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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8 전쟁 (2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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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전쟁

“스티그마 시간을 달리는 모래의 효과 5%를 더해 256년 305일 12시간 20분 39초가 나왔습니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충전해 주십시오.”

“네! 맞는지 확인하세요.”

363:060:22:31:09

“오빠! 이제 우리 집 생기는 거예요?”

“지난번 묵은 호텔방 정도의 집을 사려면 못해도 천 년은 있어야 해.”

“무슨 집값이 그렇게 비싸요?”

“서울 집값 생각해봐 비싸다고 볼 수도 없지.”

지난번 묵은 ‘노을 진 동쪽 하늘’ 호텔 정도의 집을 사려면 최소 1,000년은 줘야 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억 소리 나는 가격이었지만, 서울 물가와 비교하면 비싸다고 볼 수도 없었다.

1,000년을 금값으로 계산하면 대략 43억 원이 나온다. 금 1kg이 4,300만 원으로 1kg은 시간 10년과 같아 100kg으로 계산하면 43억 원이었다.

그러나 시급 5,580으로 계산하면 488억 8,000만 원으로 10배 이상 비쌌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 판게아와 지구의 금값 차이가 크기 때문으로 왕래할 수 있다면 엄청난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  

“사는 것도 문제지만, 유지비도 만만치 않게 들어. 우리가 집을 돌볼 수 없어 사람을 둬야 해 못해도 1년 유지비가 집값의 반은 들 거야. 당장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호텔보다 더 근사한 집을 사줄게. 조금만 참아.”

“그냥 해본 소리에요. 저는 집 없어도 오빠만 있으면 돼요.”

“저도요.”

“내가 먼저 말했어. 따라 하지 마!”

“따라 한 거 아니거든. 나도 같은 생각이었거든.”

유정이 오른쪽 품에 안기며 나만 있으면 집이 없어도 괜찮다고 하자, 소희도 왼쪽 품에 안기며 자기도 나만 있으면 좋다고 유정이가 한 말을 따라 했다.

‘미녀 둘을 동시에 안을 수 있어 좋긴 한데, 매일 투닥거리며 싸우는 건 골치네. 없을 땐 없어서 문제고, 있으면 있어서 문제네. 허허허허~’  

“6차로 들어온 사람들 그사이 많이 줄었네요. 같은 천막에 있던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안 보여요.”

“한 달이 고비라서 그래.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니까. 한 달 버티면 살아남을 확률이 몇 배 높아져.”

“그러면 조금만 도와줘도, 아니 괴롭히지만 않아도 죽는 수가 확 줄어들어 중국, 일본과의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을 텐데, 왜들 눈앞에 있는 욕심만 채우려 하는지 모르겠네요.”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들도 그런데 일반 사람이야 오죽하겠어.”

소희 말처럼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선 사람들이 판게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그러나 힘을 가진 사람들은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최대한 쥐어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생각밖에 없었다.

6차로 넘어온 2,500명의 시간을 모두 모으면 2,500년이었다. 개개인은 1년에 지나지 않지만, 모으면 엄청난 시간으로 돌변했다.

국가가 세금이란 명목으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과 같은 이치로 한 명이 낸 천 원, 만 원은 적은 돈이지만, 5,000만 명에게 걷으면 천 원은 500억 원이 됐고, 만 원은 5,000억 원이 됐다.

이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가지기 위해 힘을 가진 이들은 약한 사람을 쥐어짰고, 많은 사람이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7차는 주말 오후 충남 당진의 행남도 서해안 고속도로 상공에서 차원의 틈이 열리며 차량 98대가 빨려 들어왔다.

주말 여행객들이 버스와 승용차에 잔뜩 타고 있어 1,300명이 넘는 사람이 판게아로 끌려왔고, 이 중 1,000명이 무사히 살아남아 지옥 생활을 시작했다.

차원의 틈이 생기면 그 구간은 시간이 10초가량 멈춘다. 이 때문에 기차와 배, 항공기, 버스 등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처럼 보여 레이더와 육안으로 찾을 수 없었다.

멈춰진 10초는 사람들이 인지할 수 없는 사이 원래대로 돌아왔고, 사람들은 시간이 멈췄다는 것도 모른 채 시간에 쫓겨 하루하루를 살았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엄청나게 많이 왔네. 애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위험한 판게아에 데려오는지 모르겠네.”

