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 (10/17)

‘끼익.’

급브레이크까진 아니었지만 뒤늦게 신이를 발견한 난 차를 급하게 멈춘다.

“어디 다녀오나?”

“어. 오늘 늦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응?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어. 어디 갔다 와?”

“마트에요. 냉장고에 있던 음식이 일주일동안 다 상해서. 다시 사오는 길이에요.”

“아. 그냥 외식해도 되는데. 우선 타.”

진회색 긴 원피스 위에 하얀색 가디건을 입고 재활용 봉지에 물건을 잔뜩 담고 걸어가는 여자의 모습은 내게 너무 낯익은 예전 그대로의 신이 모습이었다. 문득 문득 내게 보이는 신이의 모습에 난 어제의 정리를 끝낸 다짐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골목길을 찬찬히 운전해 나간다.

물건들이 담긴 봉지를 꺼내려는 신이보다 조금 더 빠른 행동으로 그 봉지들을 들고 집으로 걸어 들어가다 말고 난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다시 차안으로 던져놓고는 집으로 들어왔다.

“일찍 오면 온다고 전화 좀 해주지. 우선 씻어요.”

“밥 먹고 씻을게.”

부엌에서 요리를 시작한 신이의 뒷모습을 잠시 감상하곤 평소처럼. 예전처럼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켜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본다. 영화들과 뉴스,, 오락프로그램들을 무심한 듯 넘겨보길 반복하는데. 별로 지나지도 않았다고 느꼈을 때 신이가 날 부른다.

오늘 저녁 주 메뉴는 매콤한 감자탕이었다. 

“이걸 어떻게 빨리 만들었냐?”

“고기하고 감자는 있던 걸로 미리 준비해뒀었어요. 나머지는 와서 끓이기만 한 거고.”

“냄새 좋네.”

냄새만이 아니었다. 맛도 내가 좋아하는 달달하고 매운 감자탕이었다. 허기지다는 생각도 없었는데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더니 구수한 냄새와 매콤함이 깃든 탕은 숟가락 가득 밥을 채워가게 만들었다. 우악스럽게 먹기 시작했고 곧 공기 밥을 반쯤 비웠을 때 신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태규씨.”

“.응?”

“혜빈.이요.”

“혜빈이?. 혜빈이 왜?”

“좋은 부모한테. 갔데요?”

“중국에 갔다더라.”

“중국에요? 해외 입양시킨 거예요?”

“그걸 해외 입양이라고 해야 하나?”

“네?”

“한선배. 알지?”

“큰.언니라고 했던.”

“응. 그 형님이 입양했데.”

“아.”

“.”

“다행이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젓가락 끝을 입술 속에 감춘 신이의 모습은 말과는 달리 분명 아쉬움이 담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뭐가 다행이야?”

“네?.그냥요.”

“한선배가 데리고 갔다고 안심이 된다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걱정이야.”

“.왜요?”

“그 어린 것이 타향살이를 벌써 시작해야 되잖아. 적응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

“차라리 한국 안에라도 있으면 자주 찾아갈 텐데. 아니다. 우리가 찾아가면 또 그 나름대로 적응에 방해가 되겠네.”

“한 선배님은. 벌써 한 번 입양을 했었다면서요. 혜빈이한테 잘 하겠죠.”

“그것도 걱정이야. 사실 한 선배가 그 보육원을 찾은 이유도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였거든.”

“상처라면. 첫 번째로 입양했던 아이가 잘 못. 된 걸 말하는 거예요?”

“응. 어쩔 수 없는 병 때문에 죽었는데도. 형수는 자신 책임이라고 아직도 스스로를 용서 못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평생 봉사를 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취중 중에 내게 한타하듯 말도 했었고. 혜빈이를 입양한 것도 사실 억지스럽게 맡게 된 상황하고 똑같은 거니까. 혜빈이도 혜빈이지만. 형수가 잘 적응 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네.”

“잘 하실 거예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

“고통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고통이 주는 무서움을 다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거든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거예요.”

“그런가?”

“그리고 태규씨.” 

“응? 또 왜?”

“혹시. 혹시 저 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요?”

“무슨 말?”

“.”

“싱겁긴. 그나저나 일주일동안 뭘 하느라 연락 한 번 없었냐?”

“.죄송.해요. 그냥. 여기저기 다녀왔어요.”

“여기저기라. 그렇겠지.”

밥을 다 먹고 조용히 다시 거실로 걸어가 아무렇게나 틀어놓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설거지를 시작한 신이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불쌍한 여자.

“그만하고 우리 맥주 한 잔 할까?”

“.맥주요?”

“응. 오랜만에 단 둘이서 맥주 한 잔씩 하자 앞에서 치킨 사올게.” 

“네.”

후라이드 반 양념 반으로 주문한 통닭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의 편의점에서 차갑게 잘 얼린 500cc를 봉지에 담아 집으로 돌아온다. 어제의 무리했던 기억을 이내 머릿속에서 지우려 다시 한 번 다짐하듯 고개를 젓고는 집 앞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문다. 

담배의 연기가 희미하게 사라질수록 잡념이 사라지는 듯 한 느낌이 들었기에 요즘 담배를 태우며 그 연기의 끝을 쫓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예전 아이를 위해 금연을 했는데. 

‘드르륵’

“어. 들어와서 피워요.”

“아니야.”

창문이 열리고 틀에 팔을 괴고 밖으로 얼굴을 내밀던 신이가 날 발견하곤 부른다. 담배를 물고 있는 날 빤히 쳐다보는 신이의 시선에 곧 담배를 끄고 집으로 들어간다. 

식사 후 창문을 열고 저렇게 팔짱을 낀 채 창문턱에 그 팔을 괴는 모습은 일상의 버릇과도 같은 것이었다. 특히나 비가 온 후의 상쾌한 공기는 소화에 도움이 된다나. 

“먹자.”

“반마리만 사지. 방금 밥 먹고 한 마리를 어떻게 다 먹어요?”

“못 먹으면 버리면 되지.”

“.”

“캬”

원피스 속으로 무릎을 굽혀 덩어리처럼 집어넣고 쪼그려 앉은 신이는 잔소리라도 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리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맥주만 홀짝인다. 맥주를 마시며 묘한 분위기로 거실을 채워가게 된다. 국민의 사랑이라 할 수 있는 치맥을 먹을 땐 항상 농담과 장난으로 시간을 보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현실에 또 다시 무거워진 공기를 느끼게 되는 나였고 신이였다. 

변한 신이의 몸과 그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내면이라는 가설을 확신한다면 난 즐기리라는 다짐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잘 하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 중 더 행복한 사람은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당신 일주일새에 살이 더 빠진 거 같아. 맞지?”

“아니에요. 그대론데.”

“그래? 함 보자.”

“.네?”

“어제는 대충 봤잖아. 감칠맛만 느끼고 말았는데. 제대로 함 보자.”

“그럼 안방으로 가요.”

“아니. 누가 잠 자제. 우리 알몸으로 먹자고.”

“네? 알.몸이요?”

“응. 알몸!”

“.”

내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겠다는 듯 날 바라보던 신이가 ‘어차피.’라는 생각을 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긴 원피스를 벗고 다시 자리에 앉으려 한다.

“아니. 다 벗자고.”

“다요?.왜. 그래요. 무섭게.”

“무섭긴. 아! 나도 벗어야지.”

먼저 일어나 완전한 나체로 옷을 다 벗어버린다.

그리고 방금 전처럼 털썩 주저앉은 후 양반다리로 맥주를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켰다. 

“아. 겨우 뱃살을 뺏는데. 요즘 다시 나오네. 왕자 한 번 만들어볼라고 했는데 이거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치? 몸매 유지하는 당신이 대단하기 하네.”

“.”

내 모습과 농담 섞인 말투에 신이도 브래지어와 팬티까지 다 벗는다.

역시나 아름답고 섹시한 몸으로 변해버린 신이의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고 그런 내 시선에 부담이 되는지 자리에 다시 아까처럼 쪼그리고 앉으려는 신이였다.

“잠깐만.”

“.네?”

“뒤로. 한 바퀴만 돌아봐.”

“미.쳤어요? 갑자기 왜 그래요?”

“한 바퀴만 돌아 봐. 좀 보자.”

“후.”

내 말에 신이가 잠시 머뭇거리다 거실 안에서 천천히 몸을 회전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신이의 몸을 자세히 보게 된 건 처음이었다. 강한상이란 남자의 명령으로 내 앞에서 알몸을 드러냈던 신이었지만 그때의 분노에 찬 내 시야엔 지금과 같은 이성과 감정이 공존하는 평온한 시선과는 질적으로 달랐기에 좀 더 음미하듯 신이의 몸 구석구석을 관찰하듯 바라볼 수 있었다.

신이가 그런 내 시선이 정말 부담이 되는지 돌자마자 다시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을 세워 몸을 가린다. 이 자세세운 무릎으로 풍만한 가슴이 짓눌려 더 커 보이고 자극적으로 변했다는 것도, 그리고 굳게 닫힌 보지가 세운 무릎 아래에서 살짝 드러나 몸이 더 섹시하게 보인다는 것도 모른 채 맥주를 홀짝이며 마시기 시작했다.

“그만. 봐요.”

“응? 하하.하.”

“. 요즘. 당신도 이상하다는 거 알아요?”

“.내가?”

“네. 저만 이상하다는 식으로 어제 얘기 했는데. 태규씨 당신도 이상해요. 당신 같지 않은 모습으로 억지를 부리는 행동도 하고.”

“그야 어쩔 수 없잖아. 무리하는 것도 사실이고.”

