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화
순간 주변에 있던 왜적들은 당황해서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최인범은 성문 주변에 있던 장군 복장으로 번득이는 갑옷 입은 놈들을 향해 편전을 날렸다.
오우치 영주를 저격할 때는 매우 신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몸통이나 팔다리나 상관없이 표적이 눈에 들어오면 속사로 쏘아 버렸다.
쉬익! 쉬익!
“컥!”
“크아악!”
이쯤 되자 왜적들도 지붕 위에 저격범이 있다는 것을 알고 소리쳤다.
“저쪽이다!”
자신을 향해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최인범은 재빠르게 지붕에서 내려왔다. 철갑웅 형제가 기다리는 곳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는 적진을 뚫고 탈출만 남았다.
손에는 흑혈검을 들고 전력으로 질주했다. 자신이 아무리 무술이 뛰어나고 특수갑옷을 입었다고 하나 적진 복판에서 혼자 싸울 수는 없었다.
빠르게 달리는 그의 주위로 왜군들이 몰려들자 앞으로 전진 하며 흑혈검을 매섭게 휘둘렀다.
획! 사각!
“크아악!”
휘릭!
“컥!”
적의 심장부에서 떼로 몰려오는 적을 상대하려니 버겁다. 계속 죽여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밀려왔다. 그렇다고 해서 전진을 멈출 수 없었다. 겁 없이 가깝게 다가오는 왜인들은 대부분 장검을 손에든 사무라이들이다.
한참 앞으로 전진 하며 흑혈검을 휘두르는 가운데 위기가 찾아왔다.
“헉!”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최인범에도 약점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호랑이나 맹수에 사냥에 사용되는 그물이다. 그물을 이용해 자신을 추포한다면 그것은 달리 대적할 방법이 없다.
왜군들은 너무도 전투력이 뛰어나자 결국 맹수 사용에 이용되는 그물을 가져왔다. 더구나 그것은 쇠사슬로 만든 철제 그물이다.
‘저놈들이 어떻게 철제그물을 만든 거지?’
인간이란 환경이 변하면 적응하는 법이다. 그래서 왜인들은 호환이 계속되자 그들 나름대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철제 그물을 만들어 호랑이 사냥에 이용했던 것이다.
당장 그물에 걸린 상태는 아니라 최인범은 여전히 검을 휘둘러 다가오는 사무라이들을 베어 넘겼다.
사각! 사각!
아주 빠르고 절제된 동작으로 검을 좌우로 휘두르며 전진했다. 그물을 가진 왜인들이 사무라이들과 같이 점점 포위망을 좁혀 다가오고 있었다.
중대한 위기라고 느끼고 사력을 다해 전진하는 동안.
절대 절명의 위기가 닥쳤다고 느낄 무렵. 주변으로 그물을 들고 몰려드는 왜군들이나 사무라이들이 주춤거리고 머뭇거렸다.
“크악!”
“악!”
포위하던 왜군들이 주변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왜인들은 철갑웅과 철을웅이 쏘는 화살 공격에 커다란 비명을 토하고 붉은 피를 품으며 죽었다.
철씨 형제들의 지원 사격을 받자 최인범은 빠르게 이동해 그들과 합류했다.
“가자!”
빠르게 내달리는 세 사람에게 화살이 날라 오기도 하고 창도 날아오지만 가까운 곳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왜군들은 크게 소리를 치며 세 사람의 뒤를 맹렬하게 추적하고 있었다.
평지를 벋어나 산비탈에 다다르자 왜군들은 점점 뒤로 처지고 있었다. 그러나 말 탄 녀석들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자 철씨 형제들은 달려가던 동작을 멈추고 뒤로 돌아 다시 화살을 날렸다.
쉬익! 쉬익! 히이잉! 히잉!
워낙 급한 판이라 덩치가 큰 말을 겨누고 화살을 발사했다. 그러자 말 탄 왜군들은 말이 쓰러져 땅에 나둥글고 말았다.
이윽고 말을 메어놓고 기다리는 철병웅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러자 철병웅이 다급하게 외쳤다.
