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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516화 (516/519)

516화

비가 내리자 강을 통한 수로가 깊고 넓어져 쉽게 대진국의 판옥선이 강의 상류로 올라오는 것이다.

첨저선인 자신들의 배와 달리 대진국의 판옥선은 평저선이다 보니 낮은 수심에도 기동이 가능했다.

내륙 깊숙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좋아했지만 강한 적 앞에서는 지리적인 이점도 별로 소용이 없었다. 많은 화포를 장착한 판옥선을 대적할 방법이 없었다.

펑! 펑! 퍼벙!

멀리서 대포 쏘는 소리가 들리고 그때마다 왕궁으로 포탄이 날아오는 것 같았다. 정상적으로 격식을 차려서 도망치기는 불가능해 결국 천왕은 하급 관료 옷으로 갈아입었다.

허둥지둥 대신들도 평범한 옷차림으로 갈아입었다. 늦으면 대진국 병사들에게 포로로 잡히니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허겁지겁 평범한 옷으로 변복하고 떠나게 되었다.

“빨리 떠납시다.”

“그럽시다. 다들 궁에서 나가면 말을 조심하시오.”

“당연하죠.”

천왕과 대신들은 허름한 옷차림으로 변복을 하고 왕궁에서 급하게 빠져나와 신속하게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천왕은 다리가 아파서 그 자리에서 멈추고 호위무사에게 물었다.

“황자와 황비 그리고 황족들은 어떻게 됐나?”

“그분들은 이미 다른 쪽으로 떠났습니다.”

“안전한가?”

“넷! 병사들과 같이 떠났으니 안전합니다.”

가족들이 왕궁을 떠나며 자신에게 인사도 안한 사실이 약간 섭섭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우선 자신의 몸이 우선이라 대신들과 같이 빠르게 이동했다.

‘어디로 가야 살 수 있지?’

전쟁에서 패해 왕궁을 버리고 도망치는 신세라 스스로도 한심했다. 천왕은 낙심한 표정으로 힘든 도망 길로 접어든 것이다. 앞으로 살아야 할 길이 너무 험난해 보였다.

이제까지 살면서 스스로 뭐하나 결정해본 사실이 없으니 앞날이 아득하기만 했다. 동쪽으로 간다고 해서 꼭 예우를 받게 생기지 않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 지역은 천왕인 자신을 서쪽 지역보다 더 홀대하는 분위기다.

‘어디 조용한 심산유곡으로 들어가 편하게 살고 싶군.’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변해도 편안하게 먹고 놀면서 고고하게 살고만 싶은 천왕이다.

드디어 지금보다 더욱 가파른 비탈진 산길로 접어들어 허름해 보이는 초가로 들어가자 대신이 급하게 보고했다.

“여기서 부터는 가마를 타고가도 됩니다.”

“알았네.”

걸어서 더 이상 움직이기 곤란해 결국 가마를 타고 이동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천왕은 준비된 가마를 타고 초가를 떠나 산길로 향했다.

“빨리 가자!”

“예이!”

천왕이나 대신들은 자신들이 지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벌이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산길에서 남의 주목을 받는 가마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다다다다.

호위병들이 가마꾼이 되어 힘들게 가파른 산길을 가고 있었다. 힘이 들지만 적들이 언제 자신들의 행적을 추적해 올지 모르니 급하기만 했다.

“빨리 빨리.”

대신들이나 천왕이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었고 허름한 가마라 남의 눈을 속이고 있다고 판단했다. 전쟁이 터져 위급한 상황에 한가하게 가마를 타고 산을 가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

천왕 일행은 교토의 북쪽 산길을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자신들을 추적하는 무리가 없자 다들 안심이다.

“조금만 더 가면 안전해.”

“서두르자고.”

그러나 이미 천왕 일행의 이동을 모조리 파악하고 있는 무리가 있었다. 왕궁 주변에서 왕궁 내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감시하는 대진국의 국가정보원들의 눈에 걸려들었다.

한편 교토의 왕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가옥에서는 수상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이들은 모두 최복동이 이끄는 정보요원들이다.

한 정보요원이 급하게 들어서서 최복동에게 보고했다.

“정보원장님, 천왕 무리가 드디어 왕궁에서 나왔습니다. 천왕은 지금 하급 관료 차림으로 이동 중입니다. 호위무사는 20명 정도입니다. 고위관료들이 10명 정도 같이 가고요.”

“요원을 모조리 동원해서 추적해.”

“넷!”

최복동은 왕실의 가족들 위치도 다음으로 중요해서 물었다.

“천왕의 가족들도 어디로 갔는지 정확하게 아나?”

“넷! 왕실의 가족들은 별도의 조를 짠 정보요원들이 이미 계속 따라 붙어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 대규모로 이동 중일 겁니다.”

“한 놈도 놓치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비하다가 기회를 보아 모조리 잡아들여.”

“넷!”

태왕께서 왜로 직접 출병해 전쟁을 벌여 천왕을 잡으려고 결정했다.

국가정보원장인 최복동은 많은 요원들과 같이 왜로 들어와 있었다. 그동안 계속해서 왜군들의 동향이나 기타 중요한 정보를 수집해 해외원정군으로 전해주었다.

정보요원들의 임무는 전쟁의 승패나 전투의 결과와는 전혀 상관없었다. 다만 언제고 태왕폐하의 명령만 떨어지면 천왕을 암살하거나 또는 행적을 추적해 체포할 수만 있으면 된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보는 것이 실수가 없어.’

