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14 깊은 밤의 서정곡 (14/68)

00014  깊은 밤의 서정곡  =========================================================================

                        

14.

“유정아! 그만 일어나. 아침 먹자.”

“아!”

잠에서 깨어난 유정이 고개를 돌려 좌우를 둘러봤다. 아주머니가 옆에 없어 울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금세 표정을 고치고 쌩끗 웃어줬다. 

“잘 잤어?”

“네! 오빠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따뜻하게 잤어요. 고마워요.”

“아니야. 나도 네가 옆에 있어 좋았어.”

옆에 있어 좋았다고 말하자 유정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품에 꼭 안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아직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라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이불을 말끔하게 개고 나온 유정이 차가운 개울물로 얼굴을 씻고 오자 준비한 수프와 빵, 햄을 건넸다.

혼자였다면 딱딱한 빵을 으적으적 씹어 먹는 것으로 아침을 대신했겠지만, 천사를 옆에 두고 그럴 수 없어 안 하던 짓을 했다.

“오빠!”

“응?”

“이제 식사는 제가 준비할게요.”

“안 그래도 돼.”

“아니에요. 그러고 싶어요.”

“정말?”

“네! 오빠가 쫓아내지만 않으면 평생 곁에서 식사 차려드리고 싶어요.”

‘드디어 식순이에서 벗어나는구나. 앗싸~’

“고마워!”

“그런 말씀 마세요. 저는 죽을 때까지 오빠에게 받은 은혜를 갚을 수 없어요.”

“그런 말 하지 마. 사람은 원래 돕고 살아야.”

“네!” 

‘젠장! 또 미안해지네.’

따지고 보면 유정이에게 미안할 건 없었다. 유정을 구해준 것만 해도 평생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베풀었다.

그리고 변명 같지만, 맹세를 깨고 유정을 구했고, 아주머니도 구할 생각으로 최동일 패거리를 찾아 나섰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미안해할 거 없어. 인생은 각자 책임지는 거야. 누가 도와주는 게 아니야. 만약 유정이가 알게 된다고 해도 떳떳하게 얘기해야 해. 유정이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건 자기중심적인 성격밖에 안 되는 거야.’

‘나는 세상을 구할 영웅이 아니야. 내가 판게아에 다시 돌아온 것은 내 일신의 안위와 엄마를 지키겠다는 생각이었지, 루시퍼로부터 인류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생각 따위는 없었어.’

‘맹세했던 대로 사는 거야. 판게아를 내 것으로 만들어 진시황 부럽지 않게 사는 거야. 그게 내가 할 일이야.’      

   

아침 식사가 끝나자 유정이 뒷정리와 설거지를 했다. 요리사도 설거지는 싫어한다고 음식은 만드는 것보다 치우는 게 더 귀찮았다.

자취 생활을 10년 넘게 하자 웬만한 음식은 다 했다. 멋진 요리는 못 해도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등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은 30분이면 뚝딱 만들어냈다.

그러나 오랜 자취생활은 사람을 귀차니즘에 빠지게 했다. 반찬 종류가 한 가지씩 줄어들다가 결국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회사에서 대충 때우고, 저녁은 술자리로 대신하고, 주말은 라면 하나로 하루를 살게 했다.   

유정이 설거지하는 동안 텐트를 걷고 모닥불을 피운 흔적을 깨끗이 지웠다. 특히 텐트를 친 흔적은 누구도 알아볼 수 없게 지웠다.

기차와 비행기, 버스 등이 통째로 넘어와 텐트가 있는 게 이상할 게 없었지만, 혼란한 와중에 텐트를 챙긴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20년간 던전을 전전했지만, 텐트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본적이 없었다. 아주 사소한 행동이 덜미를 잡혔다. 최대한 조심하고 조심해야 했다. 

음식재료가 가득 담긴 마법 배낭을 유정에게 넘겨주고 밤새 펜리르가 잡은 몬스터에서 아이템을 수거했다.

붉은 가시나무의 나무 장갑 : 민첩+4

가시나무 수호자의 튼튼한 나무 갑옷 : 힘+10  체력+20   

펜리르가 잠든 사이 잡은 몬스터는 총 169마리로 매직 아이템 1개와 레어 아이템 1개, 일반 아이템 5개가 나왔다. 

스탯이 높진 않았지만, 없는 것보다 나아 갑옷은 내가 착용하고, 장갑은 유정이에게 줬다. 

“펜리르만 있어도 시간이 모자라는 일은 없겠네요. 그렇죠?”

