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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5 첫 키스 (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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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첫 키스

“오빠! 키스해줘요.”

“진짜?

“네!”

키스라는 말에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여자와 입을 맞춰본 건 초등학교 1학년 못난이 짝꿍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총각 딱지를 뗀 미아리 텍사스촌의 30대 중반 여성은 입맞춤은 생략한 채 아랫도리만 벗고 올라탔다.

오랜 경력으로 단번에 내가 처음이란 것을 안 여성은 서비스로 3번이나 정액을 빼줬지만,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싫어해 가슴을 한 번 만진 것이 전부였다.

그 이후로 여자 냄새는 맡아보지도 못했고, 유일한 내 안식은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구닥다리 노트북이었다. 

그마저도 없었다면 뻗치는 욕정을 해결할 길 없어 미친놈처럼 밤거리를 뛰어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지. 나 키스해본 적 한 번도 없는데.”

“나이가 몇인데 키스도 한 번 못 해봤어요? 오빠! 모태솔로에요?”

“하아~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미안하다.”

“전혀 미안하지 않아도 돼요. 저도 처음이에요. 키스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끼리 TV와 영화에서처럼 열심히 해봐요.”

“너도 처음이야?”

“저 정말 조신하게 살았어요. 이 나이 되도록 남자 손목도 안 잡아봤어요. 고마운 줄 아세요.”

급속한 성 개방으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남자 경험이 없는 여학생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성 경험이 있는 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문란함은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줬다. 

이것이 미국드라마의 영향인지, 연예인들이 걸핏하면 끌어안고 방방 떠서 그런 것인지 알 순 없지만,  중·고등학생들이 사람이 오가는 대로에서 끌어안고 입술을 쪽쪽 빠는 모습은 과히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나도 못한 것을 쪼그만 것들이 하고 지랄이야. 짜증 나!’

유정이 눈을 꼭 감고 입술을 내밀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을 살며시 유정이의 입술에 붙이자 부드러운 감촉과 살 내음이 확 퍼지며 하늘이 빙빙 돌았다.

터질 듯이 요동치는 심장의 명령을 받아 거칠게 입술을 빨았다. 키스는 오늘이 처음이었지만, 고물 노트북을 통해 수없이 봐왔던 모습을 뇌가 기억하고 있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입술을 탐닉했다.

“흐응~”

유정이의 콧소리에 짜릿한 쾌감을 느끼며 혀를 입속에 밀어 넣었다. 딱딱한 이빨이 철옹성처럼 혀를 막아서자 작은 틈새를 찾아 이빨을 샅샅이 훑었다.

“흐윽~”

집요한 공략에 단단한 성문이 살짝 벌어지자 사악한 뱀처럼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가 달콤한 혀를 정복했다.

반항하는 혀를 사정없이 몰아치며 허리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자 유정이 입을 벌리고 달뜬 신음을 토해냈다.               

“하아~ 하아~ 하아~ 오빠! 잠깐만 쉬었다 해요.”

“싫어?”

“아니요. 좋아요. 너무 좋아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심장이 터지지 않도록 잠시만... 잠시만 쉬어요.”

“싫은 거 아니지?”

“네! 정말 좋아요. 쪽!”

불안한 마음에 재차 묻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쌩끗 웃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온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유정과 바꿀 수 없었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 달콤한 입술, 입가에 걸린 미소, 내 가슴을 누르는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부드러운 살결, 향긋한 머리카락 냄새까지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 내 보물이었다.

“오늘이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 처음이야.”

“너무 능숙한 거 아니에요?”

“나이가 35살이야. 직접 해보지 않아도 눈과 귀로 충분히 습득할 나이야.”

“어디서 습득했는데요?”

“비밀!”

“매일 포르노 봤구나? 그래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는 거죠? 그렇죠?”

“.......”

“말 못하는 거 보니까 맞네. 그것도 한두 번 본 게 아니죠? 수백 편은 봤겠죠?”

“애들은 몰라도 돼.”

“몰라도 되는 애를 데리고 키스한 거예요?”

“.......”

“말주변이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네요. 가벼운 농담에도 말문이 막히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사람을 상대할 수 있겠어요?”

“차차 나아지겠지.”

“35살까지 못 고쳤으면 죽을 때까지도 못 고쳐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 모르세요?”

갑자기 잔소리꾼 마누라 모드로 변한 유정이 말주변이 없다고 쫑크를 줬다. 살코양이로 변한 유정의 모습에서 여자에게 틈을 보이면 안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죽도록 사랑한다, 백 배 더 사랑하겠다, 좋아만 해주면 평생 곁에 있겠다고 떠들던 천사가 순식간에 잔소리꾼 아내로 변신했다.

“사람 상대할 때 절대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돼요. 말문이 막힐 때를 대비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생각해 놓으세요. 판게아가 모든 걸 힘으로 해결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말에서 밀리면 좋을 게 없어요. 아셨죠?”

“알았어.”

“화났어요?”

“아니!”

“화났다면 죄송해요. 제가 사랑하는 오빠가 다른 사람에게 얕보이는 게 싫어서 그래요. 제 마음 이해하시죠?”

“응!”

“사랑해요! 쪽~”

시무룩하게 말하자 유정이 사랑한다는 말과 뽀뽀로 기분을 달래줬다. 19살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사람 어르고 달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여자는 요물이라고 하더니 나이에 많고 적음이 없나 보네. 아우~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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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방패 올려. 너무 내리면 얼굴로 날아오는 걸 막을 수 없다고 했잖아. 그리고 막는 것보다 피하는 쪽에 우선하라고 했지. 상대의 공격이 폭발형이면 방패만으론 막을 수 없어.”

“알았어요.”

