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화
긴 머리카락은 모두 나중에 심리전을 펼치기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사체를 화장해 버리라는 명령은 아주 치밀한 목적이 있었다. 전사한 왜군들을 실종 상태와 같이 만들면 그 또한 왜의 진용에 큰 혼란을 준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편 빠르게 오사카를 떠나 교토 외곽에 도착한 보병사단은 넓게 포진해서 도시의 외곽을 완전히 포위했다. 왜의 우두머리인 천왕을 잡으려면 반드시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망을 철저하게 구축해야 된다.
“이동이 가능한 곳은 모조리 부대가 주둔해서 철저하게 막아.”
“사단장님, 산길들은 어떻게 하죠?”
“그 지역은 수색 중대에서 매복을 서도록.”
“알겠습니다.”
정찰병이나 또는 미리 교토로 잠입해 활동 중인 국가정보요원의 소식에 의하면 천왕은 여전히 왕궁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그것이 위장만 아니라면 천왕은 이번 기회에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보병 사단이 교토를 포위하고 있는 가운데 해군들도 바빴다.
이제 오사카 공격이 끝났다고 판단한 해군들은 일부 함정을 제외하고 보병과는 별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척계광의 지휘로 전투함만 새롭게 무기들을 적재했다. 오사카만을 떠나 동쪽으로 이동했다.
“총사령관님, 다음은 목표는 어디죠?”
“나고야!”
“넷!”
전투함만 동원해 나고야 쪽에 집결되어 있는 왜군들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전투함들만 데리고 떠나는 이유는 그곳으로 가서는 함포 사격만으로 공격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한편 멀리 교토 북쪽에 위치한 동해안의 작은 마을.
술병처럼 오목한 지형인 오바마 만에 많은 함정들이 나타났다. 그러자 작은 마을은 일순 공포감이 감돌며 사람들이 숲으로 들어가 숨기 시작했다.
동해를 이용해 동쪽으로 이동한 최인범은 해군 함정들과 같이 오바마 마을에 도착했다. 함정에 타고 있던 기마병들은 빠른 속도로 하선했다. 상륙하기가 좋은 다른 어항도 있지만 마을 명칭이 다소 익숙하게 들려 이곳을 상륙 지점으로 정했다.
부대원의 기본 점검을 끝내자 최인범이 명령했다.
“철갑웅! 숲으로 가서 마을 사람을 불러와.”
“그냥 오라면 오나요?”
“돌아오지 않으면 마을을 물론 산에도 불을 지른다고 말해.”
“넷!”
마을 사람들은 숨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철갑웅의 생긴 것으로 보아 한다면 하게 생겨서 더욱 겁이 났다. 숲에서 나오지 않으면 마을을 모조리 불살라 버린다니 다들 나왔다.
후다닥! 와글와글.
조금 기다리자 육로로 이동하던 기마병들도 도착했다. 최인범은 2천명의 기마병을 북쪽의 해안에 있는 쓰루가로 보내기로 했다. 그곳으로는 예비 군마를 4천필을 가져가게 했다.
여유분의 군마를 가져가는 이유는 혹시 왜군들이 너무 많이 밀려오면 빠르게 후퇴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인범은 추가해서 지시했다.
“대대장, 쓰루가로 가서 말을 이용해 우선 목책으로 진지를 구축하고 동쪽에서 왜군들이 오는지 모르니 길목을 지켜!”
“넷!”
명령을 받은 두 명의 대대장들은 부하들을 이끌고 각기 대열을 이루고 빠르게 산길을 타고 쓰루가로 향했다.
오바마 마을에 남게 되는 해군들에게도 임무가 주어졌다. 그들은 이곳에 남게 되는 4천필의 말을 가지고 이곳에도 진지를 구축하게 된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이곳을 통해 바다로 철수해야 하니 철저히 대비해 놓도록.”
“넷!”
두두두두
최인범은 남은 2천명의 친위기마부대원들은 이끌고 거대한 비와 호수가 있는 다카시마로 향했다. 예비군마가 없이 이동하는 것은 이제는 속도 보다는 은밀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마병들이 모두 떠난 오바마 마을에는 해군들만 남아서 점령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마부대로 보내는 보급부대 역할로 건초나 식량을 구해야 한다.
벽촌이라 농토도 한정되어 있으니 식량은 어민들에게서 건어물을 취하고 건초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또한 군마를 이용해 산에서 큰 나무들이나 돌과 흙을 날라 와 부두를 건설하기로 결정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촌장, 그대들도 부두 시설이 확장되면 좋으니 적극적으로 협조하시오.”
“넷!”
하늘에서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산길을 타고 빠르게 다카시마로 가고 있었다. 한참을 이동해 드디어 바다와 같이 넓은 비와 호수에 도착했다.
엄청난 크기의 호수를 만나자 철갑웅이 입을 떡 벌리면서 놀랐다.
“와!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이 호수라니. 세상에서 제일 큰 호수 같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호수는 따로 있어. 몽골의 북쪽에.”
“그렇군요.”
가보지도 않은 몽골 북쪽에 세상에서 제일 큰 호수가 있다고 하니 역시 태왕께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호수 옆에 있는 다카시마 마을로 기병대가 들어가자 마을은 일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대진국에서 오사카로 쳐들어 왔다는 소식은 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분명 한참 떨어진 후방인데 기마병들이 출현했다.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광장에 모여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철갑웅, 마을 사람들이 외부로 나가지 못하게 통제해.”
“넷!”
철저하게 입단속을 시키고 또는 500명의 기마병에게 이곳을 지키라고 명령을 내리고 나머지 기마병들과 같이 남쪽으로 이동했다.