“.태규씨.”

“응?”

“사실 며칠 전에 한상씨한테 부탁 한 게 있어요.”

“부탁이라니?”

알몸으로 무릎을 팔로 감싸 앉은 신이가 마음속에 담아뒀던 얘기를 이제야 하듯 어느 때보다도 차분한 목소리로 작게 내게 이야기를 한다. 나체의 섹시한 몸뚱이로 앉아 하는 얘기라고는 잘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얘기인 듯 알몸인 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속삭이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게임에서 태규씨가 진다면. 이 집만은 뺐지 말아달라고요. 그리고.”

“.”

“혜빈이도. 태규씨와. 태규씨가 새로 만날 여자가 키울 수 있게 도와달라고요. 물론 태규씨가 좋아할 그 여자분이 동의 한다면요.”

“내가 게임에 질 거라고 확신하고 있군.”

“네?. 그게 아니고.”

“물론 당신 말대로야. 지금이라도 게임에 배팅한 이 집은 지키고 싶다는 생각에 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던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혜빈이가 네게 안기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 아니. 보육원이 폐쇄되고 나서 어떤 다짐을 하게 됐는지 알아?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떤 수단과 방법을 전부 동원해서라도 이 게임은.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

“정말 몰라서 그래요? 당신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 게임이란 조건부 룰이 적용하는 한. 절대로 이길.”

“알아. 하지만 난 이길 거야.”

“.?”

“알고 있으니까. 네 말대로 그냥 즐기자.”

“.”

“더 큰 문제는. 아니. 이길 거란 생각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걱정이 된 게 뭔 줄 알아? 바로 당신이야. ”

“저.라뇨?”

“당신 말대로 당신 몸뚱이가 많이 변했다고. 변한 당신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서더라. 항구란 친구하고 할 당시엔 흥분되서 미치는 줄 알았는데. 사실 끝나고 나니까 느껴지는 후회감? 그런 감정들이 더 크게 오기도 하고. ”

“그런 사람이 어제 그렇게 했어요?”

“응? 어제야.뭐.”

“.”

신이가 날 노려본다.

경계나 경멸의 시선이 아닌. 지금까지의 내 얘기를 차분히 듣던 신이가 그런 악감정이 아닌, 어제는 정말 화가 많이 났었다는 듯 날 째려본다.

“벌이라고 했잖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일주일동안 단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은 대에 대한 벌!”

“.그건.”

“말 할 필요 없어. 일주일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알 필요까진 없으니까.”

“미안해요.”

“신이야. 그럼 한 가지만 정직하게 대답해줄래?”

“.?”

“날 정말 사랑했었지?”

“.”

“지금도?”

“.죄송.해요.”

“그래. 그 표정이면 됐어. 대신 키스 해 줄래?”

내 말을 들은 신이가 숙였던 고개를 들어 날 똑바로 쳐다본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신이의 표정 변화를 제대로 잡지 못 한 내 자신이 후회스러웠기에 지금의 표정을 눈동자 속에 더 깊게 박으며 날 똑바로 쳐다보는 신이의 눈동자를 똑같이 바라본다. 신이가 천천히 내게 기어온다.

그리곤 양반다리로 앉아 있는 내 무릎위에 손을 얹고는 두 눈을 감은 채 내 입술을 적시며 훔치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달콤하게. 달콤함이 양념치킨의 소스에서 오는 달콤함만이 아니란 걸 느끼며 두 눈을 살짝 감고 신이의 촉촉한 입술을 살짝 감상한다.

“으음. 아. 큰일이다.”

“응? 왜요?”

달콤함에 취해 살짝 밀어 넣던 혀를 나도 모르게 빼며 눈을 뜬다. 그런 내 말과 행동에 입술을 포개고 있던 신이도 내 얼굴을 살폈고, 이내 내 시선이 향한 내 하반신을 내려다본다.

분위기에 취한 건 내 입술만이 아니었다.

“.”

“희한하네. 어제 그렇게 자극적인 장면들을 수없이 봤는데도. 전혀 안 커지더니.”

“.”

“이거 어쩌지?”

“.치.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말도 안 되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고만! 우리. 방으로 들어갈.어라!”

말을 하던 도중에 신이가 내 가슴을 살짝 짚고는 날 천천히 밀어 바닥에 똑바로 눕혔다. 그리곤 천천히 무릎부터 입술로 희롱을 시작한다.

유희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보여주듯 신이는 내 무릎에 살짝 입술을 가져다대어 뽀뽀를 하곤 천천히 허벅지 안쪽으로 혀와 입술을 교차하며 핥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금이 저릴 정도의 부드러움을 다리에서부터 척추를 통해 뒤통수로 전해주기 시작한 신이의 애무에 나도 모르게 머리를 뒤로 젖히곤 두 눈을 부드럽게 감게 된다.

“쓰읍”

신이가 발딱거리는 내 자지를 잡고는 천천히 입속에 머금기 시작했다.

포근하고 따뜻한 보금자리 같은 느낌을 자지 전체에 느끼며 깊은 심호흡을 하게 된다. 부드럽게 느껴지는 신이의 입술이 내 기둥을 천천히 덮어 내려와선 부드럽게 혀를 안에서 굴리는 애무를 선물하듯 전해주자 나도 모르게 등을 들썩이며 신이의 머리를 잡게 된다.

“아. 하자. 침대로 가자.”

“씁쪽쪽쯔읍”

“으.”

내 요구에도 신이는 더 적극적으로 내 자지를 물고 핥으며 펠라치오를 본격적으로 해줬고 부드럽게 뭉개지는 가슴의 포근함까지 허벅지에 고스란히 전해주며 날 더 자극시키기 시작했다.

“으윽.자.잠깐.윽!”

너무 오래 참아서일까?

신이가 입속에 담은 지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급격히 밀려오는 사정의 기운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에 신이의 어깨를 밀어내려 움직이는데.

“윽!”

신이의 입속에 그대로 사정을 해버렸다.

꿀렁거리듯 계속해서 요도를 타고 튀어나가는 내 정액들의 많은 양에 사정을 하는 쾌감 속에서도 신이의 걱정을 하게 되는데. 

내 몸은 나보다 더 정직했다.

신이를 밀어내려던 손이 어느새 신이의 머리를 잡고 더, 좀 더 내 정액들을 받아내며 움직이라는 듯 흔들기 시작한다. 그런 내 몸의 요구에. 신이가 응답을 해주듯 계속 쏟아내고 있는 정액들을 입속 가득 머금으며 머리를 위 아래로 움직여준다.

“흑.”

사정이 다 끝났을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며 신이의 머리를 더 아래로 짓누르게 된다.

그리고. 

신이가 천천히 고개를 위로 올리는데. 입술에 더 강한 압력을 주며 내 자지에 묻어 있을 마지막 정액들까지 빨아내곤 입술을 작게 오므린 채 얼굴을 때어냈다.

“휴.휴지. 잠깐.”

“꿀꺽”

“.”

“달.다.”

“달아?”

“응. 달아.”

“.”

“뽀뽀 해 줄까요?”

“시.싫다.방금 내 걸 먹었는데.”

“으음”

“싫다. 으욱!”

내 몸 위에 올라타고 있던 신이가 날 바라보며 조금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허리를 숙이는 행동에도 깔린 형태로 인해 미쳐 밀쳐내기도 전에 신이가 내 입술을 덮어 버렸다.

“우욱!”

“큭큭. 쪽”

짓궂은 장난스러운 키스가 예전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내 입속에 느껴진 그 미세하게 남은 맛은.

“우리 이대로 할까요?”

“.나 방금 사정했잖아.”

“뭐 어때요. 가만히 있어요.”

“.”

“음.”

키스를 끝낸 신이가 내 흐물거리기 시작한 자지를 잡고는 천천히 보지에 맞춘다.

그리고 허리를 천천히 내리며 내 자지를 윗 입이 아닌 아랫 입으로 부드럽게 머금기 시작했다. 입속보다 더 뜨겁고 부드러운 조임을 선사하는 신이의 그곳에 내 자지가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한 번의 사정으로 인한 지금과 아직도 감정의 여운이 남은 마음으로 인해 쉽사리 다실 커지질 않는다. 

“태규씨.”

“으.응?”

“더럽.다는 생각 안 들어요?”

“더럽다니?”

“.이. 남자. 저 남자랑 몸을 섞는. 여자잖아요. 저.”

“.”

“싫어도. 몸이 반응해서 남자들 말대로 물이나 질질. 흘리는 여자잖아요.”

“그런가?”

“. 강간을 당해도. 어쩌면 전 느낄지도 몰라요. 그런데도 더럽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글쎄. 요즘은 더럽다는 기준이 애매해져서. 그렇게 따지면 나도 더러운 거 아닐까?”

“태규씨가요?”

“응.”

“.으음.”

“어. 커지네.”

“커지네요. 아.”

“우리. 야외섹스란 거 한 번 해볼까요?”

“네? 싫어요!”

“에이. 왜!?”

“죽!어도 싫어요!. 나중에. 나중에 전혀 모르는데 가서. 그땐 생각해볼께요.”

“에이. 웃차!”

“악!. 무.뭐하는 거예요!”

허리에 무리를 주면서까지 그대로 있는 힘을 전부 주며 신이를 안고 일어난다.

알몸인 채로 내게 매달린 신이가 바둥거리며 빠져나가려 하지만 그럴수록 난 더 끌어안으며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자지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자연스러운 피스톤에 다리에 힘이 풀릴 뻔 하긴 했지만 그대로 신이를 안고 현관으로 강행하듯 걸어가기 시작했다.

