을 소환하자 펜리르에게 놈들을 양보하고 더욱 빠르게 놈을 공격했다.
캉캉캉캉~
하지만 간발의 차로 계속 실드 끝에 칼이 걸리며 번번이 놈을 놓쳤다. 전쟁에서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시간을 스탯에 투자하며 민첩 스탯을 901까지 올렸고, 오노 준이치에게 빼앗은 무기와 방어구 덕분에 추가로 662를 더해 민첩이 1,563이었다.
무려 1,300년을 투자한 수치로 타임슬립 전 민첩에 투자한 시간에 육박하는 높은 수치였다.
레전드 아이템으로 도배했던 그때와 비교하면 많이 모자랐지만, 그래도 영웅급을 따라다니기엔 모자라지 않았다.
힘 역시 1,413으로 보호막을 베는 건 여반장이었고, 운도 865나 돼 치명타가 터질 확률이 10%에 육박해 칼끝에 걸리기만 하면 그날이 제삿날이었다.
그러나 전투 경험이 풍부한 제이브는 블링크를 0.1초의 딜레이도 없이 연속으로 사용해 한 뼘 차이로 칼끝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렇다면 민첩에 시간을 왕창 투자하는 방법밖에 없겠네. 어차피 투자할 거 과감하게 투자하자.’
민첩 : 1401.0+662 = 2,163
민첩에 500년을 투자하자 단번에 2,163까지 수치가 치솟았다. 그러자 움직임이 30% 빨라져 간발의 차이로 벗어나던 놈이 정확히 칼에 걸렸다.
“크아악~”
갑자기 빨라진 움직임에 실드와 오른팔이 동시에 잘리자 놀란 제이브가 비명을 질러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