“우리는 잘못 있어서 끌려왔어?”

“그런 뜻이 아니라 애들이 불쌍해서 그래.”

“소희야! 우리 오빠 아니었으면 개 같은 놈들에게 끌려가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았을 거야. 어쩌면 죽어서 몬스터의 밥이 됐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 걱정할 처지가 아니야.”

“나도 저들을 동정하는 건 아니야. 그냥 아이들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어 말한 것뿐이지.”

“네가 아이 좋아해서 걱정하는 거 알아. 그래도 판게아에선 절대 그러면 안 돼. 판게아에선 오빠와 나만 믿어야 해. 나머지는 너의 시간을 빼앗고, 몸을 빼앗고, 아이템을 뺏으려는 강도야. 절대 방심해선 안 돼! 방심하는 순간 지옥으로 끌려가 고통 속에 뒹굴다 죽는 거야.”

“알았어. 명심할게.”

소희는 XX고등학교 5인방에게 끌려가기 전 구출돼 사람들의 심성이 얼마나 악독한지 잘 몰랐다.

그에 비해 유정은 엄마를 잃고 능욕을 당하기 직전까지 몰려 사람에 대한 불신과 미움, 분노가 가득했다. 

그 분노가 하늘에 닿아 죄 없는 아이들까지 싫어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처럼 폭발한 유정의 분노를 잠재울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화가 가라앉기 전에는 어떠한 말로도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할 수 없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나처럼 시간이 지나면 유정의 분노도 자연히 가라앉는다. 그때까지 내가 할 일은 유정이 삐뚤어지지 않게 보듬어 안아주는 것이었다.  

[긴급공지!]

[전쟁 발발!]

[일본의 무사시 길드와 한국의 영웅 길드가 전쟁 선포에 합의했습니다.] 

[전쟁에 참여할 길드 또는 개인은 12:00까지 전쟁의 신전에 등록하기 바랍니다.]

[전쟁 기간은 쌍방의 합의에 따라 30일이며, 성내에선 어떠한 전쟁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성내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행위가 발견되면 벌금형이 아닌 사형에 처합니다. 이점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건투를 빕니다.]

“전쟁? 오빠! 이게 무슨 소리에요?”   

  

“나도 처음 듣는 소리라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몰래 죽이는 것도 모자라 이젠 대놓고 죽이자는 뜻인가요?”

“글쎄?”

‘6개월 후에 발발하는 전쟁이 벌써 일어나? 이러면 정말 엉망이 되는데. 혹시 시간이 두 배로 빨라진 거 아닐까? 그러면 차원의 통로도 10년이면 열리는 거 아니야?’

‘아니야! 사람들의 행동이 조금 빨라졌다고 차원의 통로까지 빨리 열린다고 볼 순 없어. 나 때문에 미래가 조금 바뀌었다고 큰 줄기까지 바뀐다는 뜻은 아닐 거야.’

‘틈새가 열리는 시간, 넘어오는 사람들의 숫자, 인물 등을 봤을 때 큰 줄기는 전혀 변하지 않았어. 전쟁도 내가 죽인 누군가로 인해 인과관계가 어긋나며 발생한 게 틀림없어.’

‘박만수! 정신 차려! 이젠 혼자가 아니야. 지켜야 할 사람이 둘이나 있어. 절대 불안해하면 안 돼. 이럴수록 침착하게 행동해야 해. 그래야 내가 살고 사랑하는 유정과 소희가 살아.’ 

“오빠! 전쟁의 신전 가보셨어요?”

“아니!”

“가볼래요?”

“저도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요. 가요 오빠!”

“그래, 가자. 대신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여선 안 돼.”

“네에~”

전쟁의 신전은 판게아에 있는 유일한 신전으로 주신이자 유일신인 루시퍼를 모시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딱 하나로 전쟁을 주관하는 것이었다. 판게아 주민의 전쟁이 아닌 이방인인 지구인의 전쟁을 주관하는 것으로 길드 대 길드의 전쟁을 선포하고 해제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초창기인 2~3년까지만 전쟁을 선포했고, 이후에는 누구도 전쟁의 신전을 찾지 않았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전쟁을 선포하면 상대의 시간을 뺏을 수 있지만, 시간을 뺏기는 상대는 전쟁 기간 내내 생명의 위협을 받아 불안과 초조 속에 살아야 해 전쟁 선포에 동의하지 않았다.