드디어 비와 호수 옆에 있는 산자락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얼마 가지 않아 왜의 수도인 교토가 있다.
500명씩 3개 조로 나누어 은밀하게 전개시키고 철씨 삼형제에게 지시했다.
“이쪽으로 이동하는 놈들은 무조건 사살해.”
“피난민도 사살합니까?”
“일단 잡아놓고 나서 확인을 해야지. 아무튼 천왕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산길마다 매복을 세워서 거미줄 단단히 쳐놓도록 해.”
“넷!”
최인범은 100명의 경호실 요원 그리고 100명의 호위무관들과 같이 별도로 조를 이루었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숲속에 자리하고 숙영하기로 했다.
다소 은밀한 계곡의 개울가에 숙영지를 만들고 나자 최인범은 백두를 데리고 정찰을 겸해 사냥에 나섰다.
“호위무관들 중에 20명만 따라와.”
최인범은 호위무관 20명을 데리고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정찰을 겸한 사냥에 나섰다. 사냥꾼들이 다니는 산길을 확인하며 돌아다녔다.
두리번두리번
본시 유능한 호랑이 사냥꾼이라 야생동물이 잘 다니는 길목을 잘 찾았다. 교토에서 북쪽으로 이동하기가 가능한 산길을 찾아내고 지도에 표시를 했다.
“지형을 잘 숙지해 두고 나중에 조를 짜서 매복할 수 있도록 해.”
“넷!”
야생 동물을 찾는 일보다 왜인들이 혹시 이용할지 모르는 탈출로를 미리 확인해 두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면서 산길을 가던 최인범은 드디어 흑곰의 자취를 발견했다.
“좋았어! 곰을 잠아서 웅담이라도 챙겨 먹어야겠어.”
옆에 있는 백두가 소나무에 난 상처에서 냄새를 맡고 흑곰 추적에 먼저 나섰다. 백두의 뒤를 따라가다가 흑곰을 발견하자 빠르게 활을 쏘아 잡았다.
“해체해서 나누어 들어.”
“넷!”
산길도 찾으면서 사냥을 했다. 사냥도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좋은 방법이다. 교토에서 북으로 도망칠 수 있는 모든 산길을 찾아내고 더불어 멧돼지도 10마리나 잡았다. 부하들은 다들 감탄했다.
“폐하는 사냥에는 귀신이야. 저렇게 빨리 잡는다는 사냥꾼은 들어보지 못했어.”
“호랑이 사냥꾼인데 저런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사냥을 끝내고 나서 흑곰과 멧돼지도 가지고 숙영지로 돌아왔다. 멧돼지 고기를 구워서 든든하게 먹이고 나서 조를 짜서 매복 지점으로 가도록 명령을 내렸다.
“발견하면 위치만 확인하고 본대로 연락해.”
“넷!”
사실 궁중에서 호의호식하던 천왕이 이런 험한 산길로 탈출할 것은 예상하지 않았다. 분명히 도로를 이용해 북쪽으로 이동할 것이지만 그래도 남에게 업혀 이동할 수도 있으니 그런 변수도 고려해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생고기를 마음 것 먹은 최인범은 작은 천막 안으로 들어가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이제 그물은 쳐놓았으니 걸려들기만 기다리면 되겠어.’
천왕의 운명이 여기가 끝이라면 반드시 걸려들 것이다. 그게 아니면 빠져 나갈 것으로 판단해 이제부터는 천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이날 이후 최인범은 산속에서 가끔 사냥도 하며 매복한 상태로 마냥 기다렸다.
한편 교토의 왕궁에서는 왜의 장군이나 관료들이 모여서 회의 중이다. 실권이 전혀 없는 천왕은 그저 넋이 나가서 듣고만 있었다. 신하들은 다들 초조한 기색이 역역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교토를 포기하고 동쪽으로 도망치는 논의가 한창이다. 아무리 대진국이 강한 나라라고 하지만 이렇게 빨리 교토까지 진격할 줄은 몰랐다.
“빨리 포위망을 뚫고 탈출해야 합니다.”
“그럽시다. 더 늦으면 안 됩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진격해 다소 느긋했다. 그러나 야마구치를 함락시키고 나더니 전격적으로 많은 도시들을 건너 뛰어 오사카로 상륙 작전을 전개했다. 그리고 막강한 화력으로 너무 쉽게 5만명이나 되는 자신들의 군대를 격퇴시켜 버렸다.
천왕은 힘이 하나도 없이 야마모토 총사령관에게 물었다.
“추정 사망자가 모두 2만명이라고?”
“넷! 2만명은 사망하고 1만명은 동쪽으로 후퇴하고 이곳으로 온 병사의 수는 5000명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행방이 묘연해 다들 개별적으로 탈출한 것 같습니다.”
“적과 대적할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군.”
보고야 개별적으로 탈출했다고 했다. 하지만 15000명은 모두 탈영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동쪽의 나고야를 비롯해 사방에서 끌어 모은 병사들이 5만명이다. 그중에 겨우 5000명만 남아 있으니 교토의 방어는 불가능했다.
이곳에 5000명의 군사가 더 있어 모두 1만명이라지만 그중에 반은 모두 급하게 모아놓은 그저 죽창이나 들고 있는 농민군이다. 더구나 허약자들까지 있으니 살길은 항복이 아니면 탈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포위망을 뚫고 탈출할 확률은 희박해지고 들여오는 소식은 참담했다. 오사카를 통해 강을 거슬러 판옥선이 교토로 오고 있다니 더욱 아득했다.
“조선의 판옥선은 함포로 무장하지 않았소?”
“그렇습니다. 이제 그만 떠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