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31 일본에 꽂은 빨대 1 (31/68)

00031  일본에 꽂은 빨대 1  =========================================================================

                        

31.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만큼 뒤로 물러나는 게 상책이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작은 이익에 연연해 뭉그적거리면 분노한 야마토 놈들의 공격이 우리에게 집중될 수도 있었다.

한 바퀴 더 돌며 분탕질을 치고 병정개미 던전이 있는 북쪽으로 달아나자 서른 명이 신명 나게 쫓아왔다. 

핑핑핑핑~

모두 궁수 계열인지 따라오며 화살을 쏴댔다. 하지만 직선이 아닌 좌우로 빠르게 움직여 가까이 날아오는 화살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가까이 다가온 화살은 펜리르가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러 모두 쳐냈다. 500년을 투자하자 펜리르의 꼬리가 채찍처럼 길어졌다. 

아직 꼬리를 이용한 스킬은 없었지만, 자유자재로 움직여 몬스터를 공격했고, 파괴력도 매우 뛰어나 병정개미는 스쳐도 사망이었다.    

적당한 거리를 벌리고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자 뒤따라온 놈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여서 의논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숲에 무작정 들어가는 건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처박는 것만큼 위험한 짓이었다.

피웅! 피웅!

“크윽!”

“커억!”

“빠가야로(ばかやろう)! 갈기갈기 찢어 죽여!” 

두 놈이 목숨을 잃자 흥분한 야마토 길원들이 욕을 퍼부으며 숲으로 들어왔다. 나무가 많은 숲에선 펜리르가 마음껏 움직일 수 없어 빠르게 숲을 벗어나 커다란 바위 뒤에 숨었다.

쿠아아악~

바위 뒤에 숨어있던 펜리르가 숲을 빠져나온 선두를 향해 있는 힘껏 화염을 토하자 아름드리나무와 함께 선두에 섰던 5명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날렸다.

413:119:20:55:38 

삐익~ 삐익~

놀리듯 놈들을 향해 휘파람을 불고 가운데 손가락으로 뻑큐를 날린 후 병정개미 던전으로 들어갔다. 

스티그마 시간을 달리는 모래(500/1,000) : 효율 20% 향상

시간을 달리는 모래 스티그마에 400년을 투자하자 효율이 20%로 향상됐다. 시간을 달리는 모래는 전쟁에서도 효과가 그대로 반영돼 100년 짜리를 잡으면 20%로 추가된 120년을 얻을 수 있었다. 

   

타임슬립 전에는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참전할 실력이 안 돼 마을에 한 달 동안 콕 처박혀 있었다.

덕분에 한 달 동안 성 밖을 벗어나지 못해 딱딱한 빵값으로 45일을 날리며 타임 오버로 죽을 뻔했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남은 시간은 고작 2일 9시간 20분 12초로 부랴부랴 사냥터로 나가 꺼져가던 목숨을 간신히 살렸다.    

그때 나처럼 바닥에서 빌빌거리던 사람들은 타임 오버로 죽는 일이 속출했고, 시간을 왕창 번 놈들은 쭉쭉 앞으로 뻗어 나갔다. 

당시 대한제국, 영웅, 환인, 고구려 4대 길드장과 고위층은 부하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시간을 왕창 벌어 독보적이라 할 만큼 앞서나갔다.

그중 선두는 대한제국의 길마 김동규로 2,000년 가까운 시간을 벌며 이스트 성의 최고 강자로 우뚝 섰다. 

그러나 초심을 잃고 흥청망청 시간을 쓰다 후발주자들에게 덜미를 잡혀 끝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당시 나와 같은 지질한 인생들에게 김동규는 선망의 대상으로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샀다.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해. 초심을 잃으면 김동규, 김영웅, 최민순, 이용호처럼 끝이 안 좋아. 잠깐 앞서나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그러나 꾸준히 앞서나가는 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야.’

‘나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반드시 해낼 거야. 그래서 내가 바라고 꿈꿔왔던 하렘 왕국을 건설할 거야. 흐흐흐흐~ 하렘 왕국!!!’

