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9 퀘스트? =========================================================================
39. 퀘스트?
무사시 길드가 괴멸적인 피해를 당하자 야마토 길드와 시나노 길드도 이스트 성에 처박혀 나오지 않았다.
지난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성문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제페니즈타운에 콕 처박혀 나올 생각도 안 했다.
영웅 길드에서 말이 새어나갔는지 아니면 우리를 본 무사시 길드원이 살아 소식을 전한 것인지, 일본은 영웅 길드가 아닌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당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극도로 몸을 사렸다.
다행히 예쁘게 치장한 펜리르를 사자와 비슷하나 기린처럼 머리에 뿔이 난 해치(獬豸)로 오해했고, 유정과 소희도 남자로 착각해 구체적으로 우리가 누군지는 몰랐다.
“진짜 웃기는 건 영웅 길드가 아니라 일본 세력이 약해졌다고 만세를 부르며 영웅 길드에 앞다투어 가입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판게아에 와서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선동에 휘말리고 있잖아. 정말 한심해.”
“다른 나라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겠지. 일본이니까 그럴 거야.”
“나도 세상에서 일본이 가장 싫어. 그래도 멍청하게 이용당하진 말아야지.”
“하긴. 영웅 길드가 지금껏 사람들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알면서 가입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지.”
“그러니까 말이야. 실컷 이용당하고 버려질 것 알면서 애국심 마케팅에 속아 넘어간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여기는 판게아야. 지구가 아니라고.“
소희의 말이 백번 옳았다. 이곳은 판게아였지 지구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사람의 살도 씹어 먹어야 하는 판게아였다.
아직 판게아가 열린 지 얼마 안 돼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존성이 높다는 건 충분히 이해했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국가로 한국 사람이면 무조건 같은 국가라는 생각이 아주 팽배했다.
그러나 매일 사람이 죽고, 죽은 사람이 개돼지처럼 길바닥 버려지는 걸 두 눈으로 보면서 판게아에 대한민국과 한민족이란 개념이 있다고 착각한다면 정신병자라고 봐야 했다.
판게아에선 이용하려는 사람만 있었지 도와주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이름을 판 애국 마케팅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속출했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란 자부심이 너무 강해.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이 때문에 양아치들이 걸핏하면 민족을 팔아 이익을 챙기지. 왜 그렇게 민족에 목숨을 거는 걸까? 핏줄론? 유교 사상?’
‘세상은 다문화 사회로 바뀐 지 이미 오래야. 세계 최강 미국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같은 이상을 갖고 힘을 합치는 게 중요하지 내 나라 내 민족이 아니면 다 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정말 큰 모순이야.’
‘그렇다고 모든 민족을 형제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중국과 일본 놈들은 절대 믿을 수 없어. 상대가 자기보다 약하면 지근지근 밟고 강하면 비굴하게 손을 비비는 놈들을 믿는다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칭기즈칸은 인종, 피부, 언어, 종교에 상관없이 투항한 사람은 모두 형제로 받아들였다.
자신을 따르면 모두 가족이자 같은 민족으로 차별을 두지 않았다. 이것이 몽골이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영토를 차지할 수 있게 해줬던 이유 중 하나였다.
칭기즈칸이 죽고 후손들이 우월주의와 향락에 빠져 개판이 됐지만, 칭기즈칸 개인의 능력은 절대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
우리가 몽골에 짓밟힌 건 우리 선조들이 무능력해서였지 저들이 특별히 포악해서가 아니었다.
힘을 가진 민족은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나 포악했다. 포악한 상대에게 짓밟히지 않으려면 힘을 키워야 했다. 그러지 못해 아픔을 겪었다면 그건 남의 탓이 아니라 무능한 우리 탓이었다.
‘앞으로 2~3년은 더 당해야 바뀔 거야. 나도 그렇지만 사람은 참 멍청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믿지 않아. 에휴~ 바보 같은 인간!’
“오빠!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쩌실 거예요?”
“뭘 어째?”
“그냥 두면 힘의 균형이 무너져 우리나라도 피해를 볼 수 있잖아요.”
“잘못 건드리면 전면전으로 번질 수도 있어.”
“은밀하게 처리하면 되잖아요.”
“지금은 신경이 날카로운 때야. 평소보다 더 많은 인원이 죽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그러면 실력이 뛰어난 놈들만 골라잡으면 되잖아요?”
