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화
얼마 전에 노비의 신세에서 풀린 젊은 녀석은 신이 났다.
전에는 주인의 눈치만 보던 처량한 노비 신세에서 해방이 됐다. 마음대로 결혼할 상대를 고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그래서 젊은 사내는 왜로 넘어가 체구는 조금 작더라도 얼굴이 예쁜 왜녀와 혼인을 꿈꾸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도 가난한 사내를 좋아할 여자가 없다는 것을 알면 크게 실망하리다.
드디어 전라도 해역인 광양만을 지나 경상도 해역인 진주만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해군이다!”
“와! 빠르다.”
이때 진주에서 해군들이 나타나 화물선이나 어선들은 보호하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곳부터는 자주 와보지 않은 해역이라 조심해야 되기 때문이다.
마중을 나온 배들은 삼각돛을 단 작은 척후선들이다.
물살도 거칠고 모르는 해역이다. 바다 속에 숨어 있는 암초라도 만나면 큰일이기 때문에 해군의 도움을 받아 최단거리이며 안전한 해로를 따라 이동했다.
쉬익! 쉬익!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척후선들이 전후좌우를 오가며 항로를 인도하고 있었다. 척후선의 해군들은 이 해역에서 잔뼈가 굻은 어민이 대진국의 해군에 입대한 사람들이다.
“조금 더 가면 좁은 수로가 나오니 조심하시오.”
“알겠습니다.”
드디어 아주 좁은 수로인 통영만을 지나 넓은 진해만으로 들어서자 안심할 수 있었다. 측풍으로 부는 남풍을 이용해 돛에 바람을 타고 빠르게 이동했다.
드디어 목적한 항구인 부산포에 도착하자 수많은 화물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와! 배가 저렇게 많다니 조선의 배는 모두 모인 것 같군.”
“당연하지. 왜로 보내려는 군사와 말들도 많고 그에 따라 보급품도 많으니 그것을 나르려면 저 정도의 배는 필요하다고.”
부산포에는 군선들도 많았다. 판옥선도 보이고 전투선도 보였다. 배의 측면에는 수많은 포구들이 보였다. 조금 특이한 형태의 거대한 범선들도 줄지어 부두에 정박하고 있었다.
어민으로 살고 있지만 처음으로 대형 범선인 전투함을 보자 입을 떡 벌리며 놀랐다.
“와! 어마어마하게 크네. 도대체 사람을 얼마나 태우는 거야?”
“수백명은 충분히 타겠어.”
“오랜 살다가 보나 저런 큰 배를 보게 되는군.”
부산포에서 기다리던 철을웅은 기다리던 배들이 들어오자 바쁘게 움직였다.
“빨리 군수품을 인계받고 서둘러 출발 합시다.”
“넷! 신속하게 인수하겠습니다.”
부산포에서 기다리던 해군 함정들에게 화살과 소금을 인계한 전라도의 배들은 새로운 임무를 부여 받았다. 대마도까지 이동이 가능한 어부들은 모두 식량을 싣고 대마도로 운반하라는 지시다.
“쌀과 콩이니 운반해 주면 모두 은이나 또는 대진통보로 보수를 넉넉하게 줄 거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죠.”
“수고해 주시오.”
드디어 기다리던 보급품이 도착해 인계를 받자 해군들은 빠르게 부산포를 떠났다. 워낙 많은 보급품을 싣고 가기 때문에 배의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노를 저어. 신속하게 이동해. 일단 대마항구에 도착해서 반을 내려놓고 시모노세키로 가야하니 서둘러.”
“넷!”
해군들은 마음이 급했다. 어느새 봄은 지나가고 있으니 태풍이 몰려오는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왜의 혼슈 지역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야전군 총사령관인 척계광에게는 철병웅이 괘속선을 타고 먼저 전투를 시작하라는 명령을 전달했다. 그래서 간몬해협에서는 본격적으로 육해군이 합동으로 대대적인 상륙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보급품을 빨리 조달해야 된다.
“폐하께서 혼슈로 가시기 전에 보급품을 조달해서 승기를 잡아 안전하게 가실 수 있게 해야 하니 서두르자고.”
“넷! 바람도 적당해 충분합니다.”
수많은 배들이 왜로 떠나게 되자 번잡하던 부산포는 잠시 정적감이 들 정도다.
부산포와 접한 송도를 기점으로 정박한 배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갈매기들만 날아와 울고 있었다.
꾸욱! 꾸욱!
다음날 구미를 떠나 급하게 말을 달려 이동한 태왕께서 드디어 부산포에 당도했다. 먼저 떠난 철씨 형제와 합류하려고 했지만 다소 늦게 도착했다.
“흠! 조금 늦었어.”
“폐하! 바로 왜로 떠나실 겁니까?”
“떠나야지 내가 부산포에 남아 있으면 불편하기만 하지. 철갑웅을 빨리 전투선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출발 준비를 시켜.”
“넷!”
이제 태왕의 주변에는 그리 많은 병사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호위하는 병사들의 수가 200명이나 되니 함선이 여러 척 필요했다.
최인범은 많은 배들이 떠난 부두에 갈매기들만 날아와 우는 모습에 문뜩 ‘부산갈매기’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부산 갈매기는 야구를 좋아하는 펜들은 거의 아는 노래다.