전쟁 선포는 쌍방 합의로 진행된다. 전쟁의 신전에 길드 마스터와 길드원들이 모두 모여 명단을 제출하고 전쟁에 합의하면 신전은 이를 공표한다.

전쟁에 참여할 연합 길드와 개인은 신전이 정한 시간까지 참전 여부를 등록하고, 신전이 정한 시간부터 전쟁이 시작돼 상대를 죽일 때마다 상대의 시간을 뺏을 수 있었다.  

“상대를 죽이면 상대가 가진 시간의 20%를 아무런 제약 없이 뺏어올 수 있다니... 눈이 벌게져서 뛰어다니겠네. 정말 살벌하겠다.”

“100년 가진 놈 열 명만 잡아도 200년을 먹을 수 있어. 유정이 너라면 혹하지 않겠어?”

“혹하지.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남의 시간을 뺏을 것만 생각했지 자기 죽을 건 생각도 못하고 달려드는 놈들 무진장 많겠다. 바보 같은 놈들!”

“그런 사람은 죽어도 할 말 없지. 자기가 하겠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전쟁의 신전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사람도 전쟁에 휘말려 죽을 수도 있잖아? 그러면 무진장 억울하겠다.”

“그렇지. 자기편 아니면 무조건 죽이고 볼 테니 선의의 피해자가 엄청나게 많을 거야.”

“그럼 이들의 억울한 죽음은 누가 책임져?”

“판게아에서 사람 죽이고 책임지는 사람 봤어?”

“아니!”

“알면서 왜 헛소리야? 약 먹었니?”

“그러게.” 

유정과 소희의 걱정처럼 전쟁이 시작되면 신전에 참전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목숨을 잃었다. 

전쟁에 참여한 사람은 가슴에 청색과 홍색 징표가 달려 멀리서도 쉽게 구분할 수 있어 불필요한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겁에 질린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가까이 오면 무조건 칼부터 휘둘러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친구와 가족이 상대 길드원에게 죽으면 그때부터 그 나라 사람은 모두가 적으로 변해 보이는 족족 죽였다.

이것이 전쟁을 선포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였다. 전쟁이 시작되면 성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전쟁을 선포한 두 나라는 물론 주변국까지 전쟁 기간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성 주변은 서로 죽고 죽이며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해 몬스터를 사냥하겠다고 나가는 건 죽여 달라고 목을 길게 빼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또한, 전쟁과 관련 없는 제3국 사람들도 공격받는 일이 빈번해 전쟁 기간 동안 이스트 성 주변은 누구도 사냥을 할 수 없었다.

전쟁 기간 중 가장 짧은 한 달도 시간이 없는 사람에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긴 시간으로 불필요한 피해가 커지자 암묵적으로 전쟁 선포 없이 조용히 전쟁을 치르기로 합의했다.       

‘타임슬립전에는 대한제국 길드까지 참전해 간신히 평수를 이뤘어. 지금은 가장 큰 축인 대한제국이 빠져 머릿수 차이가 너무 심해.’

‘여기서 밀리면 최소 2~3년은 꼼짝 못하고 일본 놈들에게 눌려 지내야 하는데. 어쩌지? 다른 놈들도 아니고 일본 놈들 거들먹거리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은데... 도와줘야하나?’

일본에선 타임슬립전과 마찬가지로 야마토와 시나노 길드가 무사시 길드의 연합으로 나섰고, 우리나라는 환인과 고구려가 영웅 길드를 돕기 위해 나섰다.

타임슬립전엔 대한제국, 영웅, 환인, 고구려 4대 길드가 모두 참전하고도 가까스로 평수를 유지하며 전쟁을 끝냈다. 그러나 이번엔 대한제국이 빠져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있었다.

이스트 성의 전력은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이 독보적이었고, 다음은 일본,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순이었다.

중국은 기차 한 대가 넘어와도 우리보다 인원이 최소 5배 이상 많아 우리나라와 일본을 합친 것보다 배 이상 많았다.

일본도 인구가 우리보다 많아 최소 1.5배는 넘어와 동양 삼국 중 한국의 전력이 가장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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