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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509화 (509/519)

509화

시모노세키 항구를 비롯한 여러 항구들의 함정들이 일제히 출동했다. 그중에 소형 함정으로 구분되는 판옥선도 있었다.

“와! 배가 너무 많다.”

“드디어 출동하는군. 왜놈들은 이제 다 죽었어.”

수많은 크고 작은 함정이나 또는 화물선들이 바다를 가득 메우며 이동했다. 많은 배들이 동진하자 왜인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피난 차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왜의 민간인들도 멀리서 들려오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 지역의 강자 아니 왜에서 최강자라고 불리던 오우치 영주가 암살을 당해 죽었다고 한다. 이제는 왜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을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천황께서 계시는 곳은 안전할 것이니 그리로 가자고.”

“그게 좋겠어.”

피난 보따리를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풀이 죽어 있었다.

사실 동쪽으로 가 봐도 별로 도망칠 길이 없었다. 그래도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최선이라 판단해 다들 동으로 동으로 향하는 힘없는 피난길로 접어들었다.

크고 작은 도로에는 피난민들로 붐볐다.

웅성 웅성. 흐물 흐물.

왜는 대진국의 침략과 동시에 끝없이 유민들이 발생해 사방으로 떠돌고 있었다. 확실한 목적지가 없다가 보니 그전 안전하다고 소문이 나면 그 지방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한편 총사령관인 척계광은 해군 함정을 이끌고 빠르게 이동해 야마구치만으로 향했다. 야마구치만으로 향하는 해변에 있는 도시들은 왜군이 나타나면 여지없이 함포 사격으로 분쇄해 왜군들은 사라졌다.

이제 남쪽 해역은 왜의 함정은 물론 작은 어선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서 오가는 배들은 모두 대진국의 전함들이거나 또는 규슈지역에서 활동하는 상선들이다.

철썩! 철썩!

은밀하게 움직이는 상선들은 주로 어둠을 이용해 섬과 섬 사이를 통과하며 이동했다.

전쟁이란 물자소모도 많고 자연히 생필품 부족 현상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 미래가 불명확하니 상층부에 속하는 여자들의 사치 풍토가 더욱 심해졌다.

“이번에 가져가는 남경에서 생산된 비단은 비싸게 팔릴 거야.”

“고춧가루도 판매하면 이득금이 많죠?”

“당연하지. 하지만 아직은 고춧가루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구하지 못해.”

“그걸 뿌리면 사무라이도 꼼짝 못한다고 하던데.”

“그야 너무 매우니 눈을 뜰 수가 없고 정신이 혼미할 정도니 그렇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졸지에 매운 고춧가루가 전장에서 신무기로 이용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한반도에도 보급이 전국으로 완료되지 않아 구하기가 조금 힘들어서 그렇지 상당히 위력적인 무기다.

규슈의 하카타 지역의 상단들은 태왕폐하의 묵인 그리고 총사령관인 척계광의 비밀스러운 통행증을 들고 왜인들과 밀무역을 하고 있었다.

통행허가를 받았다고 하나 그것은 비밀거래라 들어 내놓고 밀거래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밀무역을 하는 상인들은 항상 밤에만 움직이고 있었다.

밀무역 품목은 왜인들 진영에서는 은괴. 금괴, 구리, 보석, 귀중품, 그리고 여자들이다. 상인들이 왜인에게 넘겨주는 것은 소금, 향료, 비단, 인삼, 몸에 좋다는 특수 약재들이다.

‘인삼을 많이 사서 가져오면 그것이 제일 많이 남는데.’

상인은 무역선을 타고 야간을 이용해 멀리 히로시마로 향하고 있었다. 더 동쪽으로 가는 것은 허가 받지 않아 그런 정도까지 이동해 밀무역을 하고 있었다.

어둠 속의 바다를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가운데 선장이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거래하면서 표가 나지 않게 그쪽 지역의 민심을 들어봐.”

“넷!”

