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화
“앞으로 임야를 불살라 밭을 일구는 화전민으로 사는 것은 불법이니 모두 근처의 마을로 이주하도록 고을의 수령에게 인계하도록.”
“넷!”
이런 식으로 민정을 살펴 처리해 주면서 가다가 보면 왜로 가는 일정이 늦어진다고 판단했다. 이동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철을웅! 너는 먼저 부산포로 이동해서 해군과 같이 규슈로 넘어가 척계광 사령관에게 내가 내린 출동 명령을 전달하도록 해.”
“넷!”
“나는 부산포에서 바로 혼슈로 진격할 것이니 규슈의 간몬 해협에 있는 군대는 모두 시모노세키로 상륙해서 전투를 시작하라고 전해.”
자신이 직접 왜로 가서 군사적인 지휘권을 행사해야 되지만 먼저 군사 작전을 펼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에 따라 작전의 지휘권도 말해 주었다.
“일단 상륙 작전을 펼쳐야 하니 모든 원정군은 척계광 해군사령관이 총 지휘권을 행사하도록.”
“넷!”
“너무 무리하게 진격하지 않도록 너는 척계광의 옆에서 감찰 업무를 수행하도록 해. 왜는 산성 보다는 평지에 방어성이 많으니 반드시 포병과 보병이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하고.”
“명을 따르겠나이다.”
해외 원정군의 지휘권을 척계광에게 넘기는 일이라 그에 따른 교서와 더불어 인장을 넘겨주었다. 군의 지휘관을 감찰하는 업무라 철을웅에게 최인범은 별도로 많은 임무를 부여했다.
황제가 친정을 하면 좋은 점은 이런 부분이다. 상황에 따라 즉각적인 조치를 내릴 수 있었다. 물론 황제가 전장에 투입되면 야전군 지휘관들이 눈치를 보게 되는 형상도 있었다.
특히 패배라도 하게 되면 그것은 권력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
제국의 통치자로 전에처럼 함부로 거동하는 금기해야 된다. 척계광의 능력이야 이미 검증이 끝나고 믿지만 만약이란 항상 대비해야 한다.
‘신중하게 움직여야 돼.’
전장에서 승리도 중요하지만 점령지에서 통치하는 업무도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그에 대해서도 필요한 지침을 내리거나 점령지를 다스릴 방법이나 기타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
태왕께서 직접 왜로 가려는 이유는 바로 점령지에 대한 통치 기구나 또는 행정구역을 만드는 업무를 즉각 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관리하기 어려운 점이 많으니 이번에 확실하게 조치를 해야 되니 신중하게 움직여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고나자 일단 기본적인 방침은 세워두고 있었다. 조선과는 달리 왜는 전쟁을 벌여 점령한 곳이니 당분간은 군정을 실시하는 것이 제일 합당해 보였다.
‘전국시대로 사는 지역이니 그와 비슷하게 운영하면 돼.’
드디어 대제국의 황제인 태왕께서 왜를 공격하라는 전투 명령이 하달되는 것이다.
이제는 되돌리기 어려운 살육과 파괴가 지속되는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이번 전쟁으로 왜가 두 번 다시 한반도를 비롯한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야망을 완전히 꺾어 놓은 계획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하게 왜를 굴복시켜야 한다. 잡을 수 있다면 천황을 잡아 처형해서 완전히 사라지게 해야 된다.
왜와의 전쟁에서 야전군 사령관으로 척계광을 임명하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다. 또한 그를 감찰하는 업무도 중요했다. 너무 막중한 임무라 철을웅 혼자서는 버겁다고 판단해 추가해서 지시를 내렸다.
“철병웅도 같이 가서 명령을 전달하고 너는 내가 상륙할 지점에서 기다리도록 해.”
“넷!”
철씨 형제는 황제의 군사고문 격으로 왜로 가게 되었다.
최인범은 이미 자신이 몇 번 공략해 본 지역인 동해안 지역으로 진군하기로 했다. 척계광은 남쪽해안 선을 따라가며 성들을 공략하는 양동작전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동해안과 접한 지역은 은광이 있으니 그것을 수중에 넣어야 한다. 이미 그 은광의 권리는 자신이 지니고 있다지만 전쟁이 벌어졌으니 그것은 백지로 변한 상태다. 보다 세부적인 군사작전 계획도 설명해주고 철씨 형제를 먼저 보내고 나서 다소 느긋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추풍령을 넘어가며 살펴보니 어느새 이곳에는 감자들이 보급되어 재배되고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감자는 물론 고구마 또는 옥수수나 고추도 많이 보급된 것 같았다.
