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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508화 (508/519)

508화

이미 약속한 집결지를 지나 왔지만 철씨 삼형제는 잘도 찾아왔다.

그들은 얼굴이나 갑옷은 물론 말의 몸통이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피와 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었다. 포위망을 뚫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접전을 벌였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최인범은 세 사람을 보자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느라 고생 했다.”

“별로요. 너무 허접해서 뚫고 나오기가 쉬웠습니다.”

“그래? 그럼 다시 돌아가서 싸울래?”

태왕의 말에 철씨 삼형제는 기겁하며 놀랐다. 사지를 뚫고 겨우 살아왔더니 다시 돌아가라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폐하! 저희들이 죽길 바랍니까?”

“녀석들 하고는 농담도 못하냐? 왜 그렇게 놀래.”

“간 떨어질 뻔 했습니다.”

“간 떨어지면 다시 붙이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무사하니 정말 다행이다.”

태왕께서 스스럼없이 이런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은 철씨 삼형제가 유일하다. 사실 황제가 되고 나니 외로움을 느껴 철씨 삼형제를 가끔을 골려가면서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다.

너무 고고한 위치인 황제에 오르다 보니 이제는 전과 다르다. 자신을 부담감 없이 대하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황후나 황비는 물론 고관들도 쉽게 접근해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허전해.’

탈출하며 있었던 비화들을 이야기하며 철씨 삼형제와 가볍게 농을 걸기도 했다. 한참 대화를 나누던 최인범은 경호실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경호원들이 수집한 적진에 대한 정보를 보병 사단으로 보내줘! 그리고 새로운 작전 명령도 가져가고.”

“명을 따르겠나이다.”

최인범은 모닥불 옆에서 새로운 작전 명령을 빠르게 작성했다. 신분표식의 인장을 찍고 나자 경호실장에게 넘겨주며 당부했다.

“실장이 경호 요원 50명을 데리고 직접 다녀와. 중요한 작전 명령서니 안전하게 총사령관에게 직접 전해.”

“명을 따르겠나이다.”

작전명령을 내리고 나자 최인범은 움직였다.

크르르릉. 크르르릉.

주위에서 작지만 음산하게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리자 빨리 자리를 뜨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왜로 넘어온 호랑이는 사람을 주된 먹이로 아는 정도로 특화되어 야간에는 매우 위험하다.

영장류인 원숭이를 잡아먹더니 드디어 인육에 맛이 단단히 들어 버렸다. 조선이나 시베리아 쪽에 있는 호랑이와는 습성이나 행동반경이 전혀 달라졌다. 1세대 호랑이는 덩치가 아주 크지만 2세대인 호랑이는 조금은 체구가 적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주변에 호랑이를 상대할 만한 맹수가 전혀 없으니 체구는 작아지고 대신 낳는 새끼 수는 대폭 늘어난 것이다.

태왕은 경호원들과 같이 빠르게 북쪽으로 이동했다. 쉬었다가 다시 달리자 말들은 속도를 높여도 힘차게 내달렸다.

두두두두

태왕과 철씨 삼형제는 경호원들과 같이 산길을 타고 이동해 드디어 친위기마부대가 주둔하는 동해안의 하기마을로 돌아왔다.

전쟁을 수행하는 중에 사냥한다고 나갔었다. 그 때문에 약간 술렁이던 친위기마부대원들을 태왕께서 직접 적진에 침투해 오우치 영주와 그의 부하 장수들을 여럿이나 저격했다는 소식을 듣자 다들 놀라고 말았다.

“태왕폐하는 진짜 전신이야. 그런 정도 전투력이면 어떤 적도 겁날 것 없어.”

“이 사람을 그걸 이제나 아나? 덩치를 보라고 보통 사람과 다르잖아.”

덩치가 크다고 해서 친위기마대원들이 놀라는 것은 아니다. 큰 덩치지만 보통 사람보다 날렵하게 높이 도약하고 빠르니 놀라는 것이다.

일단 부대로 복귀한 최인범은 저택에서 머물며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신경을 쓰고 벼르던 오우치 영주를 저격하고 나니 다소 허탈해진 것이다.

사람 사이의 인연을 매우 중하게 생각하는 최인범은 오우치가 배신하자 크게 분노했었다. 그러나 다른 쪽으로 판단하면 그와 잘 해보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다.

‘후! 왜인들 중에 그만한 사람도 드문데. 죽이고 보니 조금 아깝군.’

잠시 회한이라도 잠기듯이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는 여자 무관들이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폐하께서 무슨 고민이 있어 보이네.”

“혹시 여자 때문에 아닐까?”

“설마, 그런 생각이라면 뭐 고민하시나 우리도 있고 왜녀들도 얼마든지 있는데.”

여자 무관들 중에서도 미모가 뛰어난 여자는 간혹 나름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도 잘 생기고 황제다 보니 연정을 품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꿈은 이루어길 수가 없었다.

황제는 성인군자가 아니지만 또한 호색한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자무관에 대해서는 아무리 미모가 뛰어나도 관심이 전혀 없었다.

최인범은 오우치 영주의 죽음을 두고 잡스러운 생각을 했다. 그러나 빠르게 잡념을 털고 철수하면서 쉬던 곳에서 느낀 호랑이 울음소리가 떠올랐다.

‘야마구치나 다른 영지에서 여기로 군대를 보낼 형평은 못되니 기회에 친위기마부대원들에게 호랑이 사냥이나 다녀오라고 해야 되겠어.’