“무.뭐하는 거예요! 빨리 놔요!”

“쉿 옆집에서 다 듣겠다.”

“그러니.까. 악!. 자.잠깐.”

힘에 부쳐 한 손을 내려 신이의 엉덩이를 받치는데.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닌데. 검지 속가락이 신이의 똥꼬 속으로 쑥하고 들어가 버렸다. 체중이 실린 신이의 엉덩이의 중심에 엄청난 고통을 선사한 듯 신이가 단발마의 고통스런 신음을 뱉어내며 바둥거렸기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지만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며 내게 더 매달리는 신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러고보니 신이도 섹스가 아이를 갖기 위한 목적이 되어버리기 전엔 항상 즐겁고 장난스러울때가 많았다는걸 이제야 다시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내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날 마주하고 안긴 채 바동대는 신이.

그런 신이의 반항에도 난 짓궂게 똥꼬에 반마디나 들어간 손가락을 빼지 않은 채로 현관으로 걸아가 어렵게 버튼을 누른다.

‘삐리링’

“진짜 화낼 거예요! 방으로 가요!”

“쉿. 옆집 할머니 깨겠다.

“아씨. 윽!.”

“크크크.”

‘덜컹’

“자.잠깐. 흑!”

문이 열리자 신이가 다급히 날 밀어내던 팔을 내 목을 두르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다.

남들이 보면 미친년 놈처럼 알몸인 채로 뒤엉켜 빌라의 복도로 걸어 나간 우리는, 정확히는 신이를 안고 걸어 나간 난 그렇게 계단을 반 층 올라 본격적인 펑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난간에 신이의 엉덩이를 반쯤 걸터앉게 하고는 자세를 잡는데. 당연히 신이가 또 반항을 시작했다.

“그만해요. 빨리 들어.읍”

신이의 조잘거리는 입을 입으로 틀어막고는 완전히 자세를 굳힌다.

그리곤 엉거주춤한 자세에서도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이의 부드럽고 따뜻한 보지 속을 자극하듯 아래에서 수직으로 엉덩이를 치켜세우는 형태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반항을 하던 신이도 차라리 빨리 끝내는 게 답일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반항보다는 내 움직임에 맞춰 허리를 흔들어주기 시작했다.

아니면 몸이 서서히 반응을 시작한 것 일수도 있었고 말이다.

“하아.아.읍읍.”

입술을 때어내자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온 탄성을 손으로 다급히 막는 신이었다.

연신 깜빡거리며 들어오는 센서등에 신이의 출렁이는 가슴과 잘록한 허리, 내 자지에 서서히 젖어가는 신이의 보지를 만끽하듯 맛을 보며 조금씩 허리를 빨리 움직여 본다.

“아. 흡.흡흡.흡”

신이가 내 목에 팔을 두르며 난간에 걸터앉은 엉덩이를 좀 더 앞으로 뺀다.

더 깊숙이 들어가는 자지를 느끼듯 점점 더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는 신이가 가빠오는 호흡을 참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흑흡아.아아.아”

“좋아?”

“하아.아.그.그런 건 묻지. 말고. 아”

“헉헉. 당신 보지가. 계속 날 깨문다.”

“아.조.좋아서. 그랭. 아.더. 더 빨리. 아”

신이가 한 손을 내려 난간을 붙잡고는 스스로 엉덩이를 빠르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런 자세는 처음인 듯 거북스럽게 날 받아들이던 신이가 본능적으로 손을 내려 몸을 지탱하며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움직임은 내 리듬에 역으로 움직이는 신이의 허리로 인해 더 빠르고 깊은 삽입을 보여주며 점점 허리를 굽히는 아름다운 여체의 모습을 내 눈 바로 앞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헉헉. 아.젠장. 방금 쌌는데. 또 쌀.거 같아.헉.헉헉.”

“아하아.하악 아앙. 하.하고 또. 하면. 아앙”

“헉헉. 하고. 또 하자고? 헉. 또 하고 싶어? 학학.”

“아아. 계속. 계속 박아.줘요. 아앙”

신이의 몸은 이미 내 사정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듯 더 빠르고 깊게 움직였고 더 강한 조임으로 내 자지를 구석구석 깨물기 시작한다.

꼭 보지 속에 수많은 돌기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조임을 느끼는데. 하필 이 순간 강한상이 말했던 명기란 게 머릿속을 때리듯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그런 강한상의 얼굴이 오히려 내겐 이 순간엔 도움이 된다. 급격히 밀려오던 사정의 기운이 순간 주춤하며 내게 평점 심을 되찾게 만들었다.

잔뜩 휘어진 자지를 허리를 더 세워 신이를 일으켰고 난간위에 걸터앉은 신이는 결국 다시 내게 매달리는 형태가 되어버렸는데. 난 그대로 자지를 빼내며 신이의 발바닥까지 더러운 계단 반 층위의 공간에 내려놓는다,

“하아.아.응?”

“헉헉.헉. 뒤로 돌아.”

“.응?”

말 대신 행동으로 신이의 몸을 180도 돌려 창문을 향하게 세운 뒤 그대로 엉덩이를 두 손으로 벌리고 이미 젖어있는 신이의 구멍을 찾아 자지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아”

신이가 까치발로 내 삽입을 도왔다.

더 깊게 자지가 보지 속을 밀고 들어가자 신이가 창문에 팔을 기대며 ㄱ자처럼 허리를 숙였고, 더 도드라지게 동그란 신이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잡고 본격적인 펌핑을 시작한다.

“아아.아하악 아앙앙앙앙”

“오. 더 꽉 물어댄다. 으.”

“하아. 여.여보. 더. 세게. 아”

“헉헉.헉.”

‘퍽퍽.퍽퍽퍽퍽퍽퍽퍽.

신이의 애간장을 녹일 듯 한 신음소리가 작지만 분명하게 계단을 적시기 시작했고 그 신음소리는 내 움직임을 자극하며 더 빠른 부채질을 자연스럽게 유도했고 난 그런 신이의 기대에 부응하려 엉덩이를 움켜쥐던 손을 신이의 콜라병 주둥이처럼 잘록한 허리를 잡고는 더 빠르고 더 세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헉헉헉헉헉”

“악악. 아악.조.조금.만 더. 조.금.아앙 악.학학학”

이젠 서늘해져 가을 날씨가 완연한데도 내 이마와 등에 땀방울들이 맺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건 나만이 아니었다. 엉덩이를 잔뜩 치켜 올리고 허리를 굽힌 신이 또한 새하얀 등에 땀방울들을 맺어내기 시작했다. 엄청난 스피드에 덜렁이는 가슴을 주채하지 못한 채 잔뜩 헝클어진 긴 머릿결을 보여주며 점점 내 리듬에 가속도를 붙여주기 시작했다.

“아앙. 아. 여.여보. 아 나. 나.아”

신이가 발가락에 힘을 주며 잘록한 발목을 더 높이 올리며 새카매진 발바닥을 드러낸 까치발로 내 자지를 좀 더 깊숙이 받아들였고 허리를 앞뒤로 내 리듬에 맞춰 빠르게 움직이며 사정을 유도한다. 아니. 본인이 느끼는 쾌락에 몸을 맡기듯 자연스럽고 격렬한 움직임으로 오르가즘을 찾으려는 본능처럼 신이가 신음소리를 난발하기 시작하는데.

“아악악흑흑흑흑.자.자기야. 여.여보.아 여.여보. 나. 나 지금. 나 지그.”

“나도. 나도 싼.”

‘철컹! 끼이익’

“헉!”

“아. 더. 더 빨리. 멈추지 말고. 아.”

“.”

“왜 갑자?.악!”

‘털퍼덕.’

“악!.자.자지.! 자지! 내 자지!”

바로 아래에서 들려온 철문 소리에 순간 얼음처럼 굳어져버린 나.

그리고 멈춘 내 행동에 영문을 모르고 계속 더 해달라며 안타까운 신음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리던 신이. 

그리고. 문을 열고 이 믿기지 않는 풍경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날 똑바로 올려다보는 백발의 할머니.

이렇게 셋은 얼음처럼 굳어진 채 순간을 보냈고, 그 찰나가 지나자마자 몸을 손으로 가리며 갑자기 주저앉는 신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난 자지가 떨어져나가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 염병할 년 놈들! 발정 난 개새끼들 마냥! 어디 할 데가 없어서.”

갑자기 문 속으로 사라졌던 할머니가 빗자루를 꺼내들고는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스피드로 계단을 뛰어 올라오며 빗자루로 날 때리며 휘두르는데.

“하.할머니! 저에요 저!”

“이 염병 같은 개잡년들아!”

“저에요. 저.옆집. 옆집 태규에요”

“태규고 지럴이고 누가 남의.태규?”

소란스러운 계단의 반 층위는 순간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구석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은 신이와 자지를 덜렁이던 나. 그리고. 그 덜렁이던 자지 끝에서. 줄을 그리며 떨어진 정액.들.

“옆 집 총각이여?”

“.”

“저 년은 누구여. 어라.”

“아. 안녕.하셨어요.”

“.”

좀처럼 가시지 않는 창피함에 고개조차 못 들고 있던 그 순간 신아가 후다닥 도망가듯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여는데.

