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화
또한 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송사를 비롯한 지역민들 사이의 분쟁이 많다는 것을 잘 안다. 그 때문에 불교인 홍익종을 널리 보급해 매장풍습이 아닌 화장으로 변경시킬 요량이다.
읍면 단위 지원인 사찰에는 사찰의 기본 시설 이외에 규모가 큰 태황관이 모여 있다. 태황전에는 산신각, 단군사당, 태조당, 천제각이 있었다.
산신각이나 삼신을 모신 곳이다. 단군사당은 고조선의 시조이자 군왕인 단군들을 모신 사당이다.
그래서 두 곳은 모두 전통을 따르는 사당이다. 태조당의 경우는 한반도를 비롯한 요동지역에서 큰 제국을 이룬 나라들을 건국한 태조들을 모신 사당이다.
요, 원, 금,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의 건국 왕이나 혹은 유명한 신하들이다.
천제각은 자연히 태왕을 천제의 아들이라고 해서 모시는 사당이다.
이는 설화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태왕을 신격화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또한 이곳은 현재 대진국의 황실을 높이 칭송하는 장소다.
특이한 것은 태조당으로 역대 왕조 중에서 건국 시조인 태조를 비롯해 유명하고 현명한 성군이나 명재상, 명장이라고 판단되는 사람들의 위패가 같이 모셔지게 된다.
이곳에 모신 분들은 앞으로 소설 형식의 위인전이 집필되어 널리 보급할 예정이다. 그렇게 함으로 후손들에게 한민족이 위대한 조상들을 이어받은 훌륭한 민족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다민족으로 구성된 대진국의 통합을 이루게 되는 정신적인 힘의 바탕이 되고자 노력는 것이다.
황궁의 화려한 건물들 사이에 있는 태왕의 집무실인 편전······.
커다란 공간에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기물로 가득한 편전에서 최인범은 새로운 역사서를 발간하려고 노력하는 자순을 만났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 가운데 독대를 하고 있었다. 항상 옆에서 시중을 드는 황궁의 시녀들도 보이지 않았다.
자순은 전에야 수시로 독대 형태로 만나는 사이다. 하지만 거대한 제국을 만든 이후로는 독대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순은 대진국의 국민들 통합을 위한 교육이나 또는 역사서적 그리고 유물 발굴에 힘을 쓰고 있었다.
자순은 전과 달라 근엄한 모습으로 옥좌에 앉아 있는 태왕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폐하께서 전과는 많이 달라지셨어.’
사람이란 본시 직위에 따라 풍기는 분위기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최인범은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느끼는 무서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자순은 역사를 재평가하면서 태조당에 안치하는 위패를 누구를 정할지 결정하고 있었다. 일단 하나의 왕조에는 50명 이내의 인물만 태조당에 안치할 수 있도록 정했다.
“폐하! 을지문덕 장군과 을파소를 태조당에 안치해야 되옵니다.”
“고구려에서는 그들만 넣기로 했나?”
“폐하! 혹시 또 누굴 염두에 두시고 있으신지요?”
“그거야 경이 알아서 결정하라고 했으니 일단 대상 인물들을 선정해서 각료 회의를 통과시켜 처리하도록 하시오. 참고로 고구려의 강이식 장군이나 또는 연개소문도 잘 검토해 보도록 하시오.”
“명을 따르겠나이다.”
최인범은 이런 일이 중요해 자순을 만나려는 것은 아니다. 그를 만나는 이유는 과연 왜를 어떤 식으로 합병하는 것이 좋은지 최종적으로 결심할 필요성 때문이다.
기왕에 왜의 유규 그리고 멀리 대만까지 통합하고 북해도도 복속해 버린 마당이다. 굳이 한반도와 가까운 좁은 지역인 규수 정도만 통합하고 끝내기에는 뭔가 미진하다고 느꼈다.
‘왜까지 합병을 시키는 것이 좋아.’
그러나 왜를 완전히 합병시킨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군사적으로 합병이야 가능하지만 다른 문제가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왜를 복속시키는 대진국의 인구 분포에서 왜인들의 수가 너무 많아진다는 점이다.
자칫하다가 오히려 왜인들이 대진국의 다수 민족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일부는 왜로 존속시키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미 통합 단계에 들어간 조선왕국에 대한 처리 방식을 묻고 싶었다.
“자순, 그대는 조선의 왕실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가?”
