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20 사신(死神) 권소희 (20/68)

00020  사신(死神) 권소희  =========================================================================

                        

20.

“오~ 이년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야. 잘 됐다. 한 년으론 부족했는데, 두 년이면 며칠 심심하지 않겠다.”

“그러게. 오늘 땡잡았네. 이런 년이 아직 둘이나 남아있고. 빨리 끌고 가자.”

“야! 아까 얘기했던 대로 하는 거다. 저년은 나부터 먹는다. 뒤에 가서 딴소리하기 없기다.”

“나는 새로운 년 찜!”

“그런 게 어디 있어. 가위 바위 보로 정해야지.”

“먼저 찜한 사람이 임자인 거 몰라?”

“웃기고 있네. 나는 절대 양보 못 해.”

“나도.”

“너희 지금 나와 내 친구한테 하는 얘기니? 아니지? 내가 잘못 들은 거지?”

“당연히 너와 네 친구 얘기지. 여기 너희 말고 다른 여자 있어?”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천막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달아나 천막 안에는 불량배 다섯 놈과 소희, 유정이, 나 이렇게밖에 없었다.

“유정아! 친구 데리고 뒤로 물러서.”

“아니에요. 이런 놈들은 제가 처리할 수 있어요.”

“알아! 하지만 이런 더러운 놈들의 피를 네 손에 묻게 할 순 없어. 그리고 친구가 많이 놀랐잖아. 친구 위로해주고 있어.”

“알았어요.”

“꼴에 남자라고 나서는 거야? 우리가 누군지 몰라?”

“누군데?”

“우리는 이번에 영웅 길드에 가입하기로 한 XX고등학교 적토마 5인방이야.”

“그래서?”

“여자들 놓고 조용히 꺼지면 살려줄게. 형씨 안 그러면 죽을 수도 있어. 나이도 젊은데 계집 때문에 죽으면 너무 억울하잖아. 봐줄 때 가진 것 모두 내려놓고 꺼져.”

“싫다면?”

“그러면 사지를 부러뜨린 다음 네 계집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해주지. 소리가 아주 기가 막힐... 컥!”

칼집에서 빠져나온 망고슈가 번뜩이자 자신들을 적토마라고 소개한 다섯 고삐리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살려둬 봐야 나쁜 짓만 할 놈들이라 목을 그어 죽였다. 절반 넘게 목이 잘리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썩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이곳이 코리아타운이라 보는 눈이 많아 깔끔하게 죽인 것이지 사람들이 없는 곳이었다면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잘근잘근 토막을 쳐 죽였을 것이다. 

35년 만에 만난 내 소중한 짝을 욕보이는 놈은 절대 살려둘 수 없었다. 유정이가 아니더라도 내 여자, 내 물건에 욕심을 부리는 놈들은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어! 저 놈은... 한상준? 저 새끼 신시 길드원이었는데. 개과천선한 건가? 그림자 길드에서 심은 첩자였나? 에이~ 무슨 상관이야. 이미 죽었는데.’

죽은 고등학생 중에는 신시 길드원으로 활동하던 놈이 한 명 있었다. 평소 깊이 알고 지내던 놈은 아니었고, 오가며 인사 정도만 하던 놈이었다.

미래의 신시 길드원을 죽였지만, 미안함이나 죄의식은 없었다. 신시 길드원이 꼭 좋은 놈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조강지처인 유정을 탐한 놈을 살려둘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미래가 계속 바뀌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은 과히 좋지 않았다.    

   

“유정아! 친구 후드 로브 입혀.”

“네!”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린 정소희 몸에 회색 후드 로브를 입혀 천막을 빠져나왔다. 천막 밖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물결처럼 갈라졌다.

이 중 영웅 길드에 속한 놈이 있을 수도 있고, 밀고하고 이득을 취하려는 놈이 있을 수 있어 숙소가 있는 상점가가 아닌 왕궁 쪽으로 움직였다.

미행자가 있는지 1시간 동안 거리를 배회한 후 아무도 따라오는 사람이 없자 호텔로 들어갔다.

“많이 배고프지?”

“아.아니! 괴.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꼬르륵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데. 오빠! 소희 먹을 것 시켜주세요. 푸짐하게요. 그리고 욕실에 들어오지 마세요. 소희 씻길 거예요.”

“알았어.”

