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03 판게아 (3/68)

00003  판게아  =========================================================================

                        

3.

‘기차에서 죽기 싫으면 정신 차려야 해! 도착하는 순간 충격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박만수! 정신 차려! 고딩하고 노닥거릴 때가 아니야.’

맨 뒤 칸이라고 100%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열차는 차원의 틈에 빨려 들어가 판게아로 이동하는 것이지 마법에 의해 안전하게 순간 이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판게아에 도착한 열차가 땅에 충돌하며 창문을 뚫고 나가 죽는 사람, 의자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쳐 죽는 사람, 복도를 걷다 문에 부딪혀 죽는 사람 등등 많은 사람이 죽었다. 

안전벨트를 매고 의자를 꽉 붙잡고 있어도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여고생과 노닥거리는 건 정신 나간 짓이었다.  

‘도착하면 부서진 창문으로 빠져나가 마을로 들어가 곧장 상점에 금을 팔고 스탯을 찍어야 해. 그리고 마을을 벗어나 동쪽 바위산에 있는 펜리르의 던전으로 가 보스 펜리르(Fenrir)를 잡고 스티그마를 구해야 해.’

‘괴물 늑대 펜리르를 소환하는 스티그마는 열 손가락에 안에 드는 가장 뛰어난 소환 스티그마 중 하나야. 그때는 일본 놈이 먹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차지해야 해. 가는 곳마다 목숨을 노리던 일본 놈들을 생각하면 절대 빼앗길 수 없어.’  

      

우우우우웅~

‘간다!’

“으아악~”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고막을 울리는 강력한 진동이 뇌를 흔들자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통에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젠장! 한 번 겪어 봤는데도 참을 수가 없네. 으윽~’ 

이빨을 꽉 깨물고 일어나 선반에 놓인 배낭을 내려 등에 메고, 금과 텐트가 든 가방 두 개는 다리에 올려놓아 에어백처럼 가슴과 머리를 보호했다.

가방을 내리는 사이 파릇파릇한 잎이 돋아난 논 사이를 달리던 KTX 열차는 레일이 아닌 공중으로 붕 떠올라 시커멓게 갈라진 차원의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때는 고통에 머리를 쥐어뜯느라 밖을 볼 여유가 없어 차원의 틈을 통과한 것도 몰랐다. 

그러나 이번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 열차가 어둠과 빛이 가득한 공간을 가로지르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검은 건 우주고, 빛은 항성인가 보네.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기에 항성을 수천 개도 넘게 지나가지? 지구가 있는 같은 은하계가 아닌가 보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통도 잊은 채 정신없이 밖을 내다봤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멋진 광경에 취해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자 저 멀리 여성의 음부와 흡사한 검고 빨간 차원의 틈이 보였다.

‘모양도 참 리얼하네.’

기차가 검고 붉은 음부를 통과하자 우우우웅 거리던 진동이 사라지며 눈 부신 햇살이 눈을 찔렀다.

끼이이이익~

쾅쾅쾅쾅쾅~

마을 옆 커다란 공터에 슬라이딩을 한 열차는 굉음을 내며 착륙했다. 땅에 부딪친 KTX 열차는 기관실과 1호차, 2호차, 3호차까지 휴짓조각처럼 구겨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했고, 4호자와 5호차와 6호차도 배터진 개구리처럼 내부를 드러낸 채 옆으로 굴렀다. 

7호차, 8호차, 9호차 그리고 내가 탄 10호차만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땅에 착륙(?)했지만, 충격에 유리창이 모두 박살 났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사람은 머리가 깨져 사방이 피범벅으로 변해 처참하긴 앞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으윽~ 허리야! 대비한다고 했는데도 뼈다귀가 다 부서지는 줄 알았네. 젠장!’

“사.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으아악~ 내 다리. 내 다리~”

“엄마! 엄마! 엄마~~~”

안전벨트를 풀고 깨진 창문을 통해 기차를 빠져나왔다. 지독한 고통에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내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들어 누굴 도와줄 처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도와줘 봐야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면 보따리 내놓으라는 말처럼 크게 고마워하지도 않는다는 걸 타임슬립전 몸으로 체득해 냉정하게 고개를 돌리고 성으로 달려갔다.

