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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6 첫 키스 (16/68)

00016  첫 키스  =========================================================================

                        

16.

“마을에는 굶주림을 참지 못해 몸을 파는 여자가 한둘이 아니었어요. 끌려가 몹쓸 짓을 당하는 여자도 많았고요. 저는 정말 복 받은 거예요.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복 받은 거야. 평생 꿈꾸던 여자를 만났으니까.”

“정말요?”

“응!”

“그런데도 다른 여자를 데리고 살 거예요?”

“하아~ 말 못할 사연이 있어. 다른 건 다 양보해도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어. 미안해!”

“피이~” 

남자들이 여자를 수집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먹을 거였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죽음은 굶어 죽는 아사(餓死)였다. 

아사는 영양 섭취가 극도로 부족해 죽는 것으로 심각한 영양실조가 1~2달 이상 지속되면 장기가 파괴돼 목숨을 잃었다.

이 과정이 사람을 돌아버리게 했다. 기근이 들면 자식도 잡아먹는다고 배고픈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게 먹을 것으로 보였다.

그만큼 참기 힘든 고통으로 놈들은 먹을 것으로 여자를 유혹했고, 지독한 배고픔에 지친 여성은 피눈물을 삼키며 노리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빵과 햄 몇 개에 몸을 파는 게 믿어지지 않겠지만, 3일 이상 굶은 여자에게 빵 한 덩어리를 주면 뒤에서 오입하든 말든 빵 먹는 일만 신경 쓴다고 했다.

유정은 빵 한 조각에 몸을 파는 여성을 수없이 목격하고, 자신도 굶주림이 어떤 고통인지 직접 경험하며 서울에 있을 때와는 사고(思考)가 크게 바뀌었다.

‘여자에 대한 욕심이 하늘에 닿았다고 해도 그렇지 숫처녀에 만으로 19살밖에 안 된 소녀에게 첩을 거느리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유후~ 박만수! 많이 바뀌었는데. 아주 좋아. 맘에 들어. 음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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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돌아온 이스트 성은 새로운 사람들로 북적였다. 8일 전 6차로 들어온 사람들은 역대 최대 인원으로 출근길 전철 두 대가 동시에 차원의 틈으로 빨려들며 5,000명 정도가 한 방에 넘어왔다.

그러나 3분의 1 이상이 착륙 과정에서 죽고, 중상을 당한 사람들도 3일을 버티지 못해 절반인 2,500명 정도가 살아남았다.

이 인원만 해도 엄청난 것으로 남아 있는 사람의 약 2배였다. 5차로 들어온 고등학생들도 한 달도 안 돼 대부분 죽었고, 4차까지 들어온 4,200명도 착륙과정에서 절반 정도 죽고 배고픔과 사냥, 괴롭힘 등에 인원이 계속 줄어 1,30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오빠! 바로 사냥 갈 거예요?”

“오랜만에 성에 왔으니 며칠 편하게 쉬었다가 가자.”

“어디서 쉴 건데요? 설마 코리아타운에 있으려는 건 아니죠?”

“그러려면 뭐하러 성에서 쉬어? 밖이 낫지.”

코리아타운은 한국 사람들이 머무는 남동쪽 공터를 부르는 이름으로 남서쪽 중국 지역은 차이나타운, 북동쪽 일본인 지역은 제페니즈타운, 그사이에 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필리핀타운, 인도네시아타운 등으로 불렸다.

“여관 갈 거예요?”

“아니. 여관은 시설이 너무 나빠서 천막에서 지내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호텔로 가자.”

“호텔요? 엄청나게 비싸지 않아요?”

“놀라지 마. 방값만 하루에 180일이야.”

“헉! 너무 비싸요. 그냥 필요한 거 사서 던전으로 사냥 가요. 그게 좋겠어요. 하룻밤 자는데 180일이라니 말도 안 돼요.”

“가끔 여유를 부릴 때도 있어야지 사람이 숨통이 트여. 매일 사냥하고 거친 음식만 먹을 순 없잖아.”

“이틀이면 밥값까지 하면 최소 2년은 들 텐데... 안 돼요. 시간 벌겠다고 오빠가 잠도 못 자고 고생한 걸 제 눈으로 봤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쓸 수 없어요.”