“실력 있는 놈들은 대부분 길드에 몸담고 있어 혼자 움직이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그리고 무엇보다 길마들을 잡으면 모를까 조무래기 몇 명 잡아봐야 도움도 안 돼. 벌집만 쑤셔 놓은 꼴이 될 거야.”
“그래도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은데.”
“생각 좀 해보자.”
중국이 우리와 일본을 노린다는 소문이 솔솔 풍겼지만, 유정이가 걱정하는 것만큼 사태가 심각하진 않았다.
중국은 인원이 20,000명이 넘어 우리보다 다섯 배나 많았지만, 여러 민족으로 나뉘어 대립 중이었고, 대만까지 끼어 서로 심하게 반목하고 있었다.
이런 내부 문제로 인해 당분간 밖으로 힘을 투사할 수 없었다. 미래가 바뀐다면 모를까 과거와 같이 흘러간다면 적어도 2년은 큰 위험이 없었다.
‘그래도 미래가 계속 바뀌고 있어 안심할 순 없어. 얼음 성채로 가서 진출한 놈이 있으면 잡고 없으면 소문을 퍼뜨려 놈들을 얼음 성채로 유인해 잡아야겠다. 그렇게라도 좀 줄여놔야지 숫자가 깡패라고 그냥 둬선 안 돼. 저글링 개떼 러시에는 당할 방법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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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딸랑! 딸랑딸랑!
“어머!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동안 많이 바쁘셨나 봐요?”
“아? 네! 저.저.전쟁 때문에 어수선해서 마을에 못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하죠. 호호호~”
“아... 네!”
“이름을 알려주세요. 단골인데 이름을 모른다는 게 정말 부끄럽네요.”
“박만수입니다.”
“만수님이셨군요. 이름이 참 좋네요. 호호호호~”
“감사합니다.”
“앞으로 편하게 모레네라고 불러주세요. 만수님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
“싫으세요?”
“아.아.아닙니다. 싫다니요. 영광입니다.”
오노 준이치에 빼앗은 1,000kg 마법 배낭 2개와 300kg 마법 배낭 2개, 100kg 마법 배낭 3개에 아이템이 꽉 차 배낭을 비우기 위해 이스트 성으로 돌아왔다.
이스트 성 영역 안에선 보스와 부보스가 아니면 일반 아이템보다 얻는 시간이 적었다.
72군주가 지배하는 땅, 영웅·신화급 보스 몬스터가 있는 던전의 몬스터만이 일반 아이템보다 더 많은 시간을 줬다.
이 때문에 녹슨 철검도 버릴 수 없었다. 일본 놈들을 잡고 천문학적인 시간을 벌었지만, 그건 로또에 당첨된 것과 같은 일이었다.
로또에 당첨됐다고 푼돈을 우습게 여기면 얼마 못 가 쪽박을 차게 된다. 물 한 방울이 모여 바다가 되듯이 작은 것을 아끼지 않으면 큰 것을 잃게 된다.
성에 들어을 때 3명이 아닌 4명이 들어왔다. 놈들이 우리를 남자로 알고 있어 걸릴 확률은 매우 낮았지만, 우리가 3명이라는 건 정확히 알아 장화 신은 고양이에 로브를 씌워 4명으로 위장하고 잡화점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간 잡화점은 내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2주 만에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뀐 주인은 뽕이라도 맞았는지 시종일관 방글방글 웃으며 모레네라는 이름까지 알려줬다.
타임슬립 전 문지방이 닳도록 잡화점을 들락거렸지만, 여자 주인 이름이 모레네인 것도 몰랐다.
단 한 번도 이방인 그 이상으로 대하지 않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이스트 성에 있는 모든 이방인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모레네가 애인이라도 된 것처럼 살갑게 굴자 당황해 바보처럼 말까지 더듬었다.
‘혹시... 여왕개미 베르베르의 치명적인 가죽 로브 때문인가? 호감도 30이 이런 엄청난 힘이 있었나?’
“어머! 물건이 정말 많네요. 모두 파실 거예요?”
“네!”
“다해서 688년 124일 10시간이네요. 여기에 시간을 달리는 모래 효과를 더하면 1,032년 186일 15시간이네요. 지난번처럼 충전해 드릴까요?”
“네!”
1044:020:23:50:26
“감사합니다.”
“만수님! 특별한 고객이라 그런데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부탁이요?”
“네! 들어주실 수 있나요?”
‘이게 술에 만취한 사람이 횡설수설하던 바로 그 퀘스트라는 건가?’
“당연히 들어드려야죠.”
