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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0 일본에 꽂은 빨대 1 (3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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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일본에 꽂은 빨대 1

그때와 마찬가지로 3일 후부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됐다. 치열한 눈치작전을 펴며 성문에 몰려 있던 양측은 셋째 날 아침이 되자 대거 성문을 빠져나가 유리한 자리를 잡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먼저 움직인 건 일본의 무사시 길드로 동문 근처로 이동해 성문 주위에 몰려 있던 영웅 길드를 압박했다. 

그러자 무사시 길드의 뒤를 치기 위해 고구려 길드가 남문으로 빠져나가 동쪽 구릉지에 자리를 잡았다.

곧바로 시나노 길드가 남문으로 빠져나가 밑에서 고구려 길드를 압박했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영웅 길드가 동문으로 나가 시나노 길드와 정면으로 대치했다.

영웅 길드가 시나노 길드를 압박하자 무사시 길드가 인원을 둘로 나눠 영웅 길드의 측면을 압박했다.

이러자 영웅 길드와 고구려 길드가 양쪽에서 협공당하는 모양새가 됐다. 불리한 형세를 극복하고자 환인 길드가 급히 북문으로 몰려갔다.

하지만 야마토 길드가 미리 북문을 빠져나가 구릉지에 자리를 잡고 성문을 빠져나오는 환인 길드를 압박하자 세 길드 모두 포위된 최악의 형세가 되고 말았다.

아직 극렬한 전투가 벌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전쟁의 형세는 대한민국에 매우 불리하게 돌아갔다. 

참전한 인원부터 일본이 대한민국보다 2배 이상 많았고, 전체적인 실력도 일본이 조금 앞섰다. 

이 때문에 사기까지 크게 떨어져 일본은 이미 전쟁에서 이긴 것처럼 축제 분위였고, 우리나라는 패한 것처럼 암울했다.

영웅과 환인, 고구려가 길드가 성 밖으로 나간 건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싸워보지도 못한 채 패배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전쟁에서 패하면 무시무시한 페널티가 있다. 패한 쪽은 사냥과 판매를 통해 얻는 시간이 2개월 동안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이긴 팀은 100% 향상된 시간을 얻어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이 또한 전쟁의 신전을 이용하지 않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영웅과 환인, 고구려 길드는 손 놓고 당할 수 없어 무리한 작전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야마토 길드와 환인 길드가 붙으면 기습으로 뒤를 치고 개미 던전으로 빠질 거야. 따라오는 놈들이 많으면 던전으로 유인해서 잡고, 숫자가 적으면 밖에서 처리할 거야. 질문?”

“아이템은요?”

“욕심내지 마. 그거 주우러 가다간 죽을 수도 있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아이템도 구하면 좋잖아요.”

“몇 푼 안 되는 아이템 먹자고 달려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우리가 전쟁에 끼어든 건 일본의 힘을 약화시키는 거야. 그리고 다치지 않고 전쟁을 끝내는 게 목표고. 이점 항상 명심해.”

“알았어요.”

전리품에 관심을 보인 유정을 크게 꾸짖었다. 판게아에선 좋은 아이템은 목숨을 지키는 첨병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아이템에 욕심을 부리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불렀다.

아이템은 스티그마처럼 죽어도 사라지지 않아 상대를 죽이고 전리품으로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전리품에 눈이 멀면 상황판단이 흐려져 목숨을 잃게 된다. 전장에선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이 욕심이었다. 욕심에 눈이 멀면 목숨도 사라졌다.

펜리르를 검은 천으로 둘둘 두르고 얼굴에는 커다란 가면을 씌웠다. 유니콘의 뿔 같은 기다란 뿔까지 이마에 달고 풀을 잔뜩 꽂아 늑대인지 개인지 괴물인지 분간할 수 없게 분장한 다음 검은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등에 올라탔다.

우리만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게 분장하는 건 머리를 땅에 처박고 위험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꿩과 같은 행동이었다. 

지금은 펜리르를 마을에 데리고 들어가지 않지만, 점점 싸움이 격해지는 2~3년 후에는 안전을 위해 어디를 가든 항상 데리고 다녀야 했다. 이럴 경우 이번 전투를 기억하는 놈이 있으면 우리 정체가 발각될 수 있었다.   

