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2 일본에 꽂은 빨대 1 =========================================================================
32.
제2의 암습자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급히 펜리르를 유정과 소희에게 보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피가 흐르는 왼팔을 지혈도 하지 않고 급히 유정과 소희에게 달려갔다.
“오빠! 팔에서 피 나는 거예요?”
“무슨 일이에요? 어쩌다 이런 거예요?”
“몰래 숨어든 놈이 있었어. 포션 바르면 금세 사라져. 걱정하지 않아도 돼.”
“피가 철철 흐르는데 많이 다치지 않은 거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에요?”
“유정아!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가방에서 포션하고 붕대나 꺼내.”
“알았어.”
놀란 유정과 소희가 급히 마법 배낭에서 하급 포션을 꺼내 상처 부위에 붓고 나머지는 마시게 했다.
그러자 피가 금세 멈추며 새살이 돋아났다. 1분쯤 지나자 딱지가 떨어지며 상처가 말끔히 사라졌다. 그런데도 미덥지가 않은지 붕대를 칭칭 감았다.
베인 칼자국도 남지 않아 붕대를 감는 건 지나친 오버였지만, 눈물이 글썽이는 유정과 소희의 눈을 보자 그만두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게 사랑이구나! 기분 좋다.’
다행히 몸을 감추고 은신한 놈은 한 놈이었다. 놈은 구릉지에서부터 몸을 감추고 따라와 내 눈을 감쪽같이 속였다.
“스티그마 내놔!”
“으으으으~
“셋 셀 때까지 내놓지 않으면 코를 자르고, 다음은 귀를 자르고, 그래도 안 내놓으면 눈알을 파버릴 거야.”
“으으으으~”
“농담같이 들려? 아니라는 걸 금방 알게 될 거야. 잠시만 기다려.”
자살할 수 없게 입에 양말을 밀어 넣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눈빛만 봐도 쌍욕을 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놈을 고문할 거야. 멀찍이 물러서 있어.”
“오빠를 다치게 한 놈이에요. 놈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제 눈으로 봐야겠어요.”
“저도 유정이와 같은 생각이에요. 최대한 잔인하게 괴롭혀주세요.”
‘고문하는 걸 보고 싶다? 그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앞으로 수도 없이 봐야 할 일이니 오늘 보는 것도 괜찮겠네.’
“하나! 둘! 셋!”
스걱
“크으... 크윽... 으으윽~”
“다음은 오른쪽 귀야. 힘 꽉 주고 있어. 하나! 둘! 셋!”
스걱
“으읍... 우웁~”
“계속할까?”
코와 귀가 잘리자 끝까지 버틸 것처럼 굴던 놈이 꼬리를 내리고 스티그마를 해제했다.
스티그마 어둠 속에 빛나는 칼(1/1,000)
스티그마 벽을 뚫는 송곳니(1/1,000)
‘유니크 아이템인 빛나는 뼈 토시가 왜 뚫렸나 했더니 벽을 뚫는 송곳니 스티그마 때문이었구나.’
스티그마 벽을 뚫는 송곳니는 상대의 방어력을 뚫고 상처를 입히는 관통 계열 스티그마로 시간을 투자할수록 관통 효과가 높아졌다.
그러나 벽을 뚫는 송곳니는 뛰어난 효과에 견줘 효율은 매우 낮아 시간을 투자할 만큼 좋은 스티그마는 아니었다.
“시간도 넘겨. 싫어? 나머지 귀와 눈도 파줄까?”
“.......”
“계속 버텨봐. 귀와 눈 다음은 혀, 고추, 젖꼭지 순으로 아름답게 성형해줄 테니까. 어때 재미있겠지?”
“으으으으~”
“잘 생각했어. 어차피 죽을 거 편안하게 가야지 뭐하러 힘들게 죽으려고 해. 안 그래?”
