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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1 대도(大盜) 마문곡 (21/68)

00021  대도(大盜) 마문곡  =========================================================================

                        

21. 대도(大盜) 마문곡

“저기 커다란 늑대는 뭐야? 네가 키우는 거야?”

“펜리르라고 오빠 소환수야.”

“멋지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대단해. 사람도 태울 수 있는데 등에 타고 있으면 하늘을 나는 것 같아. 그리고 몬스터도 혼자서 다 잡아. 못하는 게 없는 만능이야.”

“우와~ 끝내준다. 나도 갖고 싶다.”

“꿈 깨! 세상에 딱 한 마리밖에 없는 최강의 소환수야. 우리 같은 허접은 구경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해.”

“만수 오빠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아까 양아치 해치우는 거 못 봤어? 영웅 길드 놈들 다 덤벼도 오빠 털끝 하나 못 건드려. 이스트 성에서 최고로 강해.”

“거짓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거짓말인지 아닌지 며칠 후면 알게 될 텐데 뻔히 들통 날 거짓말을 왜 해? 그리고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

“아니!”

“조심해! 한 번만 더 우리 오빠 깎아내리면 평생 골방에 가둬둘 거야.”

“남편 없는 년 서러워서 못 살겠네.”

“학교 다닐 때 남자 친구 없다고 매일 놀렸지? 배로 갚아줄 거야.”

“너 못 본 사이 많이 사악해졌다.”

“호호호호~ 사악의 끝이 뭔지 알려주마.”

수다를 떨며 펜리르에게 다가간 유정과 소희는 털이 부드럽다며 호들갑을 떨다가, 등에 올라타고, 꼬리를 잡아당기고, 입을 벌려 머리를 넣는 등 꼬마 악동처럼 펜리르를 괴롭혔다.   

‘여자들 원래 다 저러고 노나? 아오~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그런데 만수 오빠는 판게아에 언제 오신 거야?”

“나랑 같은 4차에 왔어. 얘기 안 했나? 오빠 기차에서 내 옆에 앉았었어. 그 인연으로 남편까지 된 거고.”

“두 달 만에 그렇게 강해질 수 있어?”

“오빠 친구가 도와줬어. 안타깝게 돌아가셨지만.”

“안 됐다. 오빠! 힘내세요.”   

“고마워!”

‘젠장! 있지도 않은 친구를 위해 고맙다는 말까지 해야 하다니... 이놈의 조동아리를 꿰매든지 해야지... 에휴~’

“오빠! 미안한데요. 오늘은 소희랑 같이 자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해.”

“고마워요! 대신 내일 오빠가 원하는 만큼 해줄게요. 사랑해요! 쪽~”

“알았어. 나 소파에서 잘 테니까 친구랑 침대에서 자.”

“네!”

친구랑 함께 자고 싶은 유정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다시는 못 본다고 생각했던 베프를 만났으니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는가? 밤새 얘기해도 모자랄 만큼 할 얘기가 많을 것이다.

오랜만(?)에 홀로 누워있자 잠이 오질 않았다. 고작 한 달이지만 매일 밤 유정이를 품에 안고 자자 허전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마문곡은 어떻게 하지? 좀 더 지켜보는 게 나을까? 깔끔하게 없애는 것도 괜찮은 생각인데... 소희와 인연이 닿은 걸 생각하면 무작정 죽이는 것도 바람직한 행동은 아닌데.’

‘아직 시간이 있으니 내일 한 번 더 보고 결정하자.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어. 성급하게 처리해서 좋은 일은 세상에 하나도 없어.’

마문곡을 죽이는 건 손바닥을 뒤집는 것만큼 간단했다. 그러나 사람 목숨을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XX고등학교 5인조는 싹수가 노란 놈들로 살려두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당해 가차 없이 손을 썼지만, 모든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해선 안 된다.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다시는 살릴 수 없어 꼭 죽여야 한다는 확신이 들거나, 서로 죽고 죽이는 치열한 전투가 아니면 세 번 이상 생각하고 손을 써야 했다.

“오빠!”

“어? 왜 벌써 일어났어? 밤새 한잠도 안자고 얘기한 거야? 안 피곤해?”

“피곤해 죽겠어요. 그런데 배가 너무 고파서 잠이 안 와요. 아침 먹고 자야겠어요.”

두 소녀가 밤새 웃고 재잘거리며 떠드는 통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동이 틀 때가 돼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자지도 못하고 다시 일어나야 했다. 밤새 어찌나 심하게 수다를 떨었는지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은 유정과 소희가 퀭한 눈이 되어 밥 달라고 깨웠다. 

“그렇게 좋아?”

“네!”

“둘도 없는 친구가 판게아에 왔는데도 좋아?”

“크크크크~ 좋아요.”

“못됐다.”

“그러게 말이에요.”

진정한 친구라면 친구가 판게아에 온 것을 마음 아파해야 한다. 그러나 혼자보다는 둘이 있는 게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 이런 마음으로 소희가 온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믿을 수 있는 친구가 옆에 있어 좋다는 뜻이었다. 

가기 싫은 곳에 꼭 가야 할 때 누군가를 데려갈 수 있다면 가족 아니면 친구를 떠올리게 된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는 사람은 죽을 맛이겠지만, 궁지에 몰리면 가장 믿을 수 있는 가족과 친구를 떠올리는 게 사람이었다. 그만큼 사람은 이기적이었다.

“우리 때문에 잠 못 잤죠? 미안해요! 할 얘기가 산더미 같아서 멈출 수가 없었어요.”

“괜찮아. 나도 밥 먹고 좀 더 자면 돼.”

