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7화
<왜 열도의 정벌 작전>
최인범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상, 주상의 조상님 중에 그런 훌륭한 분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세요.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분께서 훈민정음을 만들지 않았다면 짐이 이런 큰 제국을 건국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한민족의 중요하고 위대한 글을 널리 사용해야 됩니다.”
“폐하! 명심하겠습니다.”
최인범이 조선의 왕에게 이런 당부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조선 왕실에서는 모든 서류를 한자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대진국에게 망했지만 여전히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속셈이 있었다.
한문이 아닌 한글로 문서를 만들고 기록하는 자체가 문화적으로 뒤떨어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답을 하면서도 별로 귀담아 듣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 조금 이해는 가지만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흠! 하루아침에 명나라를 추종하는 사고방식이 변하기는 어려울 거야. 차츰 세월이 지나다 보면 자신들도 모르게 변하겠지.’
최인범은 시류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조선 왕국을 멸망시켰다. 하지만 그래도 출신이 조선이다가 보니 그들에게 많은 배려를 하고 있었다.
봉황산 중턱에 자리한 초대형 사찰인 봉황사에 도착했다. 사찰의 아주 넓은 마당에서는 10-15세 가량 되는 소년소녀들이 한창 무술을 수련하고 있었다.
“앗! 이얏!”
“타! 타다!”
이곳의 고아들은 전국에 있는 고아원에서 무술에 우수한 자질을 지닌 아이들만 모여 있었다. 모두 400명으로 이들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장차 황궁의 호위 무관으로 길러지고 있었다.
기본적인 무술은 태권도로 칭하는 권법이다. 그리고 특공무술인 합기도와 병장기를 이용한 무술인 18반 무예를 익히게 된다.
태왕께서 나타나자 수련을 멈추고 질서 정연하게 도열해 인사를 했다.
“차렷! 태왕폐하께 경례!”
“충성!”
거수경례를 하는 고아들의 인사에 답례를 하고 나자 무술 시법을 펼쳤다.
“앗!”
“이얏!”
어려서부터 배우는 무술이라 그런지 고아들의 무예 솜씨가 보통들이 아니다. 다부진 모습과 더불어 어려운 무술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펼쳤다. 모두 우수한 인재만 차출 되서 그런지 상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눈빛이 모두 초롱초롱하고 표정으로 보아 태왕을 신처럼 여기고 존경하는 빛이 역역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최인범은 매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흠! 저런 정도 실력이면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뭐를 하던 힘들게 살지는 않겠어.”
“폐하! 그들은 군 복무를 끝내고 만약 전역을 하면 모두 태권도 도장의 사범으로 근무하게 될 겁니다.”
“그렇군. 그것도 잘 생각했어.”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은 고아들은 나이가 들면 여기를 떠나게 된다. 무술만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학업도 하기 때문에 지적수준도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 된다.
이곳은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오로지 황실에 충성하는 예비 군사학교인 셈이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자연히 무관학교에 들어가 준사관이나 또는 장교로 양성될 예정이다. 그리고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 원하면 전역해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최인범은 옆에 서있는 철갑웅에게 물었다.
“여기를 떠나 이미 무관으로 임관한 녀석들도 있다고?”
“넷! 이미 100명은 준사관으로 임관했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그들 중에 남녀를 반으로 구성해서 50명만 별도로 차출. 이번에 가게 되는 해외원정에 동참하도록 해. 내 옆에서 호위군관으로 업무를 하는 것이니 준비를 단단히 하고.”
“넷!”
해외 원정이란 왜의 규슈를 비롯한 혼슈지역을 병합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말한다. 드디어 내치에 힘쓰던 태왕께서 왜로 떠나시려는 것이다.
태왕에게는 별도로 경호기마부대나 또는 친위기마부대 그리고 경호실이 있다. 또한 철갑웅을 비롯한 삼형제가 호위무관으로 근무를 한다.
철갑웅 형제는 때로는 군대를 통솔하지만 그보다는 주된 업무가 태왕을 지키는 호위 업무가 최우선이다. 그런 업무에 고아 출신 준사관들을 포함해 왜로 떠나려는 것이다.
이미 많은 부대들이 부산포로 가거나 또는 규슈 지역으로 집결해 있었다. 아직 태왕의 혼슈지역에 대한 공격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간몬해협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다.
육군만 아니고 많은 해군도 태왕의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부산포나 하카타 항구에는 대부분의 전쟁 물자가 도착해 있었다.
해군의 경우 명나라 출신인 척계광이 이끌고 있었다. 그는 비록 명나라 출신이지만 한반도 출신인 고려의 무장인 척준경의 후손으로 결정되어 해군을 이끌고 있었다.
태왕을 비롯한 황실의 가족들은 봉황사를 구경하는 나들이를 끝내고 다시 황궁으로 돌아왔다. 황궁으로 돌아온 태왕의 즉시 각료회의를 열었다.
왜를 정벌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국정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해 주고 있었다.
최인법은 농산부장관에게 물었다.
“장관, 몽골에서 들여오는 가축들은 지금도 들어오나?”
“넷! 계속해서 매달 대가축을 기준해서 1000두씩 들여오고 있사옵니다. 주로 말과 소가 들어오고 가끔은 필요에 따라 낙타도 들여오고 있습니다. 소가축인 양도 1만 마리를 들여와 개마고원과 강원도로 보냈습니다.”
“낙타는 서경으로 보냈나?”
“넷!”
낙타를 들여오는 이유는 고비사막 지역으로 떠나는 대상인들의 운송수단으로 사용하거나 또는 몽골지역의 군사들의 보급품 수송을 감당하기 위해서다.