“폐하, 소신이 조사한 바로는 조선국왕은 이미 자손을 보기가 어렵다고 판단되오니 너무 신경 쓸 것이 없사옵니다. 적장자가 없으니 조금 시간이 지나더라도 저절로 현재의 왕실이 소멸되는 형태로 놔두는 것이 좋사옵니다.”
“그래도 그들은 왕실이 보유하고 있는 내탕금이 많아 그것을 이용해 앞으로도 군왕제도를 유지시키려고 하니 그것은 어찌 처결하면 좋은가?”
“폐하! 이번에 새롭게 통합한 홍익종의 사찰 부지 매입비로 조선왕실의 내탕금을 내어 구입 하도톡 조치하심이 타당하옵니다.”
조선의 국왕을 당장 폐위시켜서 죽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문제점이 많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대로 조선 왕실을 지금처럼 놔둘 수는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최인범은 드디어 결심을 했다.
“나라의 중요한 근간인 대신들이나 관료들이 대부분 조선 출신이니 이렇게 합시다. 조선 왕실로 연락해서 조선의 궁궐이나 역대 왕릉을 문화재 지역으로 선정해 존속시켜 줄 것이니 대신 내탕금을 내서 조선에서 건립하는 사찰부지나 건축 대금을 충당하라고 하시오.”
“명을 받들겠나이다.”
밀명을 받는 자순은 신속하게 편전을 떠나고 있었다. 그는 한양으로 가서 주상이나 윤대비 그리고 대신들을 은밀하게 협박해 목적을 달성해야 된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선 왕실은 큰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버티다가는 모조리 죽이겠다는 협박에 굴복하고 말은 것이다.
이미 외교, 국방, 행정 등 모든 권리를 박탈당해 아무런 실권이 없는 조선의 왕실이다. 그러니 대진국의 태왕이신 최인범의 결정에 따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조선 출신인 태왕으로는 그나마 조선왕실에 대해 최소한의 배려를 해주고 있었다.
이런 일련의 조치는 대진국이 요동을 중심으로 한 다민족 국가다 보니 다수를 구성하는 조선국 출신들에 대한 배려이고 국민통합을 위한 방편이다.
이런 태왕의 결정으로 결국 조선의 왕실은 완전히 망하게 되었다. 엄청난 왕실의 내탕금은 모조리 조사되어 압류를 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자금은 홍익종 사찰의 부지 매입과 더불어 사찰 건립비로 사용되도록 조치했다.
“아이고! 이제는 뭘 해서 먹고살지?”
“이 사람아. 능참봉을 하면되지 뭐가 걱정이야. 슬슬 산보나 다녀도 월급이 나오는 능참봉이면 감지덕지해야지.”
“그거야 그렇지만 그것으로 먹고는 살지만 소나무를 보호해야하니 그도 쉽지는 않아.”
이제는 조선 왕실은 한양의 대궐에서 작은 공간만 사용하면서 지내는 단순한 왕족으로 변했다.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대진국 황실의 일원이 된 것이다.
그나마 천만다행한 것은 그들이 지내는 공간에서 일하는 궁녀나 또는 생필품은 대진국의 황실에서 조달해 준다는 점이다.
그럭저럭 왕족으로 체면은 조금 유지할 정도가 됐다.
대진국 황실의 일원으로 각자의 직급에 따라 연봉이나 관리비가 책정되어 보내지게 되었다. 전에는 왕족이라고 호의호식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제 일반인으로 변했다.
태왕의 명령으로 통합된 불교의 종파인 홍익종은 빠른 속도로 필요한 부지 매입에 들어갔다. 이런 조치가 조선 팔도에서 벌어지자 이제는 조선왕국은 완전히 망해 버렸다.
“애고! 애고! 이제는 완전히 망했어.”
“애고! 우린 어찌 사나?”
“어이구! 나라 없는 우리는 어디서 사나?”
망해 버린 왕조라고 해서 일부 사대부들이 상복을 입고 광화문 거리로 모여들어 통곡했다. 그들은 백이숙제와 같이 행동한다고 심산유곡으로 들어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이나 이미 대진국에 충성하기로 결심한 부류들은 이런 모습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저것들 바보들 아냐? 조선이 망하다니 태왕이 조선인으로 큰 나라를 세우고 드넓은 요동은 물론 왜까지 차지했는데. 큰 나라의 백성으로 살면 더 좋지 울긴 왜 울고 저래.”
