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19 사신(死神) 권소희 (19/68)

00019  사신(死神) 권소희  =========================================================================

                        

19.

“오빠! 저기 대머리 아저씨 지나가요. 아는 척할까요?”

“그래!”

“길동이 아저씨! 길동이 아저씨!”

“어? 살아 있었구나. 정말 다행이다.”

“아저씨 덕분에 살았어요.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무사하시니?”

“돌아가셨어요.”

“이런... 참 좋은 분이셨는데. 안됐구나.”

유정이 길동이 아저씨라 부른 대머리 아저씨가 친한 척 유정이에게 다가가 어머니의 죽음을 위로했다. 

지난번 얻어먹은 빵을 잊지 못해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하는 것으로 유정이 아닌 내 얼굴을 힐끔거리며 어서 빵을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사냥 실력이 형편없어 오늘도 굶었습니다.”

“그럼 이거라도 드십시오.”

“감사합니다.”

이럴 것을 대비해 싸온 딱딱한 보리빵을 건네자 빼앗듯 덥석 받아 입에 마구 쑤셔 넣었다.  

2~3일은 굶었는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불쌍해 한 개 더 내밀자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볼이 터지도록 밀어 넣었다.

“사람들이 많아졌군요. 이번에는 어디서 왔습니까?”

“용산에 차원의 틈이 열려 전철 두 대가 한꺼번에 넘어왔습니다. 화장실도 몇 개 없고, 우물도 달랑 한 개인데, 한꺼번에 2,500명이나 늘어나 엉망이 됐습니다.”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골치 아픈 일도 많지만, 좋은 점도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던 놈들이 그쪽에 달라붙어 며칠 편하게 지내고 있지요. 하하하하!”

“대형 길드가 생겼는데, 아직도 그런 놈들이 있습니까?”

“그놈들이 그놈들인데 바뀌는 게 있겠습니까? 똑같지요.”

대머리 아저씨는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내 얼굴을 보고도 말을 놓지 않았다. 두 달 넘게 판게아에 살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면 무조건 머리를 조아렸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온몸에 각인한 아저씨는 시종일관 높임말을 사용했다.

그리고 딱딱한 보리빵이지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의 비위를 건드린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로 물어보지 않는 것도 알아서 술술 불었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어디 있습니까?”

“이리로 오십시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유정아! 아니지! 유정씨도 이쪽으로 오세요.”

“아... 네.”

    

내 눈치를 살핀 대머리 아저씨가 유정에게도 높임말을 썼다. 유정이도 대머리 아저씨가 왜 이러는지 알아 순순히 받아들였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우물에서 가장 먼 서쪽 천막에 머물렀다. 성벽을 끼고 있는 코리아타운은 최대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공터로 우물 바로 옆 동쪽에는 나무로 만든 길드 건물이 몇 채 있었고, 동쪽에는 기존 사람들의 천막이, 그 너머에 신입생들의 천막이 있었다.   

  

메마른 황무지에도 등급이 있듯이 물이 있는 우물가가 코리아타운에선 최고로 좋은 땅이었다.

이유는 우물이 하나밖에 없어서였다. 많은 사람이 우물 하나로 연명해야 해 우물에서 멀어질수록 물 구하기 힘들어 가장 나쁜 땅으로 취급받았다.

“이번에 들어온 사람은 4차 때와 마찬가지로 전철에 타고 있어 대부분 혼자 왔습니다. 덕분에 놈들이 이용해먹기 편해 하루에 수십 명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 됐습니다. 지금부터는 우리끼리 천천히 둘러보겠습니다.”

“혹시 찾으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래 봬도 마당발이라 웬만한 사람은 다 꿰고 있습니다.”

“그냥 궁금해서 온 겁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남은 게 이것밖에 없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보리빵 두 개를 내밀자 허리가 땅에 닿을 듯 숙인 대머리가 감사하다는 인사를 침이 마르도록 한 후 사라졌다.