긴박한 순간엔 오히려 손가락이 잘 안 움직인다고 하더니. 몇 번이나 비밀번호를 틀리며 신이가 동동거리는 모습으로 잔뜩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겨우 열린 문으로 번개처럼 사라진 신이의 모습을 나와. 그리고 할머니가 멍하니 쳐다보다가. 곧 할머니의 시선이 내 아랫도리에 머물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황급히 손으로 자지를 가리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위층은 거의 비어있어 이런 소란에 할머니만을 신경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위층이 비어있어 신이와 장난스럽게 좀 놀아보려 반 층 위의 이곳으로 온 것인데. 할머님도 귀도 어두우셔서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스릴을 좀 즐겨보려 했는데.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정말 창피함에 고개조차 못 들고 한시라도 빨리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게 된다. 

“고놈. 참 실하네.”

“네?.”

“이 미친놈아! 지 색시가 돌아왔으면 조용히 살 것이지 왜 이 지럴이여!”

“죄.송합니다.”

“난 또 어떤 미친놈들이 술 먹고 들어와서 난장판을 만드나 했잖여!”

“.하하하.하.”

“웃지 마 이 미친놈아! 비싼 침대 놔두고 이게 뭔 지럴이여!. 빨랑 들어가!”

“하하. 네. 정.말 죄송합니다.”

“쯧쯧쯧.”

두 손으로 자지만을 가리곤 벽에 바짝 붙어 할머니를 피해 계단을 내려온 난 신이처럼 몇 번의 실패 후 겨우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휙 퍽“

곽티슈가 내 바로 옆으로 날아와 벽에 부딪힌다.

시커먼 발바닥으로 거실에 주저앉은 신이가 눈물까지 흘리며 울먹이다가 내 등장에 옆에 있던 곽티슈를 잡아 던진 것이다.

“진짜! 이게 무슨 창피야! 아씨. 난 몰라! 아. 나 어떻게 해!”

“.큭큭.크크크크크.”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요! 저 할머니가 날 얼마나 귀여워 해주셨는데! 나.아이고. 내가.”

울먹이며 화를 내는 신이의 모습이 왜 이렇게 귀여울까.

거실 바닥에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무릎을 바닥에 대고 구부린 채 주저앉아 축 처진 어깨로 울먹이고 있는 신이의 화를 내는 모습이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유달리 귀엽게 보인다. 

“그래도 웃어!”

“하하하하 하하하하. 그.그러게. 왜 이렇게 웃기냐.”

깨물어주고 싶은 신이의 모습에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나도 배를 잡고 폭소를 터트리게 된다.

“허.미.쳤구나. 진짜 미쳤어.”

“하하. 그러게. 내.내가 크크크. 미.쳤나 봐.크크크.”

“허”

주저앉아 웃고 있는 내 모습을 기가 차다는 듯 신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본다.

그러나 쉽사리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황당함 상황 속에서도 신이를 알아본 할머니의 얼굴과 그리고 우리를 대했던 할머니의 태도. ‘발정난 개새끼.’ 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기에 더 크게 웃게 된다.

[띵똥띵띵띵. 똥.]

“크큭.큭. 자.잠깐만요.”

갑자기 울린 벨소리에 겨우 웃음을 참으며 벗어놓은 옷을 주워 입으려 현관문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옆집 할망구여. 문 좀 열어 봐!”

“네? 아. 자.잠시 만요.”

“됐으니껭. 언능 문만 열어 봐!”

문 너머에서 들려온 할머니의 날카로운 윽박지름에 옷보다 먼저 문을 작게 열고 고개만 배꼼 내미는데. 

“옷도 아직 안 입었남?”

“.네. 그런데 무슨.”

“뭔 일은. 남자가 오줌 쌀 때도 알음다워야 한다는 말 멀러?”

“예? 그게 무슨.”

“계단 닦으라고 이 넘아!”

“아!.예. 알겠습니다. 금방.”

“쯔쯧. 금방은 개뿔 오랜만이라고 아주 시원하게 싸질러 놨더만. 쯔쯧. 새댁!”

“네.네!?”

말릴 틈도 없이.할머니가 날 밀어내며 불쑥 문 안으로 고개를 디밀었다. 그리곤 신이를 부른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내 윗도리를 황급히 집어 대충 몸을 가린 신이가 얼떨결에 대답을 했지만 이내 할머니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인다. 엄청나게 창피한 지 귀까지 새빨개진 신이가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잘. 생각했어.”

“.네?”

그런 신이의 모습을 쳐다보던 할머니는 예상과는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신이에게 말을 이어갔다.

“혼자 낑낑대는 모습이 얼마나 안쓰럽던지. 내가 좋은 중매자리 놔주려고 몇 번이나 말을 하고 물어봐도 이 사람이 거절만 하더라고. 난 아예 헤어진 줄 알았지 뭐.”

“.네.”

“그래. 어디 한 번 맺은 인연이 쉽게 끊어지나. 정말 잘 생각했고 또 놀러 와. 나 심심혀 죽겄어.”

“.네. 찾.아 뵐게요. 할머니.”

“찾아 올 땐. 꼭 옷 입고 오고.”

“네?.네.”

“크크크크크크.”

“에라이 미친늠아. 그만 처웃고 옷이나 입어. 다시는 복도에서 헛짓거리 하기만 해봐! 아주 그냥 다리몽둥이를 다 뽀사버릴테니께!”

“.네.크크.”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또 조강지처 버리면 벌 받아! 두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 무조건 빌라이 이등신아! 내 말 알지!”

“그럼요. 제가 저 사람을 어떻게 버려요.”

“말은 잘해요. 얼른 계단이나 닦아!”

마지막까지 호통으로 끝을 낸 할머니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잔뜩 골을 내던 신이가 문을 닫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날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왜?”

“그냥요. 할머님은 아직도 정정하시네요.”

“응. 가끔 반찬도 해주시는데. 오실 때마다 당신 소식 묻더라.”

“.그랬어요?”

“응.”

신이가 고개를 들어 현관문을 지그시 바라본다. 내 윗도리로 몸을 가리던 손을 무의식중에 천천히 내리며 추억을 회상하듯 멀뚱히 현관문을 바라보는 신이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난 그제야 찾아온 고통에 허릴 숙이게 된다.

“으으. 그렇다고 낀 채로 갑자기 주저앉냐. 진짜 끊어지는 줄 알았잖아.”

“그러니까 왜 쓸데없이. 에휴. 괜찮아요?”

“좀 봐주라. 핏줄이라도 터져나.”

“.”

자지를 잡고 시커먼 발바닥 그대로 거실로 들어가 신이 앞에 선다.

주저앉은 그대로 신이가 고개를 들어 아직도 젖어있는 내 자지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탁!’

“괜찮네요.”

따귀를 때리듯 꼼꼼히 살펴보던 신이가 내 자지를 손바닥으로 소리 나게 쳤다.

“윽!. 진짜 아프다고.”

“아프긴 멀쩡하네.”

“진짜 아픈데.”

“빨리. 씻기나 해요.”

“같이 씻을까?”

“.”

“저번에도 씻겨 준다고 해놓고는 그냥 갔잖아.”

“.집요하면 여자들이 싫어한다는 거 몰라요?”

“집요한 게 아니지. 억울한 거지!”

“할머니 말씀대로 말만 잘해요! 알았으니까 들어가요.”

“크크. 으윽. 근데 진짜 아프다.”

“치.”

신이가 걸레를 찾아 방바닥을 닦으려다가 욕실로 걸어갔다.

하복부에 느껴지는 고통에도 난 그런 신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욕실로 등 떠밀 듯 가벼운 발걸음을 연신 재촉했다.

“얼능 씻기나 해요! 장난 좀 그만치고!”

“아잉, 아까 싸다가 말았단 말이야.”

“됐거든요! 나 그럴 기분 아니에요. 괜히 할머님한테 못 보여드릴 꼴만 잔뜩 보여드리고.”

“와. 그런데 자기 엉덩이가 이렇게 업이 됐었나?”

“.빨랑 씻어요!”

“그렇지 않아도 아까 잡았을 때 유달리 탱탱하다고 느꼈는데. 힙업인지 뭔지 하는 운동 했지? 맞지?”

“아! 쫌! 헉!”

“하던 건 해야지”

“아씨!”

“뭐 좋은 일 있냐?”

“좋은 일은. 결산서 받으러 온 거지. 여기.”

“그것보다 박미지씨가 경리과에서 이번 달 회계전표 때문에 너 좀 올라오라던데.”

“.그래?”

“난 전해 줬다.”

경리과에서 근무하는 내 입사동기가 말을 전하곤 결산서를 받아갔다.

요즘 가뜩이나 상사의 눈에 찍힌 나였기에 눈치를 보며 회계전표를 들고 사무실을 빠져나갔고 곧 경리과로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미지가 날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절 찾으셨다고.”

“네. 회계전표에 수정할 게 있어서요. 지금 사무실에 아무도 없어요. 저 화장실 좀 갔다가 사무실로 가요.”

“.네.”

3분? 5분?

생각보다 긴 시간을 화장실 앞에서 뻘줌히 기다리고 나서야 나온 박미지와 경리과로 이동하게 된다.

평소라면 항상 사람들로 분빌 경리과엔 미지의 말대로 아무도 없었다.

“다 어딜 가셨나 봐요?”

“금요일이잖아요. 지금 회의실에서 결산처리 준비하고 있어요.”

“미지씨는요?”

“사무실엔 한 명이라도 남아있어야죠. 이번 당번이 저에요.”

“아.”

“서류는 핑계고. 몇 시에 만날 거예요? 모임은 8시부터 시작한다고 하던데.”

“어디서 모인데요?”

“OO펜션이라고 하던데요.”

“.”

“왜 그래요?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시네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6시까지. 어디서 만날까요?”

“문자로 주소 보내드릴게요. 그리로 픽업하러 오세요.”

“.네.”