전쟁이 터지자 왜인들 진영에서는 전쟁의 불안감 때문에 사치하는 풍토가 늘었다. 또한 몸을 유달리 챙기는 풍토가 생겼다. 그래서 그런 품목은 아주 고가로 팔려나가고 있었다.

선원들이 모여서 신이 나서 말했다.

“선장님, 이번에 가면 여자들을 많이 데리고 올 겁니까?”

“그래야 되겠지. 제일 많이 남는 장사가 여자니까.”

“선장님, 여자들은 도대체 어디로 파는 것입니까? 하카타로 보내는 것만 알지 도무지 어디로 보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그것. 여자들은 조선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여자는 키도 크고 미모도 아주 뛰어난 경우야. 대부분의 여자는 주산군도로 보내고 있어.”

“주산군도라면 명나라의 장강 입구에 있는 섬 지역이 아닙니까? 전에는 그쪽에서 여자들이 이쪽으로 데리고 오지 않았어요?”

“이놈아! 사람이란 여자를 바라보는 취향이 너무 달라서 왜녀를 유달리 좋아하는 남명 사람도 있고 남명 여자를 좋아하는 왜인들이나 조선인들도 있는 법이야. 그리고 북쪽에서는 여자들이 모자라서 난리라 별로 구분하지 않고 서로 다투어 사려고 하고 있어. 그러니 판매는 걱정하지 마.”

“그렇군요.”

전쟁이 발발하자 왜는 전국 시대로 치안이 무질서했던 상태에서 더욱 무질서하게 변했다.

가난한 부모들이 자식을 파는 거야 오래 전부터 흔했다. 그러나 강제로 납치해서 여자들을 파는 행위는 근래 들어 상당히 심해졌다.

그런 틈을 이용해 상인들은 밀무역을 겸해 인신매매 조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상인들이 하는 행위는 아니다. 주로 불한당 출신인 상인들이 하는 여자 장사다.

왜는 그동안 한반도를 통해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품은 별로 어려움 없이 구입할 수 있었다. 물론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매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런 물건들이 일시에 공급이 중단되자 가격이 폭등함과 동시에 완전히 품귀현상이 벌어졌다. 사방이 바다인데 소금이 너무 부족한 상황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소금을 한반도에서 수입되는 질 좋고 가격이 저렴한 천일염으로 의존하다 보니 발생하는 사태다.

그런 이유로 규슈 지역의 상인들은 ‘눈 가리고 아옹!’ 하는 방식인 밀무역으로 왜인들의 재물을 마구 끌어들이고 있었다. 한 번 운항만 하면 적게는 몇 배 많게는 10배 이상의 이득금이 생기니 신이 나서 밀무역을 하는 것이다.

전쟁이 터지자 규슈 사람들이나 혹은 대마도 출신들은 호경기를 맞이했다. 오랜 전에는 조선의 남쪽을 약탈해 부를 축척 했다면 이제는 혼슈 지역과 밀거래로 엄청난 부를 이루고 있었다.

척계광은 이런 지시를 내리는 태왕의 밀령이 다소 이해되지 않았다.

“싹 쓸어서 재물을 탈취하면 더 좋은데 왜 이런 방법을 쓰라는 거지?”

“폐하께서는 깊은 생각이 있어 이렇게 하시는 거겠죠.”

그러나 군인이 아닌 상인들은 태왕의 명령을 너무도 잘 이해했다.

“숨겨놓은 보물이나 재화는 찾기가 힘들어. 그러니 지금처럼 적당히 숨통도 트여주면서 모조리 토해내게 하는 것이 최선이야.”

“당연하지, 그래야 쉽게 왜인들의 재물을 빼내는 방법이야.”

한쪽으로는 전쟁을 벌여 공격하면서 한쪽으로는 밀무역으로 왜의 부를 흡수해 버리는 것이다.

왜는 꼭 태풍이 아니더라도 자주 비가 온다. 그래서 항상 다소 습한 기운이 대지를 적시기도 한다.