“아이고! 우리 예쁜이가 벌써 아줌마 다 됐네.”

“히잉~ 아줌마라니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아직 숫처녀에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으면 잔말 따라와.”

“히잉~ 아까운데...”

박만수 : 067:198:13:15:33

심유정 : 000:159:22:17:09

상점에 들러 잡템을 모두 처분하자 시간이 30년 이상 늘었다. 펜리르가 자기 몫을 충분히 하자 사냥 속도가 3배로 빨라져 벌어들이는 시간이 하루에 1년이나 됐다.

타임슬립 직전과 비교하면 애들 장난 같은 수준이지만, 판게아에 온 지 석 달도 안 됐다는 걸 고려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유정도 열심히 훈련해 마을에 오기 열흘 전부터 사냥에 나섰고, 자기 손으로 159일을 버는 기염을 토했다.

싸움 빼고 다 잘한다는 유정의 말은 거짓이었다. 운동신경도 나쁘지 않았고, 눈썰미도 좋아 한 번 가르치면 곧잘 따라 했다.

그러나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운동을 좋아하고 싸움을 잘한다고 사냥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피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혈액공포증에 걸려 몬스터를 죽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겁이 많거나, 공황장애를 앓거나, 판게아로 넘어오면서 사고 후유증을 심하게 앓는 등 정신질환을 극복하지 못해 많은 사람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다행히 이런 병도 없었고, 몬스터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 손을 쓰는데도 주저함이 없어 큰 시름을 덜었다.  

사냥 속도가 빨라지자 잡템을 담을 가방이 모자라 100kg짜리 마법 배낭을 한 개 더 산 다음 잡화상점에서 100m 떨어진 호텔 노을 진 동쪽 하늘로 들어갔다. 

“우와~ 침대다.”

“침대가 그리웠어?”

“네! 푹신푹신한 침대가 너무너무 그리웠어요.”

“텐트 싫어?”

“아니 좋아요. 하지만 뽀송뽀송한 침대에서 자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죠. 그리고 사이즈가 킹이잖아요. 오빠랑 같이 데굴데굴 굴러도 이만큼이나 남아요. 헤헷~”

하루 180일이나 내는 호텔답게 노을 진 동쪽 하늘은 시설이 아주 훌륭했다. 방 2개에 넓은 거실, 아늑한 욕실, 전망 좋은 베란다까지 있었고, 침대도 킹사이즈에 욕조도 두 명이 들어가 다리를 뻗어도 남을 만큼 컸다.

“오빠! 나 따뜻한 욕조에서 샤워하고 싶어요.”

“물 받아 줄게.”

“그러지 말고 같이 씻어요.”

“정말?”

“응!”

“알았어.”

사십구재가 아직 끝나지 않아 초야를 치르진 않았지만, 한 달 동안 이불을 같이 덮고 자 서로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았다.

옷을 홀딱 벗겨놓고 보진 않았지만, 잘 때 속옷 차림으로 품에 안겨 예쁜 몸매도 매일 밤 봤고, 빵빵한 가슴과 탱탱한 엉덩이도 수시로 주물러 같이 목욕하자는 말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펜리르를 소환해 방비를 단단히 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거품이 잔뜩 일어난 커다란 욕조에 유정이 얼굴만 살짝 내밀고 있었다. 

밤도 아닌 낮에 나체를 드러내자 많이 창피했는지 볼이 빨갛게 익어있었다. 나까지 그러면 서먹서먹해질 수 있어 옷을 모두 벗고 욕조에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밤에 손으로만 더듬던 고추가 밝은 대낮에 떡하니 나타나자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고 흉측했는지 비명과도 같은 탄성을 터뜨렸다.

“허업!”

“무슨 비명이 그래? 못 볼 거 봤어?”     

“네! 이상한 거 봤어요.”

“알고 있었잖아?”

“생각한 것보다 몇 배는 더 크고, 색깔도 시커멓고, 모양도 더 흉측해요.”

“밤새 붙잡고 자면서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만질 때는 이상하지 않았는데 직접 보니까 징그러워요.”

“그래서 싫어?”