“폐하! 말을 버리고 다른 탈출구를 찾아야 하옵니다. 왜군들이 포위해 확보한 퇴로가 막혔습니다. 폐하! 경호원들이 만든 두 번째 탈출구를 이용해야 합니다.”
“알았어. 그리 가지.”
“저희는 말을 타고 적을 유인하겠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최인범은 퇴로가 완전히 봉쇄된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그래서 철씨 형제들과 헤어져 경호원들이 만들어 놓았다는 산 쪽으로 뛰어갔다. 도대체 어떤 탈출구를 산속의 높은 곳에 만든 것인지 다소 이상했다. 더구나 그쪽은 절벽이 있는 곳이다.
‘믿고 가보는 수밖에.’
최인범이 혼자서 우거진 산속으로 사라지고 나자 철씨 형제들은 말에 올라 내달렸다. 그러자 왜군들은 말을 탄 철씨 삼형제의 뒤를 추적했다.
산으로 한참을 뛰어서 올라가자 드디어 기다리던 경호실장이 반갑게 맞이했다.
“폐하! 다행이 무사하셨군요. 빨리 이리로 오세요.”
경호실장이 안내하는 곳은 절벽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절벽 아래에는 경호원들이 기다리고 그곳에 흑혈풍도 같이 있었다.
거의 직각으로 30미터나 높이는 되는 절벽 위에는 커다란 소나무에 2줄로 된 밧줄이 두 개가 늘어져 있었다. 하강하는 방법으로 절벽을 내려가야 한다.
“오호! 좋은 탈출구야.”
절벽을 내려가기 위해 최인범과 경호실장은 재빨리 밧줄을 허리에 감는 방식으로 절벽 아래로 튀어 오르듯이 도약했다.
휘리릭! 턱! 휘리릭! 턱!
이런 하강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는 최인범은 밧줄을 잡고 세 번의 도약으로 무려 30미터나 되는 절벽 아래로 쉽게 내려갔다. 그러나 탈출로를 만든 경호실장은 6번이나 도약해 겨우 아래에 무사히 안착했다.
먼저 내려온 최인범은 늦게 도착한 경호실장에게 지적했다.
“경호실장. 다음에 하강 연습 좀 더 해야 되겠군.”
“넷!”
최인범과 경호실장은 두 줄씩 늘어선 밧줄의 한쪽을 놓고 힘차게 잡아 당겼다. 그러자 한 줄로 변한 밧줄은 빠른 속도로 아래로 떨어지며 회수되었다. 그런 밧줄을 두 사람은 익숙한 솜씨로 둘둘 말아 경호원에게 넘겨주고 나자 명령을 내렸다.
“철수!”
“넷!”
두두두두
좁은 골짜기를 따라 나있는 산길을 빠르게 내달려 사라졌다. 최대한 빨리 멀리가야 된다. 자칫 늦으면 우회한 왜군들이 또 다시 포위망을 좁혀 올 수 있다.
이때 겨우 암살자가 사라진 방향을 왜인들이 정확하게 알고 추적했다. 늦게 절벽 위로 추적한 왜군들이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멀리 뿌연 흙먼지를 날리면서 사라지는 기마병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토했다.
“아니? 여길 어떻게 내려간 거지? 이상하군.”
“날개라도 달려서 날아서 내려갔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절벽에 밧줄이라도 있어야 이해가 된다. 하지만 밧줄도 전혀 없으니 왜인들은 마치 귀신에게 홀린 기분이다.
“허! 대진국의 군사들은 날아도 다니나 봐!”
“그러게.”
본래 귀신 섬기기를 좋아하는 왜인들은 이런 특이 현상을 보고 귀신의 조화라고 믿었다. 이제 추적할 대상이 사라진 상태라 왜군들은 신속하게 진지로 돌아갔다.
이미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떠 있어 그리 심하게 어둡지는 않았다.
주둔지인 진지로 돌아가자 왜군들은 중간 중간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모여서 두려움에 떨며 매우 혼란스럽게 술렁였다.
“무슨 일이야?”