더구나 왜로 떠나게 되자 이어서 ‘돌아와요 부산항’이란 노래도 떠오르고 있었다. 왜로 떠나버린 수많은 병사들 중에 무사히 돌아오지 못하는 병사들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수많은 전쟁으로 단련된 왜인들이라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정된 공간에서 전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운식의 폭이 좁고 또한 작전에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이어서 철갑웅이 다시 돌아와 보고를 했다.
“폐하! 전투선 5척과 화물선 5척이 폐하께서 승선하실 준비를 마쳤습니다.”
“수고했군. 왜로 가면 우리가 보유한 강궁을 사용하기가 조금 곤란한 점이 많으니 전쟁을 수행하려면 앞으로 백병전을 많이 벌이게 생겼어.”
“그렇군요. 하지만 폐하와 저희들이 보유한 활을 더워서 아교가 녹는 현상은 벌어지지 않으니 걱정이 덜 됩니다.”
“그야 그렇지.”
최인범이나 주변의 부하들은 모두 특수 철강을 이용해 강궁을 제작해 순수하게 아교를 이용해 접합한 일반 강궁과는 차이가 있었다.
더구나 특수 철강으로 만든 쇄자갑 위에 입는 갑옷은 방탄 효과는 물론 검이나 창도 방어하는 완벽한 방어복이다. 백병전을 자주하는 근접 전투에서는 그의 애마들에게 입히게 되는 마갑 역시 놀라운 위력을 지녔다.
후방에서 조용히 전투를 지휘하고 싶지는 않으니 이번에 왜로 간다면 때로는 특수부대를 이끌고 적진에 침투해 교란 작전을 펼칠 계획이다.
‘설마 내가 특전부대를 이끌고 후방 지역에서 전투를 벌일지는 예상하기 못할 거야.’
남북의 해안을 따라 양동작전을 펼치게 된다. 그리되면 자신은 중앙을 가로 지르며 양쪽을 돕는 교란 작전을 펼쳐야 된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는 최인범에게 경호원이 다급하게 말했다.
“폐하! 갑옷을 가져올까요?”
“알았어. 여기서부터 입고 떠나는 것이 좋겠군.”
함선에 오르기 전에 갑옷을 챙겨 입으려는 이유는 부산포에서 먼저 떠난 병사들의 가족들이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태왕인 자신이 그들에게 신뢰를 줄 필요성이 있었다.
황제인 자신이 직접 갑옷을 입고 출전함으로 그들은 황제가 어떤 자세로 전쟁에 임하는지 알 수 있으니 믿음이 갈 것이라고 판단했다.
최인범은 임시 막사에서 경호원이 가져온 갑옷을 입고 말에도 마갑을 씌우고 나서 호위 변사들과 같이 함선들이 기다리는 부두로 향했다.
“만세! 만만세!”
“황제 폐하 만세!”
부산포의 부두에 남아 있는 근로자들이나 혹은 병사들 그리고 환송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관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환호성 소리를 들으며 함정에 오른 최인범은 이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출진하라!”
“출발!”
둥둥둥
지휘선의 상갑판 누각에 설치된 대북이 크게 울렸다. 그와 동시에 뱃전에 세워져 있는 황제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부두를 떠난 10척의 전선과 보급선이 일제히 기수를 돌려 왜로 향했다. 바람을 타고 가는 배들은 이내 빠른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파도를 가르는 선수의 모습은 매우 날렵하고 멋진 모습이다.
이때 함정에 같이 탄 백두가 역시 특수갑옷을 입은 상태로 부산포를 향해 짖었다.
“컹! 컹!”
현해탄을 가로 질러 왜로 향하는 배들이 일정하게 포진한 상태로 전진하고 있었다. 점점 강한 바람이 부는 것으로 보아 조짐이 별로 좋지 않았다.
“바람이 조금 거칠군. 무슨 일인가?”
태왕의 물음에 선장이 나서며 급하게 답했다.
“폐하! 며칠 뒤에는 태풍이 불어올 조짐입니다.”
“이른 태풍이 벌써 불어오는 건가?”
“그러하옵니다. 구름의 모습이 점점 변하는 것으로 보아 태풍이 점점 다가오는 조짐이오니 조심해야 합니다.”
“알았어! 아직은 며칠 여유가 있으니 왜의 혼슈까지 도착할 시간은 충분해.”
서두르지 않았으면 태풍의 영향으로 전쟁의 시기를 다소 늦추어야 될 수도 있었다. 전쟁에서 날씨가 주는 영향은 매우 크다. 그리고 전투에 임하는 전사들의 사기는 오래 지속되는 일이 드물다.
그래서 전투를 할 자세를 지녔을 때 적절하게 전투를 벌여야 전투력이 높은 상태로 전투에 임하게 된다.
‘내가 왜에 도착하기 전에 승리를 하려고 혈안이 되었을 거야. 그러니 태풍이 오기 전에 완전히 승기를 잡을 수 있어.’
막강한 해군력을 지녔지만 태풍이 오니 해군은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일단 전투에서 승기를 잡으면 육군의 기마병이나 보병 또는 포병으로 승부를 내야 된다. 그러나 폭우가 내리면 화약을 사용하는 포병 역시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왜와의 지상전은 백병전을 주로 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지리적으로 잘 아는 왜인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었다. 문뜩 왜를 보호해 준다는 신풍(新風) 즉 가미가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왜인들 말대로 진짜 신풍이라도 부는 건가?”
“폐하! 신풍이라니요. 그건 옛날에 벌어진 일이죠. 그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되옵니다. 태풍은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