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4 괴물 늑대 펜리르(Fenrir) =========================================================================
4. 괴물 늑대 펜리르(Fenrir)
100kg을 넣을 수 있는 마법 가방은 등에 메는 아주 기본적인 형태로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 있어 가로세로 3m 크기에 최대 100kg을 수납할 수 있었다.
또한, 무게를 10분의 1로 줄여줘 100kg을 가득 담아도 10kg을 든 것처럼 가벼웠고, 도난방지 기능이 있어 등록자가 아니면 타인은 안에 든 물건을 꺼낼 수 없었다.
마법 가방이 지구에 나타난다면 놀라 까무러칠 만큼 대단한 보물이었지만, 판게아에선 아주 흔한 아이템으로 이스트 주민들은 100kg짜리 가방은 기본적으로 하나씩 갖고 다녔다.
그러나 이방인에겐 엄청난 고가의 물건으로 최소 1년은 지나야 간신히 장만할 수 있었다.
5년이나 주고 마법 배낭을 산 건 등산 배낭과 텐트가 든 가방을 넣기 위해서였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다니면 사람들의 표적이 돼 귀찮은 일이 끊이질 않았다.
또한,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면 몬스터의 공격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없었고, 몬스터를 잡고 얻은 아이템도 보관할 곳이 부족해 마법 가방은 꼭 필요한 필수 아이템이었다.
이스트 성에서 싸우고, 물건을 빼앗고, 살인을 저지르는 등 범죄를 저지르다 경비대에 걸리면 엄청난 벌금(시간 벌금)을 물어야 해 될 수 있는 한 성에선 싸움을 피했다.
그러나 성을 벗어나면 그때부턴 무법천지로 언제 등 뒤에서 칼과 화살이 날아올지 몰랐다.
320년 치 스탯을 찍어 도둑놈들을 무서워할 이유는 없었지만, 눈먼 화살에 맞아도 죽는 게 사람으로 완벽한 힘을 갖추기 전까진 최대한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허름한 후드 로브도 하나 주십시오.”
“색깔은 뭐로 드릴까요?”
“회색으로 주십시오.”
“60일입니다.”
‘젠장! 다 떨어진 후드 로브가 60일이라니... 도둑놈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었네.’
판게아의 물가는 살인적이었다. 허름한 여관에서 하룻밤 묵으며 딱딱한 빵과 멀건 수프로 세끼를 해결하면 15일이 빠져나간다.
여관에서 24일만 보내면 싸늘한 시체로 변한다는 뜻으로 부자가 아니면 여관과 음식점은 갈 엄두도 못 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서울도 판게아와 다를 것이 없었다. 서울은 화폐가 돈이고, 판게아는 화폐가 시간이란 게 달랐지만, 시간당 5,580원을 받는 걸 고려하면 시간이 곧 돈으로 둘 다 시간에 쫓기며 사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서울은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곳 중 한곳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하루살이 인생은 서울이나 판게아나 다를 것이 없었다.
등산 배낭과 가방을 마법 가방에 쑤셔 넣고 허름한 회색 후드 로브를 겉에 입어 마법 배낭을 가리고 상점을 빠져나왔다.
10분 전부터 잡화상점 옆 으슥한 골목에 건장한 남성 열 명이 숨어 상점을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상점에 들어가는 걸 보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놈들로 으슥한 골목이나 성 밖에서 나를 죽이고 시간과 물건을 빼앗으려는 속셈이었다.
문을 나서자마자 전속력으로 동문을 향해 달렸다. 내가 빠르게 달려가자 화들짝 놀란 놈들이 우르르 쫓아왔다.
그러나 민첩이 잘해야 4~5밖에 안 되는 허접스러운 놈들이 민첩이 121이나 되는 나를 따라올 순 없었다.
동문을 빠져나가 평원과 언덕을 지나 동쪽 바위산으로 향해 순식간에 사라지자 닭 쫓던 개들이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저 새끼 뭐야? 초짜 아니었어?”
“분명 상점에 들어갈 때 옷이 새것이었는데... 이상하네요.”
“열차에나 가자니까 왕건이 있다고 지랄을 떨어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다른 놈들은 지금쯤 열차에 몰려가 신나게 줍고 있을 텐데.”
“가봐야 불에 타 주울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들어온 놈들은 야수 새끼들이 내일까지 돌봐줘 근처에 다가갈 수도 없고요.”
“그래도 지금처럼 빈손은 아닐 거 아니야.”
“이제 겨우 30분 지났습니다. 지금 가도 늦지 않습니다.”
“그럼 빨리 가자. 뭐라도 건져야 먹고 살지.”
“네, 형님!”
대장인 김주발의 명령에 똘마니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복창했다. 이들은 석 달 전 여객선을 타고 제주도로 가다 판게아로 끌려온 양아치들로 불량서클 사각 머리의 멤버들이자 XX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다음 달 인천 발발이파 밑으로 들어가게 돼 그 일을 축하하기 위해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끌어모아 제주도로 3박 4일 여행을 가다 판게아로 오게 됐다.