시간을 달리는 모래 스티그마의 효율이 20%로 향상하자 암습자에게 넘겨받은 402년이 482년으로 껑충 증가했다.
495:223:16:43:20
‘스티그마에 800년이나 투자한 거 보면 야마토 길드에서 한자리하는 놈인가 보네. 땡 잡았다. 흐흐흐흐~.’
더 많은 시간을 얻기 위해 암습자를 잡고 얻은 시간을 모두 시간을 달리는 모래에 투자했다.
스티그마 시간을 달리는 모래(1,000/1,000) : 효율 50% 향상
“유정아! 소희야! 기절한 놈들 자살하지 못하게 입에 재갈 물린 다음 모두 깨워.”
“네? 아! 네!”
“네.네.네!”
암습자가 고통스럽게 죽는 모습을 보고 싶다던 유정과 소희의 얼굴이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렸다.
바로 눈앞에서 사람의 코와 귀가 잘리는 끔찍한 모습을 보자 둘 다 얼이 빠져 입만 벌리고 있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던 고문 장면과 직접 눈앞에서 본 고문은 느낌이 전혀 달랐다.
고문당하는 상대가 내지르는 처절한 비명, 코를 찌르는 비릿한 혈향, 겁에 질린 커다란 눈을 쳐다보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고문을 당하는 상상에 빠져 공포심에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최동일과 전강수를 고문할 때 유정이는 바로 옆에 있었지만,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이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지 못했다.
소희는 XX고등학교 5인방이 죽는 모습을 봤지만, 워낙 순식간에 벌어져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랐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과 사람을 고문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로 평소 강심장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도 손에 칼을 쥐여주고 사람의 손가락, 발가락, 코, 귀를 자르라고 하면 손을 벌벌 떨며 칼을 놓쳤다.
고문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극악한 범죄로 담력이 뛰어난 사람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판게아에 구른 지 10년이 넘어서 시작한 일로 처음 사람을 고문했던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형님이 같이 사냥 가자고 제안해 아무런 의심도 없이 따라갔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
사냥터에 도착한 첫날 밤 좋은 술이라며 계속 권해 몇 잔 먹고 잠이 들자 몰래 칼을 들고 슬금슬금 다가왔다.
굳이 묻지 않아도 놈이 이러는 건 나를 제압해 시간과 스티그마, 아이템을 빼앗기 위함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상한 떨림을 느끼고 놀라 눈을 떠 가까스로 칼을 휘두른 놈의 낭심을 걷어차 위기를 모면했다.
만약 그때 이상한 떨림이 없었다면 믿었던 형님에게 지독한 고문을 당한 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시신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을 것이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 놈의 손발을 자르고 스티그마와 시간을 빼앗았다.
그 일로 심한 죄책감에 빠져 일주일 동안 손발이 부들부들 떨려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그러나 죄책감보다 더 큰 증오심이 심장을 채우며 이후 나를 죽이려 달려드는 놈은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잔인하게 고문한 후 시간과 스티그마를 빼앗고 죽였다.
‘사람 죽이고 고문하는 건 장난같이 쉽게 쉽게 하면서 길거리에 휴지 버리는 것도 죄스러워하는 건 뭘까? 나 사이코패스인가?’
기절에서 깨어난 다섯 놈 중 한 놈을 사정없이 조지자 나머지 놈들은 알아서 스티그마와 시간을 바치고 죽었다.
다행히 고문당한 놈도 귀 한쪽이 잘리자 가진 걸 모두 넘기고 저세상으로 떠나 유정이와 소희의 공포를 줄여줬다.
147:194:19:40:45
“내가 이상해 보이지?”
“아.아.아니요. 그.그.그렇지 않아요.”
“저.저.저도 그래요.”
“이상하지 않다면서 왜 말을 더듬어? 내가 무서워? 악귀처럼 보여?”
“오빠가 무서운 게 아니라 이 상황이 무서워서 그래요.”