“그리고 명심하세요. 태규씨랑 저랑 연인이라는 거.”

“.그런데 그 연인이라는 게. 무슨 설정을 준비하거나. 좀 더 말을 맞혀야 되는 거. 아닌가요?”

“말을 맞혀요? 아. 호호호. 첩보영화만 많이 보셨나 봐요. 그냥 섹파정도로 얘기하면 될 거예요. 저번 모임 때 보니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던데요. 물어보지도 않고.” 

“미지씨는 이런 모임을 했었어요?”

“저번에 신이씨랑 저랑, 태규씨랑 같이 놀기 바로 전에요. 그냥. 모임이라고 하기도 뭐한 세 커플만 모여서 놀았던 때가 있었어요.”

“아. 혹시. 누구누구 나왔는지. 기억하세요?”

“말했잖아요. 누군지도 말하지 않고 그냥 놀기만, 즐기기만 했었다고요.”

“.네.”

“그리고. 저 옷 좀 사러가야 되는데. 오늘 끝나고 회사 앞에 있는 핑키에 같이 가줄 수 있죠?”

“오늘이요? 옷을 사는데. 제가 같이 가드려야 되요?”

“그럼 누구랑 갈까요? 그래도 내일은 제 연인이 태규씨 아니에요?”

“.알겠어요.”

“혹시 약속 있어요?”

“아닙니다. 신이랑 저녁 먹기로 했는데. 조금 늦는다고 전화하죠.”

“그래요. 핑키에 섹시한 원피스도 많으니까 취향대로 골라 봐요.”

“.네,”

원래의 예정대로라면 퇴근 후 집으로 가자마자 신이를 태우고 춘천으로 날아갈 생각이었다.

신이가 좋아하는 춘천 닭갈비를 생각하며 어제의 발산했던 에너지를 몇 번 갔던 닭갈비집의 홍삼막걸리로 보충도 할 겸 말이다.

“난데.”

[네. 밥은 먹었어요?]

“아직. 이제 11시 좀 넘었는걸.”

[아. 청소하다보니 시간을 잊었어요. 왜요?]

“오늘 저녁에 좀 늦을 거 같은데.”

[많이 늦어요? 그냥 밥할까요?]

“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한 340분? 정도.”

[별로 늦지도 않는데. 어차피 내일 토요일인데 무슨 상관이에요.]

“당신. 오늘 저녁에 가야 되잖아.”

[아니에요. 내일 가도 상관없어요.]

“그래? 그럼 오늘 춘천에서 자고 올까?”

[.]

“그건. 좀 아닌가? 하하.”

[잠만 잘 거죠! 다른 짓 안하면. 생각 좀 해보고]

“그럼! 이 오빠를 못 믿냐! 크크크”

[알았어요. 준비하고 있을게 운전조심하고, 너무 서두르지 말고요!]

“내가 애냐! 알았어.”

[애니까. 문제지.]

퇴근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회사 로비로 간다.

이미 내려온 박미지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순차를 두고 회사 건물 밖으로 나갔고, 아까 말했던 핑키가 있는 방향으로 가다 미지와 합친다.

갑자기 미지가 팔짱을 껴온다.

“사람들 보면 어떻게 하려고요.” 

“뭐 어때요? 태규씨도 솔로고 저도 솔론데. 그냥 사귀나 보다 하고 말겠죠.”

“그래도.”

“우리 연인이 설정이잖아요. 미리미리 준비를 해둬야지.”

“.”

“핑키가 어딘지는 알아요?”

“그럼요. 저도 지하철 족이었는데. 저기 지하철 역 지나서 바로잖아요.”

박미지가 낀 팔짱을 벗어나려다 그냥 둔다.

어차피 설정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고 강한상이 통화로 말 한 대로 일지 모를 지금 삐쳤을지 모를 박미지의 심기를 굳이 건드릴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신이씨랑 깨가 쏟아지나 봐요.”

“네? 왜요?”

“아까 복도에서 보니까 입 꼬리가 아주 귀에 붙었던데. 괜히 질투까지 나네.”

“질투는요. 그냥 게임이니까. 그런 거지.”

“정말요? 게임이라서 기분이 좋은 거예요?”

“.”

“에이. 아직도 미련이 많이 남은 것처럼 보이던데!”

“그래도. 전 와이프였으니까.그렇죠.”

여자의 변덕만큼 무서운 게 없다고 했다.

신이라면 모를까. 이 박미지란 여자가 우선은 날 도와준다고 다짐을 해주긴 했지만 혹시나 변할지 모를 여자에게 굳이 내 속내를 다 드러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조금은 거리를 두게 되는데.

“어!. 신.이씨?”

“신이?”

지하철역 코너에 막 다다랐을 때.

청색 꽃무늬 블라우스와 하얀색 스커트. 진회색 세무 하이힐과 검은색 스타킹 그리고 즐겨 입는 흰색 가디건을 팔에 걸친 채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서있던 여자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신이야.”

난 신이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지금 박미지와 팔짱을 끼고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

"마중으로 당신을 놀래켜 주러 왔는데. 너무 오랫만에 왔나봐요. 지하철에서 내리니까 헷갈리네요."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는 신이의 시선이 내 팔꿈치를 향하고 있다는걸 보고서야 팔짱을 끼고 있다는걸 깨닫게 된다.

"아."

“전화를 했으면.”

신이가 핸드폰이 없다는 걸 떠올리게 된다.

“박미지씨랑 어디 가시나 봐요?”

“응?.아!.”

여전히 끼고 있는 팔짱. 신이의 시선을 의식하며 난 부담스러운 박미지의 손을 억지로 푸는데.

“이번 모임에선 제가 태규씨의 파트너잖아요. 옷도 사고. 쇼핑하러 가기로 했어요.”

“쇼핑이요?”

“네! 신이씨도 준비해야 될 텐데. 아 한상씨가 이미 다 준비했을라나?”

“.”

기싸움?

미지의 행동이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진다.

뭔가가 틀어진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주라는 시간동안 한상이 놈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유난히 날카롭고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일부러 연출하는 듯 보였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것보다. 꼭 태규씨가 필요한가요?”

“.네?”

“옷이야 미지씨 혼자 골라도 되잖아요. 굳이 태규씨랑 같이 쇼핑을 해야 되냐고요.”

“.”

“오늘의 태규씨는 저와 지내야 되는 룰이란 게 있어서요. 쇼핑은 혼자 하시죠.”

둘의 잔잔한 말싸움에 오히려 더 답답함을 느끼게 된 나였다. 차라리 언성을 높이던가,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싸움이라도 한다면 말리기라도 할 텐데. 마주하고 1.5m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둘 다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모습 앞에선 여지없이 난 어리버리한 남자일 뿐이었다.

“태규씨. 그 룰이란 거 꼭 지켜야 되요? 어차피 게임일 뿐이잖아요.”

“네?.”

“아니면! 이번 모임에서 파트너 없이 혼자 가고 싶어요?”

역시나 불똥은 내게 튀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남자라면 당연히 피하고 싶을 이 상황에 대한 계획은 전혀 없던 나였고 이런 상황자체도 적응할 만한 경험조차 없던 나였다. 

하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있었기에 난 최대한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며 자리를 옮긴다.

“미지씨 죄송해요. 오늘 옷은 미지씨 혼자 골라주세요. 어떤 옷을 입으셔도 미지씨는 다 섹시하게 소화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하. 진짜 후회. 안 할 자신 있죠?”

“후회는 매일 하는 거라 서요. 한 번 더 한다고 죽진 않겠죠.” 

“알았어요. 그럼 혼자 잘 해봐요.”

쌩하고 몸을 날 그대로 지나친 미지는 그대로 지하철 계단을 내려간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뒷덜미를 긁적인다. 그러나 오늘의 목적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

“.후.”

“.미.안해요.”

“당신 오버했어.”

“.”

“내가 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선. 미지씨의 역할도 중요할지 모르는데.”

“미안해요. 지금이라도.”

“됐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춘천은 됐고. 회사 근처에서 밥이나 먹자. 그런데. 당신답지 않게.”

“왜요? 마중 나온 게 나답지 않다는 거예요?”

“누가 그걸 얘기해? 지금 당신이 한 행동 말이야. 미지씨도 게임을 도와주려고 그런 거지 그걸 꼭 그런 식으로 얘길 해야 되냐. 질투하는 여자처럼 갑자기 눈까지 부라리.는. 질투 했어?”

“누.누가 질투를 해요!?”

“왜 화를 내냐.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그냥 팔짱을 끼고 있어서. 좀 놀랐을 뿐이에요. 그렇게 가까운 사이인 줄 몰랐으니까요.”

“가깝긴 뭐가 가까워. 그냥 모임에 파트너니까 분위기나 좀 맞춘 거지. 하긴. 셋이서 몸까지 다 같이 섞은 사인데. 이제 와서 질투란 얘기도 웃기네.”

“.”

“왜 그런 표정으로 노려봐?”

“몰라요!”

내 얘기에 신이가 날 흘깃 노려보곤 입을 삐죽 내밀고 날 그대로 지나쳐 똑바로 걸어간다.

어처구니없는 신이의 행동에 나도 ‘헐’이란 탄성을 지르며 발걸음조차 늦추지 않는 신이를 따라가게 된다.

난 춘천 닭갈비대신 신이의 퍼플블루코드에 어울리는 조금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정말 오랜만에 칼질을 하며 내 위의 크기를 반도 채우지 못하는 스테이크의 양을 투덜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그냥 닭갈비집이나 가지. 먹으면서 왜 그렇게 똥 씹은 표정을 지어요.”