유정이와 먹었던 요리를 다시 주문하고 펜리르를 소환해 침실을 지키게 한 후 옥상에 올라가 건물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영웅 길드에 가입한다고 했지 가입한 것은 아니라서 영웅 길드가 나설 가능성은 없었다. 

그리고 가입했다고 해도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 영웅 길드 마스터 김영웅은 1차로 들어온 사람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반칙(?)과 던전 선점으로 크게 앞선 나와 비교하면 수준이 한참 아래였다.

부하들도 숫자만 많았지 특출한 놈은 몇 명 없어 몰려와도 무서울 게 없었다. 그러나 자기 몸도 지킬 수 없는 유정과 권소희가 있어 되도록 분쟁을 피하는 게 좋았다.

‘사신 권소희가 유정이 친구일 줄이야... 사람 인연은 알 수 없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네.’

“어서 먹어.”

“너는 안 먹어?”

“나는 오빠랑 조금 전에 많이 먹어서 배불러.”

“그래도 같이 먹자. 혼자 먹기 미안해.”

“알았어.”

뻘쭘해 하는 소희를 위해 유정이 음식을 먹기 좋게 잘라 앞에 놓인 접시에 올려주었다.   

“펜네부터 먹어. 방울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가 입맛을 돋울 거야.”

“와~ 보고만 있어도 군침이 흘러. 이런 음식을 다시 먹게 되다니... 정말 꿈만 같아. 혹시 이거 꿈 아니야? 너를 만난 것도, 호텔에 있는 것도, 맛난 음식이 있는 것도 모두 꿈 아닐까?”

“꿈인지 아닌지 확인시켜줘?”

“응! 아얏!”

“어때? 이제 현실처럼 느껴져?”

“야! 볼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네가 확인시켜달라고 해서 그런 거다. 나 죄 없어.”

소희가 꿈만 같다고 하자 유정이 소희의 뺨을 잡고 꽈배기를 만들 듯 비틀었다. 살이 떨어져 나가는 통증에 뺨이 빨갛게 익은 소희가 많이 아픈지 볼을 계속 쓰다듬으며 투덜댔다. 

“많이 굶었지?”

“아니야. 빵 사서 먹었어.”

“정말?”

“응!”

“어떻게?”

“빵 파는 사람이 있어 시간을 주고 사 먹었어.”

“팔 내밀어 봐.”

000:87:09:12:55

“얼마 주고 샀어?”

“30일.”

“어떤 빵을 샀는데 30일이나 줘?”

“딱딱한 보리빵.”

“한 개?”

“어!”

“이런 나쁜 놈들. 하나에 12시간밖에 안 하는 걸 30일이나 주고 팔아? 정말 양심도 없는 놈들이네.” 

천막만 나서도 곳곳에 지뢰밭이 깔려 물 먹는 일, 화장실 가는 일조차 여자들에겐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그래서 생겨난 게 빵과 물을 파는 놈들이었다. 몸과 시간 빼앗는 놈들보다 양심적이었지만, 빵값을 60배나 부풀려 팔았고, 물도 한 컵에 12시간이나 받았다.

엄청난 이권이 남는 장사로 혼자서 할 경우 피바람이 불어 영웅과 환인, 고구려 길드가 이익을 삼등분하는 조건으로 음성적으로 했다.

당연히 자신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고, 놈들이 사라진 후에야 진실이 밝혀졌다.

“어서 먹어.”

“응!”

유정이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어주자 소희가 웃으며 받아먹었다. 유정에게 잘못된 성 지식을 알려준 친구가 소희였다.  

둘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단짝 친구로 집도 3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매일 등하교도 함께했다.     

“너 실종되고 걱정 많이 했는데,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디 계셔?”

“돌아가셨어.”

“...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흐윽~”

“괜찮다니까 왜 그래? 울지 말고 어서 먹어.”

위로 받아야 할 유정이 소희를 위로하는 게 우스웠지만, 유정은 슬픔을 조금 걷어낸 뒤였고, 소희는 낯선 곳에 떨어져 마음이 극도로 불안한 상태였다.

“우리 아빠 잘 지내? 혹시... 그사이 새장가 간 거 아니야?”

“회사도 그만두시고 집에서 매일 술만 드셔.”

“에휴~ 너희 엄마 아빠도 걱정 많이 하겠다.”