입구에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놈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추적대가 현명하다면 돌아가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이대로 돌아가면 야마토 길드장 키타노 히로이키에게 죽을 수도 있었다. 그것도 곱게 죽는 게 아니라 전쟁에서 도망친 죄를 물어 사지가 잘린 후 시간을 빼앗기고, 장대 높이 목이 매달릴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뒤를 쫓아온 야마토 길드원들은 병정개미 던전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길드라는 이름 대신 폭력조직인 XXX 야쿠자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중국은 회(會), 문(門) 등을 사용했고, 미국과 유럽은 마피아(Mafia) 또는 비밀결사단체의 이름을 도용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모두 폭력단체로 보스의 명령이 법이었다. 우리나라 길드보다 더욱 심한 수직구조로 나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면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형벌이 따랐다.

더군다나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화가 미칠 수 있어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찰병으로 나선 놈이 고개를 살짝 내밀어 던전 안에 우리가 있는지 살폈다. 좌우로 열심히 눈을 돌려도 우리가 보이지 않자 나무 방패로 몸을 가리고 한 발 한 발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

놈의 얼굴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렸고, 방패를 든 손은 중풍 환자처럼 덜덜 떨렸다.

영화에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당당하게 일어서 총을 난사하는 장면이 아주 흔했다. 

그러나 실제 전투에선 공포와 두려움에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머리 위로 총만 들고 쐈다.

죽음은 인간이 이겨낼 수 없는 원초적 공포로 정찰병의 행동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이를 비웃는다면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거나,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해탈의 경지에 든 놈이었다.

병정개미 던전에 입장하면 커다란 광장이 나온다. 개미굴로 내려가기 위한 출발점으로 이곳엔 몬스터가 없었다.

출발 통로는 총 4개로 모두 여왕개미의 방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미로처럼 얽히고설켜 길을 모르면 같은 곳을 계속 헤매게 된다.

그래도 해골 던전처럼 굶어 죽을 염려는 없었다. 평지가 아닌 수직구조로 계속 올라가면 입구로 되돌아 나왔고, 계속 내려가면 여왕개미 방에 도착했다. 

그러나 놈들은 병정개미 던전이 처음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동안 갈팡질팡했다. 

10분간 쑥덕인 놈들이 무리를 셋으로 나누었다. 가장 작은 무리는 입구를 지키다가 2시간 후에도 일행이 돌아오지 않으면 상부에 연락하기로 하고, 두 무리는 동쪽과 서쪽 통로를 따라 우리를 찾아 나섰다.          

     

“어느 쪽부터 잡을 거예요?”

“입구에 있는 놈들부터 잡자. 그래야 추가 병력을 막지.”

“우리를 잡으러 병정개미 던전에 들어간다고 키타노 히로이키 길마에게 이미 보고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랬어도 입구에 있는 놈들부터 잡아야지. 그래야 도망치기 편하지.”

“도망쳐요? 계속 병정개미 던전으로 유인하는 거 아니었어요?”

“오늘 기습당한 야마토 길드는 당분간 경계태세가 크게 강화될 거야. 조금 느슨한 무사시와 시나노를 노리는 게 안전해. 그러려면 동쪽의 펜리르 던전과 남쪽의 피라미드 던전으로 옮겨 놈들을 유인하는 게 유리하지. 그리고 다시 북쪽 천 년 묵은 가시나무 던전으로 옮겨 야마토 놈들을 괴롭히고, 놈들이 대거 쫓아오면 서쪽 스켈레톤 던전으로 피하는 거야. 그렇게 한 달 내내 던전을 돌아다니며 놈들을 괴롭히면 적어도 우리나라가 일본에 밟히는 일은 없을 거야. 물론 시간도 짭짤하게 벌 수 있을 테고. 이런 걸 바로 꿩 먹고 알 먹고라고 할 수 있지.”

“도랑 치고 가재도 잡아야죠.”

“물론 기회가 되면 아이템도 챙겨야지. 흐흐흐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처럼 놈들을 정신없이 몰아쳐 최대한 큰 피해를 줄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목숨을 걸만큼 무리할 생각은 없어 계속 던전을 바꾸며 놈들의 목표가 되지 않게 노력할 계획이었다.   

“이 기회에 우리가 일본을 밟는 건 어때요?”