“나이 먹고 살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은 불쌍한데, 엄마와 저 둘이 있을 때는 인간 취급도 안 하다가 오빠가 먹을 것을 주자 안면을 싹 바꿔 손바닥을 비비는 모습은 정말 추하네요.”

“이곳에 있는 사람 90%는 대머리와 같아. 저 사람만 그런 거 아니야.”

“알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더 싫어요.”

“모든 사람을 좋아할 필요는 없어.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다 미워할 필요도 없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과 네게 소중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만 잊지 않으면 돼.”

“네!”

시무룩해진 유정을 품에 안고 천막을 누볐다. 최대 정원이 50명인 천막에 100명을 밀어 넣자 콩나물시루처럼 빡빡했다.

땀 냄새, 발 냄새, 몸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 천막 밖의 악취까지 더해지자 천막 안은 썩은 내가 진동했다.

그러나 후각이 마비된 사람들은 악취조차 느끼지 못한 채 충격에 멍하니 앉아있거나, 몸을 웅크리고 누워 두고 온 가족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넋을 놓고 있었다. 

“오빠! 찾는 사람 있어요?”

“그렇게 보여?”

“천막마다 다 들어가 사람들을 하나씩 훑어보는데, 그렇게 안 보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요?”

대머리 아저씨를 돌려보내고 천막을 돌아다니며 너부러진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확인했다. 

대부분 사고로 인한 충격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공포, 굶주림, 두려움에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적응력이 빠른 사람은 삼 일도 안 돼 정신을 차리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대부분은 한 달 이상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했다.      

출근하다 끌려온 사람들은 입고 있던 간편한 옷이 전부였다. 갈아입을 옷도 없고, 씻지도 못해 꼬질꼬질한 상태였다.

기차와 배, 여객기에 탔던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 가던 중 끌려와 여벌의 옷과 속옷, 화장품 등 잡다한 것들이 있어 상태가 이들처럼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선임이 없거나 있어도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지금처럼 수탈이 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판게아에 완벽히 적응한 선임들을 만나 겉은 물론 속옷까지 털리며 심한 사람은 반라의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스트 성은 사시사철 초여름 날씨로 이불이 없어도 얼어 죽지 않았다.  

대신 엄지손가락보다 큰 모기와 사람 살을 유난히 좋아하는 주먹만 한 육식 바퀴벌레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괴롭혔다.

놈들은 몬스터가 아닌 일반 곤충으로 잡아도 시간을 주지 않았고, 물리면 심하게 붓고 미치도록 가려워 악당만큼이나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사람들 눈 보는 거야.”

“눈을 보면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있어요?”

“정확하지 않지만, 눈빛이 살아 있는 사람은 신세 한탄만 하고 있지는 않지. 그런 사람은 어떻게든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확률이 높아 우리 팀에 포섭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저는 어때요? 눈빛이 살아 있나요?”

“알 수 없어.”

“왜요?”

“사람을 필요에 따라 보는 것과 좋아해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달라. 좋아하면 그런 거 안 보여.”

“그 말은 저를 깊이 사랑한다는 말이죠?”

“매일 확인하고 싶어?”

“네! 하루에 백 번이라도 확인하고 싶어요.”

“너는 내 첫 번째 여자이자 조강지처야. 네가 떠나지 않으면 헤어지는 일 절대 없어. 그러니 괜한 일에 심력 소모하지 마. 알았지.”

“헤헷~ 알았어요.”

18번째 천막에서 훗날 대도로 불리는 마문곡을 발견했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마문곡은 어디 있어야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않는다는 걸 안다는 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천막에 동화되어 있었다.   

  

이게 마곡문의 가장 큰 강점으로 그때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고 은밀히 접근해 순식간에 물건을 훔쳐 달아났다.

마문곡의 실제 나이는 40대 중반으로 20대 중반으로 보이던 그때와는 모습이 사뭇 달랐다. 더군다나 머리 스타일까지 달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원수, 친구 등을 찾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유정이와 주아처럼 젊은 나이에 넘어온 사람은 모습에 큰 차이가 없지만, 판게아에서 5년 이상 활동한 사람은 나이가 20대 초반에서 후반의 혈기 왕성한 모습이라 특별한 특징을 기억하지 못하면 찾을 수 없었다.

