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화
고관대작으로 호의호식하며 잘 살던 조정대신들은 난리가 났다. 자신들의 앞날이 걸린 중대한 문제라 매일 같이 모여 논의하고 있었다.
나라가 어찌 되던 또는 자신들이 충성을 맹세한 왕실이 어찌 변하건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미래만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앞으로 뭐하며 살지?”
“양반 체면에 장사를 할 수는 없지 않나?”
“그야 그렇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상놈이 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어.”
그러나 합병하면 벼슬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니 매우 불안했다.
“그래도 벼슬을 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는 우리는 앞으로 벼슬을 하며 살지는 못할 것 같은데. 대진국에서 하는 일상 업무가 전혀 다르니 적응하기 힘들다고.”
분위기로 봐서 대진국의 관료로 다시 임명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같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수군거리고 있었다.
“뭔가 단체로 움직여야 되지 않나?”
“어떻게 말인가?”
“광화문에서 연좌로 시위하는 수밖에 없어. 성균관을 다니는 유생들과 같이.”
이렇게 해서 광화문 앞에서 많은 선비들이 모여 들었다. 성균관 유생들도 앞으로 살 길이 없다고 판단으로 연좌해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전하, 통촉하옵소서.”
“전하!”
뭔가 대안은 없으면서 연일 그저 행정권을 넘기면 안 된다고 큰 소리로 외치고만 있었다.
그러나 조선 왕실이나 조정 대신들은 대진국의 요구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군사권은 물론 사법권까지 완전히 빼앗긴 마당이라 반항하려고 어떤 집단적인 행동을 벌일 수는 없었다.
왕궁의 대비 전에서는 연일 계속해서 올라오는 상소로 골치가 너무 아팠다.
“대비마마, 오늘도 상소가 50건이나 들어 왔사옵니다.”
“뭐? 또 그렇게 많이 상소를 올렸다고? 그런다고 이미 끝난 사실이 변할 수는 없지 않나? 상소는 볼 필요도 없으니 물리도록 하시오.”
“예이!”
대진국에서 조선 왕실에 제안한 내용은 왕실 재산은 그대로 차지해도 된다고 했다. 그러니 윤 대비로는 힘이 없으니 그런 정도로 만족했다. 공연히 합병을 두고 반발하면 군왕을 폐위하고 정강대군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에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윤 대비는 동생인 윤원형을 불러 차분하게 지시했다.
“영상, 성균관 유생들은 앞으로 법원에서 판사로 임용하는 고시를 볼 수 있으니 이쯤해서 다시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도록 연락하게.”
“넷!”
“유생들도 빨리 새로 공부를 하도록 잘 설득하고.”
“명을 따르겠나이다.”
어려운 사서삼경을 달달 외우던 유생들이다. 그들은 대진국의 법전을 외우면 사법고시를 보기가 쉽다는 점을 알려줘 농성을 풀도록 유도했다.
결국 성균관 유생들의 경우 대진국의 대학 졸업과 똑 같은 학력인 학사를 준다고 했다. 이런 결정이 통보되자 광화문을 떠나 성균관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공연히 농성이나 벌이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지금부터 대진국 법전을 외우는 공부를 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책 두 권만 달달 외우면 된다니 해보자고.”
“외우는 거야 자신 있어.”
그러나 현직에 있는 많은 대신들은 새롭게 공부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영의정인 윤원형을 중심으로 모여 대진국의 요구 사항을 두고 논의했다.
“영상 대감, 대진국에서 정확하게 뭐를 요구하는 겁니까?”
“우선 각 도의 수장인 관찰사 제도를 폐지하고 앞으로 도지사와 시장 군수와 읍면장을 두겠다며 임명권을 넘겨 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영상 대감, 중앙 조직은 어찌 하고요?”
“아직 그것에 대한 어떤 조치나 뭐를 따로 요구하지는 않았소.”
“그 이야기는 나중에는 중앙 조직은 완전히 폐지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나도 태왕폐하의 뜻은 아직도 정확하게 알 수 없소.”
그렇다면 결국 중앙에 있는 조직은 당분간 존속시키다가 폐지해 버린다는 뜻이다. 졸지에 자신들의 일자리가 한 번에 사라지게 생긴 것이다.
관료 임명권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관청이나 관청에 딸린 재산 역시 모두 대진국의 국고로 들어가기 때문에 해야 할 업무들은 너무도 많았다.
이런 와중에 많은 국가 소유인 토지가 고관들의 손에 의해 개인 땅으로 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한 왕실 재산이던 토지 역시 마찬가지로 전주 이씨의 개인 재산으로 변했다.
“기회에 불하를 받는 형태로 싸게 국유지를 차지하는 것이 좋아.”
“돈만 있으면 나라가 어찌 바뀌어도 잘 살 수 있어.”
그런 일들이 은밀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드디어 조선의 전 지역에 대한 새로운 행정구역이 확정되어 발표되었다. 또한 도청소재지도 공포했다.
함경북도는 정주, 함경남도 평양, 평안남도 함흥, 함경북도 청진, 황해도 해주, 경기도 수원, 강원도 춘천, 충청북도 청주, 충청남도 예산, 전라북도 전주, 전라남도 광주, 경상북도 대구, 경상남도 부산, 제주도 제주로 확정되었다.
도의 토지 크기로 보면 조선을 8도로 나누어야 된다. 그러나 인구수나 앞으로 발전 가능성을 참고해 전에 조선에서 사용하던 행정구역을 그대로 이어가기로 했다.
다른 지역은 별로 문제가 없지만 충청남도의 경우 도청소재지를 공주에서 예산으로 이전하자 약간 문제가 발생했다. 공주에서 사는 양반들이 반발하고 있었다.