함대를 이끌고 시모노세키를 떠나 야마구치 만에 도착한 척계광은 조선에서 징발된 판옥선의 함장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강의 하구에 대기하고 있도록.”

“넷!”

하루가 지나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바다와 접한 도시들을 함포로 공격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더니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 쏴아아!

마치 여름철의 소나기가 내리듯이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던 척계광은 신이 나서 즉시 명령을 내렷다.

“판옥선들은 강을 따라 야마구치로 진격해.”

“넷!”

“나머지 함선들은 강의 하구에서 진입이 가능한 정도까지 전진하고.”

야마구치 성까지 이어지는 강이 있으나 비가 내려야 수월하게 함정들이 진입할 수 있어 비를 기다린 것이다. 물론 가물어도 판옥선은 충분히 강을 거슬러 올라 갈수 있지만 그때는 강폭이 너무 좁아 함정의 기동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화포로 무장한 10척의 판옥선이 빠르게 강을 타고 거슬러 올라갔다. 이미 보병사단에서는 포병을 동원해 포격하며 공격을 시작했다.

쾅! 콰광! 쾅!

야마구치 성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왜군들은 당황했다. 서쪽에서는 포병의 포탄이 날아오고 있다. 남쪽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판옥선들이 강을 타고 올라와 함포를 발사하고 있었다.

튼튼한 진지를 구축해 방어 준비를 끝냈다. 그러나 야마구치 중심을 흐르는 강을 타고 올라온 판옥선의 함포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판옥선에 장착된 화포에서 불을 품자 강변에 있던 허름한 가옥들은 너무 쉽게 파괴되고 말았다.

“하필이면 어려운 민초들의 가옥을 대상으로 포격하나 모르겠어.”

“장군님, 그건 어차피 전쟁에서 승리하면 철거할 대상이라 파괴해 버리는 겁니다.”

“뭐라? 자네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

“저는 비록 무술은 별로지만 태왕폐하가 얼마나 재물을 중시하는지는 잘 아니 해보는 추측이죠. 어차피 야마구치는 인구가 줄어 저런 허름한 건물이 필요 없게 됩니다.”

“그렇군.”

허름한 초옥들로 가득한 강변 마을을 집중해서 공격했다. 강변의 마을에서는 이내 화재가 발생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화르륵 화르륵

불길은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강바람으로 불은 빠르고 크게 번졌다. 붉은 악마와 같이 타오르는 붉은 불이 주는 인간의 공포감은 대단하다.

전쟁이 터져 적군들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대형 화재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더욱 강하게 심어준다.

“도망가자!”

“와! 와! 도망가자!”

불안한 가운데 아직까지 남아 있던 이유는 그나마 허름한 가옥이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 나마의 가옥도 불타버렸으니 빠르게 동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부녀자를 비롯한 노약자들이 아이들과 같이 도망치자 자연스럽게 그 여파는 왜군들에게 미치고 있었다. 가족이 도망간 판국에 남아서 적과 목숨을 걸고 싸울 병사들은 없었다.

“후퇴하자!”

“후퇴! 후퇴!”

누군가 먼저 후퇴를 외치자 사방에서 복창하면서 뒤돌아서 도망치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어 미칠 지경에 후퇴 소리를 듣자 누구의 명령인지 확인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미 전방에는 포격에 이어 보병들이 돌격해 오고 측면에서는 기마병들이 몰려왔다. 그러자 왜군들은 지휘관의 현 위치 사수 명령에도 불구하고 무기를 버리고 가족을 따라 다들 도망쳤다. 전열이 완전히 흐트러지자 소리치던 지휘관도 결국 병사들과 같이 동쪽으로 도망쳤다.

우루루. 웅성웅성. 와글와글.

동쪽으로 가는 도로는 사람들로 가득해 발 딛을 틈이 전혀 없을 정도다. 길가에는 부모 잃은 아이들이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으아앙!”

“으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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