“그러니 저런 놈들은 바보라고 하는 거야.”
어찌 되었건 망해버린 조선왕국의 잔재는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대세의 흐름을 도무지 되돌릴 수 없었다. 세상사에서 서로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르니 일부 사대부들은 조선 왕실에 충성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생각은 오래갈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주민증 제도가 정착한 대진국이라 심산유곡에 살더라도 정확하게 인구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반도 병역과 부역의 의무가 있으니 고을로 와서 신고하고 책임을 다하시오.”
“뭐요? 양반도 부역을 해요?”
“그렇소. 대진국은 신분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모른다는 거요?”
“우리는 그렇게 못하오.”
“그러면 재판에 회부되어 강제로 소금을 생산하는 노역장에서 일해야 될 것이오. 그러니 잘 판단해서 결정하시오. 그나마 도로를 건설하는 부역장이 편할 것이오.”
대진국은 조선의 왕실을 무너트리고 나자 신분제도를 철폐해 버렸다. 인재 등용인 과거는 물론 어떤 곳에서도 본래의 신분으로 구분하지는 않았다. 서얼에 대한 차별까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설사 그렇더라도 오랜 관습이라 그것은 쉽게 사라질 수 없었다.
신분제도가 사라졌지만 양민이 아닌 노비의 경우는 관아에서 심사해서 구분하고 있었다. 단순한 노비는 일반 백성으로 변했다. 그러나 죄를 지어서 노비가 된 사람의 경우는 여전히 노비의 신세로 강제로 노역을 해야 된다.
최인범은 수시로 정복 전쟁을 벌이고 있고 죄를 지은 사람들도 있다. 그 때문에 전쟁 포로나 죄인을 노비로 부려야 한다. 그러니 온전히 노예제도를 폐지할 수는 없었다.
조선 왕조가 멸망을 하자 일부 몰지각한 백성들이 난동을 부렸다. 무슨 과잉 충성이라도 하려는 듯이 조선왕국의 능에 있는 소나무를 배거나 파묘를 하는 바람에 크게 소란이 일어났다.
이런 황당한 소식을 접한 최인범은 즉시 명령을 내렸다.
“조선 왕실의 능은 문화재 지역이니 즉시 능에는 참봉을 각기 2명씩 두어 철저하게 보호하시오.”
“예이!”
능참봉 제도는 본시 최하위 벼슬인 종9품으로 왕족이 하지는 않으나 대진국에서는 왕족이 여전히 무능력해 먹고 살길이 없자 모조리 능참봉 벼슬을 주어 자손이 승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최인범은 문화재를 담당하는 장관에게 근엄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추후에 또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이번에 임명하는 능참봉은 물론 해당 되는 고을 수령도 문책할 것이니 명심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왕능을 조금이라도 훼손하면 그 죄를 엄중하게 물어 소나무 한 그루당 태형 10씩의 벌을 주는 교지를 발표하도록 하시오.”
“폐하! 그렇다면 문화재 지역의 소나무나 기타 나무는 모두 해당이 되옵니까?”
“그렇소. 즉시 시행령을 반포하도록 하시오.”
최인범이 쉽게 이렇게 결정한 것은 전생에서 문화재 관리인들이 능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기왕에 잘 보존된 왕릉이니 지역의 녹지 공간으로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아.’
이와 더불어 새롭게 생긴 불교종파인 홍익종의 사찰 부지가 도심과 가까워야 하고 또 넓어야 되는 이유가 차츰 표면에 드러났다.
“오라! 부지가 넓어야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
“그럼 앞으로 초상이 나면 화장을 해야 되나?”
“그렇다고 하더군.”
“그게 쉽게 되려나? 사대부들이 명당을 얼마나 좋아 하는데.”
“자네는 아직도 양반 쌍놈을 따지나. 물론 명문 가분이야 있지만 이제는 대진국에 충성하면 그들만이 묘를 쓰거나 또는 납골당이나 혹은 부도지에 안치된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군.”
“그런가? 나는 오늘이야 알았네.”
홍익종 사찰의 경내라고 설정된 넓은 부지에는 작은 화장장, 납골당, 추모관, 부도지가 있어야 한다. 그와 더불어 거대한 수목장도 만들고 있었다.
사찰 내에는 통합 무술인 태권도 수련장이나 지부 사무실 등이 건립되어야 하니 큰 부지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