만주 지역으로 이주를 해서 전보다 인구수는 대폭 줄어들었다. 그에 반해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의 종류가 많아지자 조선은 전과는 다르게 변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철갑웅이 신이 나서 말했다.
“폐하! 이제는 조선도 전보다는 먹거리가 풍성해 지겠습니다. 더구나 가축도 많아져서 육류 조달도 쉬워졌고요.”
육식을 좋아하다 보니 그 때문에 반기는 것 같았다. 그러자 최인범은 빙그레 웃으면서 응수해 주었다.
“내가 보기에도 전보다는 농가에 가축이 늘긴 많이 늘어 난 것 같구나. 하지만 육류를 너무 좋아하다 보면 의외로 단명 하는 경우가 많으니 조심해.”
“넷! 자주 인삼을 먹겠습니다.”
철갑웅이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늘어난 종류가 닭이나 오리기 때문이다. 그는 앉은 자리서 마음대로 먹으라면 닭을 여러 마리를 단숨에 먹는 정도로 좋아했다. 가금류가 늘어난 것은 이제 인공부화 방법이 널리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자연부화에 의존만 해서 병아리의 수를 늘리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대량으로 병아리들을 시장에서 구입이 가능하니 농가마다 병아리 사육 수가 늘어났다.
‘앞으로는 꿩 사육도 늘어나겠어.’
이미 제주도에서는 꿩을 인공부화 방식으로 성공해서 많은 꿩이 방사되거나 집단으로 사육되고 있었다. 그래서 꿩의 꼬리털은 펜으로 사용하거나 또는 화살 재료로 이용되고 있었다.
조선을 비롯해 만주 지역에는 옥수수를 심으면서 가축을 기르기 위한 사료 작물로 이용이 가능해 개체수가 늘어난 점도 있었다.
두두두두
빠른 속도로 이동해 추풍령을 넘어 김천에 들어서게 되었다. 부산포에서 이곳 김천까지는 대도로가 반듯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너무도 다른 모습에 최인범은 너무 이상했다.
“어라? 왜 이렇게 다르지?”
“폐하! 너무 이상하네요. 충청도를 넘어 경상도에 들어서자마자 대도로의 정비 상태가 전혀 다르옵니다.”
“흠! 그렇군.”
이상하게 판단하며 구미에 들어서게 되자 궁금한 점을 참지 못하고 구미 역참으로 가서 책임자인 찰방에게 물었다.
“충청도 보다 대도로의 정비가 너무 다르게 잘 정비가 됐는데 그 이유를 아나?”
“그렇습니까? 소인은 다른 지역 사정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보니 혹시 경상도 지역에서 양반들이 노비로 변한 사람이 많아 부역에 동원된 횟수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닐 런지요.”
“양반이 노비로 변해?”
“넷! 그런 양반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나 부역을 끝내고 다시 풀려났습니다. 듣기에는 도지사에게 뇌물을 주고 풀렸다고 하옵니다.”
“뭐라? 그런 소문도 있어?”
“소인이야 그저 떠도는 소문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역의 수장인 찰방의 설명에는 경상도에서는 영남사림이라고 불리는 많은 양반들이 조선의 멸망을 인정하지 못해 반발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전라도 출신인 도지사가 부임한 이후 그런 영남학파라고 불리는 양반들은 모조리 추포해 강제로 대도로 공사장으로 보내 대대적으로 도로 정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산포까지 이르는 대도로 정비가 모조리 끝나자 양반들은 다시 무죄 방면이 되었다고 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성정이 거칠고 직설적인 경상도 사내들의 기질로 보아 그런 반발하는 기류가 강했을 것이다. 경북지역은 최인범이 한동안 같이 지낸 풍기군을 중심으로 협조적이라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경상도 지역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같은 경상도 지역이라도 최인범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많았다.
‘오만한 영남학파의 사림들이 쉽게 황제로 인정하기가 어려웠을 거야.’