“똥 씹은?. 하긴. 이게 8만 원짜리 스테이크란 게 말이 돼? 차라리 집에서 소고기를. 미안. 괜히 분위기만 깨고 앉았네.”

“사람이 갑자기 변하는 게 더 이상해요. 그러니까 닭갈비 먹자니까.”

“됐어! 당신이 질투까지 해주는데 내가 이 정도는 쏴야지!”

“질투 안했다고요!” 

“그러던가. 아! 오늘 아침에 출근하다가 옆집 할머니 만났는데.”

“네!? 뭐라고 하세요? 혹시. 또 욕하진 않으셨어요?”

“욕은 하셨지. 그런데 욕하시면서 다시는 당신 놓치지 말라고 하더라.”

“.”

“아!. 생각난 김에 밥 먹고 핸드폰 매장 좀 들리자.”

“네? 핸드폰은 왜요?”

“내가 답답해서 못 살겠다. 당신 핸드폰 하나 사자고.”

“.있어요.”

“있어? 그런데 왜 안 들고 다녀?”

“전화 올 데도 없고. 굳이 필요도 없는데 거추장스럽기만 해서요.”

“.혹시. 한상이가 감시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건 아니고?”

“아니요. 한상씨가 감시를 왜 해요?”

“.”

“왜요”

“아니야. 밥이나 먹자.”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형님 접니다.]

“그래.”

[지금 미지씨한테 전화가 왔는데 말이죠.]

“미지씨?. 그래서?”

[갑자기 참석을 안 하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

[무슨 일이 있었군요. 혹시 미지씨랑 싸웠습니까? 그럴 리는 없지만. 미지씨랑 깊은 사이가 되신 겁니까?]

“그런 걸 일일이 너한테 얘기해야 되나? 어차피 미지씨는 들러리잖아.”

[하하하하하. 하긴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파트너가 없으면 내일 모임은 참석 불간데. 설마 이번 주도 미루시려는 건 아니시겠죠? 자꾸 자신 없는 모습만 보여주셔서 이건 게임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헷갈려 말입니다.]

“자신 없는? 누가 자신이 없을까? 더러운 뒷공.”

보육원 일이 다시 떠올라 이성을 놓을 뻔 했다.

내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자 신이가 쳐다보는 시선에 흔들림을 발견했기에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시 냉랭하게 말을 이어간다.

“어차피 파트너는 별 상관없는 모임 아닌가? 그럼 미지씨를 네 파트너로 하고 신이를 내가 데리고 가도 상관없잖아. 어차피 시작하면 다 벗고 개떼처럼 몰려서 놀 텐데.”

[아니죠. 누가 그럽니까?]

“뭐?”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제 파트너가 신이고 형님은 제 삼잡니다. 그러니 미지씨를 책임져야 하는 건 형님이란 말이죠.]

“.미지씨는 어차피 물 건너갔어. 그렇게 파트너가 중요한 모임이라면 차라리 아무 여자나 나한테 붙이던지”

[허. 너무 막 나가시는 거 아닙니까? 자꾸 그러시면 저도 약간의 통제와 제제를 동시에 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

[하하하. 너무 쫄지 마십쇼. 그럴 생각만 한다는 거지. 한낱 게임에 제가 힘을 쓰겠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죠. 미지씨한테는 제가 다시 전화를 걸어서 참석하도록 만들죠. 대신. 참석하고 나서의 일은 전적으로 형님이 책임을 지셔야 됩니다. 이것도 일종의 배려니까 제 배려에 대한 보답을 하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보답 같은 소리한다. 알았으니까. 전화 끊자.”

[그러시죠. 그럼 즐거운 저녁 보내십시오.]

전화를 끊고 나이프를 다시 손에 들다가 신이의 어두운 표정을 확인하곤 조용히 내려놓는다. 

“한상씨가 뭐라고 해요?”

“별거 아니야. 내일 파트너 얘기하는데. 들은대로 알아서 하라고 했어.”

“.미안해요.”

“뭐가?”

“제가 괜히 질투를 해서. 놀래켜주려고 하다가 당신하고 미지씨가 나란히 팔짱을 끼고 오길래. 나도 모르게 괜한 억지를 부렸어요.”

“질투 맞구만.”

“네?.아.니에요.”

“그래. 아니라고 해. 그나저나. 한 가지만 물어볼 게 있는데.”

“물어보다뇨?”

“아. 잠깐만.”

핸드폰의 배터리를 아예 빼버리곤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핀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미행이나 별도의 도청 같은 걸 붙일 놈은 아니었지만 이 민감한 얘기에 대해선 더 조심을 해야 했기에 철저한 준비를 시작했다.

가방에서 작고 네모난 담배 모형의 상자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스위치를 켠다.

청계천에서 겨우 구한 초소형 전파방해기였다. 반경 5m 정도의 핸드폰은 물론 도청기, 무선 몰카까지도 다 차단해주는 이 기기를 구하기 위해 청계천을 이 잡듯 뒤져서 겨우 구한 고가의 물건이었다.

“그건 뭐에요?”

“그냥 담배케이스야.”

“.”

“혹시 한상이 집에. 금고 같은 게 있어?”

“금고요? 못 본 거 같은데. 갑자기 금고는 왜요?”

“그래? 하긴. 저번에도 보니까 테이블 아래에 통장 같은 걸 막 던져놓고 사는 놈이던데. 금고 같은 걸 놔둘 놈은 아니겠네. 그럼 말이야. 자동차 키 말고 항상 들고 다니거나 소중하게 챙기는 열쇠. 같은 건 없어?”

“열쇠라고 해봐야. 안방 서랍에 있는 몇 개 안되는 게 다인데. 갑자기 그런 걸 왜 물어봐요?”

“혹시 항상 들고 다니는 열쇠는 없어?”

“항상. 아. 자동차 스마트키에 걸고 다니는 작은 키를 본 거 같아요.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녀서 확실 한 건 아닌데. 그런데 왜 이런 걸 물어봐요?”

“.”

“무섭게. 왜 그래요? 혹시. 엉뚱한 생각 같은 거 하는 건 아니죠?”

“응?. 그냥 물어본 거야. 엄청난 부자 놈들은 어떻게 사나해서.” 

“태규씨. 게임. 은 그냥 즐겨요. 그냥 즐기기만 하고. 져도 어떻게든 태규씨한테 피해가 덜 가도록 노력할 테니까. 무리하지 말고 이상한 짓도 하지 말아요. 한상씬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

“게임만 좋아하고 돈만 많은 프리랜서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럼?”

“가끔. 보기에도 무서워 보이는 남자들하고도 같이 어울려서 식사를 하고. 돈을 주고받기도 해요.”

“무서워 보이는 사람이라니? 깡패 같은?”

“단순한 동네 깡패가 아닌 것만은. 저같이 눈치 없는 여자라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인맥이었다.

현민이 조사했던 내용대로 국회의원까지 섭외 한 한상의 능력으로도 현실 가능한 얘기다. 아니. 오히려 그쪽이 더 먼저 생각했어야 할 인맥 중 하나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엉뚱한 생각하지 말라고요.”

“기껏 해봐야 몇 대 맞고 말지 뭐. 크크크”

“태규씨!. 농담으로 듣지 말고요. 저한테도 즐긴다고. 말 했잖아요. 그냥 즐기기만 해요. 당신 다치는 거. 정말 싫어요.”

“.알았어.”

“.”

“밥 먹고 영화 보러 갈까? 요즘 재미있는 거 많이 하던데.”

“.네.”

내일을 위해서라면 오늘은 힘을 아껴야 된다는 생각으로 평범한 일상을 지내고자 한다. 날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신이의 얼굴에 오늘만큼은 평범한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를 봤고, 곧바로 집으로 향하게 된다.

“가죠. 지금 가도 늦어요.”

“그래요. 갑시다.”

몇 가지를 준비하다보니 시간이 벌써 많이 늦었다.

이미 시계가 7시를 가리키고 있었기에 박미지를 태우자마자 차를 출발한다. 예상대로 박미지는 내게 눈길조차 한 번 주지 않은 채 차에 올라 날 재촉하기만 한다. 나도 박미지와 같이 가기 싫었지만 오늘의 목적은 이 변태적인 모임만이 아니었기에 서둘러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도착한 펜션은 펜션이라기보다는 별장에 가까웠다.

2층 구조의 커다란 복층 건물은 일반 펜션과는 달리 펜션간 거리가 상당했고 그래서 음밀한 밀회나 모임을 갖기에 최적화 된 형태처럼 보여졌다. 

내 차가 도착했을 땐 이미 세 대의 고급 세단과 외제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망설일 시간도 없이 나와 미지는 그 펜션의 문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고, 잠시 후 강한상이 문을 열며 우리를 반긴다.

들어가자마자 거실로 보이는 넓은 공간의 중앙에 위치한 ㄷ자 형태의 소파에는 이미 두 쌍의 커플과 얇고 흰 골덴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신이가 앉아 있었다.

빈 술병들로 이미 음주가 시작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8시에 시작한다고 했는데 벌써 9시가 다 됐습니다.”

“미안. 급하게 회사에 일이 생겨서.”

“강군 뭐해! 빨리 놀자고.”

“하하. 네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야죠. 마지막 멤버도 왔으니까요.”

“오 어서 오시게!”

소파에 앉아 술잔을 들어 거만하게 인사를 하는 뚱뚱한 남자는 어디선가 봤던 인물처럼 낯이 익다.

“소개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정도는 알아야 서로 어색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여기 계신 분은 김의원님, 이 분은 조사무관님이십니다. 인사들 나누시죠. 이 분은 새로 오신 김과장님 되십니다.”