최복동은 부하들에게만 추적을 맡기는 것이 조금 불안했다. 약간이라도 실수를 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직접 나서기로 했다. 서둘러 말에 올라 부하들이 추적 중인 산길로 향했다.

두두두두

정보요원들이 목표 추적할 때는 암호로 표식을 해놓고 다닌다. 그래서 최복동은 부하들과 같이 낙서와 같은 그런 표식을 따라 신속하게 이동했다.

한참을 추적하다가 드디어 인적이 드문 초옥에서 천왕 일행을 발견하게 되었다. 허름한 옷차림의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배가 고파서인지 과일들을 입에 물고 있었다.

“작전과장, 저기 보이는 호리하고 작은 체구의 사내가 천왕이 틀림없나?”

“넷! 확실합니다.”

잠시 뒤에 이들은 초가에서 가마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망원경으로 계속 확인한 결과 초가에서 사람이 바뀔 변수는 전혀 없었다. 외부에서도 훤하게 방안이 다 드러나 보였다.

초가에서 나와 산길을 가마를 이용해 이동하기 때문에 추적은 용이했다. 천왕 일행의 뒤를 한참 추적하던 최복동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옆에서 같이 추적하고 있던 부하가 이상해서 물었다.

“정보원장님, 왜 멈추십니까?”

“천왕이 가고 있는 앞의 골짜기에 매복하고 기다리는 놈들이 있어.”

“예? 앞에 매복이라뇨? 왜놈 입니까? 우리 편입니까?”

“쉿!”

숨을 죽이고 망원경으로 앞에 있는 좁은 계곡을 살폈다. 그러자 가마가 가고 있는 숲속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괴한들이 보였다. 나뭇잎이나 풀로 교모하게 위장했지만 자세하게 살피자 풀숲에 몸을 은신하고 숨어서 뭔가를 노리는 것이 분명했다.

처음에는 산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산적치고는 너무 침착하게 천왕이 탄 가마가 다가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저건 분명 고도로 훈련 받은 무리야.’

암살단인 닌자들 일수도 있었다.

최복동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돌발 변수가 발생하자 무척 당황했다. 그러나 머릿속을 스치는 느낌이 있었다.

‘혹시 폐하께서 직접?’

이미 태왕께서 북쪽으로 상륙 작전을 전개한 사실을 보고 받아 알고 있었다. 분명 태왕께서 북쪽을 통해 길목을 지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마가 깊은 산길로 접어들자 가마 주변으로 40여명의 괴한들이 튀어나와 완전히 포위해 버렸다. 그리고 천왕을 호위하던 무리들과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접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10명의 호위무사들은 너무도 쉽게 여전히 숨어 있는 괴한들이 발사한 화살 공격으로 죽어버렸다. 더구나 50명의 괴한들 주위로 또다시 500명의 기마병들이 달려와 이중으로 포위했다.

“꼼짝 마라!”

기겁하고 놀란 천왕이나 대신들은 덜덜 떨면서 목숨을 구걸했다. 그러나 괴한들은 빠르게 그들을 밧줄로 포박해 버렸다.

괴한들의 정체를 확인한 최복동은 풀숲에서 나와 그들에게 다가 갔다. 그들 무리를 지휘하고 있는 태왕을 발견하자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폐하! 접니다. 여기까지 직접 오셨군요.”

생각지 않은 장소에서 심복인 국가정보원장을 만나자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정보원장. 여기에서 뭐하고 있어? 그동안 안보이더니 왜로 넘어 왔었군.”

“폐하! 저희는 오래 전부터 왜로 넘어와 정보를 수집하고 천왕을 추적 중이었습니다. 폐하께서 미리 호구 자리를 만들어 놓고 매복해서 쉽게 잡았네요.”

완전히 포박까지 당한 천왕이나 대신들을 포함해 30명이다. 10명의 호위무사는 그저 싸늘한 사체로 변해 있었다.

목적한 바대로 최인범은 천왕과 대신들을 잡게 되었다.

최인범은 즉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이곳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고 다카시마로 가자!”

“넷!”

최인범은 여기서 만난 최복동과 그의 부하들 그리고 경호원들과 함께 철갑웅이 주둔하고 있는 다카시마 마을로 향했다.

천왕이나 대신들은 모두 얼굴에는 시커먼 두건을 씌워서 포박한 상태로 질질 끌고 갔다. 천왕이나 대신들이나 곱게 대우를 해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저희들만 살자고 도망친 놈들이야.’

이기고 있는 전쟁에서 천왕을 포로로 잡았다면 쉽게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되면 새로운 변수가 생길 수 있었다. 만약 동쪽으로 도망친 왜인들이 새로운 천왕을 내세우면 아무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잘 진행되는 정복전쟁에서 굳이 돌발 변수를 만들 필요는 없어.’

막상 천왕을 잡기는 했지만 이후 처리를 어찌 하느냐를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처리는 뒤로 미루기로 하고 최복동에게 지시했다.

“정보원장, 천왕을 우리가 사로잡았다는 것은 비밀로 해. 공연히 소문이 나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변수가 생기면 곤란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꼭 필요한 심문만 제가 하겠습니다.”

“알았네.”

다카시마에 도착하자 의외로 그곳에는 천왕의 가족인 왕족이나 기타 대신들 그리고 시녀들이 붙잡혀 있었다.

“폐하, 비와 호수에서 배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하려는 중에 선착장에서 모조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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