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화
<영원불멸의 대제국>
한편 교토의 왕궁에서 지내는 최인범은 쉽게 떠날 줄 알았던 왜에서 여전히 머물고 있었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압수된 토지나 건물 그리고 재물들의 처리가 남았기 때문이다.
“재물이 너무 많아도 머리가 아파.”
“폐하,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사옵니다. 그저 쉽게 생각해 처치하기 곤란한 재물은 국고로 귀속시키면 아주 간단합니다.”
일단 왕궁을 비롯한 아주 큰 성들은 모두 황실 소유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에 딸린 토지도 당연히 황실 소유다. 그리고 나머지 토지는 국가 소유로 하거나 또는 도지사가 관리하는 식으로 처리했다.
그래서 당연히 왜에 있는 모든 은광이나 금광은 황실 소유로 변해 버렸다. 다만 구리광이나 기타 광산은 국가 소유지만 도지사가 관리해 지방 재정에 도움이 되도록 조치를 내렸다.
“정보원장, 이런 정도면 끝났지 않나?”
“아닙니다. 영주나 왕실에 속하던 후실들이나 또는 시녀들이 너무 많아 그 여자들의 처리가 남았습니다.”
오랜 전국시대를 보낸 왜는 강자 독식 체제라 전에 강자이던 영주들이 차지하고 있던 여자들이 아주 많았다. 조사를 해보니 해도 너무하다고 할 정도다.
‘이러니 왜놈들이 여자만 보면 환장했었군.’
일부가 다수의 여자를 차지하니 약자인 민초들은 여자와 혼인한다는 것이 너무도 큰 영광에 속할 정도다. 하긴 영주는 그것을 미끼로 사무라이의 충성심을 유도한 점이 많았다.
작은 지역을 차지한 영주도 최소한 몇백명의 여자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사에 속한 무녀들도 많고 기방에서 일하던 기녀인 게이샤들도 영주들의 소유가 많았다.
“최고로 많은 여자를 소유한 영주가 무려 1만명이나 된다고?”
“넷! 영지 내의 모든 여자는 영주 소유라고 할 정도입니다. 사실 사무라이들의 부인들은 모두 영주 소유인 여자들도 기록되어 있사옵니다.”
“허! 그럼 영주 소유인 여자와 혼인해도 언제고 영주가 부인을 돌려 달라면 돌려 줘야 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왜는 결혼제도와 문화가 전혀 다르옵니다.”
“그렇다면 그 와중에 자식이 태어나면 그들은 어떻게 하고?”
“폐하! 그래서 왜인들은 양자 제도가 활성화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나중에 자식들 사이에 재산권 문제도 쉽게 해결되고요. 아무튼 상당히 다른 문화입니다.”
어찌 보면 형사취수제를 사용하는 여진이나 북방민족들의 풍습을 많이 닮아 있었다. 그래서 최인범은 기왕에 혼인을 한 여자들의 경우 모조리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남편들에게 완전히 보내는 형식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처녀들의 경우는 황실 소속이지만 언제고 본인이 원한다면 가족에게 돌아가거나 혼인을 해서 가정을 꾸리도록 배려해 주었다.
“폐하, 그냥 혼인을 시킬 수는 없으니 남편감으로는 대진국에 공로가 많은 해외원정군으로 파병을 오게 된 병사들에게 우선권을 줘야 하옵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하세요.”
기방에서 살아서 평범한 삶이 힘든 게이샤들이다. 그런 경우는 조선의 관기와 비슷한 형태로 존속시키게 되었다. 신사에 소속되었던 무녀들의 경우는 모두 게이샤와 똑 같이 관기로 변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에도 예외에 속하는 미녀들은 있었다.
특히 오우치 가문 소속이던 미녀들 경우 출신 성분이나 출생지가 각기 다르다.
“폐하, 오우치 가문에서 데리고 있던 미녀들의 경우 조선, 남명, 멀리 유구 등에서 오게 된 여자들이 아주 많사옵니다. 그러니 그런 미녀들은 별도로 처리하심이 좋사옵니다.”
“별도라니 어떻게 말이요?”