알아본다고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 놈을 때려잡는 수만큼 일본과 원한도 깊어져 수시로 암습을 받게 된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은 선행만이 아니었다. 나쁜 일도 아주 은밀하게 처리해야 뒤탈이 없었다. 

펜리르의 등에 바짝 엎드려 야마토 길드가 있는 구릉지 후방으로 살금살금 접근했다. 

석궁과 각궁을 발사할 수 있게 화살을 얹은 채 숲에 숨어 전투가 시작되기만을 조용히 기다렸다.

“오빠! 왜 이렇게 손발이 떨리죠? 긴장돼 미칠 것 같아요.”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주인공 러셀 크로우가 싸움이 시작되기 전 손에 흙을 묻히며 신께 기도하는 장면 봤지?”

“네!”

“왜 하는 것 같아?”

“긴장돼서 그렇겠죠.”

“맞아.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도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는 긴장해 손이 땀이 나. 그래서 손에 흙을 묻혀 칼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거야. 그러면서 자신이 믿는 신께 살아서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거야. 나도 몬스터를 사냥할 때마다 손에서 땀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려. 신을 믿지 않아 기도하진 않지만, 집에 계신 어머니께 무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지.”

“오빠도요?”

“그럼. 누구나 다 그래. 심장이 두근대는 거 이상한 거 아니야. 당연한 거야. 그러니 겁먹지 마.”

“네!”

나 역시 타임슬립 전에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전투에 참전했지만, 한 번도 떨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걸 살인에 대한 흥분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흥분은 피의 살육자에게나 어울리는 얘기였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 내겐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나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한 번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죽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손을 쓴 것이지 피의 광기에 취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이 또한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지? 내 손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그 사람들은 나를 피에 미친 광인이라고 생각할 거야. 후유~’

입술이 파랗게 질린 소희의 뺨을 토닥이며 품에 안아 마음을 진정시켰다. 사신이라 불렸던 소희가 오들오들 떠는 게 우스웠지만, 처음부터 사신인 존재는 세상에 없었다.

수많은 땀과 사선을 넘고 사신이라 불린 것이지 지구의 낙하산 인사들처럼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쾅쾅쾅쾅~

“으아악~”

야마토 길드원 20명을 신나게 쫓던 환인 길드원들이 매복에 걸려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됐다. 

언덕 위에 미리 매복한 야마토 길드가 발 빠른 길드원을 이용해 환인 길드원 3명을 죽이고 달아나자 흥분한 환인 길드원들이 놈들을 쫓다 함정에 빠졌다. 

초승달 모양의 언덕 아래 포위당한 것도 문제였지만, 야마토 길드가 500명, 환인 길드가 300명 남짓으로 쪽수에서도 크게 밀려 포위망을 뚫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환인 길드 길마 최민순은 그때나 지금이나 돌격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네. 자기는 좋은 방어구로 도배해 화살과 마법 공격이 두렵지 않겠지만, 변변한 방어구도 없는 불쌍한 부하들은 뛰어가다 다 죽으라는 소린가? 무진장 이기적이네. 쯔쯔쯔쯔~’ 

팅팅팅팅~

피웅피웅피웅~

언덕 아래 갇힌 환인 길드원을 향해 신나게 마법을 발사하는 야마토 길드원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컥!

“으악~”

4명이 가슴과 머리에 화살을 맞고 쓰러지자 시계가 있는 왼팔에서 환한 빛이 나며 시간이 들어왔다. 

생명이 끊어지면 스티그마가 소멸하며 투자한 시간이 모두 시계가 있는 왼팔에 환원된다. 

스티그마를 해체하면 50%밖에 얻을 수 없지만, 죽으면 투자한 시간을 전부 회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 왼팔에 시간만 남아있을 뿐 사용할 수도, 뺏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전쟁에선 이야기가 달라졌다. 전쟁에 참여한 상대방을 죽이면 죽은 지 정확히 1초 후 시간을 뺏어온다.