인사를 나누는 가운데 강한상은 날 과장이라 호칭하며 사람들에게 소개를 한다.

“자자 오늘은 예고 한대로 홀딱 숍니다! 이제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탈의들 하고 오시죠!”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한 사람들은 정해놓은 듯이 엇갈림 없이 방을 찾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까운 큰 방으로 강한상과 신이가, 그리고 위층에 두 커플이 올라갔고 나와 미지는 1층의 옆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멀뚱히 방안을 구경하는 나와는 달리 박미지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하나씩 다 벗기 시작했다.

“뭐해요? 안 벗어요?”

“응?. 벗.어야죠. 그런데. 왜 번거롭게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벗는 거죠? 놀다보면 자연스럽게 벗고. 그런 거 아닌가요?”

“이곳은 사적인 공간이라는 거 같아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공용공간인 거실 같은 덴 서로 같이 즐기고 이곳은 동의 된 파트너나 권태로운 파트너만 들어온다고 하던가.”

“. 그렇군요.”

“저도 딱 한 번 밖에 안 와봐서 잘 몰라요.”

“그때도 여기로 오셨어요?”

“네.”

“그럼. 저기 있는 사람 중 그때 왔던 사람이 있어요?”

“김의원님이요. 여자는 달랐지만. 분명 저 뚱띵이는 그때 만났던 남자가 확실해요.”

“여자가 달라요?”

“네. 아!”

“.왜요?”

“그때 있던 파트너는 파트너가 아니었네. 그냥 저처럼 따라 나온 여자였던 거 같은데.”

“미지씨처럼 따라나온?”

“네. 분위기도 그렇고. 하여튼 빨리 나가요. 사람들 기다리겠어요.”

“네.”

서둘러 옷을 벗고는 미지의 뒤를 따라 거실로 나가게 된다.

확실히 이 어색함은 나만이 느끼는 듯 보일정도로 이미 거실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모두 알몸인 채로 스스럼없이 술을 즐기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나와 같은 어색함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있었다. 신이와 김의원이란 남자의 파트너. 분명 그 둘은 남자들의 알몸에 당황까지는 아니어도 결코 편해 보이진 않는 듯 시선을 연신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역시나 강한상의 축 처진 커다란 자지가 가장 눈에 먼저 띤다.

“처음이라서 긴장 많이 하시나보네. 하하 앉으시죠.”

사무관이라 불린 남자가 멀뚱히 서 있는 나와 미지를 불러 앉혔고 우린 곧 테이블을 기준으로 빙 둘러앉은 알몸의 일행들에 합류하게 된다. 스와핑 모임이나 노래방 도우미들과의 시간, 박항구와의 만남에서도 이런 어색함은 못 느꼈었는데,,, 이상하리만큼 내 자신이 작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각자의 파트너들과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며 얘기를 나누는 이 순간에 혼자 외톨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잔에 담긴 도수 높은 술로 목을 축이며 나누고 있는 대화를 듣기만 하고 있다. 

나와는 거리가 좀 먼.

사람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는 경제, 정치 얘기가 주를 이뤘고 농담 같은 서민체험같은 얘기도 간간히 섞어 얘길 하긴 했지만 확실한 건 나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대화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잡담은 그만하시고. 모여서 포커나 치고 사담이나 나누는 건 다음에들 하시죠.”

말을 끊고 의견을 내듯 조금 큰 목소리로 얘기를 하는 강한상의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이 된다.

“매번 똑같은 모임과 섹스도 식상하지 않으십니까?”

“그럼?”

“하긴. 블랙잭 하다가 술 먹고, 그러다가 뒹굴고. 이제 좀 지루하지. 그럼 뭔가 색다른 게 있나?”

“그래서! 제가 이 형님을 모신 겁니다!”

말을 하며 손으로 날 가리키는 강한상. 일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술을 홀짝거리며 마시던 난 순간 스포트라이트라도 받은 배우처럼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날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어색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쿠.쿨럭. 나?”

“이 형님이 일명 섹스 머신! 파티플래너 같은 분이라 이겁니다!” 

“오 강군이 갑자기 사람을 영입한다고 했을 때 누군가 했는데. 역시! 하하하.”

“파티플래너라. 어떻게 놀자는 건가?”

“네! 의원님. 그건 이 김과장님이 이제부터 말씀을 해 주실 겁니다.”

“.”

어색하다.

아니. 쪽팔리고 창피하다라는 감정이 온 머리를 휘젓기 시작했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 모임이 날 희롱하기 위한 모임일지 모른다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시작부터 내 뒤통수를 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한 채 술만 홀짝거리다가 제대로 얻어맞은 꼴이 되어버렸다.

그때. 당황하는 내 모습을 낄낄거리며 신이난 표정으로 쳐다보기 시작한 강한상의 옆에서 신이가 잔뜩 걱정서린 시선으로 날 쳐다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음. 우선. 인사드리겠습니다. 일개 나부랭이인 절 이런 곳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

“짝짝.”

“우리 강군이 이렇게 갑자기 소개를 할 줄 알았으면 좀 더 멋진 멘트를 준비할 걸. 그랬네요. 하하.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서 이런 변태적이고 더러운 모임에.”

“허흠.”

의원이라 소개했던 남자가 내 단어 선택이 껄끄러운 지 헛기침을 크게 한다.

그리고 그런 의원의 모습에 강한상이 또 낄낄거리며 작게 웃는다.

“모임에. 뭔 놈의 게임을 한다는 건지 참. 하지만! 이왕 놀 거 더럽고. 변태적일수록 더 화끈 한 거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놀라면 제대로 놀아야지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놀려고?”

“그거야.”

“.”

“.”

순간 정적이 흐른다.

뭐라고 말을 해야 되는데. 입에서 말이 맴돌고 좀처럼 밖으로 튀어나가질 못하는 경험을 지금순간 하게 된다. 이 만남의 의도를 너무도 잘 알게 된 난 다시 한 번 신이의 얼굴을 쳐다보곤 이내 주먹을 자연스럽게 펼치며 나도 놀랄 정도의 능글맞음과 언변으로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게임을 해야죠.”

일순 웅성거림이 내 귀에 들려온다.

사람들의 시선은 ‘갑자기 무슨 게임이냐?. 게임? 무슨 게임? 섹스 자체가 놀인데 파트너나 빨리 정하고 찢어질 것이지.’등등의 감정들이 뒤섞인 채 의아한 듯 나만을 바라봤지만 난 한 발 더 나아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빈 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만지작거리며 얘길 이어갔다.

“어차피 여기 모이신 분들은 삶의 권태로움에 짜릿한 경험을 위한 모임 아니십니까. 그럼 게임만큼 흥미롭고 재미난 게 없지 않을까. 하는데 말이죠.”

“무슨 게임을 하자는 말씀이죠?”

계속 날 비웃듯 쳐다보던 강한상이 조금은 경직된 얼굴로 날 똑바로 쳐다본다. 

내 예상대로 이 모임 자체가 섹스를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었기에 유희보다는 유흥을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즐기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의 얼굴과 몸을 다시 한 번 관찰하듯 둘러본다.

김의원이라 불린 남자와 그 옆에 앉은 여자.

50대 정도로 보이는 김의원이라는 남자와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분명 부부가 확실했다. 비슷한 모양의 반지와 그리고 바짝 붙어 앉아 있는 형태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관계였다. 뚱뚱한 김의원과는 달리 전형적인 사모님의 모습을 하고 곱게 머리를 따 올린 그의 파트너에 대한 추측을 한 후 옆에 앉아 있는 조사무관을 쳐다본다.

많이 마른 타입의 조사무관과 육덕진 그의 파트너.

연인이든 그 이상이든 분명 밀접한 관계만은 확실했다. 김의원과 같이 액세서리를 맞추고 나온 건 아니었지만 연신 조사무관의 자지를 주무르고 있는 그의 파트너에 행동으로 부부보다는 연인이나 섹스 파트너정도로 보였다.

그리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이 세 커플의 모습과 박미지가 했던 말, 그리고 신이의 방어적인 행동들을 확인하며 한 가지 추리를 조심스럽게 더 해본다.

“오늘 모임은 특별하다고 들었는데. 각자 소중한 파트너 분들을 모시고 모인 건 처음 아닌가요?”

“그렇지!”

무의식중에 김의원이 내 말에 동의로 내 추측을 어느 정도 확신하도록 도와준다.

김의원의 파트너가 김의원이 눈치까지 보게 거북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그럼 분위기부터 풀어야죠. 남자들만 좋다고 분위기가 좋아지는 건 아니잖습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말했잖아. 게임으로 분위기를 띄우자고.”

“게임이요?”

“음. 이건 나도 해본적은 없는데 말이야. 여러분들만 동의해주신다면 재미있게 할 만한 게임 같더군요.”

한상이에게 말을 하다말고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룰은 아주 간단합니다. 저희가 네 커플이잖아요. 테이블을 4등분해서 가운데에 올려놓은 병을 돌리는 거죠. 그리고 그 병이 가리키는 첫 번 째 지목자가 술을 따르는 겁니다.”

“에이 식상하게 술 먹기 게임인가?”

“단! 두 번째 지목된 커플에 여자의 그곳에 술을 따라서 정성껏 비워주는거죠!”

“그곳?”

김의원이 내가 그의 파트너 가랑이 사이를 가리킨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곤 히쭉히쭉 웃기 시작했다.

“그럼. 여기 있는 여자들 그곳에 술을 따른 남자가 시음을 한다?”

“그렇죠!”