“자네는 모르고 있나? 영주님도 돌아가시고 그분의 아들도 죽었네. 더구나 그분의 참모나 기타 장군들까지 포함해 10명 이상이 저격당해 죽었어. 그뿐이 아니라 암살자들을 잡으려다가 죽은 사무라이들이 200명도 넘는다고.”
“그렇다면 큰 일이 아닌가? 우린 이제 누구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거야.”
대진국의 보병 사단이 서쪽에서 점점 다가오는 위기의 순간이다. 그런 중요한 순간에 영주와 그의 아들도 죽었다. 중요한 지휘관들이 모조리 사망했다니 사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몇 명 되지도 않는 암살범들에게 당했다고 생각하자 너무도 참담했다.
“대진국에는 전쟁의 신이 있나 봐!”
“절벽에서 하늘을 날아서 사라졌다며?”
“그렇다고 하더군. 번쩍이는 갑옷이나 말도 화살이나 창에 뚫리지도 않았다고 하더군.”
“너무 무섭고 강한 적이야.”
허접한 화살의 공격으로 특수갑옷이나 특수마갑이 관통할 리가 없었다. 철씨 삼형제가 왜인들을 교란시키려고 말을 타고 교전을 했다. 그 결과 삼형제의 갑옷이나 마갑은 허술한 공격에 전혀 피해를 보지 않고 접전 중에 수많은 사무라이들만 죽어 버렸다. 그래서 왜군의 진중에서는 이런 소문들이 퍼지는 것이다.
왜인들은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두렵기만 했다.
“재앙의 사직은 조선에만 있는 호랑이가 여기에서 대규모로 나타나서 부터야.”
“그렇지, 그 때문에 우리들의 애완동물인 원숭이도 대부분 사라지고 산에 큰 짐승들이 모조리 사라졌어. 사람들도 호랑이 때문에 너무 많이 죽었고.”
“신이 노하셔서 결국 우리는 모두 죽게 됐어.”
특히 천황의 자손도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괴사까지 있었다. 그러니 왜인들은 대진국의 군대도 두렵지만 이제는 깊은 산은 전혀 들어갈 수 없었다.
심산유곡에 있는 천연 유황온천인 노천온천에서 목욕하던 사람들도 호랑이에게 수시로 물려간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노천 온천에서 목욕하는 재미도 느끼기 어렵게 변했다.
호랑이가 유황 온천을 자주 찾는 이유야 사철 따뜻한 온천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추울 때는 피곤한 몸을 녹이거나 또는 상처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접근한 것이다. 호랑이는 본시 물을 좋아하고 원숭이를 먹이로 아는 터라 일거양득이라 노천 온천을 자주 찾는 것이다.
왜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오래 믿었던 신이 노한 것이다. 외국에서 침공하면 항상 자신들을 도와준다고 굳게 믿던 태풍도 이번에는 전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제 신풍의 효력도 기력을 다했나봐.’
연속된 불길한 징조에 다들 두려워 어쩔 줄 몰랐다.
왜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패전을 예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래서 밤만 되면 탈영병들이 속출했다. 분위기는 이제 전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저하되었다.
한편 오우치 영주를 저격하고 난 최인범은 북쪽으로 달아나다 멈추었다.
“철씨 감찰관들을 기다리자.”
“넷!”
말이라고 해서 계속해서 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무 질주를 오래하면 말이 지쳐 죽어버리는 수가 있다. 모두 두 필의 말을 보유하고 있지만 두 마리 모두 거의 지친 상태다. 더구나 야간에 험한 길을 이동하다보니 나뭇가지에 상처를 입은 말들도 많았다.
경호원들은 애지중지하는 말들이라 상처부위에 호랑이약을 발라주면서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쯧쯧! 주인 잘 못 만나 너희들이 고생이다.”
군마들의 신세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유별난 태왕을 모시는 경호원인 자신들의 신세를 의미하는지 다소 애매모호하다.
기다리자는 명령에 경호원들이 밤이 깊어 추워지자 모닥불을 피우고 주변을 경계하며 쉬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최인범은 이미 적진과는 상당히 떨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 멀리서 몇 필의 말에 질주해 오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