대진국은 실크로드를 완전히 장악해 북쪽의 몽골 지역의 루트는 물론 만리장성 남쪽의 루트를 통해 비단을 서쪽의 타타르 부족 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 루트를 따라 멀리 대진국의 공산품이나 농산물 그리고 연해주 지역에서 생산된 많은 건어물이 서쪽지역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타타르 부족은 동쪽에서 들여오는 물건을 서쪽의 아랍지역으로 판매해서 동서 교류의 중간 무역상으로 큰 부를 이루고 있었다. 그 때문에 타타르 부족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더욱 강성해지고 있었다.
특히 대진국의 대포를 다량으로 보유한 그들은 막강한 군사력을 지민 강대국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는 인구도 늘고 부를 이루어 주변국을 위협하며 세력을 점차 넓이고 있었다.
국방장관이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폐하! 명나라 잔적 세력이 또다시 서로 연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서경(북경) 지역에 군사적 지원을 추가로 해야 될 것 같사옵니다.
“알겠소. 그 문제는 중경(심양)에서 지원해 주도록 조치를 취하시오. 그리고 황하를 기점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도록 하시오.”
“명을 따르겠나이다.”
왜와 전쟁을 벌이는 어수선한 가운데 명나라 잔존 세력이 준동할 염려가 많으니 미리 방어태세를 공고하게 하려는 것이다.
각료회의를 끝내고 나자 최인범은 소피아 황비를 만나 당부했다.
“황비, 아무래도 장인이 계신 타타르 왕국으로 소식을 전해야 될 것 같소. 타타르 왕국에서 필요한 대포를 보내고 싶으니 동진해서 중간에서 받아갈 수 있도록 하세요.”
“알았어요. 마침 타타르까지 가는 대상단이 있으니 제가 직접 서경으로 대포를 가지고 가서 아버님께 소식을 전하지요.”
“그렇게 하고 황비는 당분간 서경의 자금성에 머물면서 그쪽 지역을 관장하도록 하시오.”
“예.”
만사불여튼튼이라고 명나라 잔존 세력이 준동할 것을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이다. 만약 서경 지역에서 반란이라도 벌어지면 타타르 왕국과 협력해서 협공으로 분쇄할 계획으로 이런 지시를 내렸다.
물론 타타르 부족 이외에 산동 반도 지역에도 군대가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상의 일이란 변수라는 것이 존재하니 추가해서 대비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왜로 떠날 준비를 마친 최인범은 황실의 가족들과 작별을 했다.
드디어 친위기마대대 경호부대 그리고 호위무사들인 군관들을 대동하고 봉황성을 떠나고 있었다. 황실의 가족들이 모두 나와 전장으로 떠나는 태왕을 배웅하고 있었다.
배웅 나온 설화 황비가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폐하! 서경으로 저도 소피아 황비와 같이 가겠습니다. 보내주세요.”
“왜 꼭 가고 싶은 이유라도 있는 거요?”
“예, 서경을 차지했지만 자금성에는 한 번도 들어 가보지 못해 구경을 겸해 가보려고 합니다.”
“알았소. 황비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시오.”
여진족 출신이라 설화 황비는 다소 막연하게 자금성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굳이 자금성을 기회에 구경하려는 것 같았다.
설화의 입장에서는 타타르 왕국이 너무 세력이 커지자 은근히 소피아 황비를 견제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타타르 부족이 중원을 차지하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피아 황비가 협조하면 충분히 그런 사태가 벌어질 여지가 많았다.
‘소피아가 황비라고 하지만 조심해야 돼.’
설화는 마음 깊은 속에 대진국에서 명나라 출신이나 몽골 출신 그리고 타타르 부족은 별로 믿을 족속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조선 출신 신료들도 때로는 온전하게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드디어 출정을 결심한 태왕은 봉황성을 떠나 남쪽으로 이동했다.
경호실, 친위기마부대, 기타 호위부관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두두두두
수많은 기마병들이 줄지어 이동했다. 그들의 뒤에는 보급품을 실은 마차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부산포까지 보급품을 날라다 주고나면 마차들은 모두 한반도의 역참에 배치될 예정이다.
철갑웅 삼형제는 옆에서 같이 이동 중이다. 또한 조선왕과 같이 한양을 향했다. 조선국이 이미 합병되어 조선의 주상은 이제는 국왕이라는 명칭 대신에 조선왕이란 칭호만 사용하게 되었다.
잘 포장된 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해 압록강변의 단동에 도착했다. 단동은 이미 조선업이나 기타 산업이 발달해 도시 규모가 상당히 커진 상태다.
오가는 사람들 중에 군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단동시장을 보며 물었다.
“저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폐하! 이곳은 조선출신으로 노비를 하던 사람들이 근로자로 많이 와 있습니다. 여기는 노비출신들이 다른 곳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직장들이 많습니다. 군복을 작업복으로 입은 것으로 보아 노비 출신이 확실합니다.”
“노비들에게 군복을 나누어 주었나?”
“넷! 작업복으로 최상이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렇군.”
최인범은 단동 시장과 이 지역에 대한 발전 방향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압록강 변의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커다란 바지선들이 연결되어 배다리가 놓여있었다. 배다리를 만든 이유는 왜로 보내야할 군수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배다리가 튼튼하군.”
“폐하! 장마철을 제외하고는 사철 배다리를 놓아두고 있사옵니다. 물론 가끔 상류에서 뗏목이 내려오면 그때는 배다리의 일부가 철수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