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화
태왕의 야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지고 있었다.
‘세계최강의 나라를 건설해 보자고.’
동양에서 최강국이던 명나라는 이미 망해서 사분오열로 갈라져 끝없이 전쟁 중이다. 그런 와주에 대진국은 그들을 적당히 조절하면서 수많은 무기나 생필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아직도 명의 잔존 세력의 힘이 강하니 서로 싸우면서 지금보다 약해져야 돼.’
두 번 다시 명나라와 같은 큰 나라가 생기지 못하도록 힘쓰고 있었다. 아주 철저하게 분열시키고 때로는 이간책을 써서 약소국으로 전락하게 만들어 관리하고 있었다.
대진국도 다민족 국가지만 중원의 국가들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서로 언어도 다르고 풍도 다른 수많은 소수 민족으로 나누어진 상태다. 잘만 하면 영원히 합치기 어려운 수많은 종족이나 나라로 변하게 될 것 같았다.
앞으로 적어도 수백년은 통일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던 최인범은 철갑웅에게 명령을 내렸다.
“남대문을 통과해서 도성 밖의 용산으로 가서 주둔해.”
“넷!”
“아침 일찍 마포나루를 지나서 남하할 것이니 준비를 단단히 하고.”
“명을 따르겠습니다.”
조선 왕도 없는 경복궁에서 머물 이유가 없다. 또한 대궐로 들어가 머물면 점령군으로 보여 인심이 사나워질 수 있기 때문에 내리는 조치다.
병사들은 모두 용산에서 야영준비를 하는 중에 최인범은 마포나루로 가서 도강 준비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마포 나루에도 배다리가 놓여 있지만 별로 크지가 않았다.
“크지도 않고 너무 흔들려서 도강이 쉽지 않겠어.”
“폐하! 보기에는 저래도 아주 튼튼합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하지 마세요.”
옆에 있는 주세붕이 이렇게 답하자 최인범은 즉시 지시를 내렸다.
“주 시장은 남경으로 먼저 이동하면서 우리 군대가 이동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다시 살피도록 하세요.”
“넷!”
최인범이 빠른 이동에 신경을 쓰는 이유가 있었다. 왜를 정벌하려면 여름이 되기 전에 혼슈까지 이동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태풍이 밀려오는 여름에 왜로 가기 때문이다.
과거 원나라에서 왜를 정벌하기 위해 고려와 연합해 많은 배와 병사를 보냈다가 태풍으로 몰살당한 역사가 있었다. 혹시라도 자신들도 그런 피해를 볼까 염려해서다.
‘태풍이 언제 올지 모르니 신속하게 가는 것이 좋아.’
한양이 전과 같지는 않다고 하지만 여전히 마포나루는 번성하고 있었다. 한양의 시전상인이 몰락해 버리자 상대적으로 마포 시장이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양이 몰락을 하는 반면 인근에 있는 인천은 해상 무역 때문에 상대적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천을 중심으로 수많은 염전은 빠르게 성장했다.
새로운 품종을 보급 받아 김포평야는 많은 작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특히 강화도에는 인삼재배 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의외로 인삼 재배가 빠르게 보급되고 있었다.
여전히 염전은 모두 왕족들 소유라 최인범은 그에 대해서도 필요한 조치를 내렸다.
“조선의 염전도 모조리 국가 소유로 만들도록 하시오.”
“폐하! 그렇게 하면 왕족들은 뭐를 가지고 생활하나요?”
“그거야 그들도 앞으로는 벼슬길이 열리니 관료로 들어와 근무하게 되니 걱정할 필요가 없소.”
“폐하! 무슨 벼슬을?”
“문교부 소속인 문화재청의 관리로 왕릉을 관리하거나 혹은 도성의 대궐들을 관리하는 관료로 근무하면 되는 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이제 빈 대궐이니 특히 화재를 조심해야 하니 반드시 대궐 내에 소방서를 두고 예방에 힘쓰도록 하시오.”
“넷!”
조정이 사라졌지만 행정 조직은 그대로라 조선의 관리들은 자연히 새로운 계급을 부여 받아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노비로 전락하는 대대적인 사정 작업과 더불어 숙청이 단행 되었다.