마문곡은 목에 커다란 사마귀 점이 있었다. 마문곡이 죽던 날 나도 그 자리에 있어 목에 난 커다란 사마귀 점을 잊지 않고 있었다. 

“오빠! 저 사람이 마음에 들어요? 내 눈에는 특별함이 보이는 않는데.”

“일단 눈여겨 보는 거야. 가자!”

“또 보러 가요?”

“다 둘러봐야지.”

“천막 들어갈 때마다 사람들 시선 받는 거 별로인데.”

“얼굴도 안 보이는데 무슨 상관이야.”

“두려움, 경계심, 혐오감이 느껴지니까 그렇죠.”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천막에 들어서면 누워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놀라 벌떡 일어났다.

선임(?)들의 지독한 텃세와 괴롭힘, 협박, 수탈 등에 낯선 사람만 나타나도 경기를 일으켰다.

그래도 밖에 있는 것보단 천막에 있는 것이 안전했다. 몬스터를 잡으러 성문 밖에 나갔다가 선임들에게 끌려갈 수도 있었고, 상점에 빵을 사러 갔다가 몹쓸 짓을 당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물을 마시러 우물에 가는 것도 먼저 온 사람들의 천막이 즐비한 통로를 지나가야 해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마지막 25번째 천막에서 사신 권소희를 찾았다. 사신이란 별호처럼 신시 길드에 가장 큰 피해를 준 사람이 권소희였다.

환한 대낮에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은신술 스티그마로 도배한 권소희는 전투력은 뛰어나지 않아도 암습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해 당시 최고 강자들도 여러 명 목숨을 잃었다.   

권소희를 처음 만난 건 판게아에서 활동한 지 10년 되던 해였다. 그림자 길드에 들기 전으로 아는 동료의 주선으로 얼굴을 익히게 됐다.

20살 앳된 모습의 권소희는 판게아에서 10년 넘게 생활한 게 맞는지 의심할 만큼 밝고 애교가 넘쳤다.

권소희가 그림자 길드에 가입 한 건 남자친구가 신시 길드와 분쟁에 휘말려 죽게 된 후였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복수를 다짐한 권소희는 200명이 넘는 신시 길드원을 죽였다.

“어?”

“왜? 아는 사람 있어?”

“잠깐만요. 맞는지 확인 좀 해볼게요.” 

유정이 아는 사람을 찾았는지 급히 천막 오른쪽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권소희가 교복 차림의 고삐리 다섯 놈에게 둘러싸인 곳이었다.

놈들은 5차에 들어온 XX고등학교 학생들로 혼란의 와중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개 같은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혹시 소희 아니니?”

“누.누.누구세요?”

“소희야! 나야 유정이. 네 둘도 없는 단짝친구 심유정!”

“저.정말 유정이야?”

“그래!”

“유정아! 흐윽~”

“많이 힘들었지?”

“나... 나... 나... 너무 무서웠어! 흑흑흑~”

“이제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곳에 떨어져 일주일 넘게 두려움에 떤 소희는 친구를 만나자 눈물을 펑펑 쏟았다.

짧은 치마에 반소매 교복 차림인 소희는 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반쪽이었다. 일주일간 거의 굶다시피 해 볼은 홀쭉했고, 머리는 산발에 세수도 한 번도 못했는지 얼굴에는 검댕이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하얀 블라우스도 검게 변해 있었고, 착륙하다 다쳤는지 팔과 다리에 긁힌 자국이 가득했다.

유정이 친구를 알아본 게 용할 정도로 미스코리아도 이 정도로 분장하면 추녀라고 느낄 만큼 거지가 따로 없었다. 

이런 모습이 소희를 지금까지 안전하게 지켜줬다. 발랄하고 깜찍한 소녀의 모습이었다면 벌써 끌려가 몹쓸 짓을 당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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