“꼭 도청을 예산으로 이전하려면 공주에도 대학교를 만들어 달라고 합시다.”
“그럽시다.”
공주에서 사는 유생이나 양반들은 회덕으로 가서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도청 소재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대신 뭔가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문제는 한양에 있은 대신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한양의 관료들은 장차 한반도의 중심이 될 곳인 남경이 회덕 근처로 확정되었기 때문에 그곳에 대한 관심만 집중했다.
“앞으로 남경이 행정이나 교통의 중심지로 변해 경제도 그곳을 중심으로 발전하겠어.”
“그것뿐인가? 그곳에는 대학교도 2개나 건설한다던데.”
“이참에 그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좋지 않나?”
“이사 가면 살 토지나 있나 모르겠군.”
새롭게 행정구역이 확정되자 빠르게 도지사나 시장 군수가 임명되었다. 도지사는 모두 대진국 출신들로 임명되었다. 시도에는 경찰서나 혹은 법원과 검찰청이 들어서게 되고 그곳에서 근무할 관료들이 임명되었다.
지방에서 근무하던 관료들은 대부분 군수나 또는 읍면장으로 발령되거나 법원의 판사와 검사로 임명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방의 호족 세력이던 양반들도 늘어난 행정 조직에서 한자리씩 차지했다.
그러자 큰 기대를 하고 있던 백성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뭐야? 전과 똑 같이 양반들만 좋은 자리를 모조리 차지했잖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잖아. 한문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 관료로 근무할 수는 없지. 그래도 앞으로는 어떤 신분을 가진 사람도 시험에 응시해 합격하면 관료가 될 수 있으니 변한 것은 확실해.”
“아전 하던 이방이 면장을 하게 됐다더군.”
“그런가? 어디서는 아전이 군수로 임명됐다고 하던데.”
그러나 새롭게 변한 행정조직으로 이전하게 된 관료들 중에 사퇴하는 양반들이 대폭 늘어났다. 이유는 대진국에서 공무원의 경우 모두 상투를 자르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지사를 찾아가 단발을 두고 항의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머리카락을 한 올도 함부로 자를 수 없으니 군수를 그만 두겠소.”
“꼭 그렇게 하기가 싫다면 하는 수 없소.”
군수가 사퇴하면 도지사는 군 관할의 읍면장 중에서 최고 선임자를 선택해 즉시 군수로 임명해 버렸다. 시장 군수의 경우 도지사가 임명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빠르게 교체되었다.
큰 고을에 해당하는 시장의 경우 내무장관과 국무총리가 임명권을 지닌다. 그 때문에 이황 국무총리와 유달곤 내무장관은 남경에서 머물며 인사권을 행사했다.
검증되지 않은 관료를 마구잡이로 임명해 문제점이 있으나 우선 행정 조직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검찰이나 경찰이 나서서 부정부패한 관료들을 찾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경찰서에 할 일이 많아야 되니 우선 그런 업무부터 하자고.”
“그게 좋겠어.”
경찰이 나서자 검찰도 부정부패한 관료를 찾는 업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으려면 뭔가 공적을 세워야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치 이이제이 수법과 같이 조선출신인 양반들이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단죄하도록 조치를 내려버린 것이다. 지역의 경찰서 구치소에는 수많은 양반들이 투옥되었다.
그에 비해 대진국 출신인 경찰이나 검찰은 일반 범죄에 대해서만 업무를 담당했다. 사회가 약간 혼란스러워지자 각종 범죄가 늘어났다.
‘우리는 조용히 민생 업무만 착실하게 수행하면 돼.’
한편 최인범은 봉황성에서 주로 백성들이 진정서를 낸 문제를 가지고 시간을 보냈다. 다시 재판하거나 또는 법을 개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드디어 조선의 행정 조직을 인수했다는 보고를 받자 군대에 지시를 내렸다. 근정전으로 국방차관을 불러 자세하게 지시를 내렸다.
“국방차관, 육군과 해군에게 통보해서 행정 관료나 검찰이나 법원 그리고 경찰에서 근무하겠다는 군인들을 모집하시오.”
“넷!”
“헌병 출신들은 경찰로 전직하기가 쉬울 거요.”
“넷!”
자연히 공병대 출신들은 도의 건설과에서 근무할 수 있으니 얼마든지 전직이 가능했다. 포병 장교들은 대부분 측량사 자격증을 취득한 경우가 많아 지적과 공무원이 될 수 있었다.
합병한 조선에서 앞으로 계속해서 토목이나 건축 사업이 벌어질 것이라 그쪽 분야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군의관들도 전역하도록 해서 보건소에서 근무하도록 해.”
“넷!”
조선을 합병하면서 최인범은 다소 많다고 생각하던 육군의 수를 이런 식으로 감축하고 있었다. 물론 전체적으로 감축되지는 않지만 조선을 합병하면서 같은 병력을 보유하니 인구수에 비해 군사들의 비율을 대폭 줄인 것이다.
조선의 관료사회를 바꿀 필요성이 있으니 교체할 사람들을 미리 선발해 두기로 했다.
“인수가 끝났으니 이제는 사정업무를 시작해도 되겠군요.”
급하게 임명한 조선의 관료들에 대해 대대적으로 사정 업무를 벌여 물러나게 하고 대진국 출신이나 조선 출신 중에서 청렴한 인물을 발탁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황궁에서 일어난 방화사건의 용의자였던 두 궁녀를 은밀하게 조사하던 최복동이 황궁으로 찾아왔다. 주위를 물린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폐하, 드디어 방화사건의 배후세력을 찾았습니다.”
“뭐요?”