“싫다는 게 아니라 징그럽다고요.”

“그게 그거 아니야?”

“징그러운 건 적응하면 괜찮아져요. 싫은 건 죽어도 싫은 거고요. 하늘과 땅 차이죠.”

“하하하하~ 그런 심오한 뜻이 있는 줄 몰랐네. 이리와.”

반대편에 누운 유정을 불러 팔베개를 해주며 입을 맞췄다. 혀를 입속에 넣자 기다렸다는 듯 빨아대며 징그럽다던 고추를 꽉 잡았다.

왼손을 겨드랑이에 넣어 풍만한 가슴을 주무르며, 오른손으론 미끈거리는 체액을 토해내는 음부를 살살 만졌다.

“흐응~ 기분 좋다.”

“처녀가 애무를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처녀는 애무 좋아하면 안 되는 법 있어요?”

“말로는 당할 수가 없다. 하하하하~”

“그래도 나 예쁘죠?”

“응!”

“얼마나 예뻐요?”

“하늘만큼 땅만큼! 아니 우주만큼 예뻐!”

“헤헷~ 오빠! 우리는 언제쯤 이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요?”

“암흑신전이나 얼음성채 둘 중 하나를 공략하고 그곳에서 1년쯤 열심히 사냥하면 이런 집은 사고도 남아.”

“지금 실력으로 안 된다고 했잖아요.”

“서쪽의 스켈레톤 장군 바누니언의 던전과 호랑 무늬 사마귀 던전, 북쪽의 병정개미 던전에서 유니크 아이템과 스티그마를 맞춘 다음 열심히 사냥해 스티그마 성능과 스탯을 올리고 가야지.”

“얼마나 걸리는데요?”

“넉넉잡고 6개월이면 될 거야.”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시간을 단축하는 건 반대예요. 좋은 집이 없어도 괜찮고, 맛있는 거 안 먹어도 괜찮아요. 오빠가 옆에 있으면 평생 던전을 전전하며 텐트에서 자도 좋아요.”

“우리 공주님을 초라한 텐트에서 늙어 죽게 할 순 없지. 열심히 일해서 좋은 집 구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네에~”

판게아를 집어삼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힌 순 없었다. 실현하기 힘들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그런 얘기를 하면 꼬치꼬치 캐물을 수 있어 과거로 타임슬립했다는 사실을 걸릴 수도 있었다.

유정은 상큼 발랄하고 애교도 많지만, 통찰력도 뛰어나 말조심을 해야 했다. 앞뒤가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말을 하면 대번에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다.

“오빠! 지금 해요.”

“뭘 해?”

“섹스요. 우리 지금 섹스해요.”

“... 며칠 있다가 하자.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엄마 사십구재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그럴 순 없어. 어머니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해.”

“엄마가 오빠 품에 바로 안기라고 했어요. 그러니 마음 쓰지 않아도 돼요.”

“그거야 내가 너를 버릴까 봐 어머니가 걱정해서 하신 말씀이야.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마음은 멋진 결혼식을 기대하셨을 거야.”

“지구 관습에 얽매이지 마요. 여기는 지구가 아니라 판게아에요.”

유정의 말에 둔기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20년 동안 판게아에서 생활하며 항상 지구와 판게아를 비교했다.

지구에서 태어나 35년을 살아 비교하는 게 당연했지만, 사사건건 지구와 판게아를 비교하는 건 잘못돼도 많이 잘못된 짓이었다.

지구와 판게아를 천년만년 비교해도 판게아가 지구가 될 수 없었고, 지구가 판게아가 될 수 없었다.

지구는 지구였고, 판게아는 판게아였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곳은 지구가 아니라 판게아였다. 그러면 당연히 판게아의 방식대로 살아야 했다.

살지도 않는 지구를 들먹거리는 것은 한국에 사는 놈이 사사건건 미국은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 떠드는 것과 같은 짓이었다.  

‘이번에는 내 뜻대로 살겠다고 굳게 다짐하고도 지구 관습을 버리지 못했네. 넘어온 지 두 달 조금 넘은 유정이만도 못하니... 바보야! 바보야! 제발 정신을 좀 차리자. 언제까지 멍청이로 살래?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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