자신이 직접 사냥을 가고는 싶지만 전쟁터에서 또 다시 부하들이 걱정하는 돌출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보병 사단이 야마구치를 완전히 점령해야 자신이 이끄는 부대들도 동진할 수 있다. 양동 작전을 펼치기로 했고 전선이 서로 멀어지면 협조하기가 곤란했다.

그렇다고 친위기마부대원들의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한자리에서 주둔하면서 경계를 서거나 훈련만 반복할 수도 없었다.

‘적당한 유흥거리로 보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시키는 것도 훈련의 일환이니 적당해.’

최인범은 이런 생각으로 철씨 삼형제를 불러 지시를 했다.

“철갑웅, 너희들은 1개 대대를 이끌고 주변 산을 돌아다니며 사냥해서 와.”

“넷!”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주변에 왜군들이 접근하는지도 살피고.”

“명을 따르겠나이다.”

최인범은 떠나려는 철씨 삼형제에게 호랑이 사냥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백구를 데리고 가라고 명령했다. 백구도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서 암놈들을 만나고 있었다.

할 일이 없는 태왕은 탈출하면서 느낀 점 때문에 경호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5일 정도 집중해서 특수 훈련 과정을 다시 이수하도록 해.”

“넷!”

명령에 따라 유격장이 새롭게 건설되었다. 성벽 타기나 절벽 오르기와 내려오기 등 각종 훈련이 지속되었다. 훈련의 강도가 너무 높아 경호원을 비롯해 친위기마대원들은 차라리 전투가 벌어지길 고대했다.

“차라리 전투가 벌어지는 것이 더 편하겠어.”

“무슨 소리야 그런 헛소리 하지 말라고. 잘못하면 적진으로 침투해서 적장의 목을 따오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너는 폐하의 성품을 아직도 몰라.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신상에 이로워.”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면서 좋은 점은 있었다. 훈련 성과가 좋은 놈에게는 부상으로 왜녀들이 운영하는 기방으로 가서 그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점이다.

오나가나 우수한 놈들은 그 나마의 혜택이라도 누리는 것이다. 더구나 친위기마부대원도 고정된 자리가 아니다. 본인이 원한다면 왜녀와 혼인하면 이곳에서 정착할 수 있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본인이 원하면 언제고 보직이 변경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경우에는 반드시 왜의 병사들 즉 사무라이 출신 중에서 그만한 능력을 지닌 기마병이 생길 경우에서 보직 변경을 요청할 수 있었다.

왜인들을 현지에서 친위기마부대원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필요성 때문이다. 왜에서 자란 사무라이 출신이 지형이나 또는 이곳 풍토에 대해 잘 안다. 그들을 정찰대나 첨보 활동 요원으로 활용하기가 좋았다.

최인범은 경호실장이 부대로 복귀하자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철 감찰관들이 사무라이들을 친위기마대원으로 특채하기 위해 선발하고 있으니 경호실장은 지금부터 왜인들 중에 한글을 빠르게 익히고 지식이 많은 인재를 포섭해 보도록 해.”

“폐하! 왜인들은 쉽게 배신을 하는데 그들을 관료로 임명하면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그런 부작용이 있겠지만 조선이나 혹은 대마도 출신 관료들도 위험하기는 마찬 가지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현지 주민들의 평판을 잘 듣고 모집해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폐하께서 결정하셨다니 바로 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실장, 그렇다고 해서 급하게 서두를 것은 없어. 인원이나 기간에 연연하지 말고 천천히 잘 알아보아서 구해 보도록 하면 돼.”

“넷!”

새로운 임무를 부여 받은 경호 실장을 밖으로 나가 왜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지만 황제가 하시는 말씀이 곧 법이라 쉽게 시행할 수 있은 것이다.

‘왜인들 중에서도 쓸 만한 인재가 있을 수 있어.’

왜를 간접적으로 통제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을 벌여 완전히 정벌해서 통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작정 강압적으로 통치하면 반발만 심해질 것이 자명했다. 그래서 현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왜 출신 인재를 포섭해서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사전에 그들을 물색해 두고 있는 것이다.

‘먼 미래를 보고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돼.’

동해안과 접한 북쪽에서 빠르게 동진하던 태왕이 멈추었다. 전선을 고착화시키고 여러 가지 준비를 비롯해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

태왕의 비밀 작전 명령을 받은 척계광은 말을 타고 이동했다. 내륙지역에서 포진 중인 보병 사단장을 만나 직접 명령을 내렸다.

“기상비서관의 예측에는 내일이면 비가 내린다니 비가 내리고 나면 그때 야마구치 성을 공격하도록 해.”

“총사령관님, 만약 비가 오지 않으면 어찌 하죠?”

“비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돼.”

“알겠습니다.”

야마구치 성에서 오우치 영주나 아들 그리고 참모들이 죽은 상태라 왜군들은 사기가 저하되어 있었다. 그러니 공격하기 좋은 시기라고 판단되었다, 척계광은 오우치 영주가 죽었다는 정보를 수집하자 빠른 속도로 공격할 계획이었으니 태왕의 명령대로 비가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네. 좋은 시기를 뒤로 미루고?”

“사령관님, 폐하께서 뭔가 계획이 있겠지요.”

“작전 명령이 내려왔으니 그대로 따라야지.”

척계광은 태왕의 새로운 명령을 받자 직접 보병사단장을 만나 작전 지시를 내리고 해변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해군 함정에 올라 명령을 내렸다.

“출항! 목적지는 야마구치 만이니 그쪽으로 가자!”

“넷!”

끼리릭 끼리릭.

함정들이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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