‘무능한 관리도 문제지만 성리학만 추구해 탐관오리로 변한 무리는 관료 사회에서 철저하게 몰아내야 해.’
이런 정책 때문에 조선의 관료 사회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관료들은 전과는 다른 마음 자세로 근무할 수박에 없었다.
사정 대상은 재판결과 되도록 극형은 면하지만 노비 신세로 변해 염전으로 가서 중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다만 전과는 다른 것은 연좌제가 사라져 자손들은 그나마 별로 피해를 보지는 않았다.
물론 재산은 모조리 몰수되기 때문에 전과는 비할 수 없이 신세가 처량하게 변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양반들에게 핍박 받던 백성들이야 시원하게 생각하고 ‘이제야 살맛이 나는 세상이 돌아왔다.’하며 좋아했다.
전에는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한 한도 풀렸다. 그리고 본인의 능력만 있다면 천민 출신도 고위직에서 근무가 가능하니 세상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세상이 너무 좋게 변했어.’
전통 품습 중에서 한가지 변한 것은 단발과 또는 군복과 비슷한 형태의 옷이 유행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특별한 내용은 과부의 재혼이 법으로 금지하니 않는 점이다.
소를 잡는 백정으로 살던 아비는 아들이 일찍 봉황성으로 이주해 군대로 들어가 고급 장교로 근무하자 사재를 털어 소를 잡아 야영장으로 가져왔다.
“폐하! 어찌 처리를 하죠.”
“성의는 고마우나 백성에게 피해를 줄 수 없으니 대금을 정산해 주도록 해.”
“넷!”
다음날 군사들을 이끌고 한강의 배다리를 지나 빠르게 남하했다. 그들이 빠르게 떠나고 나자 한양의 백성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라 그냥 지나가네. 별 일이야.”
“공연히 겁먹었어.”
흔히 벌어지는 약탈행위도 전혀 없고 부녀자를 강제로 취하는 일은 단 한건도 벌어지지 않았다. 전쟁이 터지면 반드시 젊은 병사들이 저지르는 흔한 만행인데 그런 사건이 전혀 없으니 다소 이상했다.
‘이상한 군대야. 기방으로 기녀를 찾아가는 병사들도 전혀 없고.’
최인범이 점령지에 대한 부녀자 약탈 행위나 기타 강간을 제일 중범죄로 다루는 이유가 있었다. 과거 왜놈들이 태평양 전쟁에서 저지른 잔악한 행위 때문에 그런 죄에 대해서는 특히 엄하게 다루고 있었다.
‘내가 비록 왜녀들은 모아서 이주시켜 혼인시킨 일이야 있지만 강간이나 주둔지 주변에 강제로 잡아다가 위안부를 두는 그런 잔악한 행위는 용서할 수 없어.’
그래서 그런 욕구를 잠재우기 위해 야영할 때에는 혹독한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피곤하면 쉽게 잡생각을 하지 않고 잠이 들었다.
그러나 한쪽 부분만 놓고 판단할 일은 아니다. 젊은 사내들의 성에 대한 욕구를 전혀 풀지 못하게 하면 그건 군의 사기에 큰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많았다. 어떤 식으로라도 발산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왜에서 주둔을 하게 되면 창기들은 접할 정도로 풀어줘야 될 거야.’
병사들의 욕구를 해소할 길이 달리 없으니 해보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도 상당히 조심해야 된다.
인간이란 본시 성에 대한 욕구가 차지 않으면 상당히 성격이 포악해지기도 한다. 항상 불만스럽게 생활하니 어떤 방법을 사용하던 그런 욕구를 풀어줄 구멍은 만들어줘야 한다.
명나라 정벌에서는 이런 내용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명나라의 경우 한다하는 고관 집에는 창기나 다름없는 하녀나 또는 기녀들이 수없이 많다. 그래서 북경을 점령한 후로 그녀들을 통해 병사들의 욕구를 쉽게 풀었던 것이다.
최인범은 마포나루를 지나 수원성을 거쳐 빠르게 남경(대전)으로 가게 되었다.
남경은 한반도에서 다소 남쪽에 치우쳤지만 그래도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육로를 통해 전라도와 경상도의 물산이 집결되는 지역이다.