“우리 엄마 아빠는 그래도 두 분이 같이 계셔 서로 위로해줄 사람이라도 있지만, 너희 아빠는 아줌마도 안 계시잖아. 너희 아빠가 더 걱정이지.”

“잘 이겨내실 거야. 강인한 분이니까.”

친구의 가족까지 걱정하는 것만 봐도 유정과 소희의 친분이 아주 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유정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잘됐어.’

유정이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나 눈에는 슬픔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걱정할까 봐 일부러 더욱 활달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침착하고 배려심이 깊고 통찰력이 뛰어난 천재 소녀라도 어머니의 참혹한 죽음을 감당하기엔 나이가 너무 어렸다. 

이제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생겨 한시름 덜 수 있게 됐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진정한 친구는 피보다 진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인사해! 내 생명의 은인이자 하늘 같은 우리 남편.”

“남편?” 

“응!”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착한 척, 조신한 척 내숭이란 내숭은 혼자 다 떨더니 몰래 호박씨를 깠네.”

“헤헤헤헤~”

“섭섭해!”

“뭐가?”

“그래도 내가 베프인데, 말도 안 하고 시집가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야이 바보야! 여기가 서울이야? 어떻게 알려줘?”

“아 맞다.”

“바보짓 그만하고 오빠에게 인사나 해.”

“안녕하세요. 유정이의 둘도 없는 친구 권소희에요.”

“반가워. 박만수야.”

“만수? 야구 선수 이만수? 칠수와 만수의 그 만수? 키키키키~”

“크크크크~

“.......” 

‘친구 아니랄까 봐 사람 이름 갖고 놀리는 건 둘이 똑같네. 젠장!’  

“죄송해요! 갑자기 웃음이 터져서.”

“하도 많이 들어서 괜찮아.”

“혹시... 삐진 거 아니죠?”

“우리 오빠 그런 거로 안 삐져. 마음이 얼마나 넓은데 그래. 내 말이 맞지 오빠?”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고 하더니 딱 그 짝이네. 한 대 쥐어박을까?’

펜네와 파르팔레, 스테이크, 감자튀김, 포도주까지 3인분도 넘는 음식을 소희 혼자서 먹어치웠다.

167cm의 날씬한 몸에 그 많은 음식이 들어간다는 게 불가사의했지만, 그것도 모자랐는지 빵으로 접시에 남은 양념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보라색 짧은 단발머리, 커다란 눈, 긴 다리로 볼륨감은 유정보다 조금 떨어지지만, 자연스럽게 눈이 따라가는 아주 예쁜 소녀였다.      

  

유정과 소희 둘 다 남학생들이 매일 꽃을 들고 교문 앞에 장사진을 이룰 만큼 학교에서 알아주는 미인으로 연예 기획사 명함도 100장 넘게 받았다.

그러나 둘 다 확고한 꿈이 있어 유정은 케임브리지 대학 건축학과를 택했고, 소희는 시카고 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용산은 왜 간 거야? 학교 땡땡이쳤어?”

“네가 없는 교실에 들어가기 싫어서 한강 보러 가다가 이렇게 됐어.”

“정말? 남자 만나려고 땡땡이 친 거 아니야?”

“진짜야! 네 빈자리 보면 계속 눈물만 나서 이렇게 된 거라고. 책임져.”

“어떻게 책임질까? 데리고 살까?”

“응!”

“나 남편 있는 여자야.”

“낮에는 나랑 살고 밤에는 남편이랑 살면 되잖아.”

“오! 좋은 생각인데.”

“그럼 나 너랑 함께 있어도 돼?”

“어디 갈 때 있어?”

“아니!”

“그런데 그런 걸 왜 물어봐. 당연히 나랑 있어야지.”

“오빠가 불편해할 수도 있잖아.”

“오빠! 소희 불편해요?”

“아니!”

“들었지?”

“오빠! 뒤에 가서 딴소리하기 없기에요.”

“알았어.”

“너나 다른 놈팡이 만나서 간다고 하지나 마. 그러면 다시는 안 볼 거야.”

“평생 시집가지 말고 네 옆에 있으라고?”

“응!”

“못됐다. 정말 못됐다.”

“크크크크~”

수다스러운 소녀 사이에 끼어 있자 젊어지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그러나 대화에 낄 수 없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조용히 듣고만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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