“저도요. 오빠가 어떤 일을 해도 괜찮지만, 이건 상상했던 것과 달라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어요. 죄송해요.”
“내가 싫은 건 아니야?”
“아니에요. 오빠 저 알잖아요. 저는 오빠가 세상 사람을 모두 죽여도 오빠 편에요. 누가 뭐라고 해도 저에겐 오빠밖에 없어요.”
“저도 유정이와 같아요. 제 몸과 마음은 오직 오빠뿐이에요. 저희 의심하지 마세요. 그러면 저희 낙담해 죽을지도 몰라요. 흐윽~”
“둘 다 이리와!”
찔끔찔끔 짜는 유정이와 소희를 품에 안자 흥분했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10년 넘게 이 짓을 했지만, 할 때마다 더러운 기분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하지 않으면 내가 죽었다. 마음이 약해지면 잔정이 남고, 잔정은 칼이 되어 돌아왔다.
절대 약해져선 안 된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고, 내가 살아야 사랑하는 유정이와 소희를 지킬 수 있었다.
“내겐 너희뿐이야. 모든 게 사라져도 너희만 내 옆에 있으면 돼.”
“오빠! 앞으로 이일 제가 할게요. 오빠가 하는 일은 저도 똑같이 할 거예요.”
“저와 유정이에게 맡겨주세요.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정말?”
“네!”
“네! 잘할 수 있어요.”
“그래! 알았어.”
나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 유정과 소희가 앞으로 고문을 도맡아 하겠다고 나섰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람의 눈알을 파고 손가락을 자르게 하고 싶은 남자는 세상에 없었다.
그러나 판게아에선 독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여자든 남자든 독해야 살 수 있었다.
동쪽 통로로 내려간 9명을 사로잡자 약속대로 유정과 소희가 자신들이 처리하겠다고 나섰다.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한 발짝 물러나자 둘 다 결심을 굳혔는지 하나, 둘, 셋을 외치곤 동시에 손가락을 하나씩 잘랐다.
‘젠장!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야. 어떻게 20살밖에 안 된 애들에게 이런 일을 시켜. 개새끼!!!’
속으론 저주를 퍼부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무표정한 눈으로 바라봤다. 여기서 그만하라고 하면 유정이와 소희를 망치는 짓이었다.
용서받지 못할 짓을 시켰지만, 시작했으면 끝을 내야 했다. 그래야 마음이 약해지지 않는다.
이곳은 판게아였다. 벼랑 끝에 서지 않으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었다. 사자가 새끼를 높은 벼랑에서 떨어뜨리는 심정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순순히 시간을 넘길래 아니면 이놈처럼 너희도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모든 것을 잃고 죽을래?”
“빨리 결정해. 시간은 너희를 기다려주지 않아.”
“하나! 둘! 셋!”
“으으으으~”
“으웁! 으윽~”
336:194:19:40:45
입구와 동쪽으로 내려간 놈들을 고문해 빼앗은 다른 스티그마들도 모두 쓰레기로 상점에 팔아야 했다.
다행히 암습자에게 빼앗은 어둠 속에 빛나는 칼은 아주 좋은 은신 스티그마로 100년을 투자하면 은신할 수 있는 시간이 10초로 늘어났고, 은신할 수 있는 시간도 5% 향상시켰다.
200년을 투자하면 20초에 10%까지 늘어났고, 300년 30초에 15%, 400년 45초에 20%, 500년 60초에 25%, 600년 80초에 30%, 700년 100초에 35%, 800년 150초에 40%, 900년 200초에 50%, 1,000년 300초에 75%까지 시간이 증가해줬다.
서쪽으로 내려간 7명은 어이없게 병정개미에게 물려 모두 죽었다. 병정개미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중앙 광장으로 들어갔다가 사방에서 쏟아져 나온 대두, 톱니바퀴, 지옥불 병정개미에 온몸이 조각나 죽었다.
‘7명이면 못해도 150년은 먹을 수 있었는데.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