“말로만 알았다고 하지 말고 자세 더 낮추고 발을 계속 움직여. 가만 서 있으면 곧바로 대응할 수 없어. 더 빨리!”

“네!”

천 년 묵은 가시나무를 잡은 다음 날 아침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진한 키스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시작된 빡센 훈련에 유정이 단내를 토했다.

예쁘고 사랑스러워 온종일 품에 안고 내려놓고 싶지 않았지만, 사랑한다면 더욱 혹독하게 다뤄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유정과 나 둘 다 다쳤다. 

20년간 수많은 커플이 죽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지켜봤다. 몬스터와 싸우다 눈이 맞은 커플, 처음부터 같이 들어온 커플까지 수많은 커플이 몬스터와 싸우다 죽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죽기도 했지만, 어처구니없을 만큼 허망하게 죽는 커플도 많았다.

허망하게 죽은 커플의 공통점은 한쪽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것이었다. 약한 쪽은 대부분 여성으로 대한민국 남성은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태어나 여자를 보호하는 데만 급급했고, 이런 행동이 커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몬스터는 정정당당과는 지구에서 안드로메다만큼 거리가 먼 놈들로 협공은 물론 수백 마리가 떼거리로 몰려드는 일도 잦아 서로 합심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자를 너무 애지중지한 나머지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 차이가 점점 더 벌어져 종국에는 짐이 되고 말았다.

지구라면 안방마님을 집에 고이 모셔놓고 혼자 다니면 되지만, 판게아에선 가장 안전한 곳이 남편 품이라 어디를 가든 데리고 다녀야 했다.

이 때문에 남자의 실력에 맞는 던전이나 필드에 들어갔다가 공격받는 여자를 구하려다 둘 다 처참하게 죽거나, 원한을 맺은 상대가 약한 여자를 공격해 남자까지 죽는 일이 다반사였다.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남자도 있었지만, 힘든 판게아 생활을 함께하며 애정이 남달라 끝까지 죽음을 함께하는 커플이 훨씬 많았다.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내가 악마로 보일 만큼 혹독하게 다뤄야 했다. 그래야 유정이도 살고 나도 살았다.

“오빠!”

“응?”

“키가 좀 커진 것 같네요.”

“그렇게 보여?”

“네! 한 2~3cm? 그 정도 커진 것 같아요.”

“조금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모를 줄 알았는데, 그걸 알아보네. 유정이 눈썰미 좋네.” 

“제가 싸움만 못 하지 다른 건 다 잘해요. 이래 봬도 케임브리지 대학 건축학부에 합격한 수재에요.”

“케임브리지면 수재가 아니라 천재지. 우와! 유정이 나랑은 레벨이 틀리네. 난 지방대 출신인데.”

“판게아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싸움 잘하는 사람이 장땡이죠.”

“지금이야 그렇지만 생활이 안정되면 달라질 거야. 누가 또 알아. 집에 갈 수 있을지.”

“집이요?”

“지금 말고 먼 훗날에.”

“정말 그런 날이 오면 좋겠네요.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집에 가도 알아볼 사람이 없잖아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체력 스탯을 열심히 올리면 나처럼 나이도 젊어지고, 오래 살 수 있어. 문제는 오랜 시간이 흐르고 돌아가면 우리를 알아볼 사람이 없다는 거지.”

“결국 판게아에서 뼈를 묻어야 한다는 말이네요.”

“말이 그렇게 되나?”   

지난번에는 과거로 타임슬립해 엄마를 만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럴 가능성이 없었다. 

빠른 시간 안에 루시퍼를 죽인다고 해도 놈이 없으면 차원의 통로를 열 수 없어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루시퍼만 한 힘을 얻는다면 차원의 통로를 열 가능성도 있지만, 공식을 모르면 말짱 헛수고라 집에 돌아가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속 편했다.   

“집에 돌아갈 수 없어도 괜찮아요. 이렇게 멋진 낭군을 만났으니까요.”

“나 난봉꾼으로 살 건데.”

“진짜요?”

“응!”

“왜요?”

“그게 꿈이었어.”

“저는 남편이랑 둘이서 알콩달콩 사는 게 꿈이었는데... 그래도 어쩌겠어요. 약속은 약속이니 지켜야죠. 대신 저를 가장 많이 사랑해야 해요. 알았죠?”

“이런 얘기 하면 기분 나쁘지 않아?”

“나빠요. 그것도 아주 많이. 전 같으면 화내고 다시는 안 봤을 거예요. 하지만 이곳은 서울이 아니잖아요. 판게아에 사는 만큼 이곳 문화에 적응해야죠.”

“마을에 나 같은 사람 많았어?”

“제가 본 것만 열 명도 넘었어요. 지금은 더 많아졌겠죠.”

여자를 여러 명 거느린 남자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물었다. 내가 많은 여자를 거느리겠다는 목표를 세운 결정적 이유가 나만 없고 남들은 많아서였다.

나보다 얼굴도 못나고 실력도 형편없는 놈들이 2~3명씩 끌고 다니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며 한이 맺혀 이번 삶은 절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유정이 말처럼 여자를 여러 명 거느린 남자는 계속 늘어났고, 10년 후에는 100명 이상 거느린 놈들도 있었다.

지금은 사람이 많지 않아 이런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2~3년 후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10년 후에는 나처럼 여자 하나 없는 남자는 고자 취급을 받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지구와 마찬가지로 빈부의 격차 때문이었다. 그래도 지구는 남녀평등사상을 존중하는 나라가 많아 대부분 일부일처제였지만, 판게아는 법도 원칙도 없어 능력만 되면 100명, 200명을 거느려도 흠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이 거느릴수록 능력 있는 남자라는 소리를 들어 여자를 수집하듯 모으는 놈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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