이 말은 스티그마에 1,000년을 투자한 사람을 죽이면 20%인 200년을 뺏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전쟁이 시작되면 서로 한 명이라도 더 죽이려 광분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가지고 있는 시간이 10년밖에 안 되면 죽여 봐야 2년밖에 뺏을 수 없지만, 스티그마에 투자한 시간이 100년이면 20년을 뺏을 수 있었다.

20년은 판게아에 도착했을 때 주는 시간의 무려 20배에 달하는 엄청난 시간으로 허접에겐 한 달 동안 죽어라 사냥해도 모을 수 없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059:120:20:36:12

4명을 잡자 46년이 들어왔다. 스티그마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한 약한 놈들로 적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기대에 부응하진 못했다. 

유정이가 쏜 화살은 안타깝게 허벅지와 어깨에 맞아 목숨을 빼앗지 못했다. 추가로 화살을 발사했지만, 데미지 딜러(Damage Dealer)인 마법사를 보호하기 위해 방패를 든 길드원들이 급히 앞을 막아서 놈들을 끝장낼 수 없었다.  

‘왼쪽! 궁수들을 공격해!’

명령을 받은 펜리르가 바람처럼 다가가 화염을 뿌리자 화살을 쏘아대던 궁수 8명이 재가 되어 부서졌다.

179:352:03:05:05

한 명당 15년이 약간 넘는 시간을 먹고 우측으로 빠지며 쉬지 않고 석궁을 당겼다. 

펜리르가 빠르게 달리자 유정과 소희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내 허리를 꽉 붙잡고 있어 야마토 길드원을 공격할 수 없었다.

팅팅팅팅팅~

그러나 나는 다리 힘과 평형감각이 끝내주게 좋아 반쯤 일어난 상태로 연속으로 화살을 날려 3명을 추가로 잡고 12명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입혔다.

223:302:13:22:59 

“저놈 뭐야?”

“저 개새끼 잡아!”

‘판게아에서 가장 마음에 들면서도 가장 들지 않는 게 바로 저거야. 아프리카 원주민을 만나도 말이 통한다는 거. 마음 놓고 욕할 수도 없고... 젠장!’

우리가 이스트 성 원주민의 말을 자연스럽게 알아듣는 건 그들이 한국말을 능숙하게 해서가 아니었다.

루시퍼가 판게아를 창조하며 종족에 상관없이 언어가 소통할 수 있게 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단, 유사인류에 국한돼 병정개미, 천 년 묵은 가시나무, 뿔 토끼 등 곤충, 식물, 동물 등은 언어가 통하지 않았고, 언어 능력이 떨어지는 고블린, 오크 등과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1조! 소환수에 탄 조센진을 처리해! 빨리~~~”

“옛!” 

15명이 죽고 14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 전투에서 빠지자 1조로 명명된 야마토 길드원 20명이 따라붙었다. 

‘반전!’

놈들을 가운데에 두고 크게 원을 그리며 달리던 펜리르가 재빨리 방향을 바꿔 뒤 따라오던 20명에게 화염을 뿌리자 7명이 재가 되어 부서졌다. 

338:312:18:20:11 

그러자 원거리 딜러들이 탱커들의 보호 아래 마법과 화살을 날렸다. 데미지 딜러 계열인 마법사와 궁수부터 공격한 것은 언덕 아래 갇힌 환인 길드원을 구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펜리르의 발보다 화살과 마법이 빨라서였다. 주력으론 펜리르를 따라잡을 놈이 없어 포위만 당하지 않으면 안전했다. 

그러나 원거리 공격 스킬 중에는 펜리르도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없는 빠른 공격이 많아 다칠 수 있었다.

야마토 길드원 중 펜리르를 상대할 놈이 없다고 해도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펜리르도 계속 맞으면 역소환될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더 휘젓고 병정개미 던전으로 가자.’  

배후를 공격당한 야마토 길드가 혼란에 빠지자 환인 길드를 가뒀던 포위망이 느슨해졌다. 

기회가 생긴 환인 길드가 유일한 통로인 남쪽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달아나는 환인 길드의 피해를 키우기 위해 야마토 길드가 추적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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