“그럼 간단한 거로 빨리 시켜먹어요. 배도 고프고, 졸리기도 하고 미치겠어요.”

“그래.”

갓 구운 따끈따끈한 빵과 신선한 우유, 햄과 치즈로 가볍게 허기를 채우자 둘 다 소녀라는 것도 잊고 침대에 너부러졌다.

다행히 코는 골지 않았지만, 입을 하마만큼 크게 벌리고, 침까지 흘리고, 다리는 쩍 벌린 채 자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친구가 옆에 있으니 집에 있는 것 같겠지. 마음이 얼마나 편하겠어. 흐흐~’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호텔을 나왔다. 먼저 잡화점에 들러 소희가 입을 바지와 치마, 티셔츠. 속옷, 양말 등 필요한 것들을 잔뜩 사고 근사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전채 요리 안티파스토(Antipasto)로 입맛을 돋운 다음 이탈리아식 퐁듀 바냐 카우다(Bagna cauda)와 송아지 정강이뼈 고기에 토마토소스를 얹고 리조또를 곁들인 오소부꼬(Osso Buco)를 메인 요리로 먹었다.  

후식은 커피와 카카오, 마스카르포네 치즈 등을 넣어 만든 티라미수(Tiramisu)와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 젤라토(Gelato)였다. 

“유정아! 매일 이렇게 먹는 거야?”

“시간이 썩어 나냐? 이렇게 먹게.”

“그럼 오늘 특별한 날이라서 먹은 거야?”

“그래 이 바보야. 너 만나서 나도 처음으로 먹는 거다. 서울에서도 못 먹어본 음식을 판게아에서 먹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정말 나 때문에 먹은 거야?”

“겸사겸사 먹었어. 부담 갖지 마.”

“이거 엄청나게 비쌀 것 같은데... 얼마나 할까?”

“나도 몰라. 오빠! 이거 얼마에요?”

“알려주면 놀랄 텐데.”

“준비됐어요. 걱정하지 말고 말해주세요.”

“6개월.”

“셋이 밥 한 끼 먹는데 6개월요? 미친 거 아니에요?”

“아니! 한 명당 6개월.”

“어허허허~”

“컥!” 

놀란 유정과 소희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둘 다 고급 레스토랑은 처음이라 내가 알아서 주문해 음식값이 얼만지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다.

먹을 때는 입에서 살살 녹는다며 칭찬 일색이었지만, 값을 알고 나자 식당을 나오는 내내 바가지라며 욕했다.

판게아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밥 한 끼에 6개월이라고 하면 모두 목을 잡고 뒤로 쓰러질 것이다. 두 끼도 먹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이건 사치가 아니라 독약이었다.  

‘거지 같은 년들에게 바가지를 옴팡 쓴 게 도움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온 건 된장녀들에게 당한 경험이 있어 어떤 음식을 시켜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뜯어 먹으려 만나주는 걸 알면서도 얼굴이라도 한번 볼 생각에 한 끼에 20~30만 원하는 비싼 식당을 들락거렸다.

목공기술을 총동원해 인조인간 18호로 재탄생한 상판대기를 보기 위해 수백만 원을 날린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라도 예쁜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자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이 살았는지 알게 됐고, 그때 일만 떠올리면 대가리를 쥐구멍에 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대체 뭐가 예쁘다고 쫓아다녔을까? 좁쌀 같은 눈을 메스로 그어 커다랗게 만들고, 들창코에 플라스틱을 넣어 세우고, 메기 입술을 도려내 작게 만들고, 턱뼈는 대패로 밀어서 갸름하게 만든 얼굴이 그렇게 좋았나?’

‘내 인생에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를 하나 고르라면 된장년들 쫓아다녔을 때야. 그년들 판게아에 안 오나? 실리콘과 플라스틱을 몽땅 뽑아 가슴과 얼굴을 원상복구 시켜주고 목에 개줄 걸어 질질 끌고 다니고 싶네. 아오~ 생각할수록 열 받네.’

그러나 진짜 잘못은 된장녀가 아니라 허세에 찌든 나에게 있었다. 실체를 알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과분한 짓을 하고 다닌 내 잘못이었다.

그리고 나 같은 놈이 있어 된장녀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살 수 있었다. 결국 모든 원인은 나 같이 병신 짓하는 남자에게 있었다.

“오빠! 다시는 이런 집에 오지 마요. 마음 같아선 다 토하고 시간 돌려달라고 하고 싶네요.”

“저도 그래요. 밥값 얘기 듣고 체했어요.”

“심해?”

“더부룩해요.”

“포션 줄까?”

“헉!”

“호텔에 들어가 있어.”

“어디 가시게요?”

“코리아타운에 갈 거야. 어제 봤던 사람들 다시 한 번 보려고. 스쳐 지나가면 보는 것만으론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수 없잖아. 주변 사람들에게 평소 어떻게 행동하는지 물어봐야 정확하지.”

“같이 가요.”

“셋이 다니면 주목받게 될 수도 있어.”

“어제 일 때문에요?” 

“그런 것도 있고, 대낮부터 후드 뒤집어쓴 사람 셋이 나란히 걸어 다니면 사람들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잖아.”

“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껏 시켜 먹고 수다 떨고 있어.”

“알았어요. 빨리 갔다 오세요. 오빠 없으면 무서워요,”

“오빠! 조심하세요.”  

“그래. 금방 갔다 올게.”

무섭다는 유정과 눈이 동그래진 소희를 호텔 앞까지 데려다주고 코리아타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문곡을 만나 함께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고 없다면 아깝지만 깨끗하게 처리해 미래의 후환을 없앨 생각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예전 평판만 되면 좋을 텐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마음이 영 불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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