남경은 홍익종의 사찰이 보문산 자락에 건립되어 있었다. 그리고 태권도 수련장도 마찬가지로 근처에 넓은 부지를 매입해 이미 한창 건축 중이다.
조선의 주심이던 한양은 이제 역사적인 고도로 남게 되고 한반도 북쪽은 평양이 중심이고 남쪽 지역은 남경(대전)이 중심으로 변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보병사단이 주둔하고 또한 기마사단도 주둔하고 있었다.
경상도 지역에서 발생할 반란도 견제하지만 이곳은 특히 농민들의 반란이 많은 전라도 쪽을 특별히 견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둔군은 모두 서대전 쪽에 포진해 있었다.
전라도 지역에서 자주 대규모 농민 반란이 많은 이유는 농토가 많기 때문이다. 타지 출신인 관리들이 대지주인 향리들과 결탁해 소작인들을 착취했다.
사실 죄의 경중으로 따지면 토착민인 향리들의 죄가 제일 크다. 하지만 그들은 고을의 백성들 분위기가 다소 변하면 빠르게 소작인의 편에 서서 고을 수령들에게 죄를 모조리 뒤집어 씌웠던 것이다.
그래서 ‘오죽하면 전라도 남원에서는 못된 사또인 변학도가 춘향전이란 판소리에서 등장하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런 점을 고려해 최인범은 주세붕 남경 시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삼도 지역의 모든 소작인들은 앞으로 소출의 3할 이내만 내도록 조치를 취하시오.”
“넷!”
“특히 이를 어기는 대지주의 경우 위법한 사실이 드러나면 모든 토지는 몰수하고 노비로 만들 것이니 그런 점도 잘 주지시키도록 하시오.”
“명을 따르겠나이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양반들의 경우도 농토가 적고 인구가 많은 경상도 지역은 상대적으로 학문에 치중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농토가 많은 전라도 지역은 상대적으로 풍요로워 학문 보다는 주색잡기를 즐기는 경향이 많았다.
특히 전라도 지역은 많은 섬들이 유배지로 이용되기 때문에 반골의 자손들이 많은 지역이다. 그들은 무지 몽매한 백성들에게 자신의 탓이 아니고 남을 탓하는 습성을 물려줘 버렸다.
전라도 지역에는 아주 좋은 조건의 염전이 많았다. 그리고 나라가 잠시 혼란한 틈을 노리고 불법적으로 염전을 운영하는 대지주들이 많았다.
지방의 호족들이 관아의 수령과 결탁해 벌이는 불법행위라 쉽게 근절되기 어려웠다.
최인범은 그런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주세붕에게 지시를 내렸다.
“행정력과 군사력을 총 동원해서 전라도 도서 지역까지 염전의 실태 조사를 정확하게 하시오. 그래야 남경 지역의 조세 수익이 늘게 되어 하는 공공사업들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소.”
“넷! 철저하게 조사해 불법 여전 시설을 압수하겠습니다.”
주세붕과 같이 말을 타고 새로운 신도시로 건설되는 남경을 순시하고 나자 최인범은 다시 추풍령으로 향하게 되었다.
옥천을 지나 영동에 들어서자 길이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도로 주변은 언제라도 산적이 나타날 정도로 우거진 숲이 가득했다.
“철갑웅! 주변으로 정찰병을 보내 혹시 산적 무리가 있는지 살피도록 해.”
“넷!”
세상이 조금만 혼탁하거나 어지러우면 산적이 발생하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그런 산적들도 소탕하고 떠날 심산이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백성들의 생활이 좋아져야 하지만 불법적으로 남의 재물을 약탈하는 도적의 무리가 없어야 한다. 물론 큰 도적이야 대부분 합법을 가장해 관료나 또는 중앙의 세도가들이 크게 해먹지만 그것은 사정 작업을 통해 걸러낼 심산이다.
철갑웅은 이 지역 출신 병사들을 차출해 빠르게 주변을 수색했다. 다행한 것은 산세가 험하고 도적이 있을 좋은 여건이지만 화전민 이외에는 없었다.
철갑웅은 화전민들도 언제고 산적으로 변할 위험성이 높이 모조리 잡아서 데리고 왔다.
“폐하! 어찌 처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