10m 높이의 반듯한 돌로 멋지게 성곽을 쌓은 성의 이름은 동쪽, 동방을 뜻하는 이스트(East)였다.

루시퍼는 지구와 통하는 차원의 틈을 발견하자 동서남북 네 곳에 이스트(East), 웨스트(West), 사우스(South), 노스(North)로 명명한 도시를 건설했다. 

도시는 차원의 틈을 통로로 바꿔주기 위한 마법 결계가 숨겨진 곳으로 차원의 틈은 일방통행이라 지구에서 판게아로 넘어갈 수 있지만, 판게아에서는 지구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루시퍼는 차원의 틈을 서로 왕래가 가능한 통로로 바꾸기 위해 4대 도시를 건설했다. 

그렇게 건설된 4대 도시는 목적을 숨긴 채 인간을 보호하고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도시로 위장됐다. 

‘내가 돌아왔다. 개 같은 놈아!!!’

기차가 멈춰선 곳은 이스트 성 서문 앞 넓은 공터로 이곳은 성 주위에서 유일하게 몬스터가 없었다.

천길 절벽이 삼면을 막고 있어 뿔 토끼도 들어오지 못하는 곳으로 석 달 전 사라진 대형 여객선과 두 달 전 사라진 대한XX 747 여객기, 한 달 전 사라진 전철 열량도 처참한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또한,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 빨려 들어온 버스와 기차, 전철, 배, 항공기 등도 10대가 넘게 있었다.  

모두 우리가 타고 온 기차처럼 앞부분이 심하게 부서진 형태로 탑승객의 절반 이상은 착륙과정에서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 채 죽었다. 

이미 아는 내용이라 힐끔 한 번 쳐다보고 커다란 아치형 성문을 통과해 상점이 몰려 있는 북동쪽으로 내달렸다.

성문에는 인간과 아주 흡사한 모습의 원주민 병사들이 창과 칼, 방패를 들고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이스트 성은 인간을 위해 만든 성은 아니지만, 루시퍼의 실험장과 같아 사람들의 출입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몬스터가 성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줬고, 일부 편의까지 제공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 도와줬다. 

차원의 틈이 생긴 건 3개월 전으로 이스트 성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도 3개월밖에 안 됐다.

이들 대부분은 아직 판게아에 적응하지 못해 지구에서 입고 온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해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과 마주치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달라고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신입생들의 시간과 물건을 노리는 양아치가 많아 잡히면 배낭과 가방, 금은 물론 목숨까지 잃을 수 있었다.

판게아에 온 건 죽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선 온 것으로 모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허망하게 죽을 순 없었다.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죽을힘을 다해 달려 대로변에 있는 잡화점으로 넘어지듯이 뛰어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행복 잡화점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세요?”     

‘루시퍼는 무슨 생각으로 점원까지 이렇게 예쁘게 만든 거야? 변태새끼!’

이스트 성의 주민은 인간과 모습과 모습이 아주 흡사했다. 그러나 동물과 섞어놓은 것 같아 누구나 구별할 수 있었다.

남자는 모두 힘이 천하장사에 호랑이처럼 날랜 전사로 수염이 덥수룩하고 손발에 털이 잔뜩 나 있었다.

여자는 토끼처럼 기다린 귀가 머리에 한 쌍 더 있고, 머리카락은 은청색으로 탐스럽게 빛나며, 피부는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얬다. 

또한, 하나같이 눈이 크고, 코가 오뚝하고, 입술이 선명하고, 몸매도 모델처럼 늘씬해 연예인을 해도 될 정도였다.

이 때문에 흑심을 품고 접근한 남자들이 초창기에 제법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팔다리가 부러지고 심한 경우 목숨을 잃었다.

일명 토끼 소녀로 불리는 여성들은 사자처럼 생긴 남자들 못지않게 빠르고 강했고, 자존심도 대단해 이방인의 유혹을 불쾌해 했다. 