“오.크크. 그거 재밌겠군.”

“난 싫어요.”

“싫어?”

“싫으시면. 술을 드시면 됩니다. 아주 간단한 얘기죠. 아래로 드시던 위로 드시던 그건 자윱니다!. 단! 아래로 받으실 땐 따라주신 분이 흑기사처럼 드시겠지만. 위로 받아 드실 땐.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드셔야 됩니다.”

“.”

“.”

“해보자. 어차피 우리 관계 개선하러 온 건데.”

“지금. 이러고 있는 것도 창피해. 죽겠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자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빙그르르르르르르르르 탁탁.탁.탁.’

첫 번째 병은 운 좋게도 내 방향에서 주둥이를 멈춘다.

“허. 이게 참. 주인을 알아보네요.”

“참나. 첫 판부터. 잘 좀 해봐요.”

미지가 기가 차다는 듯 날 노려본다.

“그럼 시중들 하인은”

‘빙그르르르르르르르르 탁탁.탁.탁타타.’

“오.”

이걸 운이 좋다고 얘길 해야 할까?

두 번째 방향의 주인공은 김의원이라 불리는 뚱뚱한 사람이었다.

“크크크크. 엿차.”

뚱뚱한 엉덩이를 드러내며 김의원이 일어나선 옆에 있던 높은 도수의 병을 들고 천천히 걸어온다. 그러나 정작 우리 앞에 서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날 멀뚱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뭐해. 잔이 됐으면 준비를 해야지.”

“네?. 어떻게요?”

“내가 도와줄까?”

“뭘. 헉!.”

미지를 그대로 눕히곤 두 발목을 잡아 있는 대로 미지의 머리 방향으로 잡아당겨 엉덩이를 하늘로 크게 치켜 올렸다.

“아파요!.윽.”

“자 준비는 됐습니다. 어떻게 하실래요?”

“쓰읍. 흐흐. 이거 참. 이런 남사스러운 짓은 난생 처음인데.”

말은 점잖게 하는 김의원이었지만 이미 그의 시선은 미지의 크게 벌어진 엉덩이 사이에 꽂혀 미동조차 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 느끼하고 징그러운 혀를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모습에 왜 미지가 김의원의 모습에 인상을 찡그렸는지를 단번에 이해하게 된다.

“그럼. 차려진 술상이니 맛있게. 먹어야지.”

‘또르르르르‘

“앗!. 차.차가워. 자.잠깐마.ㄴ. ”

엉덩이를 하늘로 추켜세우고 있는 미지의 보지를 손가락으로 벌린 김의원은 곧 술병의 주둥이를 그 곳에 맞춰 안에 들어있는 술을 따르기 시작했고, 금세 작은 잔은 가득 채워져 미지의 아랫배를 타고 가슴과 목으로 그대로 흘러내려기 시작했다.

“씁. 아.이거. 참. 힘 조절이 힘드네.흐흐흐. 그럼. 이제 시음을.”

손등으로 흐른 침을 닦은 김의원이 아주 잠깐 그런 자신의 모습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파트너를 향해 줬다 뺏고는 천천히 허리를 숙인다.

“윽.”

“흐후루룹.쩝.흡흡 쓰읍.쯥씁”

“아”

잡고 있는 미지의 발목을 천천히 기울이자 잔뜩 추켜세워졌던 엉덩이가 천천히 김의원의 방향으로 내려갔고 아예 그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담긴 술을 맛보고 있던 김의원이 대놓고 마셔대기 시작했다.

그 찰나에 곁눈질로 난 사람들의 시선을 훔쳐본다.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미지를 뒤로하고 노려보듯 자신의 파트너인 김의원이란 남자를 쳐다보고 있는 여자, 그리고 이 관경에 혼이라도 빨린 듯 연신 서로의 음부를 주무르며 서로를 애무하고 있는 조사무관. 미지정도는 아니었지만 인상을 작게 쓰고 있는 신이와 이런 내 예상 못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나와 눈이 마주친 강한상.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김의원의 행동을 구경하고 있었지만 강한상만은 예외였다.

강한상은 내 뻔뻔하기까지한 행동과 지금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김의원이 아닌 날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다.

“쩝쩌.캬아 이게 옥문주란 거구나 크크큭”

“아씨. 다 젖었잖아. 이번엔 내가 돌릴래!”

‘빙그르르르르 탁.탁.“

다시 돌기 시작한 병의 주둥이가 신이를 향했다.

눈썹을 꿈틀거리며 놀란 신이와는 달리. 김의원과 조사무관이란 남자의 눈빛이 번뜩이며 먹이를 노리는 늑대처럼 변했다.

“오. 이번엔 한상씨 파트너네. 오늘의 히로인이시네! 하하하.” 

“하하하. 이거 어쩌냐. 신이야 준비 해야겠는데.”

“이런 거 싫어요.”

“싫어도 어쩌겠어. 형님이 이런 게임이라는 걸 시작한 건데.”

“.”

“어서 돌리자고. 저기 진행자 양반.”

“진행자? 저요?”

“그래! 자네 말이야. 이거. 술만 마셔야 되나? 아니면.”

“의원님 너무 조급해 하지 마시고요. 게임이란 게 즐길수록 재미진 거 아니겠습니까. 우선 돌리겠습니다.”

‘빙그르르르르 타타.탁’

“아.”

“아고. 아까부라.”

“허. 이거 이번엔 제가 걸렸네요.”

난 자리에서 일어나 술병을 들고 천천히 신이에게 걸어간다.

그런 내 행동에 신이가 뒤로 엉덩이를 빼며 나와 강산상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봤지만. 내가 들고 있는 술의 도수는 대략 40도가 넘는 야주였기에 마실 엄두를 못 내는 듯 신이의 얼굴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그.그냥 마실게요.”

“네?.”

“주세요. 마시면 되는 거죠?”

“꿀꺽.꿀.꺽. 켁.켁켁. ”

커다란 잔에 반쯤 채워진 양주를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겨우 다 마신 신이는 이내 기침을 하며 타들어가는 목 속의 관경을 표정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 얼굴도 예쁜데 술도 잘 마시네.”

“.”

“그럼 다시 돌릴까요?”

“그러시죠.”

이 거실 안의 모든 사람들은 알몸이었다.

김의원이라 불리는 남자의 파트너가 가장 연장자겪인 여자이긴 했지만 전혀 처짐 없는 탄력 있는 몸매로 30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그건 여기 모여 있은 네 명의 여자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신이의 미모를 따라올 여자는 아무도 없었고, 그건 나만의 느낌이 아님을 남은 두 남자들의 표정으로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양주를 원샷하듯 마신 신이는. 얼굴만이 아닌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온 몸으로 그 섹스러움을 더 돋보이며 나마저도 신이의 몸을 뚫어져라 쳐다보게 만들었다. 

“자자. 빨리. 빨리 돌리자고.”

김의원이 그런 신이를 징그럽게 쳐다보며 성급하게 병을 들어 탁자에 돌리기 시작했고, 이내 궤도에서 이탈한 병은 탁자 아래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김의원과 조사무관이라 불린 남자들의 시선엔 신이의 풀리기 시작한 두 눈꺼풀과 살짝 벌어진 입술에 환장이라도 한 놈들처럼 다른 병을 테이블 위에 급하게 돌리기 시작했다.

‘드르르르륵륵륵. 틱.탁탁.타.‘

“오예!”

“응?.!”

야속하게도 병의 주둥이는 또 한 번 신이를 향하고 멈춰 섰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긴! 흐흐흐 이건 나한테 신이 주신 기회네! 자 갑시다!”

다시 한 번 병을 돌리는 김의원이란 남자를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신이가 쳐다본다. 그 광경을 호기심이 잔뜩 서린 두 눈으로 지켜보는 세 여자와 히쭉거리며 웃는 김의원, 그리고 잔뜩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조사무관. 이들과는 달리 강한상의 얼굴엔 이제 미소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강한상은 무섭게 신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자. 어떻게 하실래요? 한 잔 더?”

“.네. 주.세요.”

무리를 하고 있다.

신이는 이미 귀까지 벌겋게 변한 채 김의원이란 남자가 넘치도록 잔에 따르는 술을 흔들리는 두 손으로 받아 그 잔을 잠시 응시하곤 시선을 돌려 날 쳐다본다. 

원망서린 신이의 시선이 날 향했다.

“흑기.”

“꿀꺽.꿀꺽.꿀.꺽.”

내 말이 시작도 되기 전에 신이가 표면장력으로 빵빵하게 채워진 잔을 흔들리는 손으로 겨우 입에 가져다대곤 두 눈을 질끈 감고 또 원샷을 시도하지만.

반 쯤 넘게 마시곤 결국 뱉어내게 된다.

“켁.코.콜록.콜록.”

“그만하시죠.하하 . 이러다가 큰일 나겠네요.”

“안 되지! 게임 아닌가!? 게임이면 게임답게 벌칙 아니면 룰이지!” 

“.”

강한상은 웃으며 김의원을 말리듯 얘길 하고 있지만. 분명 그 웃음 속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이 통제되지 않는 게임이란 것에 눈에 보일정도로 화를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신이에겐 정말 미안한 감정이 들긴 했지만. 이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찌릿한 쾌감이 내 몸을 휩쓸고 머리꼭대기까지 올라섰다.

“어떻게 할까? 강군. 이것도 게임이긴 하니까. 룰을 지켜야 할까? 아니면. 그냥 이대로 넘어가?”

“.”

“게임은 게임이지!”

“룰은 지켜야죠. 단순히 즐기는 게임이라고 해도. 신이야 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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