배 후미에 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사각 머리 일당은 판게아에 적응하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며 온갖 나쁜 짓을 도맡아 했다.
경비병이 없는 으슥한 곳으로 사람들을 끌고 가 시간을 빼앗고, 어렵게 사냥한 아이템과 고기를 빼앗고, 여자들을 성폭행하는 등 양아치의 본성을 마음껏 드러냈다.
이스트 성 경비대는 치안유지를 위해 폭력, 절도, 강간, 살인 등 범죄 행위가 적발되면 엄청난 벌금(시간)을 부과해 질서를 유지했다.
그러나 경비병이 발견하지 못한 범죄와 성 밖에서 일어난 일, 이방인의 신고는 받아주지 않아 사각 머리는 어두운 곳과 성 밖에서 공공연하게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면서 중국과 일본 등 타국 이방인들로부터 동족을 보호한다며 자신들을 대한민국 경찰이라고 불렀다.
다행히 한 달 후 여객기에 탑승했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사각 머리에 대항하는 단체를 조직하며 전처럼 대놓고 범죄를 저지르진 못했다.
그러나 사각 머리를 몰아내겠다고 조직한 단체들도 시간이 지나며 폭력조직으로 변질돼 힘없는 노인과 아이, 여자들을 괴롭혔다.
“누구 저 새끼 얼굴 본 사람 있냐?”
“모자와 로브를 깊이 눌러써 보지 못했습니다.”
“진짜 이상하네. 상점을 단번에 찾아간 것도 그렇고, 로브를 사 얼굴과 몸을 가린 것도 그렇고, 가지고 들어간 가방이 사라진 것도 그렇고, 길을 아는 것처럼 동쪽으로 곧장 달려간 것도 그렇고, 1km 거리를 100m 달리기 선수만큼 빠르게 달리는 것도 그렇고, 온통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야. 판게아에서 몇 년 굴러먹은 놈 같단 말이야. 안 그래?”
“저희가 가장 먼저 왔다고 경비병이 말했습니다. 놈이 먼저 왔을 리가 없습니다.”
“다른 도시에서 왔을 수도 있잖아?”
“도시와 도시 사이엔 상상할 수 없는 강력한 몬스터가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그걸 뚫고 왔다면 엄청난 강자라는 뜻입니다. 그런 실력자가 우리를 피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하긴 그렇지. 그런 강자가 도망갈 이유가 없지. 이곳은 힘이 법인 세상이니까.”
“몬스터가 우글대는 필드에 계속 있을 순 없을 테니 오늘내일 다시 나타날 겁니다. 그때 어떤 놈인지 알아봐도 늦지 않습니다.”
“영 찜찜한데.”
“형님! 시간 없습니다. 빨리 가셔야 신발이라도 한 켤레 주울 수 있습니다.”
“신발? 빨리 가자.”
불안한 눈으로 동쪽을 바라보던 김주발이 신발이란 말에 급히 동생들을 데리고 동문으로 사라졌다.
사각머리 일당이 사라지자 문 주위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모습을 드러냈다.
호랑이 없는 곳에 늑대가 왕이라고 김주발과 똘마니들은 힘없는 사람들에겐 사신보다 더 두려운 존재였다.
서울에선 양아치를 겁낼 일이 많지 않았지만, 이곳은 인간의 법과 질서가 통하지 않는 판게아였다.
살아남기 위해선 철저하게 굽히든, 눈치껏 행동하든, 강해지든, 확실하게 자기만의 색채를 드러내야 살 수 있었다.
놈들을 멀리 떼어내자 마법 배낭에서 석궁용 화살을 꺼내 허리에 차고 왼손에는 석궁을 오른손에는 글라디우스를 쥐고 펜리르가 있는 바위산을 향해 출발했다.
펜리르의 던전이 있는 동굴까지는 대략 20km 거리로, 가는 도중 뿔 토끼, 거대 말잠자리, 버섯돌이, 슬라임, 긴 꼬리 붉은 여우, 거대한 줄무늬 고양이, 말총머리 너구리, 주먹코 사슴, 멍청한 고블린 전사, 우둔한 고블린 궁수, 재빠른 고블린 족장 포키 등이 있었다.
이중 고블린 족장 포키는 민첩이 붙은 고블린의 구리반지와 최하급 포션, 스티크마를 무작위로 드롭해 보이는 족족 잡아야 했다.
아직 스티그마를 구하지 못해 공격 스킬이 없었지만, 스탯을 384나 올려 고블린 따위를 겁낼 일은 없었다.
마을 밖에는 뿔 토끼와 버섯돌이를 잡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있어 달려드는 몬스터가 없었다.
그러나 낮은 언덕이 연속된 구릉지에 들어서자 사냥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거대 말잠자리와 슬라임, 긴 꼬리 붉은 여우가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이놈들은 힘 10, 민첩 10일 때도 잡던 놈들로 거대 말잠자리는 단단한 이빨로 물어 뜯는 능력밖에 없어 가까이 다가오면 글라디우스로 머리를 내려쳐 죽였고, 슬라임은 잡히면 생명력을 빨려 위험했지만, 느려 터져 젤리를 잘라 먹듯 여러 조각으로 잘라 죽였다.