그리고 하찮은 이방인이 고귀한 원주민을 괴롭히는(?) 건 중대한 범죄로 수작을 걸다간 경비대에 끌려가 엄청난 벌금(시간)을 물어야 했다. 

“물건을 팔러 왔습니다.”

“파실 물건을 탁자에 올려주세요.”

쿵!

금이 든 무거운 가방을 탁자에 올려놓자 묵직한 소리가 났다. 지퍼를 열고 금을 꺼내 주자 토끼 아가씨가 순금인지 마법으로 확인했다.

“순도 99.99% 순금 33kg입니다. 필요한 게 있으세요?”

“시간으로 주십시오.”

“계산기에 팔을 올려주세요.” 

000:364:23:55:23

          

기차에서 빠져나와 잡화점까지 오는데 4분 37초가 걸렸다. 지구에서 4분 37초는 덧없이 흐르는 시간이지만, 판게아에선 목숨이 수십 번도 더 왔다 갔다 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사냥으로 얻은 아이템을 팔아 시간을 충전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려도, 상점까지 올 시간이 모자라면 목숨을 잃게 된다.

이 때문에 판게아에 떨어진 사람들은 손목에 찬 시계보다 왼쪽 팔목에 선명하게 새겨진 생명의 시계를 끊임없이 쳐다보며 살아야 했다.

사람은 나이 들어 죽고, 병들어 죽고, 사고로 죽고, 자살하는 등 많은 일로 죽는다. 그러나 죽기 전까진 그 사실을 모르고 산다.

그러나 판게아에선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어 1분 1초가 지옥이었다. 

“330년 충전됐습니다. 맞는지 확인해주세요.”

“맞습니다.”

330:364:23:53:10

330년이 들어온 걸 확인하고 재빨리 스텟에 시간을 투자했다.

이름 : 박만수  

시간 : 010:364:23:50:07

운   :  73.0

힘   : 121.0  

체력 :  73.0  

민첩 : 121.0

지력 :   1.0   

             

치명타 확률과 아이템 드롭율을 높여주는 운에 60년을 투자했고, 물리 공격력과 물리 방어력, 소지무게를 늘려주는 힘에도 100년을 투자했다.

스태미나와 생명력, 젊음을 주는 체력에는 60년을 투자했고, 이동속도와 공격속도를 올려주는 민첩에는 100년을 투자했다.

끝으로 마법 공격력과 마법 방어력을 높여주는 지력에는 1초도 투자하지 않았다.

초반에 지력은 크게 쓸모가 없어 아이템과 스티그마로 모자란 부분은 잠시 보충할 계획이었다.

스티그마는 공격, 방어, 소환수, 스탯 향상 등 다양한 효과가 각인된 마법의 돌로 스티그마를 조합하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스티그마도 스탯과 마찬가지로 시간을 투자해 성능을 향상할 수 있었다. 단 스티그마는 다섯 개만 사용할 수 있어 장착했던 스티그마를 해체하고 다른 스티그마로 교환하면 투자한 시간을 2분의 1밖에 돌려받지 못해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지난번에는 아무것도 몰라 스티그마를 20번도 넘게 교체해 날려버린 시간이 1,000년도 넘었어. 그 시간을 힘에 투자했으면 루시퍼가 시간 역행을 사용하기 전에 죽일 수 있었을 지도 몰라.’

‘그러면 나도 죽었겠지? 이러면 바보 같은 짓을 한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인생 알 수 없다더니 그 말이 딱 맞네.’

“마법 가방 가장 작은 거로 한 개만 주십시오.”

“100kg짜리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5년입니다.”

시간이 표시된 손목을 마법진이 그려진 계산기 위에 올리자 빠르게 시간이 빠져나갔다.

005:364:23:45:30

시간이 빠져나가자 예전에 느껴졌던 으스스한 공포가 다시 살아나며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시간이 빠져나가고 들어온다고 몸에 변화가 생기진 않았다. 그러나 심리적인 압박이 엄청나 한꺼번에 많은 시간이 빠져나가면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프고 극심한 긴장에 몸이 덜덜 떨렸다.

‘눈앞에서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걸 보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심장 떨리는 건 마찬가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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