“그 미녀들은 이미 평범한 삶을 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모두 데리고 가서 대진국의 공신들에게 하사하심이 좋사옵니다.”
남보다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태어났으니 자신이 다른 여자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편하게 화장이나 하면서 사내의 사랑이나 받고 살려는 의식 구조를 가진 여자들이 많았다.
그런 여자들을 대진국의 공신들에게 보낸다니 최인범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판단했다. 거대한 제국이 망하는 것은 안에서 점차 썩어 들어가기 때문이다.
미녀들을 데리고 가서 공신에게 주면 자연히 공신들 사이에 시기 질투도 늘고 음모도 늘어나게 된다.
서로 미녀를 차지하려고 모략이 심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최인범은 최복동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이미 평범한 삶을 살기가 힘들다고 판단되는 미녀들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그런 미녀들은 모조리 하카타, 오사카, 히로시마로 보내서 새롭게 기방을 열도록 하시오. 그래서 그녀들의 소속은 모두 국가 정보원으로 해서 잘 활용해 보시오.”
“넷!”
최인범은 왜를 일부분 복속시켰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국가정보원에서 미녀들을 정보원의 끄나풀로 사용하라는 뜻이다.
사내들이란 여자 치마폭에서는 허세도 심하고 또는 과시욕이 많아진다. 또한 자신에게 뭔가 특별한 일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해서는 안 될 비밀도 쉽게 여자 앞에서는 발설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런 점을 노리는 것이다.
“폐하! 설사 그렇더라도 어린 미녀들의 경우 봉황성으로 데리고 가야 하옵니다.”
“왜 그래야 하는 거요?”
“폐하, 그래야 황제 폐하의 권위가 서는 법입니다.”
최복동이 이렇게 답하자 최인범은 어이가 없었다. 여자를 많이 차지해야 황제의 권위가 선다니 어불성설이다. 자신은 여자에 별로 흥미가 없지만 워낙 권하자 결국 승낙했다.
“그렇다면 잘 선정해서 일부 어린 여자들은 데리고 가도록 합시다.”
돌아갈 집도 없는 고아인 여자들이라니 결국 승낙해 준 것이다. 태왕이 결국 이렇게 승낙하자 최복동은 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견물생심이라고 어린 미녀를 보면 폐하께서도 마음이 변하겠지.”
“원장님, 그건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여기서도 기회는 많았지만 절대로 그런 일은 하실 분이 아닙니다.”
“무슨 소리야 두고 보자고.”
최복동은 나름 믿는 것이 있었지만 태왕은 독특이한 체질과 성품이라는 것은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어린 미녀들이 모두 고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출세하려는 왜인들이 사서 바친 미녀들도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출세에 눈이 먼 왜인의 친딸들도 있었다.
이런 처리 이외에도 무수한 정책들을 태왕의 자격으로 조치를 내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왜의 보물들의 처리다. 금괴, 은괴, 보석들이나 귀한 물건은 모조리 봉황성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드디어 태왕은 오사카 부두에서 수많은 함정에 가득 보물들을 싣고 떠나고 있었다. 오랜 기간 갈등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런 정도로 왜에 대해 마무리하게 되어 천만 다행으로 생각했다.
‘이런 정도가 제일 적당해.’
어떤 사안이고 만족감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때로는 아쉬움도 있고 잡스러운 생각이나 계획도 많지만 그런 대로 마무리해서 훌훌 털고 떠나게 된 것이다.
오사카 항구를 출항한 많은 해군 함정들에는 귀국하는 병사들도 같이 있었다. 일부 전우들은 왜에 정착한다고 다들 태왕으로부터 여자를 하사 받아 결혼하고 정착했다.
“준사관 이상만 허가를 해줬다고 하네.”
“그렇다고 하더군.”
“하긴 전쟁터로 와서 준사관도 되지 못할 정도로 공로가 없으면 그건 바보지.”
아무튼 해외원정군으로 파병된 병사들은 대부분 준사관으로 진급했다. 그러나 보급병들은 몰래 나름 재물은 챙겼다고 하지만 진급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귀국하는 보급병들도 지니고 있는 재물이면 귀국해서도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다.