“먹고 사는 건 해결되지. 하지만 발전이 없어. 발전이 없다는 건 다른 사람에게 잡아먹힌다는 뜻이야. 그러고 싶어?”

“아니요.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해?”

“죽도록 노력해야죠.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만큼 강해져야죠. 오빠만 빼고요.”

“그 마음 잊으면 안 돼.”

“네! 오빠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게요.” 

   

“우리 유정이는 말하는 것도 참 예뻐. 흐흐~”

“오빠에게만 이럴 거예요. 다른 남자에겐 얼음보다 차갑게 대할 거예요. 오빠와 아빠를 뺀 세상 남자가 모두 싫어요.”

“에휴~”

최동일과 전강수, 박종진으로 인해 유정은 남자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사무쳤다. 세 사람 때문에 세상 모든 남자를 싫어하는 건 잘못이었다.

그러나 엄마를 죽게 하고, 자신을 창녀보다 더 심하게 다루려 했던 아픈 기억이 가슴을 온통 채우고 있어 어떤 말로도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그리고 나는 거기에 빠졌으니 바뀌지 않아도 그만이고. 다른 남자를 미워할수록 내게 더 매달릴 테니까. 흐흐흐흐~’

가시나무 수호자 열 마리를 부하로 거느리고 나타난 천 년 묵은 가시나무는 꼴에 보스라고 신장이 5m가 넘었다.

티잉!

퍽!

천 년 묵은 가시나무는 방어구가 없었지만, 껍질이 아주 단단해 화살이 깊숙이 박히지도 않았다.

그리고 화살이 박혀도 몸이 나무라 출혈도 없어 가지와 몸통을 자르기 전에는 타격을 줄 수 없었다.

대신 불에는 매우 약해 펜리르가 화염 브레스를 뿜어내자 화들짝 놀라 피하느라 허둥대기만 했다. 

나무형 몬스터가 불을 두려워하는 걸 전부터 알고 있어 천 년 묵은 가시나무는 펜리르가 상대했고, 나는 떨거지인 가시나무 수호자를 처리했다.

까악~ 까악~ 까악~

쾅!

음산한 울음을 토해내며 날아간 죽음의 날개가 가시나무 수호자를 들이받자 굉음이 일며 주위에 있던 놈들까지 폭발에 휘말려 산산이 부서졌다.

광역 폭발 소환수 죽음의 날개는 투자한 시간에 따라 폭발 데미지가 증가했다. 100년을 투자하면 폭발력이 10% 증가했고, 200년 20%, 300년 30%, 400년 40%, 500년 50%, 600년 75%, 700년 100%, 800년 150%, 900년 200%, 1,000년 300%까지 마법 폭발 데미지가 증가했다.

까마귀로 가시나무 수호자를 처리하는 사이 펜리르는 천 년 묵은 가시나무를 화염으로 사정없이 몰아쳤다.

성냥불 하나에 울창한 숲이 재가 될 만큼 불은 나무의 천적으로 천 년 묵은 가시나무는 펜리르의 화염을 피해 달아나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날카로운 가시로 공격하면 한 발 빠르게 움직여 가볍게 가시를 피했고, 땅에서 가시덩굴을 자라게 해 발을 묶으려 하면 하늘 높이 뛰어오르며 화염을 뿜어냈다.

“크아악~”

어린아이 다루듯 천 년 묵은 가시나무를 가지고 놀던 펜리르가 재빨리 앞질러가 화염을 토하자 얼굴에 불벼락을 뒤집어쓴 가시나무가 비명을 질러댔다.

얼굴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놈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자 가까이 다가간 펜리르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화염을 골고루 뿌려댔다. 

천 년 묵은 가시나무의 빛나는 나무 반지 : 힘+20 체력+50 지력+30

천 년 묵은 가시나무의 빛나는 가시(단검류) : 운+10 힘+35 민첩+55  

스티그마 샘솟는 나무의 기운(1/1,000)

하급 포션 1개

  

천 년 묵은 가시나무는 유니크 아이템 2개와 하급 포션 1개 그리고 세 가지 스텟을 동시에 올려주는 스티그마 샘솟는 나무의 기운을 선물로 주고 재가 되어 사라졌다.

힘, 체력, 지력 스탯을 향상해주는 샘솟는 나무의 기운은 100년을 투자하면 1%, 200년 3%, 300년 5%, 400년 10%, 500년 15%, 600년 20%, 700년 30% 800년, 40%, 900년 50%, 1,000년 75%까지 스탯의 성능을 향상해줬다. 

그러나 스티그마 시간을 달리는 모래부터 투자해야 해 당분간은 효과를 볼 수 없었다.