“우리는 많아야 4,000명 정도고, 일본은 6,000명이 넘어. 수적으로 차이가 커서 어려워. 그리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 중국이 끼어들 수도 있어.”

“중국이 왜 끼어들어요?”

“일본이든 한국이든 완벽한 승리를 거둬 한쪽을 흡수하면 자기들과 비등한 세력을 갖게 될 수도 있어서 그래.”

“참전 신청 끝난 거 아니에요? 중간에도 받나요?”

“유정아! 너 바보니? 언제부터 참전 신청해야 상대를 죽일 수 있었어? 그냥 죽이면 되잖아.”

“아~”

“빨리도 알아듣는다. 쯔쯔쯔쯔~”

소희가 혀를 차자 유정이 입술을 쭉 내밀었다. 유정이 몰라서 이런 것이 아니라 착각한 것으로 지구적 관점에서 생각해서 그런 것이었다.

지구에선 형식적인 절차를 밟고 전쟁을 시작했고, 중간에 끼어들어도 조동아리를 열심히 푼 다음 끼어들었다.  

그러나 판게아에선 중국이 일본을 공격하든, 한국을 공격하든, 전쟁의 신전에 허락받을 필요가 없어 자기 꼴리는 대로 싸움에 끼어들 수 있었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네!”

입구를 지키는 야마토 길원은 다섯 명밖에 안 돼 목숨을 빼앗지 않고 조용히 잡을 수 있었다. 

죽이면 5분의 1밖에 얻을 수 없지만, 죽이지 않고 잡으면 더 많은 시간을 빼앗을 수 있었다.

전쟁을 선포하지 않게 된 세 번째 이유가 바로 이것으로 상대를 사로잡으면 시간을 몽땅 뺏을 수 있고, 스티그마도 빼앗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에선 상대를 죽이면 20%만 얻고 나머지 80%는 허공으로 날아갔다. 물론 많은 사람을 죽이면 그만큼 많은 시간을 얻을 수 있겠지만, 낭비되는 시간이 많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번개같이 뛰쳐나간 펜리르가 왼쪽에 있던 두 놈을 앞발로 후려쳐 날려버리는 사이 오른쪽에 있던 두 놈의 뒤통수를 후려쳐 기절시켰다.

가운데 있던 놈은 펜리르의 기다란 꼬리에 감겨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힌 채 오줌을 질질 싸댔다.

얼이 빠진 놈의 마빡을 후려쳐 기절시킨 후 다섯 놈을 한곳에 모아 놓고 밧줄로 꽁꽁 묶었다.    

기절한 놈들을 묶고 일어서는 순간 반짝이는 칼이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20년간 몸에 밴 본능에 따라 빛나는 뼈 토시로 칼을 막았다.

퍽!

‘윽!’

쿠아아악~

주인의 공격을 인지한 펜리르가 암습자를 향해 화염을 토했다. 그러나 귀신같이 칼이 사라지며 아무도 없는 허공에 불을 쏘고 말았다.

20년간 판게아에서 구르며 당한 암습만 100번이 넘었다. 수많은 암습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건 운이 좋았던 것도 있었지만, 누군가 숨어서 다가오면 아주 미세한 진동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누군가 다가오는 불편한 진동을 느꼈고, 목을 찔러온 칼을 재빨리 토시로 막아 목숨을 구했다.

쉬이익~

“컥!”

손을 떠난 망고슈가 그늘 밑에 숨은 암습자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대담한 놈은 첫 번째 공격이 실패했는데도 달아나지 않고 30m 떨어진 우측 그늘에 숨어 두 번째 암습을 노리고 있었다.  

재빨리 다가가 양쪽 팔과 무릎 관절을 가시 단검으로 베었다. 팔다리가 잘려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는 닌자(忍者)는 아니었는지 입을 크게 벌리고 악을 썼다.

“으아악~”

모습을 감춘 놈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놈이 뿜어내는 미세한 진동을 추적할 수 있어서였다.

‘이번에도 오감 덕분에 살았네. 그런데 이걸 오감이라고 해야 하나? 육감인가? 아니면 지나치게 발달한 촉감?’

‘펜리르! 가서 유정이와 소희 데려와.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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