왜의 열도들을 지나 드디어 현해탄으로 접어들어 대마도 옆을 스치듯이 지나고 나서 빠르게 서진하자 병사들은 환호성을 토했다.
“와! 부산포가 보인다!”
귀국하는 병사들은 개인 소지품 이외에는 아무런 무기도 지니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혼슈 지역이나 다른 지역에 새롭게 구성되는 보병 사단에도 무기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모조리 놓고 떠난 것이다.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군대란 유사시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혼슈에도 무기나 군사 장비는 많이 필요했다.
이윽고 부산에 도착한 함정에서 군인들이 모조리 하선해 각자 고향으로 가게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3개월의 휴가를 받기 때문에 결혼하라고 보내주고 있었다.
“나중에 다시 만나자.”
“그러자.”
해외원정군은 전과 달리 이제는 모두 본인이 원하면 고향 근처에서 복부를 하도록 조치를 내려 주었다. 그래서 해외원정군은 사실상 부산포에 도착과 동시에 해산하게 되었다.
다만 척계광이 이끄는 함선의 경우 일부는 바다를 통해 단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가 이끌던 많은 함정들도 이미 오사카에 있는 해군에게 인계하고 떠나는 중이다.
일부 함선만 왜에서 차지한 보물들을 봉황성으로 운송해야 되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이다.
척계광과도 해어진 최인범은 육로를 통해 풍기로 가서 전에부터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생각이다. 조선이 합병되자 그래도 살던 고향이 좋다고 많은 사람들이 풍기로 돌아가 정착했다.
마도치를 비롯한 풍기의 왈짜 패 출신들은 대부분 전역하고 부모님과 같이 산다고 그곳으로 다시 이주했다. 그런 분위기라 척계광도 아마도 귀국하면 자신의 고향인 등주로 가서 근무하길 원할 것 같았다.
“원한다면 그리로 보내 줘야지. 적당한 자리가 있나 모르겠어.”
“해군 함대 사령관으로 임명해 보내면 될 것입니다.”
“그렇군. 한번 자리를 만들어 봐.”
“넷!”
최인범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풍기로 가면서 오래전의 처음 배도치를 만나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죽었지만 그래도 자신과 연이 깊었던 백삼수가 저절로 떠오르고 있었다.
“후! 그놈이 있었다면 그래도 심심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놈이 죽고 나니 세상사는 재미가 별로야.”
최인범은 모두 이룬 자들이 가지는 허탈함과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칫 삶이 무력해 질수 있다고 판단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래서 구상한 것이 해외에서 무역을 하면서 해적질을 하는 정난정을 만나면 뭔가 새로운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정보원장을 통해 비밀리에 정난정이나 만나야 되겠어.’
이런 결심을 하고 최인범은 최복동에게 명령을 내렸다.
“정보원장! 현난풍 제독이 어디에 있나?”
“넷! 지금은 규슈에 있을 겁니다. 안남 지역에서 물소 뿔을 대량으로 사와서 군에 납품하고 있사옵니다.”
“연락해서 조금 어렵더라도 한양의 마포 나루에서 만나자고 전해.”
“넷!”
최인범은 현난풍이란 이름으로 활동 중인 정난정을 통해 서양인 유럽으로 무역선을 보내기로 했다.
자신이 같이 갈 수는 없지만 그녀라면 인도양을 지나 희망봉을 거쳐 유럽으로 보내려는 것이다. 그녀라면 유럽의 크고 작은 왕국들과 교역하는 무역 루트를 개설할 것으로 믿었다.
포르투갈이나 에스파냐 또는 네덜란드 등으로 가서 무역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최인범은 드디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해 내자 발걸음이 빨라지게 되었다.
“빨리 올라가자.”
최인범은 풍기를 지나 한양으로 올라가 결국 정난정을 만나 그녀에게 유럽으로 가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난 것을 보고 봉황성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오랜 숙원을 이룬 최인범은 봉황성에서 머물면서 통치했다. 또한 수시로 자신이 그동안 정복한 영토를 순행하면서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며 살았다. 나라도 안정되고 황실은 화목하게 지내고 있어 이렇게 자평했다.
‘이만하면 훌륭한 삶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