이런 정보를 듣자 최인범은 조심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반란의 조짐이 있었다니 혹시 지나가는 곳에서 습격을 당할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최인범은 그런 사건이 터지면 왜로 가는 일정이 더욱 늦을까 걱정이다. 경계를 철저하게 하면서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기마부대라 이동 속도를 더욱 높이면 설사 그런 조짐이 있더라도 반역도들이 공격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철갑웅! 도로가 좋아 졌으니 이동 속도를 더욱 높이도록 해.”
“넷! 선발대에게 연락해 빠르게 일정을 잡겠습니다.”
태왕의 명령으로 선발대가 더욱 빠르게 이동하자 후미를 따라가는 황제 일행도 속도를 높였다.
두두두두.
많은 기마부대원들이 일제히 속도를 높이자 대도로에는 뿌연 먼지가 일어났다. 대도로 주변은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변하고 있었다.
한편 전라도 지역의 남해안·····.
남해안에서 활동하는 무역상단을 포함한 수많은 어선들이 서서히 동쪽으로 이동했다. 군비를 조달하기 위해 전라도 지역에서 생산된 소금이나 어물을 경상도 지역으로 나르기 위해서다. 또한 많은 배들은 왜를 공격하기 위한 대규모 병력 이동에 화물선이 필요해 이동 중이다.
철썩 철썩.
뱃전을 파도가 치면서 요란하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대부분 목포와 무안에서 출발해 상당히 피곤한 가운데 운항하고 있었다.
전라도 남쪽의 섬 지역은 수산물 생산량이 많은 어장이 많고 크고 작은 섬들이 많았다.
특히 무안군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천일염은 조선은 물론 대진국 그리고 멀리 남명이나 또는 산동 반도까지 팔려나가는 최고의 특산물이다. 질 좋은 소금은 멀리 왜에서도 대대적으로 수입해가는 실정이다. 다른 곳의 천일염은 쓴 맛이 강하지만 무안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의 경우 오히려 단맛이 난다고 느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왜를 정벌하기 위해 동원령이 떨어지자 전라도의 어민들은 환호했다. 앞으로 바다에서 항상 출몰하는 왜구는 완전히 소탕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왜를 소탕하면 우리 전라도도 더 살기가 좋아질 거야.”
“당연하지. 항상 걱정하던 우환이 사라지면 지금 보다 살기가 좋아 진다고.”
왜구들은 수시로 작은 틈만 생기면 남해안을 침범해 해안가의 어촌을 습격했다.
물론 대진국의 무역선이나 해군들의 활동이 강화되어 그렇다. 그나 이미 대마도가 조선에 복속된 지 오래라 전에 비해 왜구를 찾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전라도의 어민들은 너무 오랜 기간 조상 때부터 왜구의 침범을 당한 쓰라린 기억이 있어 여전히 왜구들의 준동을 걱정하는 것이다.
‘왜구 놈들은 씨를 말려야 돼’
이들이 가지고 가는 물건은 소금과 건어물만 아니다. 나주 지역에서 생산된 많은 화살도 적재되어 있었다. 전라도 지역에서 생산된 들기름도 많이 운반하고 있었다.
두 가지 모두 전투를 벌이려면 중요한 군수품이다. 그래서 나주 지역에서는 수많은 화살과 기름을 생산해 부산포로 나르고 있었다.
“운임도 후하게 주니 당분간 어업을 안 해도 되겠어.”
“당연하지. 물고기도 가끔 잡지 않고 놔두면 다음에는 어획량이 늘어나니 쉬게 해주는 것도 좋지.”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 바다와 친숙하지만 바다란 조금만 방심하면 치명적으로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무서운 곳이다. 그래서 항상 바다에서 생활하는 것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바다로 나와 어부로 생활한지 얼마 되지 않는 사내가 신이 나서 말했다.
“선장님, 저는 이번에 왜로 가면 그곳에서 왜녀와 장가를 가서 정착할 거야.”
“뭐라? 하필이면 왜 왜녀와 장가를 간다는 거야?”
“왜녀들은 남편에게 순종하는 정도가 조선보다 더 좋으니 왜녀가 좋지요. 더구나 나는 평균 키보다 작으니 왜녀가 더 적당해요.”
“녀석 꿈도 야무지네.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부지런해 선원 업무나 배워둬. 나중에 남명의 소주로 가면 그곳에는 왜녀들 보다 더 예쁜 미녀들이 많으니까.”
“아하! 선장님은 소주 미인과 결혼해서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