긴 꼬리 붉은 여우는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러 상대를 위협한 후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치명상을 입혔다.
그러나 기세만 대단할 뿐 여우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 겁먹지만 않으면 뿔 토끼를 잡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몬스터를 잡자 빨갛고 파랗고 하얀 구슬이 떠올라 시간이 표시된 왼팔로 날아와 스며들었다.
몬스터를 잡으면 시간이 담긴 작은 구슬이 죽인 사람에게 날아와 알아서 시간을 충전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숨어서 막타를 노리는 놈들이었다. 사냥은 막타를 때린 사람이 시간을 독식하는 시스템이라 숨어서 막타만 노리는 비열한 놈들이 있어 항상 주변을 경계해야 했다.
‘긴 꼬리 붉은 여우도 먹을 만하네. 전에는 후추와 소금이 없어 코 막고 억지로 먹었는데, 양념하니까 나쁘지 않네.’
셰퍼드만 한 긴 꼬리 붉은 여우는 살이 도톰해서 먹을 게 많았다. 가죽을 벗기고 지방이 적은 갈비 부위를 잘라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다음 은은한 불에 굽자 냄새부터 예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판게아로 올 결심을 굳히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며 적응 훈련을 시작했다. 주말마다 야영장에 출근해 파이어 스틱으로 모닥불도 피우는 연습도 하고, 장작에 고기도 구워 먹고, 토끼 가죽도 벗겼다.
타임슬립전 20년 동안 하던 일이라 몸에 밴 일이었지만, 그때의 몸과 지금의 몸은 전혀 달라 연습이 필요했다.
야영 훈련과 더불어 새로 산 석궁도 하루에 100발 이상 쏘며 감각을 익혔고, 쌍검술도 연마하는 등 나름 바쁜 한 달을 보냈다.
‘밥하고 김치만 있으면 완벽한데. 이런... 욕심이 하늘에 닿았네. 그때는 그을음이 잔뜩 묻은 고기 한 점만 입에 넣어도 행복해 미치고 팔짝 뛰었는데, 배가 부르니까 못하는 생각이 없네. 쯔쯔쯔쯔~’
한국인에게 밥 없는 식사는 앙꼬 없는 찐빵처럼 식사한 것 같지 않았다. 근사하게 칼질을 해도 밥 한 숟가락은 꼭 입에 넣어야 ‘밥 먹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곳은 이스트 성도 아닌 이름 없는 숲이었다. 쌀을 가져올 순 있지만, 가져와 봐야 양이 얼마 안 됐고, 먹으려면 씻고 안치고 뜸 들이고 설거지까지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 일찌감치 포기했다.
‘택배로 배달되면 끝내줄 텐데. 크크크크~’
점심을 거하게 먹고 잡생각까지 실컷 한 후 시간을 확인했다.
005:364:23:50:55
맛있게 점심을 먹고도 시간이 늘었다. 32마리를 잡은 것에 비하면 얻은 시간도 얼마 안 됐고, 아이템도 하나 없었지만, 첫날 시간이 늘어나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1년 동안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줄이며 사냥에 몰두했지만, 시간이 늘지 않아 하루도 편하게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쓸만한 스티그마를 3개 모은 3년 차가 돼서야 며칠 쉬어도 목숨이 간당간당하지 않을 수준에 도달했다.
‘이래서 고수에겐 세상이 놀이터고, 하수에겐 지옥이라고 했구나. 330년 충전하고 시작하니까 세상이 아름답게만 보이네. 흐흐흐흐~’
펜리르의 던전을 향해 동쪽으로 나아가자 호랑이만 한 거대 줄무늬 고양이와 나만 한 크기의 말총머리 너구리, 야생마보다 큰 주먹코 사슴이 나타났다.
거대 줄무늬 고양이는 긴 꼬리 붉은 여우의 2배가 넘는 체급으로 힘도 세고, 빠르기도 최소 2배 이상 빨랐다.
그러나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호랑이가 아닌 고양이로 석궁 한 방에 머리가 꿰뚫려 죽었다.
말총머리 너구리는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니며 거칠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자신의 장기를 버리고 겉멋만 잔뜩 든 형태로 네 발로 뛰어다닐 때보다 속도가 느려 화살과 칼을 피하지 못했다.
농구공보다 더 큰 코를 달고 있는 주먹코 사슴은 커다란 뿔을 앞세워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것밖에 할 줄 몰라 가볍게 피하며 글라디우스로 뒷다리를 잘라 쓰러뜨린 후 목을 찔러 죽였다.
이놈들은 긴꼬리원숭이보다 두 배 많은 시간을 줬고, 녹슨 철검 한 자루와 구리반지 한 개도 줬다.
둘 다 옵션이 없는 일반 아이템으로 쓸모가 없었지만, 상점에 팔면 시간을 충전할 수 있어 버리지 않고 챙겼다.
‘와~ 고블린 족장 포키를 보고 반갑다는 생각을 하다니... 미친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