“들어주실 줄 알았어요. 제가 작은 잡화점을 운영하지만,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거든요. 호호호호~”
판게아에 들어온 지 10년째 되던 해 혼자 쓸쓸해 저녁을 먹다가 술에 만취된 남자가 중얼대는 소리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었다.
혀가 꼬여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이스트 성 주민이 자신에게 뭘 시켰다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자 퀘스트라는 말이 정확히 들렸다.
주정뱅이의 말을 종합하면 어느 날 경비원이 성문을 빠져나가는 자신을 불러 어디로 가서 무언가를 가져오라고 시켰다는 것이다.
뒤 이야기는 만취해 코를 탁자에 처박고 자는 바람에 들을 수 없었지만, 뻔한 얘기라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남루한 차림에 팔도 하나 없는 외팔이의 신세 한탄으로 생각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다.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대박 아이템을 얻을 수도... 아니야. 떡 줄 사람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미리 들뜨면 안 돼. 단순한 심부름일 수도 있어. 그런데 호감도 30의 효과가 이렇게 컸나?’
특수 아이템은 가장 구하기 힘든 아이템 중 하나로 호감도를 올려주는 아이템이 있다는 소리만 들었지, 구한 것도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유정과 소희는 호감도 100을 넘어 죽고 못 사는 사이라서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해 가방에 넣고만 다녔다.
그러다 이번에 이스트 성에 들어오며 셋 다 똑같은 후드 로브를 걸치면 눈에 띌 수 있어 입으며 효과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서문을 나가 성벽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절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나와요. 그 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절벽 바닥에 도착해요. 서쪽을 향해 계속 걸어가면 동굴이 보일 거예요. 유령 동굴이라 불리는 곳으로 그 안 깊숙한 곳에 유령초가 있어요. 성주님이 오래전에 부탁하신 일인데 믿고 맡길 사람이 없어 차일피일 핑계만 대고 있었어요. 이제 믿고 맡길 수 있는 만수님이 생겨 이렇게 부탁하게 됐어요. 가져다주실 수 있죠?”
“물론입니다.”
“호호호~ 그러실 줄 알았어요.”
정말 기분이 좋은지 모레네가 기다란 토끼 머리를 흔들며 귀엽게 웃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스트 성 여성 원주민의 미모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최고였다. 지구에 데려가면 바로 톱스타 자리를 꿰찰 만큼 미모와 몸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콧대가 하늘보다 더 높아 이방인은 발가락에 낀 때보다 못하게 생각해 업무적인 일 이외에는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이건 만수님이 제 부탁을 흔쾌히 수락해주신 것에 대한 약소한 성의 표시에요. 유령초를 가져오시면 더 좋은 선물을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감사인사를 받을 만큼 좋은 아이템 아니에요. 더 좋은 걸 드리고 싶지만, 가진 게 이것밖에 없네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구하기 힘든 귀한 아이템을 주셨는데 죄송하다니요?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만수님은 예의도 정말 바르시네요. 진짜 남자세요.”
“.......”
불타는 돌(1%) : 화염속성 공격력, 방어력 1% 향상
모레네가 작은 성의라며 건네준 아이템 불타는 돌은 72군주와 일반·영웅·신화급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구할 수 있는 속성석이었다.
그러나 더럽게 안 나오는 희귀 아이템으로 특수 아이템과 함께 드롭율이 가장 낮은 아이템 중 하나였다.
* 시간을 달리는 스티그마 오류 수정
유정과 소희의 시간을 빼앗고 다시 충전해주는 방식으로 시간을 늘릴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유정과 소희의 시간을 빼앗아 시간을 늘리다니... 이게 게임이었다면 복사 핵 수준이군요. (초창기 뮤 아이템 복사가 생각납니다.)
혼선을 빚게 한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오류가 없도록 더욱 신경 쓰겠습니다.
수정 :
시간을 달리는 스티그마는 사용하는 시간의 소모는 줄여주고, 몬스터를 잡고, 상점에 물건을 팔 때 시간을 늘려주는 스티그마로 100년을 투자하면 3%, 200년 5%, 300년 7%, 400년 10%, 500년 15%, 600년 20%, 700년 25%, 800년 30%, 900년 40%, 1,000년 50%까지 효율이 늘어났다.
단,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아 시간을 늘리는 행위는 한 사람에 한 번씩밖에 사용할 수 없었고, 시간을 빼앗긴 상대는 빼앗긴 시간의 2배를 채워야 하는 페널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