망고슈와 가시 단검은 둘 다 칼날 길이가 35cm로 글라디우스보다 많이 짧았지만, 유니크 아이템으로 스탯을 크게 올려줬고, 날카로움도 몇 배는 더 해 당분간 주력 무기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름 : 박만수 

칭호 : 펜리르, 파라오, 가시나무 던전의 지배자(스탯+3)  

시간 : 027:210:11:10:25

운   :  73.0+88

힘   : 121.0+218  

체력 :  73.0+123  

민첩 : 121.0+288

지력 :   1.0+53  

스티그마 은빛 늑대 펜리르(100/1,000) : 크기 5m, 화염 브레스 사용

스티그마 시간을 달리는 모래(1/1,000) : 효율 0.01% 향상

스티그마 죽음의 날개(1/1,000) : 폭발형 까마귀 소환  

스티그마 샘솟는 나무의 기운(1/1,000) : 힘, 체력, 지력 0.01% 향상

펜리르의 빛나는 백금 목걸이 : 운+10 힘+40 민첩+50

펜리르의 빛나는 백금 반지 : 운+10 힘+40 민첩+50

천 년 묵은 가시나무의 빛나는 나무 반지 : 힘+20 체력+50 지력+30 

투탕카멘의 빛나는 망고슈 : 운+20 힘+40 민첩+40  

천 년 묵은 가시나무의 빛나는 가시(단검류) : 운+10 힘+35 민첩+55 

가시나무 수호자의 튼튼한 나무 갑옷 : 힘+10  체력+20  

파라오의 빛나는 가죽 장갑 : 운+10 힘+30 민첩+60

파라오의 빛나는 가죽 신발 : 운+10 체력+50 민첩+30 

파라오의 신기한 가죽 벨트 : 운+10 지력+20  

펜리르의 토시 : 운+5 

“좋은 스티그마를 구해도 시간 투자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 거야. 이스트 성 주변에선 열심히 노력해도 한계가 있어.”

“다음은 어디로 갈 거예요?”

“한 달간 여기서 사냥할 거야.”

“던전을 선점하는 게 이익이라고 했잖아요?” 

“너 평생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닐 거야? 너도 사냥하는 법을 배워야지 평생 식순이로 살 순 없잖아.”

“저에게 사냥하는 법을 가르쳐주시려고 그러는 거예요?”

“응!”

“제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신경 쓰세요? 엄마 부탁 때문에 그래요?”

“아니!”

“그럼 왜요?”

“우리 엄마 빼고 네가 처음으로 내게 따뜻한 말을 해줘서. 여자에게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어.”

“정말요?”

“응. 그래서 마을에 돌아오자 마자 너를 찾았어. 고마움에 대한 감사 표시를 하려고. 대머리 아저씨 기억나?”

“기차에서 오빠 옆에 계셨던 나이 드신 분 말하는 거예요?”

“그래. 그 대머리 아저씨에게 너하고 어머니 어디에 계시냐고 물어서 밖으로 사냥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됐어.”

“그러면 우연히 만난 게 아니라 절 찾아오신 거였어요?”

“응.”

자신을 찾아 사냥터를 돌아다녔다고 말하자 유정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판게아로 넘어온 후 주변에는 자신의 시간과 육체를 노리는 남자들뿐이었다.

         

먹을 것을 주고 접근하는 남자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남자도, 하다못해 같은 기차 칸에 탔던 남자들도 모두 무언가를 노리고 접근했다.

유정이 남자를 극도로 미워하게 된 이유는 최동일과 전강수, 박종진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지만, 마을에서 자신을 노리던 남자들도 크게 한몫 거들었다.

그런데 내가 기차에서 말 한마디 걸어줬다는 이유로 사냥터까지 찾아와 자신을 구해줬다는 것을 알게 되자 벅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와락 품에 안겼다.

“오빠! 조금 전까지는 엄마를 묻어주고, 원수를 갚아주고, 목숨을 구해준 은혜로 오빠를 따르려고 했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진심으로 오빠를 사랑해요. 죽을 때까지 오빠가 사랑하는 것보다 백 배 더 사랑할 거예요.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오빠 편이 되어 오빠 곁에 있을 거예요. 죽기 전에는 절대 오빠 곁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내가 다른 여자 사귀어도 계속 사랑할 거야?”

“상관없어요. 저를 싫어하지만 않으면 오빠가 어떤 짓을 해도 저는 끝까지 사랑할 거예요.”

열병처럼 찾아온 사랑에 유정의 얼굴이 빨개졌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찐한 사랑이 싹트듯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온 따뜻한 손길에 소녀는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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